작성일
2005.01.04
수정일
2005.01.04
작성자
김혜준
조회수
1019

古遠淸, <타이완, 홍콩, 대륙의 문학평론 비교>

타이완, 홍콩, 대륙의 문학평론 비교

 

遠淸 (김혜준 정리)




1. 타이완과 대륙의 문학평론

(1) 문학사조 : 모두 정치운동의 강력한 간섭과 영향을 받았다. 양안의 문예정책은 문학을 정치의 도구로 간주하는 것이었다. 대륙은 신시기에 들어 더 이상 문예를 계급투쟁의 도구로 [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문예에 대한 당의 지도를 강조하고 있다. 반면에 1980년대 이후 타이완은 정부측 문예 통제가 더 이상 권위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2) 문예논쟁 : 모두 정치화 경향을 띠었다. 대륙은 논적을 반공적인 우파라고 몰아세웠고, 타이완은 상대를 친공적인 좌파라고 비난했다. 대륙에서는 신시기에 한때 ''비난조 평론''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이른바 ''7할 칭찬 3할 지적'' 식의 평론이 성행한다. 반면에 타이완에서는 비록 자기 사람끼리의 추켜세우기 평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륙에 비해 인정사정 없는 평론이 훨씬 많다.
(3) 평론가의 내원 : 모두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대륙의 평론가는 모두 중문과 출신으로, 문예 이론이나 현당대문학 연구 및 창작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이 많다. 타이완은 1970년대 이전에는 중문과는 주로 고대문학만 강의했기 때문에 작가든 평론가든 간에 절대 다수가 외국어문학과 출신, 특히 타이완대학 외국어문학과 출신이다. 타이완에서는 동인지와 자발성 문학단체가 다수의 자기편 평론가를 배출해낸 반면에 대륙에서는 보기 드물다.
(4) 평론 내용 : 대륙 평론가는 시대정신과 민족풍격을 가진 작품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며, 대부분 강렬한 역사적 사명감과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고정적인 수입, 안정적인 생활 환경, 충분한 작업 시간, 많은 발표 지면을 가지고 있으며, 창작을 겸하는 경우가 극히 적다. 따라서 체계적인 저작이 많고, 이론적 깊이를 가지고 있다. 타이완의 평론가는 ''주선율''을 강조하지 않고 다원화를 주장하면서, 작품은 개인의 인생 체험과 오욕칠정을 써야 한다고 본다. 외국 문학이론 수용면에서, 대륙의 중년 이상의 평론가들이 모두 소련 문학이론의 영향을 받은 것과는 달리, 타이완 평론가는 오랜 기간 서구 문학이론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타이완의 1950,60년대 평론가들은, 미국의 원조에 수반된 서구문화의 수입과 20세기 전반의 문학작품 판금의 영향으로, 민족전통과 단절되면서 서구 문학이론을 맹목적으로 모방 하는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 후기에 이르러 양안의 문학평론에는 모두 중대한 전환이 일어났다. 대륙은 서구 문학이론을 대량으로 소개하고 활용하게 되었으며, 타이완은 ''악성 서구화''에서 점차 전통으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5) 연구 기구와 평론 간행물 : 대륙은 정부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전국 각 성과 시에는 거의 모두 전문적인 문학 연구 기구가 있으며, 각 대학 중문과에는 당대문학 연구실이 있다. 많은 도시에는 공개적인 또는 내부용의 당대문학 위주의 평론 간행물이 있으며, 상당수 성과 시에는 타이완 홍콩문학을 연구하는 전문 기구까지 있다. 반면에 타이완은 정부 쪽의 대폭적인 지원은 없다. 공적인 당대문학 연구 기구와 당대문학 평론 간행물도 없고, 각 대학에도 타이완문학을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극히 적다. 타이완은 자본주의적 상업사회이기 때문에 급여를 받는 전업작가나 전업평론가가 거의 없다.
(6) 표현 형태 : 모두 중국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문제를 사고하는 방식과 창작하는 형태가 대체로 유사하다. 다만 1945년 직후 몇 년간 타이완의 현지 평론가들은 일제하 일본어 교육의 영향 탓에 능숙하게 중국어를 구사할 수가 없었다. 현재의 타이완 문학이론가들(주로 해외평론가)은 영어로 글을 쓰기도 하며, 또 그들의 평론에는 외국어가 많이 사용된다. 이런 현상은 대륙의 평론가에게는 극히 드문 일이다. 타이완에서는 최근 ''타이완어로 쓰자''라는 주장이 일어나고 있는데, 대륙에서는 방언으로 문학평론을 쓰자는 주장은 없다.
(7) 글쓰기 방식 : 대륙에서는 개인 저술 외에도 집체 또는 여러 명이 편저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한다. 주로 대형의 공구서나 비교적 난도가 높고 분량이 많은 이론 저작 또는 문학사 저작의 경우 후자가 선택된다. 반면에 타이완에서는 대부분 개별 저술이고, 일부 공동 편저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히 실패했을 뿐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2. 홍콩과 타이완의 문학평론

(1) 대륙문학과의 관계 : 홍콩의 문학평론이 타이완과 가장 다른 점은 그것이 중국현대문학 및 평론과 줄곧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특히 대륙의 신시기 문학 연구 방면에서 홍콩은 지리적 이점이 있는 데다가, 홍콩의 많은 평론가들이 직접 대륙의 문학운동 및 평론실천에 참가했기 때문에, 대만에 비해 연구 시각 면에서 취할 점이 많다. 다만 연구자료의 양과 정보유통 방면에서는 홍콩이 타이완을 훨씬 능가하면서도 전문서 형식으로 이루어진 성취는 홍콩이 타이완보다 적다.
(2) 중국문학에서의 위치 : 홍콩은 비록 영국인이 통치했지만 인적 구성, 지리적 위치, 문화적 전통, 생존 조건, 사용 언어 등 모든 점에서 중국을 벗어나지 않으며, 홍콩문학이 중국문학으로 부터 분리되어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은 없다. 그러나 타이완문예계에서는 ''타이완의 초립을 사랑할지언정 중국의 황관을 쓰지는 않겠다''라는 구호가 나오고 있다. 홍콩의 지역적 협소함과 지리적 위치 탓에 해협 양안은 모두 홍콩문학을 ''주변문학''으로 간주하면서, 양안 문학이 교류하는 중계점 내지는 대화의 교량으로 보고 있다. 반면에 타이완문학 및 그 평론의 의의는 ''주변문학''을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본다. 또 홍콩 지역에서는 타이완의 顔元叔, 葉石濤, 余光中, 姚一葦, 王夢鷗(타이완 출신의 국외 평론가 夏志淸, 葉維廉)과 같이 공인된 대가가 나오지는 못했다.
(3) 평론 태도 : 홍콩의 평론가는 비록 정치적 태도가 다르고 문학적 주장에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관용적인 정신으로 대한다. 이 때문에 타이완의 중서문화논쟁, 향토문학논쟁 같은 대논쟁은 홍콩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립적인 관점이 적극적인 논쟁으로 비화되지 않는 것, 상이한 견해에 대해서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태도와 같은 홍콩 평론계의 모습은 타이완 뿐만 아니라 대륙에서도 거의 볼 수 없는 것이다.
(4) 상호 영향 : 열악한 환경 가운데도 홍콩의 문학평론가는 홍콩문학 뿐만 아니라 타이완문학의 발전에도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면 1956년에 창간된 《文藝新潮》는 체계적으로 실존주의 작품과 논저를 소개했는데, 1950년대에 타이완에서 일어난 모더니즘운동은 그로부터 적잖은 양분을 흡수했다. 타이완과 홍콩 양 지역의 평론문단은 상대 속에 내가 있고 나 속에 상대가 있는 그런 것으로서, 그 관계는 대륙과 타이완, 대륙과 홍콩 사이보다도 훨씬 밀접했다.


3. 홍콩과 대륙의 문학평론

(1) 정치적 개입 : 홍콩의 문학평론이 받은 정치적 입김은 홍콩정부 쪽의 것이 아니라 주로 대륙과 대륙 쪽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나마도 대륙과는 달리 주도적 이데올로기가 되지는 못했고, 잠시 존재했다 하더라도 곧 사라져버렸다. 홍콩은 다원적인 사회여서 ''삼민주의''나 ''사회주의''가 지도사상이 될 수가 없었다. 홍콩정부 역시 대륙과 타이완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많은 경우에는 좌도 우도 아닌 태도를 취했다. 그 어떤 중국어 지역도 홍콩처럼 자유롭게 관찰, 열독, 발표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홍콩은 상업적 사회여서 평론이 시장과 독자에 영합하기가 쉬웠다.
(2) 종횡의 관계 : 각종 서구 문화사조와 문예형태가 쏟아져 들어온 홍콩은 세계 문화의 전망처, 동서 문화교류의 통로가 됨으로써, 홍콩 문학평론은 신구가 만나고 중서가 교통하는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악성 서구화'' 현상을 보이는 문학이론가도, 경직된 보수적인 문학평론가도 생존할 수가 없었다. 黃維梁, 黃繼持 등 그들의 문학이론과 평론실천은 ''고금의 허물에 통달하고, 중서의 이론을 융합''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과 관련하여 홍콩의 비교문학 연구는 대륙보다 한발 앞섰다.
(3) 평론가의 구성 : 홍콩 평론가는 다음 몇 가지 유형을 가지고 있다. 첫째, 홍콩에서 출생, 홍콩에서 성장, 홍콩에서 저작, 홍콩에서 주목을 받은 사람이다. 예컨대 盧瑋lan(小思), 黃繼持가 그렇다. 둘째 외지에서 출생, 홍콩에서 성장, 홍콩에서 평론 시작, 홍콩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이다. 黃維梁이 그렇다. 셋째, 홍콩 출생도 아니고 홍콩에서 성장하지도 않았지만 홍콩에 거주하면서 문학평론을 시작하고 이로써 두각을 나타낸 사람이다. 예컨대 胡菊人, 璧華, 梅子 등이다. 넷째, 홍콩인도 아니고 홍콩 거주 전에 이미 저술을 시작했거나 상당한 지명도가 있었던 사람으로, 홍콩 체재나 홍콩 거주 후 계속 창작에 종사하면서 문학평론과 연구를 한 사람이다. 예컨대 劉以chang, 李輝英, 曹聚仁, 忠揚, 原甸이다. 다섯째, 홍콩의 ''문단 과객''이다. 예를 들면 余光中, 鍾玲 등이다. 이처럼 복잡한 평론가의 구성 상황은 대륙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4) 평론 수준과 독자 : 홍콩 평론가는 독립적 사고와 창작의 자유를 신념하지만, 그 문학 평론은 아직 독자적인 체계, 독자적인 풍격을 이루지는 못했다. 홍콩의 중국어문학이 주목받게 된 것은 대륙이 개혁 개방을 시작한 후의 일이다. 왜 홍콩의 문학평론이 자신의 독특한 평론 역량과 독특한 평론 실천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륙의 연구 역량에 의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는가? 그것은 홍콩 정부가 대륙처럼 그렇게 문학 내지는 홍콩문학을 중시하지 않았고, 상업적 풍조가 성행하여 홍콩 사람들이 유희적 글이 아닌 장편의 평론이나 학술 논문은 기피하였기 때문이다. 홍콩에는 문학 평론 독자가 거의 없고, 문학평론을 발표할 지면도 매우 적다. 다만 수준 높은 개별적인 문학평론으로는 林以亮(松淇)의 시론과 ''홍학'' 연구, 胡菊人의 소설 기교에 대한 연구, 黃維梁, 梁錫華, 丁平, 小思, 陳炳良, 黃繼持, 黎活仁, 忠揚, 馮偉才의 현당대문학 연구, 黃國彬의 시론, 璧華, 劉達文, 彦火, 王一桃의 대륙문학 평론, 鄭樹森, 周英雄. 梁秉鈞, 黃德偉의 비교문학 연구 등을 들 수 있다.


4. 대륙, 타이완, 홍콩의 문학평론 종합

(1) 기본 방식 : 대륙과 타이완은 대체로 문학평론이 정치를 위해 봉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홍콩은 완전히 자유여서, 당국은 문학평론의 발전에 관심도 없고 평론가들의 정치적 경향에도 개의치 않는다.
(2) 실천 방법 : 대륙은 문학평론이 시대의 요구에 호응해야 하며 문예 창작의 실제와 긴밀히 연계하여 좋은 작품은 추천하고 독초는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륙 평론가들이 장기간 사용한 것은 사회 평론 방법이며, 역사적 관점과 미학적 관점의 상호 결합을 강조한다. 반면에 타이완의 대부분 문학평론가는 여전히 기존의 이론 틀을 유지한다. 중문과 출신들은 중국 고전문학 이론이 그들의 해부칼이다. 외국어문학과 출신은 신평론적 해석 방법이 그들의 저울이다. 기타 ''평론가''(통상 창작을 겸함)는 중국 전통문인의 인상평론과 서양의 신평론이 그들의 근거다. 홍콩에서는 주로 비교 방법을 사용하여 작품을 평론하는데, 문학평론은 엘리트문화에 속해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 많아서 일반 독자들이 흥미를 갖지 못한다.
(3) 실천 방식 : 대륙에서는 먼저 파괴하고 다음 건설하는 식이다. 즉 비판 투쟁 중에 문학평론의 건설을 강조하는 것이다. 타이완 역시 이 점에서는 대륙에 못지 않다. 홍콩에서는 이런 점을 강조하지 않는다.
(4) 차이의 원인과 경향 : 세 곳이 상이한 출발점과 방식으로 문학평론을 하게 된 원인은, 첫째 사회제도와 이데올로기가 다르고, 둘째 지리환경과 위치가 다르고, 셋째 중국문학평론 특히 현대문학평론의 전통을 계승하는 태도가 다르고, 넷째 외래문학 이론을 흡수하는 중점이 다르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근년의 문학교류를 통해 점차 이해의 폭이 넓어져서, 적의가 해소되고 편견이 시정되면서 이견이 줄어들고, 합일을 추구하되 차이를 인정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古遠淸, 〈三岸當代文學理論批評連環比較〉, 黃維梁 編, 《中華文學的現在和未來 : 兩岸ji港澳文學交流硏討會論文集》, (香港 : lu峯學會, 1994), PP.345-364.에서 요점 정리(김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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