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3.06.21
수정일
201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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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준 옮김, 〈중국 당대문학의 발전 개관〉, 舒其惠 汪華藻 主編, 《新中國文學史》, (長沙 : 湖南文藝出版社, 1990.4), PP.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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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대문학의 발전 개관

 

舒其惠 汪華藻1)

 

 

당대문학 40년은 그 자체의 발전 과정을 가지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사회주의개조와 사회주의 건설 2) 각 시기의 경제·정치적 상황 및 문학 자체의 특징에 근거해 당대문학의 발전은 두 시기로 확연히 나누어진다고 여겨진다. 즉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으로 부터 4인방의 타도까지와 4인방의 타도로 부터 현재까지의 두 시기다.

당대문학의 역사적 시기 구분에 관해서는 일찍이 문예계에서 여러 차례의 논란이 있었다. 어떤 이는 세 시기로 구분한다. 즉 무산계급 문화대혁명無産階級文化大革命 3) 전의 17년, 문화대혁명의 10년, 4인방 타도로 부터 현재까지를 각각 한 시기로 하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의 네 단계에 근거해서 네 시기로 구분한다. 문화대혁명 전의 17년을 다시 둘로 나누어 사회주의 개조를 기본적으로 완성한 시기와 사회주의를 전면적으로 건설한 시기로 구분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상의 두 분기법이 각기 그 근거가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문학 자체의 궤적과 특징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고 생각한다.4)

당대문학 40년 자체의 발전 궤적과 특징에서 보아 우리는 분명히 다음과 같은 한 줄기 핵심적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앞의 27년은, 혁명현실주의 5) 가 비교적 양호한 발전을 하다가 속박을 받게 되고 정체와 쇠퇴를 보이면서 결국은 중단됐다. 뒤의 13년은, 혁명현실주의가 회복과 발전을 이루고 점차 심화되는 가운데 개방을 향해 나아가며, 이와 동시에 혁명현실주의의 회복과 발전에 따라 여타 문학유파도 생겨나서 문학풍격、문학유파의 다양화 국면이 출현하지만 혁명현실주의가 여전히 그 주류를 이룬다. 따라서 우리는 앞의 27년을 한 시기로 하고 뒤의 13년을 다시 한 시기로 할 것을 주장하는 바다.

앞의 27년 중에 최초 7년은 혁명현실주의가 비교적 양호한 발전을 이룬 시기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은 신속하게 전쟁의 상처를 치료하고 구사회가 남겨놓은 오물을 청소했다. 이어서 "우리 당은 전국 각 민족 인민을 영도해, 신민주주의로 부터 사회주의로의 전변을 단계적으로 실현하고, 신속하게 국민경제를 회복하고 계획적인 경제건설을 전개해,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기본적으로 생산자료 사유제에 대한 사회주의적 개조를 완성했다." 6) 이와 동시에 한국전 참전抗美援朝 7) 을 수행하고, 사상 정치 전선에서 사회주의를 견지하는 일련의 투쟁을 전개했다. 이 7년 동안 인민의 생활이 안정되고 국가건설이 순조롭게 전개돼 전 사회가 모두 활기에 찬 모습이었다. 문예에 대한 정치의 간섭이 아직 그리 심각하지 않았으며, 혁명현실주의는 비교적 양호한 발전을 이루었다. 이에 따라 문예계에는 초보적 번영의 상황이 나타났다. 문학적 성격면에서는 이 당시 반제 반봉건적 문학에서 신속하게 사회주의 문학으로 바뀌었다. 문학의 제재와 주제면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찬양하고 신시대를 찬양하며 민주개혁을 찬양하고 한국전 참전을 찬양하는 것으로 부터 점차로 사회주의 개조와 사회주의 건설을 찬양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당시의 작품은 대부분 격조가 청신하고 색채가 유쾌했으며 신시대의 전투적 기상이 충만했다. 당시 시가 방면에서는 郭沫若의 〈신중국의 노래新華頌〉, 何其芳의 〈우리의 최고 명절我們最大的節日〉, 郭小川의 〈청년 공민에게致靑年公民〉, 賀敬之의 〈소리높여 노래하자放聲歌唱〉 등의 작품이, 소설 방면에서는 趙樹理의 〈삼리만三里灣〉, 杜鵬程의 〈연안을 보위하자保衛延安〉, 柳靑의 〈금성철벽銅墻鐵壁〉, 孫犁의 〈풍운초기風雲初記〉 등의 작품이, 희극 방면에서는 老舍의 〈용수구龍須溝〉, 夏衍의 〈시련考驗〉, 曹우의 〈쾌청한 하늘明朗的天〉과 영화 〈동존서董存瑞〉, 전통극 〈십오관十五貫〉 등의 작품이, 산문、보고문학 방면에서는 巴金、氷心、魏巍 등의 작품이 영향력이 큰 역작이었으며, 이 단계 문학창작의 주요 성취를 나타내 주는 것이었다.

1957-1966년의 이 단계는 공교롭게도 꼭 10년이다. "이 10년중에 당의 공작은 지도방침면에서 심각한 과오가 있었으며, 우여곡절의 발전 과정을 겪었다". 8) 비록 공산당의 제8차 대표 대회가 적절한 노선을 확정하기는 했지만 공산당내의 좌경사상이 갈수록 심각해져서 이 노선은 효과적으로 관철되지 못했다. 1957년 반우파투쟁反右派鬪爭 9) 의 확대, 1958년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 10) 및 농촌의 인민공사화는 객관법칙에 위배되는 것이었고, 1959년 실정에 어긋난 반우경 및 연이어 제창된 '계급투쟁을 지도원칙으로 한다以階級鬪爭爲綱'라는 잘못된 구호는 중국에 좌절과 손상을 가져온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대문학의 건강한 발전에도 심각한 장애가 됐다. 당시 재능있는 상당수의 작가가 우파로 잘못 분류됐고 여타 다수 작가가 이로 인해 점차 혁명현실주의의 궤도를 벗어났다. 대약진운동 중의 허세풍조는 문학에서의 허세풍조를 이끌어내 많은 작품이 일단의 허위현상과 실정에 부합되지 않는 공상을 반영하면서 그것을 '혁명낭만주의' 11) 라고 표방했다. 이어서 '계급투쟁을 지도원칙으로 한다'라는 구호를 관철하면서 또 일부 문예작품、학술관점 및 문예계의 대표적 인물에 대해 그릇되고 지나친 정치적 비판을 가했는데 그후 더욱더 심해졌다. 이는 이 단계 문학 창작의 혁명현실주의 정신이 갈수록 속박받고 쇠퇴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중국 공산당의 제8차 대표 대회가 제정한 노선이 적절했고 3년의 경제적 곤란이 지난 후에 중공 중앙이 다시 정책상의 조정을 실행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비록 심각한 좌절을 겪기는 했지만 그래도 커다란 성취를 거두었다." 문예 방면에서의 현상도 이러했다. 이 10년 동안 기본적으로는 중국 공산당의 문예방침이 적절했고, 작가가 이 방침의 인도하에 장기적인 생활의 축적이 있었던 데다가 문학 창작에는 그 자체의 특수한 법칙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어느 정도 성취를 거두었다. 우선 장편소설의 풍년으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장편소설 창작의 첫번째 정점을 이루었다. 梁斌의 〈홍기보紅旗譜〉, 吳强의 〈붉은 해紅日〉, 曲波의 〈임해설원林海雪原〉, 楊沫의 〈피어라 들꽃靑春之歌〉, 羅廣斌 楊益言의 〈홍암紅岩〉, 柳靑의 〈창업사創業史〉, 周立波의 〈산촌의 격변山鄕巨變〉, 姚雪垠의 〈이자성李自成〉(제1권) 등은 지금까지도 당대문학이 성숙한 시기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표지다. 그밖에 馬烽、杜鵬程、李準、茹志鵑、王愿堅、王汶石 등의 많은 중단편소설 역시 당대소설 창작의 새로운 성취를 나타내준다. 시가 방면에서는 郭小川、賀敬之의 다수 정치서정시, 毛澤東、陳毅 등의 구체 시사 및 李季、聞捷 등의 새로운 건설과 새로운 생활을 찬양하는 시가가 역시 당대시가 분야에 새로운 색채를 더했다. 희극 방면에서는 郭沫若의 〈채문희蔡文姬〉, 田漢의 〈관한경關漢卿〉, 曹우의 〈담검편膽劍篇〉, 老舍의 〈찻집茶館〉 등이 모두 당대문학의 성취를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다. 산문 방면에서는 60년대 초에 성행하기 시작한 서정산문, 예컨대 楊朔의 〈여지밀려枝蜜〉, 秦牧의 〈옛 전쟁터에서의 봄날 새벽古戰場春曉〉, 劉白羽의 〈장강 3일長江三日〉, 吳伯簫의 〈물레를 회상하며記一輛紡車〉 등이 지금까지도 당대산문의 명편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외 鄧拓의 〈연산야화燕山夜話〉와 〈삼가촌찰기三家村札記〉 등은 당대잡문 창작의 새로운 성취를 나타내주는 대표적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이같은 성취는 상황이 비교적 복잡하기도 하다. 지난 시기의 역사를 반영한 장편소설과 같은 일부 작품들은 사실상 상당수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초기나 그 이전에 이미 초고를 완성했거나 혹은 예비됐기 때문에 전적으로 이 시기의 성과라고 만은 할 수 없다. 대규모의 장편서사시、역사극、역사소설과 같은 일부 작품들은 단지 역사적 제재를 빌어 우회적으로 현실을 표현한 것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어떤 작품들은, 예컨대 현실 생활을 반영한 일부 작품들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일반적으로 모두 더욱 깊이있게 현실 생활 속의 모순과 그 복잡성을 밝히지 못했으며, 심지어 어떤 것은 점차 현실을 분식하고 태평성세를 노래하는 비현실주의적인 길로 들어서기도 했다. 따라서 당대문학의 발전 맥락에서 볼 때, 이 단계의 문학은 그 혁명현실주의 정신이 점차로 쇠퇴하고 위축해갔다고 할 수 있다.

1966년에서 1976년까지의 문화대혁명 단계는 중국 혁명현실주의 문학이 위축되어 가다가 마침내 중단된 단계다. 문화대혁명의 10년은 "문화대혁명은 영도자가 잘못 발동하고 반혁명집단에 이용돼 공산당、국가 및 각 민족 인민에게 심각한 재난을 가져온 내란이었다". 12) 이 내란 중에 문예계는 맨먼저 그 충격에 부닥쳐서 참화가 가장 극심했다. 林彪、江靑이 권력을 이용해 1966년 2월 〈부대문예공작좌담회 요지 기록部隊文藝工作座談會紀要〉 13) 를 꾸며서 문예계에 대한 봉건 파쇼적인 문화전제주의와 문화허무주의를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그들은 5·4 이래 혁명문학의 찬란한 전통을 전면 부정하고, 혁명문예 노선이 '수정주의 문예흑선修正主義文藝黑線' 14) 이라 무고했으며, 마르크스주의가 창도한 이래의 무산계급문예를 폄하하고, 동서의 모든 고전문학 유산을 봉쇄하면서, 수많은 작가를 '자산계급 대표 인물'、'문예흑선 인물'로 몰아부치면서 박해를 가했고, 대부분의 문예 간행물을 정간시켜, 사회주의 문예계에 미증유의 "시가도 없고, 소설도 없고, 산문도 없고, 평론도 없는" 15) 침체한 국면을 출현시켰다. 이는 사회주의 문학의 커다란 퇴보였다. 70년대 초기부터 시작해 문예 창작이 회복되기는 했지만 그러나 대부분은 4인방의 당권 장악을 위해 복무하는 기만과 협잡의 문예瞞和騙的文藝 16) 였다. 예컨대 〈황금종의 소리가 울려퍼지고金鐘長鳴〉, 〈어느 모순을 폭로한 보고一個揭矛盾的報告〉, 〈결렬決裂〉, 〈성대한 경축일盛大的節日〉 등이 그러했다. 일부 작가가 비록 그처럼 어려운 상황하에서도 일련의 비교적 괜찮은 작품 예컨대 克非의 〈도도히 흐르는 봄물결春潮急〉, 黎汝淸의 〈뭇산에 붉게 핀 진달래萬山紅遍〉, 孟偉哉의 〈전일의 전쟁昨天的戰爭〉, 李心田의 〈반짝이는 붉은 별閃閃的紅星〉 등을 창작하기는 했지만, 당시의 좌경적인 사조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인민의 소리는, 일정한 때가 되면 봄이 반드시 오듯이 영원히 압제될 수는 없는 것이다. 1976년 청멸절 마침내 周恩來 총리에 대한 추모와 4인방에 대한 고발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4·5 천안문운동이 폭발했다. 이 운동은 시가를 주요 무기로 해 격앙된 소리로 4인방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가하고 시대의 소리를 외쳤다. 그것은 장차 암흑의 시대가 물러가고새로운 광명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4인방 타도 이후의 13년은 당대문학의 두번째 시기다.

4인방 타도 후, 특히 중국 공산당의 11기 3중전회 이후 중국 인민은 각 방면에서 정도회복의 커다란 승리를 거두고 역사적인 위대한 전환을 실현했으며 새로운 역사 발전의 시기를 맞이했다. 이 신시기에 중국의 문학 역시 커다란 성취를 거두었다. 광대한 문예종사자들이 사상해방、예술민주의 깃발을 높이 들고서 좌경 오류가 조성한 갖가지 속박을 끊임없이 돌파해, 중국 인민의 문예가 장기간의 족쇄에서 벗어나고 혁명현실주의가 회복과 발전을 이루도록 했다. 특히 제4차 전국 문학예술공작자 대표 대회全國文學藝術工作者代表大會 17) 이후 광대한 문예종사자는 당대문학 탄생 이래 30년간의 긍정과 부정 양 방면의 경험 교훈을 총괄하고, '두 가지 무릇兩個凡是' 18) 이란 관념을 비판했으며, 소위 문예흑선독재론을 타파하고 다시금 쌍백방침雙百方針 19) 을 관철해, 중국 문단에는 곧바로 중국적 특색을 지닌 문예부흥이 출현했다.

먼저, 혁명현실주의 전통이 회복돼, 진실감을 지닌 4인방을 비판하고 1세대 혁명가를 찬양하는 문학작품들이 창작됐다. 이어서 4인방 비판이 심화됨에 따라 劉心武의 〈담임선생班主任〉, 盧新華의 〈상흔傷痕〉을 대표작으로 하는 '상흔문학傷痕文學'이 출현했다. 이들 작품은 생동적이고 구체적인 예술 형상을 통해 10년 재난이 공산당과 국가와 인민에게 준 심각한 내상과 외상을 폭로해 사회에 강렬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상흔문학의 대대적인 출현 후 사람들은 林彪、4인방이 어떻게 출현했으며 10년 내란이라는 이 역사적 대 비극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사고하기 시작해 다시 건국 후의 역사에 대해 반성을 행하는 '반성문학反思文學'이 출현했다. 그 대표작에는 高曉聲의 〈이순대의 집짓기李順大造屋〉, 茹志鵑의 〈잘못 편집된 이야기剪輯錯了的故事〉 등이 있다. 이들 작품은 그 침중하고 냉엄한 필치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의 정치、경제、문화 등 각 분야에서의 갖가지 오류에 대해 냉정한 비판을 가하고 좌경사조가 인민에게 가져온 재난에 대해 깊이있는 비판을 행했다. 반성문학은 상흔문학에 비해 한층 강렬한 이성적 사고를 갖추고 있었으며 더욱 깊은 사색을 하도록 이끌었다. 반성문학이 대두된 얼마 후 개혁을 묘사하고 개혁을 찬양하는 일련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해서 하나의 창작 조류를 이루었는데, 사람들은 이를 '개혁문학改革文學'이라 부른다. 이 조류는 지금도 여전히 중국 문학 창작의 주류이며, 중국 사회주의 건설의 순조로운 진행、개혁의 심화와 더불어 발전해나가고 있다. 그 대표작으로는 蔣子龍의 〈교공장장 부임기喬廠長上任記〉, 張潔의 〈무거운 날개침重的翅膀〉, 何士光의 〈장터에서鄕場上〉, 賈平凹의 〈계와와의 사람들鷄窩窪的人家〉 등이 있다. 이들 작품은 현시기 중국의 시대정신과 현실생활의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경제、정치 방면의 개혁 개방에 발맞추어 서방의 갖가지 문학사조가 물밀듯 유입됐고, 일순 탐구적 풍조가 일어났다. 예컨대 '의식의 흐름'、'중국식 현대파'、'부조리극'、'신소설'、'신시가'、'마환현실주의' 등이 앞을 다투어 현시기 중국의 당대문학계에 출현하고 있다. 각종 유파의 흥기와 상호경쟁으로 인해 1985년으로 부터 중국 문학계에는 문학풍격、문학유파의 다양화라는 새로운 국면이 나타났다.

각종 유파의 공존과 상호경쟁 속에 개방적 혁명현실주의 문학이 줄곧 주도적 지위를 점하고 있다. 이른바 개방적 혁명현실주의란 곧 현실생활의 다층적 진실성의 반영을 추구하고 예술 표현의 개방성을 추구해, 여타 창작방법에 대해 '모든 것을 수용하고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그 대표작으로는 陸文夫의 〈우물井〉, 朱曉平의 〈상수평 이야기桑樹坪紀事〉, 韓靜霆의 〈한밤의 개선凱旋在子夜〉 등이 있다. 이들 작품은 전체 구조、플롯의 발전 및 인물의 묘사면에서 모두 현실주의적이요 삶의 본래 모습에 의거해 생활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플롯이나 사물에 대한 묘사에서는 여타 유파의 일부 수법을 흡수、운용하고 있다. 이 밖에도 예컨대 '중국식 현대파'、'뿌리찾기문학尋根文學' 20) 、통속문학、실기문학 역시 각각 독특한 사상 경향、창작 원리로 나름대로의 모색을 행해 중국 문예계에 다채로운 모습이 출현하도록 하고 있다.

동시에 각종 유파의 공존과 상호경쟁이 또 상호 침투、상호 결합의 현상을 낳아 각 유파가 새로운 발전과 질적 변화를 일으키도록 하고 있음을 명백히 볼 수 있다. 현재 당대문학은 사회주의 문학을 중심으로 하고 현실주의를 주류로 해 문학풍격、문학유파의 다양화라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신시기 문학 중의 어떤 작품들은 '4항원칙四項原則' 21) 을 위배해 공산당과 사회주의에 대해 회의와 불신의 정서를 퍼뜨리고 있기도 하다. 어떤 작품들은 자산계급의 인생관、도덕관、가치관을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어떤 작품들은 사상적 수준이 높지 못한 정도에 그치지 않고 심지어 저급기 조차 해서 색정、폭력을 조장하는 따위의 독자의 저급한 취미에 영합하고 있다. 어떤 작품들은 예술적 탐색을 진행하면서 민족 문화 전통을 경시하고 서방을 본뜨는, 심지어 서방 현대파를 맹목적으로 모방하는 경향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일부 이론 비평문에는 민족문화의 우수한 전통을 부정하고 전반서화를 주장하는 잘못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문예의 건강한 발전과 번영에 대단히 해로우며, 마땅히 비판과 제어를 행해야만 한다.

 

 

1) 이 글은 《新中國文學史》, 舒其惠 汪華藻 主編, (長沙 : 湖南文藝出版社, 1990.4), PP.6-13을 옮긴 것이다. 일부 귀절은 임의로 손질을 가했으며, 특히 이 글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임을 유의하기 바란다.

2) 옮긴이 말 : 사회주의 개조란, 무산계급 독재의 조건하에서 생산자료 사유제를 생산자료 사회주의 공유제로 바꾸는 혁명을 말하며, 농업 사회주의개조、수공업 사회주의개조、자본주의공상업 사회주의개조 등이 있다. 사회주의 건설이란, 계획적이고 순차적이며 신속하게 국민경제를 발전시켜, 사회주의 강대국 건설 및 공산주의로 넘어가기 위한 조건을 창조하는 과정을 말하며, 무산계급 독재의 기본 임무의 하나로, 경제건설 및 문화건설을 포함하지만 때로는 전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총체적인 목표는, 자본주의에 비해 한층 높은 노동생산율 창조、인민의 물질 및 문화 생활의 점차적 개선으로 공산주의로 넘어가기 위한 조건을 창조하는 것이다.

3) 옮긴이 말 : 문혁. 문화대혁명. 1966년 5월 16일 소위 '5·16통지'의 하달로 부터 1976년 10월 江靑、張春橋、王洪文、姚文元의 4인방 실각 때까지 10년간에 걸친 대규모 정치운동.

4) 옮긴이 말 : 《중국문학사 2》, 김학주 이동향, (서울 : 한국방송통신대학, 1991.7)은 중국 당대문학사를 ① 1949-1953 ② 1953-1960 ③ 1960-1970 ④ 1970-현재의 네 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5) 옮긴이 말 : 마르크스주의의 반영론에 입각하여 생활 속에 깊이 들어가 생활 실제로 부터 현실 역사 발전의 객관 과정을 깊이 있고도 진실하게 반영할 것을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6) 〈건국 이래 당의 일부 역사 문제에 관한 중공 중앙의 결의中共中央關於建國以來黨的若干歷史問題的決議〉.

7) 옮긴이 말 : 1950년 10월 25일 彭德懷 지휘하에 인민군中國人民志願軍이 압록강을 넘어 한국을 침략한 것을 말한다.

8) 〈건국 이래 당의 일부 역사 문제에 관한 중공 중앙의 결의中共中央關於建國以來黨的若干歷史問題的決議〉.

9) 옮긴이 말 : 1957년 4월 관료주의、종파주의、주관주의에 대한 정풍운동인 쌍백운동雙百運動(대명대방운동大鳴大放運動)으로 공산당 등 집권세력에 대한 일부 민주인사들의 비판적 언론이 고조되자, 같은 해 6월 이후 毛澤東의 지시에 의해 '반자산계급우파 투쟁反擊資産階級右派鬪爭'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여 이같은 비판자들을 우파로 몰아 숙청한 정치투쟁을 말한다.

10) 옮긴이 말 : 1958-60년의 15년 사이에 영국을 따라 잡는다는 구호 아래 毛澤東이 실시했던 농공업의 대증산을 위시한 야심적인 경제 정책으로, 사회주의 총노선、인민공사 정책과 더불어 소위 '세 개의 홍기三面紅旗' 정책의 하나다. '더많이, 더 빨리, 훌륭하게, 낭비없이'라는 구호와 인민공사화 운동 전개 및 재래식 제철방식에 의한 철강 증산 운동 등을 전개했는데, 초기에는 다소간의 성과가 있었지만 59년 후반부터는 실패하기 시작했다.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59년 4월 毛澤東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劉少奇가 국가주석을 맡았으며, 그해 8월에는 여산회의廬山會議에서 彭德懷가 毛澤東을 비판하는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중국은 결국 61년 1월 9중전회에서 '조정調整, 강화鞏固, 충실充實, 향상提高'이라는 새로운 경제 정책을 채택했다.

11) 옮긴이 말 : 공산주의의 이상과 그것의 실현을 위한 투쟁에서의 무산계급의 혁명적 영웅주의와 혁명적 낙관주의 정신을 표현할 것을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12) 〈건국 이래 당의 일부 역사 문제에 관한 중공 중앙의 결의中共中央關於建國以來黨的若干歷史問題的決議〉.

13) 옮긴이 말 : 1966년 2월 上海에서 개최된 부대문예공작좌담회의 기록으로, 원 제목은 〈林彪 동지가 江靑 동지에게 위임하여 개최한 부대문예공작좌담회 요지 기록林彪同志委託江靑同志召開的部隊文藝工作座談會紀要〉. 陳伯達에 의해 작성된 이 글은 이른바 문예흑선독재론文藝黑線專政論, 근본임무론根本任務論 등을 주장했다.

14) 옮긴이 말 : 〈부대문예공작좌담회 요지 기록部隊文藝工作座談會紀要〉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래 문예계는 "모주석 사상과 상호 대립하는 반당 반사회적인 한 줄기 흑선에 의해 우리가 독재되었으며, 이 흑선은 곧 자산계급 문예사상、현대수정주의 문예사상 및 소위 30년대 문예의 결합이다"라고 주장되었다. 구체적으로는 ① 진실을 써야 한다寫眞實 ② 현실주의現實主義 광활한 길廣闊道路 ③ 현실주의가 심화되어야 한다現實主義深化 ④ '제재 결정론'을 반대한다反'題材決定論' ⑤ 중간인물을 써야 한다寫中間人物 ⑥ 시대정신 회합론時代精神匯合論 ⑦ 교리를 반대한다離經叛徒 ⑧ 화약 냄새를 반대한다反火藥味論 등 소위 '흑8론黑八論'이 '문예흑선文藝黑線'의 대표적 관점이라고 비판되었다.

15) 중국 공산당 제11차 대표 대회 정치보고에서 인용.

    옮긴이 말 : 당시 모범극樣板戱이 극히 성행했는데, 모범극樣板戱이란 경극京劇 현대화 과정에서 창작된 京劇 〈홍등기紅燈記〉, 〈사가빈沙家濱〉, 〈지혜로 탈취한 위호산智取威虎山〉, 〈백호단 기습奇襲白虎團〉, 〈해항海港〉, 무용극 〈홍색 낭자군紅色娘子軍〉, 〈백모녀白毛女〉, 교향곡 〈사가빈沙家濱〉 등을 지칭한다. 4인방은 이를 문혁의 추진에 이용하였는데, 〈부대문예공작좌담회 요지 기록部隊文藝工作座談會紀要〉에서 江靑이 "잘 틀어잡은 모범조好的樣板"적 작품을 제기, 1967년 5월 《인민일보人民日報》 사설에서 이를 적극 주장함으로써 성행했다.

16) 옮긴이 말 : 음모문예陰謀文藝. 4인방을 지지하여 그 음모에 가담했던 문학을 지칭한다. 대표작으로는 이른바 '주자파와의 투쟁與走資派作鬪爭'을 묘사한 영화 〈반격反擊〉과 연극 〈성대한 명절盛大的節日〉 등이 있다.

17) 옮긴이 말 : 1949년 7월 중국 각지의 좌익문예가들이 北京에 모여 중화 전국 문학예술공작자 대표 대회中華全國文學藝術工作者代表大會를 열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이라는 새로운 정세 속에서 이후 지향해야 할 문학 예술의 방향을 논의하고, 문예계의 통일 조직을 결성했다. 1953년 9월 제2차 대회 이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1960년 7월에 제3차 대회를, 1979년 10월에는 제4차 대회를 열었다.

18) 옮긴이 말 : "무릇 모주석이 행한 결정은 우리는 반드시 모두 굳세게 옹호해야 하며, 무릇 모주석이 내린 지시는 우리는 반드시 모두 시종일관 준수해야만 한다凡是毛主席作出的決策, 我們都要堅決擁護, 凡是毛主席的指示, 我們都要始終不淪地遵循"를 줄인 말이다.

19) 옮긴이 말 : 백화제방百花齊放、백가쟁명百家爭鳴. 1956년 생산자료 소유제 방면에서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개조가 완성되었지만 인민내부모순을 비롯한 각종 모순이 여전히 존재하였고, 이에 따라 그 해결을 위해 1956년 2월 毛澤東이 최고국무회의에서 제시한 정책이다. 백화제방은 예술 발전의 한 방법으로 백가쟁명은 과학 발전의 한 방법으로 간주되었다.

20) 옮긴이 말 : 처음 韓少功이 제기함으로써 1980년대 중반 중국에 등장한 문학으로, 남미의 마환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아 현대적 의식으로 전통을 새로이 검토하자는 데서 비롯되었다. 대표작으로는 韓少功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파파파〉, 王安憶의 〈샤오빠오주앙小苞莊〉, 賈平凹의 〈상주商州〉 등이 있다.

21) 옮긴이 말 : ① 四堅持. 四個堅持. 四項基本原則. 사회주의노선 견지、공산당 영도 견지、인민민주주의 독재 즉 무산계급 독재 견지、마르크스 레닌 주의 및 毛澤東 사상 견지를 말한다. 1979년 3월 30일 공작근본문제연구회의工作根本問題硏究會議에서 鄧小平이 제기했다. 1982년 12월에 수정된 신헌법의 前文에서는 중국의 성격이 '무산계급 독재의 사회주의 국가'에서 '인민민주주의 독재의 사회주의 국가'로 바뀌었으므로, 무산계급 독재 견지 앞에 인민민주주의 독재 견지를 추가하였다. ② 실천 제일의 관점 견지、대립 통일의 관점 견지、계급분석 방법의 관점 견지、'노예가 역사를 창조했다奴隷創造歷史'의 관점 견지를 뜻한다. 한때 毛澤東 철학 사상 학습의 과정에서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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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준 역, 傅德岷 저, 〈세기의 교체기에 선 중국 산문의 풍경〉, 《중국어문논총》 제13집, 서울 : 중국어문연구회, 1997년 12월, PP.329-339.
총관리자 2013-06-21 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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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준 옮김, 〈중국 현대소설의 발전 개관〉, 田仲濟 孫昌熙 主編, 《中國現代小說史》, (濟南 : 山東文藝出版社,1984.1), PP. 547-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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