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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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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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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준 옮김, 〈중국 현대소설의 발전 개관〉, 田仲濟 孫昌熙 主編, 《中國現代小說史》, (濟南 : 山東文藝出版社,1984.1), PP. 547-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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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소설의 발전 개관

 

田仲濟 孫昌熙1)

 

 

1. 제 1기(1918-1927)의 소설 창작

 

종래에는 '심심풀이 글閑書'이라고 배척되면서 숭고한 문학의 전당에 오르지 못하던 소설 창작이, 5·4 이후 문학혁명의 창도와 실천, 번역소설의 참고와 영향으로, 모두에게 공인된 주요 문학 체재가 되었다.

魯迅은 중국 현대소설의 창시자로, 그가 1918년 5월 《新靑年》에 발표한 첫번째 백화소설 〈狂人日記〉는 즉각 커다란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狂人日記〉를 이어서 魯迅은 연달아 〈孔乙己〉, 〈藥〉, 〈故鄕〉, 〈阿Q正傳〉 등의 소설을 발표하면서 문학혁명의 구체적 성과를 보여 주었다. 계속해서 《新潮》, 《小說月報》, 《創造季刊》, 《創造周報》, 《晨報》副刊 등에 잇달아 많은 소설 이 발표되었는데, 주제 제재, 인물 형상 및 표현의 격식 방면에서 중국의 구소설과는 판이하게 다른 새로운 특징과 모습을 드러내었다.

첫째, 많은 제재중에서 반봉건의 제재가 중요한 위치를 점하였다.

〈狂人日記〉를 이어서 쓴 대부분의 魯迅의 소설은 "가족제도와 예교의 폐해를 폭로하는" 봉건제도, 봉건예교의 식인적 본질을 격렬하게 폭로하였다. 新潮社, 文學硏究會, 創造社 등의 수많은 소설가들은 민주주의와 인도주의 사상하에, 혹은 객관적으로 현실 인생을 묘사하고, 혹은 대담하게 내심을 토로하는가 하면, 혹은 불합리한 봉건제도를 다양한 창작 방법으로 폭로 고발하면서 봉건 통치계급과 대립되는 사상 감정을 표현하고, 혹은 5·4 고조기 이후 일부 지식 청년들이 고민과 방황에 빠져드는 모습을 반영하면서 그들의 개성해방의 외침이 끝내는 개성이 억압되고 훼멸되는 슬픔의 노래를 동반하게 되는 것을 서술하였다. 5·30운동 이후 혁명 물결의 충격 등으로 인하여, 일부 작가들의 시야가 신변잡사와 일상생활로 부터 광대한 사회변혁 물결의 분야로 이동하였다. 반제국주의적 제재가 증가하였으며 철저한 반봉건 투쟁과 긴밀히 결합하기 시작하였다.

둘째, 일단의 5·4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사회 저층의 인물이 쏟아져 나왔다.

"옛날의 소설은, 주인공이 맹장, 책략가나 의적, 탐관오리나 요괴, 신선이나 재자, 가인이었고, 나중에는 한량, 기생이나 무뢰배, 노예 따위였다." 2) 그리고 소설의 결말은 대부분 출세하는 것이거나 헤어졌던 이가 모두 만나는 식의 해피엔드였다. 5·4 이래의 중국 신소설가들이 묘사한 인물 형상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하층 민중의 불행을 반영하고 모욕, 착취당한 이들을 동정하는 것은, 중국 구문학 작품에서도 그 일단을 찾아 볼 수가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노동인민이 문학 작품속에서 특히 소설속에서 진정으로 주인공이 된 것은 5·4 이후의 일이다. 이는 郁達夫의 〈薄奠〉과 劉一夢의 〈침醉的一夜〉에서 명확히 나타난다. 魯迅의 소설은 閏土, 七斤 등 평범한 농민의 예술 형상을 성공적으로 창조하여 농민 형상을 묘사한 이 시기 최고의 성취를 이루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서 이 시기에 가장 많이 묘사되고 비교적 우수하게 묘사된 것은 주로 개성해방, 혼인자유의 쟁취를 목적으로 하는 지식인의 형상이었고, 노동자 농민을 묘사한 형상은 확실히 박약하였다. 이는 "지식인층이 직접적으로 노동자의 생활을 체험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견문도 매우 국한되었고 접촉도 매우 적었던" 탓으로, 자연 노동자의 삶을 묘사한 그리 많지 않은 작품에서 "관념화의 폐단"을 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3)

셋째, 소설 창작의 체재와 표현 격식에 다양화의 면모가 나타났다.

중국의 고대소설은 대부분 장회체였는데, 근대에 이르러 장회체식은, 매 회의 분량이 대체로 비슷해야 하고 회 마다 대구를 써야 하며, 각 회의 결미에는 반드시 '뒷일이 궁금하면 다음 회의 설명을 들어 보시라'라는 말을 사용해야 하고 또 시 두 구절을 덧붙여야 하는 등, 도식화, 경직화되었다. 이같이 경화된 장회체 격식은 작자의 독창성 발휘를 속박하여 소설 예술의 발전을 크게 저해하였다. 5·4 이래의 현대 신소설은 장회체의 도식을 완전히 타파, 신내용의 표현상 필요에 의하여 외국소설의 영양을 흡수하기에 노력하였는데, 외국소설의 체재, 구성, 인물 창조, 심리 묘사, 배경 묘사 등의 새로운 기교를 수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휘, 표현법, 문법까지도 '서양화' 경향을 나타내었다. 魯迅의 소설은 외국소설의 긍정적인 영향을 대담하게 흡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신의 민족 토양에 뿌리를 박고서 자신만의 창작 개성을 지닌 독특한 풍격을 형성하였으며, 더욱 노력하여 예술상으로 부단히 외래 영향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창조하였다. 이 시기 소설의 양식은 참으로 풍부하고 다양하여 일기체, 자전체, 서정체 등등이 있었고 ; 5·4 문단에는 반항, 이상의 전개를 주로하는 낭만주의와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인생 사회를 묘사하는 현실주의가 동시에 출현하였으며 ; 중편과 장편소설 역시 잇달아 선보였는데 비록 사상과 예술적 성취는 모두 그다지 높지는 않았지만 이들 작품은 어쨌든 이후 뛰어난 장편의 출현에 선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2. 제 2기(1927-1937)의 소설 창작

 

 

이 시기의 소설 창작은 전체 문학 장르중에서 가장 활발한 한 가지였다. 제1기와 비교해서 소설가가 배가하고 소설 창작이 전례없는 번영을 보이면서 수많은 새로운 특색을 나타내었다.

첫째, 소재의 범위가 확대되고 주제 사상이 심화되었고, 문학 창작이 현실을 반영하는 광범성과 전투성이 앞 시기를 능가하였다.

반제국주의적 제재가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였는데, 반제를 내용으로 하는 작품중에서 1931년 9·18사변 이후에 나타난 민족 항일 구국을 반영한 작품이 특출한 지위를 점하였다. 앞 시기에 이미 작가들의 주목을 받았던 농촌 제재는 이 시기에 들어 가일층 수많은 작가들의 묘사 대상이 되었다. 작가들은 단순히 농촌의 파산, 농민의 고통과 몸부림 및 굴기만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1927년의 대혁명을 전후한 농촌의 노도같은 투쟁을 묘사하기도 하여, 농촌을 반영한 5·4 시기의 '향토문학'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 하나의 뚜렷한 진전이었다. 노동자계급과 도시 하층 노동인민의 생활 역시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 시작하였다. 소자산계급 지식인 및 시민의 생활은 이 시기 소설 창작에서 여전히 퍽 중요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작가는 대혁명 실패 전후에 경험한 자신의 인생을 진실하게 반영하여, 특히 여러 유형의 '신여성'의 형상 창조에 노력하였으며 ; 어떤 작가는 소자산계급의 진로 문제를 탐구하기 시작하였으며 ; 어떤 작품은 더욱더 나아가 소자산계급 지식인이 혁명에 참가한 후 체험한 자아개조의 과정 문제와 관련되기도 하였다. 지식인에 대한 이러한 묘사는 앞 시기의 동류 제재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시기의 소설 창작에는 또 새로운 제재가 출현하기도 하였는데, 광범한 사회 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30년대 초기 중국 민족 자산계급의 삶과 운명을 묘사한 걸출한 작품이 그것이다. 소비에트구와 홍군의 생활 역시 일단의 좌익 청년작가에 의해 표현되었는데, 현대문학 창작에서 이러한 제재가 출현하였음은 분명 새로운 면모였지만, 이같은 표현은 아직 그리 깊이가 있지는 못하였다.

둘째, 노동인민의 형상 특히 농민 형상이 소설가들에게 중시되었다.

앞 시기에도 이미 일부 작가들이 노동인민의 고통과 반항을 반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대다수 작가들의 농민 형상은 피박해자, 피수탈자 혹은 아직은 각성하지 못한 낙후한 농민이었다. 이 시기에 이르면 상황에 변화가 생긴다. 노동인민의 형상이 정면인물로서 작품에 출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의식하게 된다. 인물형상의 창조면에서 전과 비교해 새로운 사상적 진전이 있고, 일부 작품속의 인물성격 또한 비교적 선명하였다. 예를 들자면 蔣光慈의 〈田野的風〉에 묘사된 농민 군상, 草明의 〈絶外逢生〉에 등장하는 眞嫂, 葉紫의 〈向導〉에 나오는 劉翁마 등이 그러하다.

셋째, 체재 양식, 풍격 특성이 풍부하고 다양해져서 전대미문의 새로운 진전이 이루어졌다.

장편소설을 예로 들자면, 앞 시기에는 단지 실험작인 셈일 뿐이었지만 이 시기에는 〈子夜〉(茅盾), 〈家〉(巴金), 〈駱駝祥子〉(老舍), 〈倪煥之〉(葉聖陶) 및 〈山雨〉 등 예술적으로 성숙해가는 작품이 출현하였다. 중편소설과 단편소설은 더욱더 연이어 쏟아졌다. 이 시기의 소설 부문에서는 역사소설에 새로운 발전이 있었다. 앞 시기에는 단지 손꼽을 만한 몇몇 작품에 불과했으나 이 시기에는 약 50편 쯤으로 격증하였다. 국민당 정부가 사상적으로 단속하는 가운데 작가들이 역사소설을 이용한 것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시기 역사소설의 형식, 풍격은 다양하여서 : 宋雲彬의 통속역사고사집 《玄武門之變》과 같이, 역사지식을 보급하는 고사체가 있는가 하면 ; 郭沫若의 〈孔夫子吃飯〉, 〈司馬遷發憤〉, 〈賈長沙痛哭〉 등이나 巴金의 〈馬拉的死〉 등이나 茅盾의 〈豹子頭林沖〉 등과 같이, 역사인물의 일생 중에서 한 전형적인 편린을 취해 강렬하게 형상화하는 인물속사체가 있기도 하고 ; 鄭振鐸의 〈桂公塘〉등과 같이, 역사적 사실의 상세한 서술에 착안한 이른바 '말에는 반드시 근거가 있어야 한다言必有據'식 소설이 있는가 하면 ; 魯迅의 〈理水〉, 〈非公〉 등과 같이 고금융합체가 있기도 하고 ; 또 施蟄存의 역사소설집 《將軍底頭》 같이 프로이드식의 심리해부 소설이 있기도 하였다. 풍자소설의 풍격 역시 다채로왔다. 張天翼은 과장과 신랄함을 특색으로 하였고, 沙汀은 침울함과 심후함을 장점으로 하였으며, 老舍는 유우머 풍자로 문단에 명성을 떨쳤다. 종합컨대, 30년대 풍자파에 있어 풍격이 각기 다른 작가들의 출현은 소설 창작이 번영과 성숙으로 나아감을 나타낸 준다.

넷째, 혁명 현실주의가 이 시기 창작에 커다란 흐름을 이루면서 지난 시기에 비해 새로운 진전을 보였다.

左聯의 창립 이후 마르크스주의 문예 이론, 고르키 문예 사상 및 소련의 사회주의 현실주의 창작 방법과 작품이 부단히 중국에 소개되면서, 동시에 암흑적 사회, 비인간적 생활, 비극적 사건 등이 작가의 현실 접촉과 현실주의 경향을 촉진하였다. 茅盾의 〈子夜〉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으로써 30년대 도시와 농촌의 광활한 현실생활을 역사적이고 진실하게 반영하고, 중국 혁명의 미래를 암시하고자 노력하였다. 〈子夜〉의 출현은 혁명 현실주의를 하나의 새로운 단계로 올려 놓았다.

巴金, 老舍 등의 작가는 구사회의 암흑을 폭로하였는데, 예전과 다른 점은 폭로의 심도, 철저성 면에서 비판적 현실주의를 훨씬 뛰어넘은 것으로, 반제, 반봉건 투쟁에서 전투적 작용을 발휘하였다.

 

 

3. 제 3기(1937-1949)의 소설 창작

 

 

이 시기의 소설 창작은, 전쟁이라는 환경 탓에 주로 국통구와 항일근거지 및 공통구라는 두 지역으로 나뉜다. 이 두 지역의 소설가는 5·4와 30년대 소설 창작의 우수한 전통을 계승하여, 항일전쟁 등에서 그 전투적 작용을 발휘하였다. 이는 양 지역 소설 창작의 공통점이지만, 작가가 생활한 지역이 다름으로 인하여 양 지역의 소설 창작 역시 상이한 특징을 보였다.

첫째, 국통구의 소설은 폭로와 풍자를 주요 내용으로 하였고, 공통구와 근거지의 소설은 찬양을 주요 내용으로 하였다.

항일전쟁 발발 이후 茅盾의 〈第一段階的故事〉, 姚雪垠의 〈差半車麥개〉 등과 같은 일련의 항전 주제를 표현한 작품이 출현하였다. 전쟁이 대치 단계에 들어간 후로는 국통구의 암흑을 폭로하는 소설은 갈수록 많아졌으며, 일련의 비교적 성취가 있고 영향력이 큰 작품들이 출현하였다. 1938년 張天翼이 쓴 〈華威先生〉은 최초로 출현한 풍자 폭로 작품이었다. 국민당 정부의 문화적 통제가 날로 뚜렷해짐에 따라 이 주제는 광범하고도 깊이 있는 표현을 획득하였다. 茅盾의 장편소설 〈腐蝕〉은 趙惠明이 '부식'되고 몸부림치는 과정을 통하여, 국민당 정보 조직이 젊은이들을 해치는 모습을 강력하게 폭로하고, 국민당 반동파가 매국노와 결탁하는 비루무치한 죄상을 더욱 심도있게 폭로하여, 국민당 정보계의 추악한 이면을 고발하였다. 沙汀의 단편소설은 병역문제를 통하여 국민당 정권의 부패를 폭로하였다. 〈在其香居茶館裏〉는 바로 그중 대표적인 작품이다. 또 巴金의 〈第四病室〉, 〈寒夜〉, 黃谷柳의 〈蝦球傳〉 등이 이 방면의 대표작이다. 국민당의 독재라는 배경하에 역사소설이 환경의 필요에 따라 성행하였다. 鍾離北의 〈瑪麗·司徒亞特之死〉, 陸沖嵐의 〈放逐〉, 王統照의 〈狗矢浴〉 등은 국내외의 역사사건과 인물을 빌어 국민당을 풍자, 폭로하였다.

항일전쟁 발발 후 공통구 작가는 펜으로 전투에 뛰어들어, 丘東平의 〈一個連長的戰鬪遭遇〉, 劉白羽의 〈龍烟村紀事〉 등과 같이, 민군의 일치 항일을 고무하는 단편소설을 써나갔다. 〈講話〉 발표후 근거지와 공통구의 작가는, 노농에 파고들고 생활에 파고드는 과정에서, 문학사상 전대미문의 찬양을 위주로 하는 대량의 작품을 창작하였다. 이들 작품은 민족투쟁, 계급투쟁 및 생산 노동을 제재로 하여, 새로운 시대, 새로운 생활, 새로운 정권을 노래하고, 중국 농촌의 경천동지할 거대한 변혁 및 농민이 이 변혁 가운데서 신속히 각성하고 성장하는 것을 노래하였으며, 구사회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생산 노동 및 노동중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새로운 관계, 숭고한 도덕심과 완전한 삶을 추구하는 이상을 묘사하였는데, 이러한 제재와 주제는 모두 기존의 문학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과거의 농민의 형상을 묘사한 작품과는 대단히 달라져서 이들 소설에서 창조된 것은 변신 이후의 각양각색의 새로운 형태의 농민 형상이었다.

둘째, 문예의 대중화, 민족화를 실현하는 방면에서 근거지와 공통구의 소설은 국통구의 소설에 비해 한층 선명하고 한층 자각적이면서 한층 효과적이었다.

5·4 이래의 신문예는 바로 민족화, 대중화의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것으로, 魯迅 등의 작가는 유익한 탐색을 하였고 또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대중이 즐겨 보고 듣는 대중화의 풍격을 형성한 것은 아무래도 이 시기였다. 공통구 소설은 일반적으로 모두 노농병 대중의 감상 습관과 미학 취미에 적합한가에 주의하여, 구성면에서 중국 고전소설과 설창문예의 훌륭한 전통을 계승, 플롯이 대단히 집중되고 긴장되도록 하여, 드라마성, 이야기적 성격 및 연관성이 풍부하였다. 인물의 창조면에서도 고전소설이 인물을 표현하는 방법을 참고로 하여, 이야기 중에서 인물의 언어와 행동을 통하여 인물의 성격 특징을 드러내고 전형적 사건과 생활의 세절을 통하여 인물을 표현해내는 데 뛰어났다. 공통구의 소설은 태반이 예술적 가공을 거친 구두어를 채용하고 동시에 설창언어의 정화를 흡수하여, 그중 뛰어난 부분은 인물의 대화만 구어화하였을 뿐 아니라 서술언어라 할지라도 구어화하였다. 상술한 몇 가지 방면의 주요 특징이 공통구 소설의 민족화, 대중화의 풍격을 형성하였는데, 趙樹理의 소설, 孔厥과 袁靜의 〈新兒女英雄傳〉, 馬烽과 西戎의 〈呂梁英雄傳〉 등이 바로 뚜렷한 예다.

국통구의 소설 역시 민족화, 대중화 방면에서 반가운 수확을 얻었다. 黃谷柳의 〈蝦球傳〉 같은 작품은 고전소설과 민간문학의 영향을 비교적 많이 흡수하여, 작품의 이야기의 파란만장함이 감동적이고 플롯은 점입가경이며 언어는 소박하고 간명하다. 茅盾의 말 처럼 작품은 "5·4 전통 형식의 한계를 깨트리고 민족형식과 대중화 방면의 발전을 추구하였다." 4) 다만 〈蝦球傳〉은 단지 "민족형식과 대중화 방면의 발전을 추구"하였을 뿐이고, 또 이 방면에서 국통구의 기타 소설은 아직 〈蝦球傳〉의 성취에도 이르지 못하였다. 따라서 공통구의 소설과 비교하자면 커다란 차이가 난다.

셋째, 창작 방법상으로 달라졌다.

공통구의 소설가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생활하여, 새로운 세계관으로 생활을 관찰하고 묘사하였으며 혁명 현실주의 창작방법의 운용면에서 하나의 새로운 지평에 도달하였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시기의 소설이 반영한 생활과 투쟁은, 몇몇 방면에서 볼 때 이전의 두 시기보다도 훨씬 깊이 있고 진실하였다. 어떤 작품은 어느 정도 계급투쟁의 규율을 반영하였고 ; 어떤 작품은 미숙하지만 앞날이 창창한 새 인물, 새 사물 및 새 사상을 반영하였다. 어떤 작가는 혁명의 성패와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예컨대 기층정권의 심각한 불순 문제)를 예리하게 집어내고 정확하게 반영하였으며 ; 어떤 작가는 인물 묘사와 사건 서술시에 모두 농민의 직접적 감각, 인상 및 판단을 토대로 하였다. 그들은 일련의 새로운 전형 인물 형상을 창조하여 역사책에 등재하였는데, 설사 낙후한 인물을 묘사하였을지라도 앞 두 시기 작품속의 동류 인물의 형상과는 현저한 차이점이 있어서, 그들은 이제 벗어날 수 없는 정신적 부담을 안고 환멸과 비극에 빠져들지 아니하고 새시대의 일광에 목욕하였으니, 중국 사회의 거대한 변혁은 그들로 하여금 각자 정도는 다르지만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종합컨대, 공통구 소설의 격조는 명랑, 낙관, 앙양적이어서 사람들에게 커다란 격려와 힘을 주었다.

국통구의 소설, 특히 장편소설은, 현실에 대한 개괄, 규모의 막대함, 풍격의 특출성, 예술 표현력의 원숙함 등의 방면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을 이루었다. 1944년에서 1947년 사이에 쓴 老舍의 〈四世同堂〉(〈惶惑〉, 〈偸生〉, 〈饑荒〉의 삼부로 이루어져 있음) 경우에는, 祁씨네 4대의 인물을 중심으로 하고 같은 골목안의 여러 인물을 엮어서 복잡다단한 생활 화면과 이야기 스토리를 전개하였다. 전 작품은 규모가 대단하고 구성에 균형이 있으며 인물의 개성은 선명하여 이 시기에 출현한 뛰어난 거작이다. 錢鍾書의 유명한 장편 풍자소설 〈圍城〉은 30년대 중, 후기 중국의 반식민지 반봉건 사회 특유의 신 유림을 묘사하였다. 제재면에서 특히 풍자예술 방면에서 비교적 높은 성취를 이룬 것으로는 또 巴金의 장편 〈寒夜〉, 黃谷柳의 〈蝦球傳〉 등이 있는데, 이들 작품은 작자 자신의 독특한 관점으로 특정 역사 시기 중국사회의 어떤 본질적 방면을 반영하였다. 이들 작품은 엄밀한 현실주의를 그 특징으로 하며 비판의 예리함, 폭로의 심도, 나아갈 길의 암시 등의 면에서 비판적 현실주의를 훨씬 능가하였다. 그렇지만 정면 형상의 전형 창조, 혁명 이상의 전개 등의 면에서는 동시대 혁명 현실주의 작품의 사상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1) 〈中國現代小說發展槪貌〉, 田仲濟 孫昌熙 主編, 《中國現代小說史》, (濟南 : 山東文藝出版社,1984.1), PP. 547-579에서 발췌. 일부 귀절은 임의로 손질을 가했으며, 이 글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임을 유의하기 바란다.

2) 魯迅,〈南腔北調集·《總退却》 序〉.

3) 郞損,〈評四五六月的創作〉, 1921年 《小說月報》 第12卷 第8期.

4) 茅盾,〈在反動派壓迫下鬪爭和發展的革命文藝〉, 載《中華全國文學藝術工作者代表大會紀念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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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준 옮김, 〈중국 당대문학의 발전 개관〉, 舒其惠 汪華藻 主編, 《新中國文學史》, (長沙 : 湖南文藝出版社, 1990.4), PP.6-13.
총관리자 2013-06-21 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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