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07.11.29
수정일
2007.11.29
작성자
김혜준
조회수
1242

梁秉鈞, <1950년대 홍콩 영화를 통해 5․4 전통의 계승과 변화에 대한 홍콩문화 읽기>

1950년대 홍콩 영화를 통해 5․4 전통의 계승과 변화에 대한 홍콩문화 읽기

룡빙콴 梁秉鈞 (LEUNG Ping-Kwan, 香港嶺南大學 교수) LEUNG Ping-Kwan

  1949년 이후까지 중국문화는 중국대륙, 홍콩과 타이완이라는 각기 다른 세 가지 형태로 발전해왔다. 홍콩의 문화는 좌파와 우파가 존재하는 동시에 이러한 좌우파의 구분 이외에도 동남아, 구미문화가 상호 교류하면서 만들어내는 신문화이다. 냉전과 한국전쟁의 이후 홍콩은 줄곧 아시아 무역의 중요한 중개지가 되어왔다. 그 후 냉전의 모식 가운데에서 더욱 미국 주도의 방향으로 따라 흘러갔을 뿐만 아니라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중국 5․4이래의 사회에 의해 관심을 받는 문학관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단지 현대화, 상업화의 가운데에서 조정을 거치고 있었을 뿐이다.   루쉰, 바진, 마오뚠, 차오위와 같은 5․4운동의 1세대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5․4전통의 경전화를 이루어내고 있었으나 이러한 전통은 1949년 이후 중국대륙과 홍콩, 타이완이라는 각기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중국대륙에서는 정전으로 추앙받았는데 비록 후에는 점차 더욱 정치화된 각도에서 그들의 작품을 해석/독해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긴 했지만 이는 성공적이었다. 타이완의 경우 이 작가들은 중국 대륙에 속해있는, 그리하여 이로써 그들의 작품들도 공개적으로 유통되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오로지 홍콩에서만은 그들의 작품들이 계속해서 전해졌는데 이는 비단 정치적인 해석에만 머무른 것은 아니었다. 1950,60년대 홍콩에서 우리는 5․4운동의 작가와 작품과 관련한 수많은 각색, 재편집들을 거치게 되었는데 루쉰의 《축복》, 《아큐정전》과 마오뚠의 《무지개》, 바진의 《집》, 《봄》, 《가을》, 《게원》과 《겨울밤》, 차오위의 《뇌우》, 《일출》등이 있다. 이 작품들은 중국영화사상으로도 적잖이 기록되어 있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여기서 예로 들만한 것은 홍콩에서 어떻게 5․4운동의 중국신문화전통을 계승하게 되었고 또한 어떠한 방식으로 변화 및 발전을 일으켰는지 하는 것과 관련한 문제일 것이다. 수없이 많은 문학작품의 영화화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결국 홍콩과 중국문화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일종의 경향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외국문학을 번역하는 것은 또한 5․4문학의 중요한 한 부분이기도 하다. 5․4초기의 작가들은 입센, 고리키 등의 외국문학을 소개함으로써 중국사회의 분위기를 쇄신하고 문학적 수단을 혁신토록 했다. 구명과 계몽의 사조 하에서 인생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는 작품들과 사실주의 작품들, 그리고 스토리성이 강한 작품들이 소개의 중심이었다. 홍콩의 1950,60년대 영화가 서방문학 작품들을 각색하던 때에 기본적으로 취한 것이 바로 이러한 노선이었다. (1956년 잡지《문예신조》에서는 줄곧 모더니즘 계열 작품들을 소개해왔지만 주된 흐름은 여전히 사실주의 작품들이었다) 1954년의 《아름다운 인생(锦绣人生)》은 대표적인 다원화의 선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러시아, 영국, 프랑스의 문학작품들이 주요한 소개대상들이었다. 우리는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리나》와 《부활》이 각기 《춘찬멍뚜안(春残梦断)》과 《탕푸신(蕩婦心)》, 그리고 《부활》로 각색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곧 이것이 홍콩 1950,60년대에 서방문학을 각색하고 인문주의 사조를 계승한 특색이라 볼 수 있다.   1960년대 홍콩의 표준어영화는 아시아 자금과 인력을 흡수하고 (원래 시장의 제약이 있었지만) 시장을 공략하여 1949년 이전의 중국영화를 계승하여 그로부터 변화를 만들어냈으며 아시아 권역에서의 교류를 촉진해왔다. 1950년대 초기 홍콩의 홍콩어 영화는 “사람 사람마다 나를 위해, 그리고 나 또한 그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고전적인 이상을 강조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사회적인 관심이었던 전통은 교육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전통을 각색하는 과정을 통해서 상업사회에서 전통윤리를 수용하고 또한 각색과 확대를 통해 시야를 넓혀주었던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홍콩문화에 대한 쟁론에 관해서 문화역사적 연구로 선회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이로써 홍콩문화를 논할 때 자주 나타나게 되는 오해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 오해란 다음과 같다.   (1) 1980,90년에서야 비로소 홍콩 문화라는 것이 있지 않았나 하는 점: 문화이론을 적용하는 것은 되려 문제를 고립시키게 되며 이것은 반역사적 연구가 되어버린다.   (2) 단순한 민족주의의 시각에서만 홍콩문화를 토론하는 경향 (홍콩은 식민지이며 전통문화가 없다고 여기는 것): 과거는 과정일 뿐이고 거론할 여지도 없으며 다시금 전통 중국문화로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서로 다른 두 노선이 동시에 역사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링난 대학의 인문학연구센터의 최근 연구동향은 1950,60년대 문화역사에 대한 회고에 치중하고 있으며 특히나 이 중 한 가지 프로젝트는 홍콩의 1950,60년대 문학작품들을 다시금 영화로 각색하는 것이다.(관련한 강좌들은 이미 개설되어 있다) 이로써 《홍콩문학영화편목》의 출판을 통해 소개 가능한 다양한 작품들이 우리의 홍콩영화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 줄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더욱이 홍콩영화는 단순히 웃음을 유발하거나 화려한 무예를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초창기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홍콩은 대략 1000여 편이 넘는 작품들을 문학으로부터 영화로 바꾸어 재창조했다.   만약 특히나 더욱 1950,60년대 홍콩 영화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특히 각색이라는 문제를 통해 홍콩영화가 어떻게 중국의 고전문학희곡들 뿐만 아니라 5․4문학, 서양문학, 통속문화를 각색해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비교적 복잡한 문화신분적 발전의 개념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곧 홍콩은 어떻게 타 문화를 바꾸어 자기의 문화로 형성했으며, 어떻게 이종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용하여 홍콩과 타 문화와의 관계를 이해하려 한 것이었을까?   홍콩에서는 1950,60년대에 특히 많은 문학작품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어떠한 방법을 통해 그것들을 살펴볼 수 있을까? 우리가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들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그 목표는 영화가 원작에 충실한가 하는 여부만을 따지는 데 있지는 않다. 반면 문학과 영화라는 두 가지 다른 종류의 매체가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하는 것을 살펴보고 비교하는 데 있다. 이상적인 토론의 방법은 작가와 사회문화적 배경, 매개 언어, 내용에 대한 정보, 수용이라는 다양한 측면들이 각색에 있어서 만들어낸 변화를 포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우리는 1950,60년대의 홍콩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더 나은 방향을 탐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문학작품들을 각색하는 데에서부터 우리는 홍콩의 문화인들이 민족주의에 대해서나 사상을 비판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수정을 거치고 여성문제와 언어서사, 영화미학에 있어 어떠한 발전을 거치는지도 역시 살필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본다면, 중국대륙에서도 결코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방향을 선호할 것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 가능한 윤리도덕의 준칙들을 위한 일종의 발전도 시도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1. 5․4운동 시기 명저들의 재인식: 인물 중심의 심리를 인식하고 강조하며 계급비판을 줄이다   우선 5․4문학의 새로운 인식으로부터 출발하자. 1919년 5․4운동은 신문화운동이자 신문학운동이었다. 열강의 할거를 겨냥해 민족자강을 강조하는 것은 곧 전제정치와 시대에 뒤처진 미신을 겨냥하고 과학과 민주를 강조하는 것이었으며, 교육과 평등한 민권을 보급하는 것은 곧 과거 팔고문(八股文)의 여풍을 겨냥해 백화문의 사용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5․4시기의 작가들은 국고(国故)를 정리하고 서양 작품들을 번역하였으며 창작을 통해 봉건사상과 사람을 잡아먹는 예교 및 무작정 뒤따르는 맹종적인 미신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사회개혁과 구습의 타파를 자신의 역할로 삼아 리쩌허우가 말한 ‘구명’과 ‘계몽’의 두 가지 방향을 더욱 확대시켰다.   5․4운동의 1세대 작가들은 루쉰, 바진, 마오뚠, 차오위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의 작품은 5․4시기의 정전화된 문학으로 자리잡았으나 이러한 전통은 1949년 이후에 중국대륙과 홍콩, 타이완에서 각기 다른 양상으로 발전했다. 그들은 중국 대륙에서는 경전으로 받들어지다가 후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더욱 정치화된 색채를 띤 방향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타이완에서는 그들이 대륙에 남았었기 때문에 더더욱 공개적으로 유통할 수 없는 작품들로 치부했다. 홍콩에서는 그 작품들이 계속해서 출판되었는데 결코 정치적 해석에 한정되어있지는 않았다. 1950,60년대 홍콩에서 5․4작가작품의 각색과 관련한 많은 예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중국 대륙과 유사한 측면도 발견된다. 중국대륙에서 루쉰의 《축복》을 각색했고(1956년), 홍콩에서도 이와 동일한 작품을 각색해 《청다싸오》라는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었다. 또한 홍콩에서는 《아큐정전》도 영화로 만들었다. 중국 대륙에서 라오서의 《나의 인생》, 《방진주》를 영화화하자 홍콩의 위엔양안과 우쟈시앙은 1960년대에 시험적으로 라오서를 영화화했고, 중국에서 마오뚠의 《춘잠》, 《부식》, 《임가포자》를 영화화하자 홍콩에서도 마오뚠의 《무지개》를 영화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각색은 비슷해보이면서도 서로 다른 측면은 있다. 예를 들어, 홍콩에서는 션총원의 《변방의 마을》과 같이, 중국 대륙에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작가의 작품에도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옌쥔 감독,《추이추이》(1953년))   홍콩중련 프로덕션의 리션펑, 우후이와 같이 몇몇 뜻이 있는 사람들은 바진의 《집》, 《봄》, 《가을》, 《게원》, 《겨울밤》과 차오위의 《뇌우》, 《일출》 등을 영화화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들은 중국영화사에서도 수없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동시에 홍콩문화의 연구라는 측면에서 볼 때, 홍콩이 5․4 중국신문화전통을 계승한 부분과 발전시킨 방식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로써 영화와 문학작품들의 조사를 통해 우리는 최종적으로 일정한 흐름을 찾을 수 있게 된다. 현재의 연구는 수많은 예를 통해서 진행되는 방식인데 우리는 더욱 세밀한 분석을 통해서 마지막에 이론적 틀로 귀납되길 기대하고 있다.   그럼 여기서 영화화된 루쉰의 두 작품을 통해서 1950년대 5․4작품의 두 가지 측면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하나는 리톄 감독의 《청다싸오》이고 다른 하나는 위엔양안 감독의 《아큐정전》(1958년) 이다.   《청다싸오》는 루쉰의 《축복》을 영화화한 것으로 섣달 그믐날 밤의 폭죽 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청다싸오의 곡절 많은 삶을 다루고 있다. 청다싸오는 시앙린싸오와 마찬가지로 재혼을 했으며 남편과 자식을 잃은 비극적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비교적 많이 등장하는 것은 탕디셩의 광동어 전통극을 각색한 부분인데 극중에서 여자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해낼 때 특히 전통극의 가사를 이용하고 있다. 팡옌펀이 분한 여자 주인공과 같이 달빛이 어린 아름다운 여인의 그림자 드리운 모습 가운데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부분에서 ‘억울하고, 억울하고, 또 억울하다’라는 부분은 전통적인 희곡에서 나오는 ‘세 번 탄식하고 다시금 스스로를 한탄하는’ 수법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창 밖에는 사람이, 꽃 밖에는 제비가, 어찌 서로 동병상련하지 않겠는가’라는 부분 역시 그녀와 청다거가 동병상련하는 처지를 암시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5․4시기에 중국전통희곡의 표현수법을 회피한 이들과는 달리 1950,60년대 영화에서는 오히려 전통 광동어극의 표현수법을 회고하고 반영하고 있다. 그리하여 홍콩 영화에서 청다싸오는 쿵 어르신(장잉)의 간교함과 청다거 모친의 악독한 시부모 형상 및 가족에서의 보수와 우매함을 시종일관 강조했다. 그리고 더욱 많은 수의 광동어 전통극과 윤리극의 비극은 루쉰의 되돌아보기와 풍자를 의미하기도 했다. 이것은 서사방법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루쉰의 《축복》의 서술자는 외지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으로 시앙린싸오가 핍박받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그녀의 고통과 고난을 직접 목도한 것으로 나온다.   루쉰의 현대적 감각은 그의 서술자이지 도덕상으로 무소불위의 완전한 인물로 그려지진 않는다. 영화에서는 일인칭 전지적 관찰자시점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생동적이고도 감정적인 어조로 이야기한다. “청다싸오, 평생의 굴욕을 이루 말로 다 할 수는 없겠지.” 만약 마주하는 관중들이 아직 자성능력이 없는 프롤레타리아 계층이라 하더라도 그들로 하여금 여주인공으로 인해 비극적인 동정의 눈물을 흘리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비교를 하자면, 위엔양안이 1958년 만든 영화《아큐정전》은 더욱 현대적 감각으로 처리되었다. 중국대륙에서 샤옌은 일찍이 《아큐정전》은 결코 각색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홍콩은 이를 이루어낸 것이다. 설령 표면적으로 볼 때는 눈에 띄는 변화를 느낄 수 없다 하더라도 야오커(쉬옌)와 쉬츠의 각색은 아큐라는 인물을 더욱 풍부하고 심리적인 묘사가 가능한 인물로 형상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루쉰의 원작 소설은 총 아홉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의 각색은 곧 각각의 장면들을 연결하여 더욱 발전된 희극성/드라마틱한 요소들을 첨가해내었다. 영화의 구성은 저녁에 사당으로 돌아가는 아큐의 심리드라마로 이어진다. 한 예로 원작의 제 2장에서 도박을 하는 장면도 영화에서 살펴볼 만하며, 이러한 군중의 등장씬 이후에 아큐 홀로 토곡사로 돌아가며 다친 허리에 약을 바르는 장면과, 달을 보면서 우마가 따라 오는 듯한 상상을 하는 장면 등의 묘사가 아주 적절하게 잘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점은 우마라는 인물에 대한 추가적인 발전이다. 영화 속에서의 아큐는 심리적 묘사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서 우스꽝스럽지만 연민이 느껴지는 인물로 각색되었다. 비록 그가 우마에게 애정을 보이는 서너 장면들 역시 아주 세밀한 처리를 거쳤고 아큐가 움직이거나 노동을 할 때 박자가 빠른 음악을 배경에 깔아 그 생동감을 더해주었다.   서술자의 어조는 《청다싸오》가 만들어내는 해설적 어조와는 다르다. 《아큐정전》의 서사언어도 일종의 연출이며 기능적일 뿐만 아니라 때로는 유머러스하다. 예를 들어 ‘우리의 아큐는 사랑의 고통을 맛보게 되었다.’와 ‘우리의 아큐는 재빨리 그 속에서 몰락을 즐기게 되었다.’고 하는 몇몇 장면들에서 이러한 방관적인 서사는 또다시 아큐의 마음 속 대화와 연결된다. 이것은 일종의 유머이면서 동시에 동정의 목소리를 잃지 않는 것이다. 영화가 적절하고도 효과적으로 소리와 장면을 통해 인물을 표현하고자 애쓴 부분도 발견할 수 있다.   아큐는 형을 집행하는 차를 타고 형장으로 묶여 가면서 비로소 사형을 언도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잠시 후에 다시금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인다. 아큐는 인생을 살다보면 언젠가는 죽음을 맞게 된다고 생각하고 다시금 태도가 바뀌어 이렇게 생각한다. “20년 후에는 또다시 호걸로 태어나리라!”라고. 이런 부분들은 모두 원작과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결말은 다소 차이를 보인다.   그가 눈을 감자 마치 우마가 바로 옆에 있는 듯했다. ‘어, 우마는 어디있지?’ (여기서의 방백은 바깥에서 아큐를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시각에 가까이 가서 말하는 것이다.) 촬영의 시선은 아큐의 형장행과 같이 따라가지는 않는다. 텅 빈 거리에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질 뿐이다. 루쉰의 원작에서는 우마가 길가의 군중 속에 다시 한 번 출현하는데 영화 속에서는 좀 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카메라는 그녀에게 집중된다. 장면 밖의 총성을 듣고서 우마는 바구니 속의 세탁 방망이를 떨어뜨린다. 우마는 바구니를 들고 읊조린다. “아큐…!” 이는 곧 이 영화가 단순한 풍자로만 그치지 않고 인물에 동조하는 듯한 일종의 묘사로 이어지는 느낌을 주게 된다. 야오커는 원래 아주 저명한 극본가로 알려져 있는데 일찍이 에드가 스노우와 함께 루쉰의 소설을 번역했던 바 있다. 그는 원래 루쉰의 친구로, 후에 《청궁비사》로 인해 비판받기도 했다. 이랬던 그는 영화제작에 참여하여 중국대륙 밖에서 지속적으로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심리묘사에 치중하고 있는 현대적 버전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재구성하였다.   홍콩은 한편으로는 홍콩영화에 있어서 고유한 특징 중의 하나였던, 비교적 비정하고도 동정어린 시선을 가진 구성을 깨뜨렸으며 제재의 범위를 넓혔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5․4운동의 제재를 더욱 발전시켜 모더니즘 심리묘사와 인도주의적 시선을 결합시키기도 했다. 1958년 중국 대륙은 마침 반우파 운동의 전야에, 1949년 이후 루쉰을 위한 아큐의 지위에의 경향을 비판하면서 ‘그 불행함을 슬퍼하고 그 투쟁하지 않음에 노한다’, ‘호오가 분명하다’, ‘슬퍼할 줄 알다’, ‘지주계층으로부터 착취를 당하고, 인민이 봉건사상으로 인해 해독을 입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홍콩의 경우에는 지위와 토호 및 악덕 인사의 비평에 대해 부정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사람의 심리에 대해 비교적 유머러스하고도 동정적인 묘사를 내보인다. 이러한 의외의 태도는 역시 이후 홍콩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게 된다. 1958년 홍콩에서의 문학작품의 영화화에 대해서 몇 가지 예와 더불어 그 이후를 예측해볼 수 있다.   리션펑 감독이 바진과 차오위의 작품을 영화화한 것으로부터 예를 찾아볼 수 있으며 이들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5․4문학의 각색에 있어서 특이한 점은 영화적 감각을 통해 비판적 경향을 줄이고 인물을 더욱 세밀하게 서술하며, 여성인물들을 더욱 구체적이고 뚜렷하게 묘사했다는 것이다. 차오위의 《일출》을 보면 원작의 제3막에서 나타나던 적나라한 비판을 삭제했다. 그리고 은행가의 배역도 더욱 인간적으로 묘사해내었다. 영화적 감성 혹은 풍부한 영화언어로써 다시금 창조해낸 것이다. 게다가 자본가에 대한 비판도 줄이고 천바이루와 자본가를 서로 아주 밀접하고도 친밀한 관계로 연출해내었다.      2. 5․4운동에서 수용한 외국문학의 인문정신을 계승하고 여성의 지위를 높이다   외국문학을 번역하는 것은 또한 5․4문학의 중요한 부분이다. 앞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5․4초기 작가들은 입센, 고리키 등의 외국문학의 소개를 통해 중국사회 분위기를 개혁하고 문학의 수단을 혁신하였다. 구명과 계몽의 사조 하에서 인생을 위해 예술을 하는 작품들과 사실주의 작품들, 스토리성이 강한 작품들이 소개의 중점이었다. 홍콩의 1950,60년대 영화들은 서양문학 작품들을 각색할 때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노정을 걸어왔다. 1954년의 《아름다운 인생》은 다원화의 선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러시아, 영국, 프랑스의 문학작품들이 주요한 소개대상들이었다. 러시아 소설에 대한 흥미는 바진의 《집》이 《부활》로부터, 마오뚠의 《자야》는 《전쟁과 평화》의 영향을 받았고, 톈한과 샤옌은 1930,40년에 《부활》을 연극으로 각색했다.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리나》는 19세기 1870년대(1873-1877)의 작품으로 《부활》과 《전쟁과 평화》의 사이에 쓰인 작품으로 집안의 변화와 부녀의 운명을 다루고 있다. 윤리, 사회습속은 허위로 조성되고 애정과 사랑을 통해 계급을 투영시키고 있으면서, ‘모든 행복한 집안은 같은 모양새요, 모든 불행한 집안은 각자의 불행이 있는 법이다.’로 시작하고 있다. 소설 속에는 총 세 번의 결혼이 행해진다. 성격이 냉혹한 귀족 카레닌과 안나의 결혼은 실패한 결혼이다. 안나의 형수 의 결혼은 현실타협적인 결혼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랑은 이상적인 결혼으로 이어지게 된다. 각색의 과정에 이러한 부분은 단순화되어 그저 아름다운 결혼으로 묘사되었다.   마지막에 안나와 그 남편은 언쟁 중에 남녀불평등 문제를 거론하게 되긴 하지만 그다지 크게 발전시키진 못한다. 흥미로운 것은 홍콩 영화에서의 안나는 마지막에 자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영화는 파도를 통해 소설 속의 철도의 정서를 대체하고 있으며 이로써 중요한 내포된 코드(connotative codes)를 이뤄내고 있다. 즉 시작부에서 기선을 타고 마카오로 향할 때 파도가 끝없이 출렁이는데, 어릴 때 두 사람이 봤던 파도가 그를 실의에 빠져 자살하게 만든다. 안나도 결국 낭떠러지에서 파도로 뛰어들었으나 자살에 성공하진 못했다. 이후 그녀는 짐을 꾸려서 망가진 가정을 밟고 일어서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게 된다. 톨스토이의 안나에 입센의 노라가 합쳐진 결론과 같다.) 원작에서는 남자 주인공의 이야기가 전반적인 주요 흐름으로 되어있었다. 그는 원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안나와 같이 이상을 쫓고 진정으로 안나를 아꼈던 사람이었다. (그들의 만남은 늦었다, 안나는 이렇게 말한다. “이 얼마나 신비롭고 사랑스러우면서도 가련한가!”) 그는 온 몸을 써서 노동을 하고 사회적 가치관을 배반하는 농민들을 동정하고 있다. 안나의 실패와 그녀의 연인이 성공을 이뤄내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영화에서는 비록 안나의 연인은 그 역할이 약화되긴 했지만 (장칭과 메이지) 장칭의 남자주인공 역할(리원)은 여전히 한 편의 극처럼 더욱더 깊이있고 광활한 세계관을 지향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비록 작은 한 쇼트이지만 세계명작을 각색하는 것은 중국대륙의 도덕규범과 입맛에 길들여진 데 적응하기 위해서 사실은 더욱더 다양한 감정과 인생 태도에 대해 접근해야 하며 홍콩 영화의 시야를 넓히는 부분을 생각하도록 만든다. 이처럼 의미 있는 것으로는 쳰원이 1955년 영화로 만든 《부활》(Leo Tolstoy, 1828-1910)도 있다. 이 영화의 결말에서 팡옌번은 장잉의 속죄를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호화롭고 풍요롭더라도 그와 결혼하진 않겠다”며 아껀꺼와 함께 세탁공장에서 옷가지를 세탁하는 일을 하게 된다. 톨스토이의 정신을 경쾌한 처리로 자연스럽게 전통극의 특성과 융합시킨 예가 되겠다.   야오커의 《하오먼슈어짜이》(1950년)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이 좌익적 성향이 있지만 그리 강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가져와 각색하였던 작품이다.      3. 1950년대 영화가 애정소설의 세속적 관심과 상업화 경향을 닮아가다   최근 원앙호접파 소설에 대한 토론은 많게는 애정소설로써 5․4문학에 의해 억압받았던 현대성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중국대륙에서 1949년 이후 원앙호접파 소설이 자취를 감춘 후로 홍콩에서는 오히려 계속해서 제작과 편집의 주요 소재가 되어왔다. 원앙호접파 소설로 인해 영화화된 것만 해도 15편이 넘는다.   원앙호접파 소설의 각색은 장헌슈이의 작품이 가장 많다. 《울고웃는 인연》은 무려 6번이나 각색되었다. 장헌슈이는 1929년부터 1930년까지 상하이의 《신문보》잡지에 이 작품을 연재했는데 그 자신의 기자적인 기질도 묻어나 시사신문에서 여러 가지 사건을 수집해서 인간사의 불평등한 일들을 엮어내는 한편, 소설가적인 뛰어난 글재주를 발휘하여 과장과 교정을 하여 대중들의 기호에 맞는 신문연재식 소설을 써냈다. 이로써 TV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몇 차례나 계속해서 방영을 하기도 했다.   장헌슈이는 1949년 이후 중국작가협회의 회원이 되었으나 그다지 활발하게 활동하진 못했다. 1955년 《울고웃는 인연》의 초판의 성공을 기반으로 재판을 내면서 구사회의 ‘구습과 군국주의 및 부패한 현실에 대한 개탄’을 다시금 강조해 다루었다. 장헌슈이는 1949년 이후 중국 내에서 작품 활동을 많이 하진 않았고, 오히려 《양산박과 축영대》, 《추강》과 같은 작품들은 홍콩의 《대공보》신문에 연재되었다. 《나의 인생과 창작》은 1976년에 《명보월간》에 실렸다.   리션펑은 1957년 따셩출판사의 버전을 각색하여 원작 작가들의 이름을 나열하였는데 장잉은 일찍이 장헌슈이의 동의를 구해놓았었다. 영화에서 주인공 펑시는 아주 천진한 인물로 묘사되었는데 제일 처음 아무것도 모르고 도박을 하여 위험에 처했을 때 메이지가 연기한 펑시는 아주 잘 묘사되었다. (장잉을 불러 반지를 사는 장면에서 다시금 만나는 것부터 가장 중요한 것은 총독부에서의 ‘나는 그를 사랑해’라고 장면이다. 즈뤄란이 맡은 시우구는 여기서 지혜로운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띠옌마오 감독의 것과 비교했을 때 마지막 영화는 헬레나의 역할을 더욱 줄였다.)   리션펑의 각색은 특히 시정평민의 억압과 폭력에서 저항 및 단결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데 영화는 시작부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의 초창기에 군벌이 할거하고 무법이 횡행했으며 백성들의 고통이 말로 할 수 없이 극심했다.’로 시작하여 당시가 암흑의 시대였음을 암시하고 있다. 장면에서 군수차량이 사람들을 쓰러뜨리고 바닥에 사람들이 들고 있던 과일이 쏟아지는 장면을 그대로 담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에서 누차 강조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힘과 의지를 모아 뜻을 이루는 것’으로 억압과 폭력에 완강히 힘을 모아 저항하고 있다. 라수펑은 펑시와의 만남을 알고 분노하며 칼을 들고 대사와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된다. 그 딸이 그를 말리며 “화낼 필요 없다구요!”라며 또 “한 사람의 힘 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라고 말한다. 이에 군중들이 칼을 들고 총독부로 몰려와 야경순찰꾼을 잡아 묶고 대신 다른 사람이 야경꾼의 목소리를 흉내낸다. 누구는 망을 보고 누구는 안으로 잠입하고 공격을 하여 싸우며 서로 끊임없이 돕는다. 마지막에 주인공 펑시의 구출에 성공한다.   마지막 장면은 꾸안 부녀가 짐을 짊어지고 떠나는 데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라며 시우구는 자신의 사랑을 숨기고 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면서 떠난다.   마지막에서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펑시가 침대에서 깨어나고 모친은 그녀에게 말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는지 보렴!” 그러자 장면은 옆으로 돌아가며 침대 주변의 각각의 사람들을 비춘다. 영화화 하는 데서 가장 주력하는 부분은, 원앙호접파의 애정전기를 계승하는 한편 그것을 변화시켜 1950년대 평범한 인물들이 끝까지 희망을 간직하고 서로 돕는 이야기로 각색해 내는 것이다.   리션펑의 각색의 저력은 두 사람이 다시금 만나게 되는 장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쟈슈와 펑시가 양쪽에서 나타나 서로를 끌어안지만 곧 펑시가 반지를 돌려주고, 쟈슈는 그녀가 자신을 ‘바보’로 여겼다며 그녀 역시 쉽게 마음을 주는 헤픈 여자라며 뺨을 때리게 되고 극적인 드라마는 고조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펑시도 상대방을 고통스럽게 하려는 생각은 아니었으며 비록 상대가 자신을 버리더라도 차라리 자신을 희생하려했다. 그녀는 떠나려고 달아나다가 그만 바닥에 쓰러지고 쟈슈는 참지 못하고 다시 그녀를 끌어안는다. 서로의 마음을 전하고 무슨 일이 있든지 어떠한 상황이 되든지 함께 하기로 맹세한다. 이때 카메라는 롱쇼트로 전환된다. 이 장면은 연인들의 사랑과 오해에 근거한 드라마성을 가진 감정적 기복과 복잡한 심리상태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후에 띠엔마오가 1960년대에 각색한 왕톈린 감독, 친위 극본의 영화를 보게 되면―영어로 ‘A Story of three loves’에서 보여주듯이―한 남자와 세 명의 여자들의 사랑이야기이다. 감독의 각색은 그의 문학예술적 성향을 잘 드러내고 있으나 영화 속 배경에 있어서는 당시로서는 아직은 그 기능을 발휘하진 못하고 있다. 리션펑의 각색과 같이 비교할 때, 시정 소인물들과의 융화와 관련한 주제가 적게 나타나는 점도 있다.   시대의 정치와 역사배경의 중요성은 감소했고, 격정적이고도 비극성을 띤 사랑이 그 중심이다. 연출의 역할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대적 배경에 대한 취사선택도 엿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세 차례의 사랑에 있어서 거란스가 연기한 펑시가 출연하는 장면이 가장 많다. 시우구를 연기한 린추이라는 배우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1964년 《울고웃는 인연》는 어떠한 측면에서는 1960년대 홍콩이 청나라 말 중화민국 초기에 제재를 각색한 일종의 수법도 엿볼 수 있다. 비록 중화민국 초기의 시대배경을 취했으나 그 중에 역사․사회적 요소는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플롯을 배치하고, 음악과 배경을 특히 신경써서 남녀의 첫 만남과 그리움, 그리고 재결합을 그려냈다. 영화는 혼란한 전쟁 통에 적들이 섬멸된 후에 결말에 이르는데, 원작에서처럼 자슈가 꽃을 꺾어 웃으며 인간세상의 오만 감정과 경험을 한 듯 감개하는 장면은 여기서는 빠졌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1950년대 홍콩영화는 좀 더 평범하고 일반적인 인물들에 관심을 가지고 역경의 와중에서도 서로 단결 융합하는 정신을 강조하였고, 1960년대에는 더욱더 대규모로 제작소를 가지고 영화들을 만들어 세트와 노래에 신경써서 더더욱 화려하고도 한층 더 발전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2007.11.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박사과정 (중국현대문학)
고 혜 림  Hyelim KOH (huilin@pusan.ac.kr)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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