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3.06.20
수정일
201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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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文彬, 김민정 옮김, 〈當代香港散文槪況〉, 《當代香港寫實小說散文槪論 散文卷》, (廣州: 廣東敎育出版社, 1998), pp.2-27.

현대 홍콩 산문 개황

 

 

周  文  彬

 

 

1. 전통의 계승과 중서의 융합

 

산문은 하나의 광대한 범위의 문체이다. 광의적으로 보면, 아마도 소설, 희극, 시가를 제외한 모든 글이 산문이라는 한 영역에 속한다.

산문의 정의에 있어 홍콩 작가 ?端安은 《???》중의 “희극은 인생의 직접적인 토로”, “소설은 인생의 희극화”,”시는 인생의 경지화”를 빌어와 산문은“인생의 철학화”라고 설명한 바 있다. 분명 산문은 소설, 시가, 희극 등의 기타 문학형식과 비교해 볼 때,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회 생활을 파악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것을 신속하게 그려내고 그 속의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사람들이 깨닫고 이해할 수 있게끔 한다.

중국이 시가의 왕국으로 알려져 왔지만, 중국은 산문의 대국이기도 하다. 몇 천년의 문명사에서 산문 역시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저 고대 선진시대의 제자백가가 있었고, 당송시대의 시문 역시 그 업적이 탁월하다. 명청 시대의 산문저작 역시 깊은 영향력을 지닌다. 5.4 이래로 봉건의 속박을 깨고 나온 산문은 더 이상 공자와 맹자의 도를 나르는, 성인의 말을 담는 도구가 아니었고, 오히려 작가의 진실된 정감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등, 개성적인 특색을 드러내어 세인이 관심을 끌었다. 이에 ?迅은 《?小品文的危机》에서 “산문과 잡문의 성공은 아마도 소설과 희곡 시가의 그것보다 높은 수준일 것이다.”라고 평한 바 있다.

신 중국의 성립 이후, 현대 산문의 발전 역사는 - 비록 고비가 있었지만 - 중국 현대 문학 전체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전진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만한 성취를 이루어 냈다.

홍콩 현대 산문은 조국의 모체 산문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비록 그 사회 생활과 반영하는 의식 형태가 다르고, 작품의 형식과 수법, 정취적 특색이 다르지만, 여전히 모체 문화와 호흡을 같이 하고 있다. 심지어“文革” 전후 한동안 자아를 잃어버린 듯 단일화, 모식화, 공식화, 개념화가 나타났을 때도 중국 본토의 구체적 정책?개념의 속박과 영향의 흔적이 보인다.

그렇지만, 홍콩 산문에는 확실히 그것만의 특성이 존재한다. 문화적인 면에서 홍콩은 중서 문화의 합류 지점이고, 해협 양안의 문학예술이 소통하는 교량이며 매개체이다. 이러한 중화와 서양이 혼재하는 환경과 자본주의 경제의 자유로운 발전 그리고 격렬한 경쟁 속에서 홍콩 산문은 현대 사회의 새로운 관념을 흡수하고 홍콩 현대 대도시의 특색을 재현했다.

오늘날 홍콩의 산문 창작은 몇 대를 걸친 작가들의 노력을 통해 마침내 눈에 띄는 창작 단체를 형성했으며 괄목할 만한 창작 성과를 이룩했다. 90년대 초기의 비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홍콩과 대륙, 대만에서 출판된 홍콩작가의 현대 산문집은 500여종에 이르며, 그 중 많은 수의 작품이 이들 지역의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몇몇 작품은 홍콩 《中??文》에 교재로 채택되기도 했고, 또 다른 몇몇 작품은 홍콩의 중학교에서 “권장도서”로 채택되기도 했다.

홍콩의 산문창작은 아주 다채롭다. 보통, 일인일사(一人一事) 혹은 일경일물(一景一物), 한 순간의 감흥 혹은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느낌 등의 모든 것이 산문작가의 원고지 위에 표현된다. 그 속에는 시대에 반응하는 맥박과 시대를 묘사하는 집광, 마음 속 진실한 떨림에 대한 묘사, 작가의 심상 재현, 홍콩의 도시리듬에 따른 자유로운 필치, 정경묘사와 비판, 서정 등이 있다. 모든 홍콩의 풍경과 사회의 화면 속에서, 무수한 경험과 미추애흔(美丑?恨) 속에서 홍콩인의 정신면모에 대한 윤곽을 긋고, 개인과 대중의 희노애락을 표현하고, 인성과 인정을 묘사한다. 그야말로 1척의 화폭 속에 수천만의 산수를 담을 수 있고, 종이 한 장에 세태와 인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하겠다. 여기에는 각성과 깨달음, 갱신과 혁신, 권선징악이 있으며, 최근에는 더욱이 초읽기 할 때의 열렬한 두근거림과 회귀를 바라는 열망이 있다. 다양한 서사, 의론, 서정의 산문 속에 활용된 필묵은 혹은 문장의 수사와 정취가 풍부하거나, 혹은 소탈하고 자유롭고, 혹은 유머러스하고 기지가 넘치고, 혹은 가벼운 농담, 묘미가 가득하고, 혹은 시나 그림 같고, 혹은 우의가 심오하고, 혹은 정취가 깊다. 다양한 인격과 개성, 솔직하고 활발한 자아의 표현을 통해 각각의 독특한 면모, 품격, 정취를 드러낸다. 이렇게 산문 작가들은 풍부한 연상과 자유로운 감정의 토로를 통해 조국인민과 더불어 찬란한 중화문명을 창조한다.

오늘날 홍콩산문은 고대산문과 “五四”신문학 전통의 계승하고 있으며, 중국과 서양의 격렬한 충돌 속에서 특히, 배금주의(拜金主?)의 유행에 따른 금전세력의 급속한 확장과 친지 동료간의 유대 약화 속에서, 다층 다각도로 사람들과 자신을 묘사, 서술비판하고 있다. 또한, 정경을 묘사하고 심정을 토로하며 다양한 방면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홍콩 작가들의 번화한 도시 속 인생에 대한 관심과 주의를 기록하고, 세간의 귀천, 선악을 묘사하며 작가 스스로의 심경과 심사를 그려냄으로써 선명한 지방색채와 시대색채를 드러낸다.

 

2.홍콩 현대 산문의 발전

 

50년대는 홍콩 현대 산문의 걸음마 시기이다.

신 중국성립 전후로 남쪽으로의 이민이 한창인 때, 많은 문인들 예를 들어, 曹聚仁,???,李?英,徐?,徐速,思果,高旅,卜少夫,?朗,林适存,林以亮,董千里 등이 중국대륙에서 홍콩으로 남하했다. 또 일부, 四???,易君左 등이 우선 중국내륙에서 대만, 대만에서 다시 홍콩으로 넘어 왔다. 그들과 ??,唐人,?以?,高雄,?羊壁,金依,何? 등의 이미 홍콩에 있던 문인들은 문단에서 각자 부지런히 문단을 일군다.

그러나 당시 중국대륙에서 홍콩으로 온 작가들은 정치에 대해 좌, 중, 우익 모두가 존재했다. 그 속에는 좌, 우로 편향된 자도 있고, 심지어 좌, 우를 왔다 갔다 하는 이도 있었으며, 그들이 발표하는 문장들은 각자 시비가 분명했다. 특히 좌, 우익의 양극은 아주 적극적이었으며 좌익은 사회현실을 반영하는 진보문학을 써 해방을 노래하고 억압된 자를 동정하는 것을 그 임무로 삼았다. 반면 우익은 반공을 주지로 한 “자유문학”을 표방하며 과거를 추억하고 개인의 현실에 대한 불만을 묘사했다. 그리하여 선명한 양대 진영이 형성되고, 신문잡지에도 분명한 경향성이 나타난다. 좌파의《文??》,《大公?》,《新??》, 우파의《香港??》,《工商日?》이 그것이며, 뿐만 아니라 학생간행물, 문예 간행물 또한 은연히 대치하는 상황이었다. 예를 들어 《中??生周?》과《?年??》,《海洋文?》과《?代文?》등이 또한 그것이다.

바로 이때, 미국의 세력이 홍콩을 향해 뻗쳐왔다. 그들은 일부 기금회와 문화조직을 이용해 출판사에 달러 찬조를 했는데, 잡지사를 지원하며 작가들에게는 원고료를 지불하여 거대한 “달러공세”가 형성된다. 이 때문에 50년대 전기의 반공의식을 지닌 문인들은 달러의 지지 아래 대거“달러문화”에 동참했고, 홍콩 문화계는 일시에 “우익”의 정권 아래 놓이게 된다.

그러나 50년대의 홍콩문단은 여전히 내륙에서 홍콩으로 온 작가들이 역량의 주역이었다.신 중국 성립 전후로 진보적인 문인들이 대거 대륙으로 돌아가 사회주의문화건설에 참가하였지만, 일부는 여전히 홍콩에 남아 애국 민주의 진보적인 문화활동을 지속했다. 그 사이 일부 대륙 작가들은 홍콩으로 남하해 이 문학대열에 참여한다. 당시 애국 진보의 문학 종사자들은 《文??》,《大公?》,《新??》와 같은 몇 개의 영향력 있는 신문을 주요 진지로 삼아 반공의“달러문학”에 대항하는 전투 속에서 자신만의 진지를 개척했다.

홍콩 현대 산문 창작이 막 시작할 무렵인 50년대는 양호한 기초가 있었다. 홍콩산문가 ?羊壁가 지적했듯이, 5,60년대 홍콩 산문 작가들은 일찍부터 아주 엄숙하고 진지한 자세로 홍콩산문을 일궈왔다. 그들은 판매고의 많고 적음에 의지하지 않고 고심을 다해 중후하고 충실한 내용의 언어가 아름다운 산문을 만들었다.

홍콩 평론가 ?康?은 《香港的流行小?》에서 이 시기의 창작이 상당한 문학적 소양을 지니고 있으며, 심지어 통속 소설 또한 예외가 아니라고 소개하고 있다. 1949년에서 1953년, 望云(즉?吻?)이 출판한 2권의《星下?》산문집은 문학적 수준이 상당하며 그 신문학의 소양은 일류에 속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 홍콩 산문 작가들은 전통문화와 “五四”신문학 유풍의 영향을 깊이 받았었으며, 산문작품 역시 다수가 미문(美文)에 속했다. 그러나 당시 정치, 역사, 문화상의 이유로 산문창작의 길은 상대적으로 협소했다. 일반적으로 대륙에서 남하한 작가들은 한동안 홍콩사회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들이 집필한 산문의 내용은 역시 대개 대륙 방면의 것이었다. 이외에 좌우 양대 진영의 대립 속에서 일부 작가들은 적극적으로 그 속에 참여하여, 대개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장들을 써냈다. 그러나 또 다른 작가들은 자신만의 공간을 지키며 논쟁에 참여하길 원치 않았고 정치와도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산문은 평화롭고 다정한 태도로 일상적인 일들을 얘기하고, 혈육간의 정을 노래하며, 혹은 과거를 회고하고, 혹은 옛일을 추억하고, 혹은 어제와 오늘을 얘기하고 인생을 논하며, 의식 혹은 무의식 중에 정치의식을 회피하거나 옅게 했다.

50년대의 주요 산문작품으로는 ??의《无名草》,《落花》,《紫色的感情》,曹聚仁의《到新文?之路》,《中?剪影》(一,二集),《?代文?手?》,《新事十?》,《?世哲?》,《中?近百年史?》,《??集》,《文?三?》,《?林新?》,《??手?》,《文?五十年》(正?集),《采?外?》,《采?二?》,《采?三?》,《采?新?》,《山水?思想?人物》,《中?文??要》,《?迅??》,《??六十年》,《北行小?》,???의《香港方物志》,《??小品集》,《百???》,司???의《北?的春天》,《殷老?的眼?》,舒巷成의《拜???情》,《??文??言》,《旅程游思》,徐?의《思?感》,思果의《?思?》,《??家肖像》,辛文芷(?孚)의《?雷集》,?琦의《老?的喜?》등이 있다.

50년대 구세대 작가들은 홍콩 산문창작 대열의 주력이었다. 당시 曹聚仁와 徐?가 창설한《幽默》는 오직 산문 소품만을 기재한 잡지이다. ?其敏이 편집을 주관한《五十人集》,《五十又集》두 권의 책에는 ?蒙田,?其敏,舒巷成 등 87명의 총 100편의 산문이 실렸다.《五十人集》은 50명의 산문을 한 개로 엮어 각자의 다른 삶과 사상, 기호, 문필을 드러냈으며 내용이 풍부하고 변화가 다양해 그 구성의 참신함이 개인의 전집이나 문예 간행물보다 훨씬 뛰어나 출판된 이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래서 《五十又集》가 또 편집되어 출판된 것이다. 이 책은 많은 새로운 작가들이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제재를 인도네시아, 미얀마,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마카오 등의 국가와 지역으로 확대시켜 묘사하였으며, 수도, 장강삼협(?江三?),계림연동(桂林岩洞)에서부터 제네바, 파리에 대해서까지 서술함으로써 독자들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이 두 권의 책은 홍콩 초기 현실주의 작가들의 산문선집으로 홍콩 최초의 산문선본이라 할 수 있다.

“항미원조(抗美援朝)”가 종결되고 사회정치형세가 변화함에 따라 달러는 점차 홍콩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문예계는 다시 분화? 조직화되었다. 일부의 문인들은 홍콩을 떠나 대만으로 향했고, 또 다른 일부는 자신들의 세계를 개척하기 위해 외국으로 떠났다.

60년대 홍콩사회는 상업적인 이민사회에서 점차 공업의 정착사회로 변화되어 갔다. 시민들의 생활은 점차 안정되었고 따라서 정신적으로 의탁할 것을 찾기 시작했다. 당시 통신설비는 아직 덜 발달되었기에 일반인들은 TV를 보고 라디오 듣는 것을 제외하고는 신문을 통해 작품을 읽게 되었다. 이는 곧 문학창작을 촉진시켰고 특히 산문창작의 초보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60년대 상반기 홍콩에서는 아주 적극적인 문예창작의 붐이 일었다. 당시 열정적 문학 청년들은 각기 문학단체를 조직했다. 海辛,?琅 등은 “?峰文社”를, ??彬,?魂 등은 “?雨文社”를 , 彦火 등은 "豪志文社”를 조직했다.

그 중 “?峰文社”는 자유로운 문학단체로 비록 조직의 형식은 갖추지 않았지만, 생명력과 응집력을 가지고 소설과 산문 창작을 주로 하였다. 창시자는 海辛,?夏,李?,?琅,?秀牧 등이며 1959년 봄에 처음으로 모임을 가졌다. ?琅은 1994년 5월《?峰社的三十五年》이란 글에서“당시의 정열적인 청년들은 한 알의 붉은 마음을 품고 펜 끝을 통해 현실사회 구석구석의 피와 눈물의 현실을 반영하고 싶어 했으며, 자연스럽게 이러한 신문잡지 주위에 머무르며 읽고 투고했다.”고 소개한다. 그들은 초기에는 글로써 벗을 사귀다 후에는 차를 마시며 얘기하였는데,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들이 참여했다. ?琅의 통계에 따르면, 해가 지날수록 인원이 늘어나 82명에 다다르기도 했다고 한다. 30년 동안 이 문학단체는 자유롭게 모였고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들의 주요 구성원은 海辛, ?琅, 林?,高旅,?君默 등이며 산문과 소설 영역에서 부단히 노력, 훌륭한 업적을 쌓았다.

1962년 초《海歌?夜??情思》가 출판되었다. 이것은 청년산문창작집으로써 여기에 참가한 사람 대다수가 초기의“?峰文社"와 그 주위의 문학 청년들 이었다. 그들은 秦西?,??,谷旭,?凡,?辛雄,?如?,?捏,?莎,甘莎,秋适,?珠,?夏,田?,?思,?辛,柯?莎,思敏,昌雯 등 18명이며, 산문집은 秦西?(즉,舒巷成)의 《???的?》,?辛雄(즉,海辛)의 《小金桃》,甘莎(즉,?君默)의《父?》등 37편이 있다. 그들은 각자 생활의 단면을 가져와 사회의 갖은 고충을 묘사했고 평범하지 않은 고통을 더해, 읽은 후 담백한 뒷맛을 느낄 수 있게끔 했다.

그 중, 舒巷의 산문과 수필은-문단에서 널리 환영 받고 있는 그의 소설과 시가처럼-그가 지닌 회화와 음악적 재능에 많은 힘을 얻고 있다. 종종 여기저기서 따 온 소재는 말로는 다함이 있어도 그 뜻이 무궁하고, 글 솜씨가 뛰어나 붓만 대면 멋진 글이 되기에 그의 글 속에는 아주 친근한 도시 정감이 넘친다.

당시 문단의 유명작가 ?其敏의 글 서두에서 “이 작품집이 드러내 보이는 것은 우리가 처한 현재 환경의 생활 단면들이며, 달고 시고 쓰고 매운 갖가지 맛이라 할 수 있는데 아마 쓴맛이 상당히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음미하다 보면 쓴 맛은 다하고 뭔가 다른 여러 가지 맛이 곁들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생존에 대한 희망과 동경을 잃어버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는 또 “후기”에서 “작품집 속 청년, 그들이 시선을 두는 각도가 설사 다르고, 그들이 지휘하는 필묵의 깊이와 강도의 차이, 그들이 현상과 형상을 묘사하는 기술의 숙련되고 미숙함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들 모두는 하나의 진실된 환경을 둘러싸고 진실에 복종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경험하고 집필한다. 이 때문에 그들이 일구는 노력과 수확의 많고 적음에 대해 예외 없이 동등하게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海歌?夜??情思》의 출판은 많은 청년 작가들을 고무시켰고 그들의 창작에 대한 믿음과 결심을 굳혀 주었다.

이 때는 문예 간행물 역시 아주 번창하였는데,《文?世?》,《南洋文?》,《海光文?》,《文?伴?》,《文?新潮》,《?水?》과 같은 간행물들은 홍콩산문에 많은 발전의 터전을 제공하였다. 또한, 당시 학생계의 간행물 또한 아주 활발했는데, 예를 들어 주간《?年??》, 《中??生周刊》등이 있다. 이러한 간행물들로 홍콩문단은 새로운 문학 인재들을 대거 기르게 되었다. 1965년 徐速가 편집을 주관한 창간물《?代文?》는 새로운 청년 문인들의 산문과 소설 발표를 중시했고, 홍콩산문의 발전에 있어 아주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60년대 주요 산문창작으로는 曹聚仁의《北行二?》,《北行三?》,《?代中??告文??》(甲,乙?),《人事新?》,《?百里??》,《小?新?》,《万里行?》,《?迅年?》,《?代中?通?甲?》,《浮?了生命海》,《秦淮感??》(上,下),???의《文???》,《香江?事》,司???의《心影集》,《驪歌》,《海茫茫》,《明天的中?》,徐速의《一得集》,《心?集》,徐?의《?壁集》,夏果의《石?集》,《?步集》,《新雨集》,?芸의《?于我的雨季》,《??小筑》,李怡의《辰星及其他》,《美?初步》,思果의《河?集》,何?의《出?》,《???》,《又?集》,李素의《心?集》,《?外之?》,葛旅의 《持故集》, ??의《无名草》,李?英의《三言??》,幕容羽?의《?故集》등이 있다.

이 시기 산문창작의 성과는 기성 작가들의 자신만의 예술 품격을 이룩한 곳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夏易의 산문은“얼음을 물로 만들 수 있는 풍격”을 가졌다고 평가되었고, 李素의 산문은“고전의 미와 수심이 가득하다”는 영예를 얻었다. 徐?의 산문집《?壁集》는 중국문예의 전도와 추세, 전기문학적 기질, 《???》의 예술적 가치, 소설 속 대화문제 등을 포함하며, 그 함축한 내용이 광범위하고, 의론이 정교하고 민첩하며, 문체가 아름다워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5,60년대는 서정산문이 많은 비율을 차지 하지만, 기행문, 보고문학 역시 일정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曹聚仁의 《万里行?》,《北行小?》,《北行二?》,《北行三?》,李?英의 《通?集》,易君左의《西北?游,?凡의《桂林行旅?》,??의《上京?》등은 모두 영향력 있는 책이다.

60년대 중기 중국대륙에서는 전례 없는 “문화대혁명”이 일어났고, 홍콩 역시 “좌”로 기운 사조의 영향을 받게 된다. 지식층에도 각종의 흥분, 곤혹, 혼란, 분란 등의 정서가 나타나게 된다. “문혁(文革)”기간동안 홍콩의《文?世?》,《伴?》,《海光文?》,《南燕》등이 연이어 발행을 중단했고, 심지어 문예 주간지《文??》역시 취소되어 홍콩문학의 발전과 작가들의 창작에 영향을 끼쳤다.

70년대 초기에는 중국대륙의 “문혁(文革)”뿐만 아니라 국내외 동포들의 “中文合法化","保???",각국의 학생운동과 제3세계의 투쟁 등 모두 홍콩의 문예사상에 충격을 주었다. 그리하여 홍콩의 중, 청년 세대의 작가들의 민족의식이 각성 되었고 “인생을 위한 예술”이란 구호를 다시 제창하게 되면서 홍콩사회, 중국의 미래, 중국문화는 홍콩인의 관심 주제가 되었다.

1972년 11월, ?其敏이 편집을 주관한《海洋文?》이 창간되고, 현실적이고 건강한 문학을 제창하며 문학의 새로운 싹을 키우게 된다. 《海洋文?》외에도 《八方》,《??》,《新穗》,《?年文?》,《香港文?》,《四季》등의 순수문학 간행물이 출판되면서 산문창작의 신천지를 열었다.

70년대 중기, 홍콩의 공상업은 급속히 발전했는데, 이런 홍콩경제의 도약과 사회의 번영과 더불어 작가들이 국외로 나가던 상황이 점차 줄어들었다. 이 시기는 홍콩 본토의 제4대 작가들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그들의 산문작품은 이 시기의 창작성과를 풍부하게 했다. 게다가 해외파 작가와 대륙에서 남하 홍콩에 거주하는 대륙파 작가들 ?瑞,白洛,陶然,???,?明?,夏?,???,?娟,巴桐,林湄 등과 타이완에서 온 작가들 梁??,余光中,施叔?,?沁 등의 입성으로 홍콩문단에는 신선한 바람이 일며 문화적인 분위기가 조성, 생기가 넘쳤다.

홍콩경제의 도약은 산문창작에 또 다른 영향을 미쳤다. 홍콩 산문 작가인 ?少?는 《香港散文?象》에서 “홍콩경제의 도약과 홍콩인들의 문화적 기호의 변화에 따라 순수문학은 난감한 입장에 처해, 천지를 뒤덮고 있는 상업화의 물결에 신문화로의 변신을 위협 받고 있다. 뛰어난 새 세대의 홍콩 산문 작가들은 전 세대의 전철을 다시 밟기 원하지 않았고, 우선 상업화의 큰 조류에 영합하는 자세로 작품들을 끌어와 과감하게 상품시장의 수요에 맞춰 같은 류의 작품을 써낸다. 이런 방법이 문학 측면에 있어 공로인지 과오인지, 산문의 정신을 위반하는 것인지 아니면 산문을 발전시키고 추진 시키는 역할을 했는지는 실로 제 각각의 문제이다.”라고 지적한다.

본래 소설, 시와는 상대적으로 산문은 줄곧 비교적 보수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중국고대전통문화와 “五四”문학 전통의 예술세계 속으로 서양문학이 들어오게 되고, 과거 고수하던 규칙들이 중국과 서양 문화의 교류 속에 충돌하게 된다. 이전의 문학 관념은 갈수록 다원화되는 경제사회 속에서 변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일부 홍콩 산문 작가들은 중국문화전통의 기초를 고수하며 산문의 새로운 길을 탐색하고 시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양문화를 흡수하여 과감히 산문제재의 영역을 넓히고, 각종 체재와 형식을 통해 예술표현 기교를 탐색했다. 그리하여 홍콩 산문창작은 점차 60년대의 좁은 권역을 벗어나 넓은 예술세계로 내딛기 시작했고, 이후의 홍콩산문의 화려하고 다양한 자태와 번영를 위한 새로운 국면을 열어 주었다.

이 시기 홍콩의 신문잡지들 또한 혁신을 거듭해 신문을 몇 개의 특별란으로 나눠 다양한 고정칼럼 항목을 개설했다. 고정 작가가 전담해서 글을 쓰는 것이 점차 하나의 현상으로 정착하였고, 이러한 칼럼들은 산문 형식이 가장 많았고 형형색색의 각종 잡문, 수필, 소품 등도 있었다.

이 중《星?日?》의 “칠호(七好)” 칼럼은 언급할 가치가 있다. 조그만 사각 지면의 이름을 “칠호(七好)”라고 붙인 것은 7명의 여자가 1주일동안 차례로 집필하는 공동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1974년 4월에 시작한《七好文集》의 초창기 “칠호(七好)”는 柴娃娃,杜良是,??,小思,??,尹?文,亦舒 7명으로 구성되었다. 후에 ??과 ??가 빠지고 ?芸과 秦楚이 합류하게 되었고, 1983년 4월 天?출판사가 출판한 《七好新文集》에 새로 ?方,?令,不系舟가 빠지고 亦舒과 ?芸이 대신하게 된다.

1977년 9월 何?玲이 편집한《七好文集》이 출판된다. 이것은 홍콩《星?日?》에서 발표되었던 같은 이름의 칼럼을 모은 것이다. 그 속에는 柴娃娃, ??, 尹?文, ??, 小思 등 9명의 홍콩 유명 여류 작가들의 산문과 잡문이 담겨 있다. 글 속에는 각 개인의 훌륭한 인생관과 독특한 예술적 특징, 상상들이 담겨 있다. 그 속에는 柴娃娃의 자각, 杜良是의 성실함, ??의 매서움, 小思의 담백함, ??의 수려함, 尹?文의 순수, 亦舒의 곧음, 뒤에 합류한 ?芸의 음률, 秦楚의 통쾌함이 있다. 何?玲은《望彩虹道道〈七好文集·序〉》에서 “여기에는 마치 찻집에서 매 주 맛있는 간식을 제공하는 것과 같이 매일 다른 시고 달고 쓰고 매운 맛을 제공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아 떨어진다.”라고 쓰고 있다. 그들의 남다른 개성, 문체의 풍격은 짧지만 힘이 있는 어휘를 통해 자유로이 표출되어 삶의 구석구석을 재현해 낸다. 이 산문집은 출판된 후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고 순식간에 매진, 재 발행해야 했다.

70년대 홍콩의 주요 산문창작으로는, 曹聚仁의《今日北京》(?),《?日京?》(?),《?代中??曲影?集成》(?著),《我?我的世界》,《??十二?》,司???의《?愁集》,《濡沫集》,《??新痕》,《????》,《?歌集》,《司???散文?》,???의《?晴??》,《北????》,《?保存的????相》,?其敏의《?思集》,《拾芥集》,《?墨集》,《文史札?》,徐速의《?杯集》,《百感集》,夏易의《花?·拇指·?情》,舒巷成의《?下拾零》,石人의《偶然集》,《偶然二集》,《石人集》,《安?集》,《??集》,《???趣?》,《???再?》,《男女方程式》,果思의《看花集》,《林居??》,?芸의《香???》,《?我同舞》,《小心眼》,《?幻小品》,文?의《繁花集》,小思의《路上?》,??의《???》,《????》,?君默의《粗??》,?瑞의《南洋拾?》,彦火의《中?名??游》,《??集》,?南翔의《游子情??》,《?代中?大?作家?介》,李怡의《?火集》,《?短集》,《四人?事件探索》,?琦의《海畔集》,《海歌集》,也斯의《灰?早晨的?》,??의《??集》,?蒙田의《湖畔集》,?文宗의《流浪》등이 있다.

현대 문학의 기술과 관리방법은 고도 상업화의 사회에서, 강대한 시장작용을 받아 가치지향적으로 형성되었다. 홍콩이라는 고도 상업화 사회에서 모든 것은 상품이기에 문학에 종사하는 것은 쉽지 않고, 더군다나 순수문학에 종사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원래 홍콩에서는 일찍이 영향력 있는 문학잡지와 시 간행물이 있었지만 夏果가 편집을 주관한 《文?世?》,?其敏가 편집한《海洋文?》, ?南翔가 편집한《?代文?》, ?魂等가 편집한《??》,교회가 주최한《文?》, ?德?가 편집한 청년문예간행물《香港文?》, 周天平가 편집한《春泥》, 杜?가 편집한《?卷》, 香港三?서점이 주최한《?者良友》, ??才가 편집한 《??人》등이 모두 연이어 발행을 중단하였고, 1975년 창간된《大拇指》역시 계속 발행할 수 없었다.

이 시기는 홍콩문학에《?卷》,《八方》의 작품이 나와 회복의 흔적이 있었으나 좋은 때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심각한 통화팽창으로 출판 원가가 높아져 판로가 막히고 독자가 감소함에 따라 《?卷》는 지속하기 어려웠고, 《八方》도 계간에서 부정기판으로 변했다. 이로 인해 홍콩문예는 또다시 빠르게 저속해졌고, 진지한 문학은 “독약 매표소”라고 여겨졌다. 시장경제의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 몇몇의 산문 작가들은 저속한 길로 접어들기 시작하였다.

80년대 이래로, 홍콩문예는 잠시의 냉각기를 거친 이후 새로운 활기를 진작시켰다. 1980년 6월에《素?文?》이 창간되고, 1982년 3월 계간지《文?》가 창간, 같은 해 9월《?代文?》이 복간되었다. 《博?月刊》은 이미 80년대 후반 무렵에 통속문예로 시장을 개척한적이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영향과 충격으로 매출이 줄어들면서 이런 정기간행물의 생존기간은 2~4년 정도였다.

홍콩문학의 창작을 북돋고, 번영과 발전을 위하여, 70년대 후기부터는 관련기관에서 대응 조치들을 실행하고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문학사회단체, 신문, 대학 모두 각종 문학 강좌와 연구토론회를 열었다. 1975년 “港大文社”는 홍콩 40년 문학사 학습반을 개설, 학자들을 초청해 강의를 부탁하기도 했는데 어떤 사람은 문학사의 개황을 소개하였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이는 이후, 총괄 편집하여 두꺼운 자료가 되었다. 홍콩과 영국 정부 역시 과거의 예술에만 관심을 보이고 중문문학창작에는 무관심했던 태도를 바꾸어, 1971년부터 시정부도서관의 이름을 걸고 매년 한차례 중국문학주간을 시행하였고, 2년마다 시 정부에서는 中文文??을 개최하였다. 이 외에 홍콩의 두 개 대학의 학생회에서도 ?年文??을 거행, 문학창작을 제창하고 격려하였다.

70년대 이후 홍콩의 작가들은 자연적으로 증감, 조정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徐?,司???,唐人,徐速,?思?,三?와 杰克 등 노 작가들이 연이어 세상을 떠나면서 문학시대의 종결을 상징했지만 ?浩泉,?端,彦火,陶然,??樑,白洛,?牧,?河浪,梅子 등의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과 평론가의 신속한 성장은 홍콩문단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왔다.

산문의 세계에서 작가는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적고 있지만, 이미 과중한 일을 실제로는 가볍게 공론화했다. 작품의 소재는 자신의 주위에 발생하는 사람과 일에서 많이 취하였고, 현실생활의 각종 실제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며, 적지 않은 작품들이 본토의 풍경, 정취, 풍물과 풍속을 묘사하였다. 예술표현수법에 있어서는 비록 중국 우위의 문화 전통을 주로 계승하였지만 전대 작가들의 창작 성공 경험도 흡수하였다. 그러나 예술관념에 있어서의 명확한 현대사조에의 충격은, 전통의 재미있는 만담에서 정서의 변천과 사고의 도약을 가미하게 하였다.

80년대 진입 후 홍콩은 새로운 역사의 전환시기를 맞았고, 산문창작에 있어 양호한 외부조건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문학의 다원화, 뛰어난 산문 작품의 연속적 출현, 작가들의 뛰어난 실력, 여류산문작가의 활약과 그녀들의 깊고 세밀한 감정과 솔직한 자아표현은 독자들을 곁눈질하게 했다. 이 모든 것이 역사 전환기의 홍콩문학 실적이 명백히 드러난 것이다.

80년대 홍콩산문창작의 특색은 바로 신문 칼럼에서 대량으로 출현으로 홍콩산문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樑은 《香港文??中??代文?的?系》에서 “홍콩문학의 중요한 특색은 ???文이 없는 곳이 없고, 사실만을 쓰고, 사람이 아닌 것과는 말하지 않는다.” “이런 잡문들의 내용은 홍콩, 대륙, 대만, 세계각지의 시사적 평론에 대한 것 까지 포함하고 있다. 작자는 빠르고 날카롭게 글을 쓴다. 이런 ???文은 매 편마다 짧게는 200자에서 길게는 1000자에 이른다. 다루지 못할 것 없이, 홍콩의 자유 개방 사회정신을 충분히 표현하였다. 홍콩 신문은 매일 잡문을 등재하였고, 글자수는 《???》의 절반보다 많아야 했다. 잡문의 작자는 장유하게 썼기 때문에 독자들은 읽자마자 곧 잊어버렸고, 이는 현대 사회의 '대량소비'의 전형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文 수준의 높낮이가 달라서, 참을성 있고 안목 있는 비평가가 항상 모래 속에서 금을 일고 있었다.” 사실상 독자는 일반적인 읽자마자 잊어버리는 단문 이외에,《星?日?》성신판, 《文??》문예판,《新??》완풍판,《大公?》문학판 및《香港文?》,《香港文??》,《香港作家》등의 신문에서도 품격 있고 예술성 있는 아름다운 산문을 자주 읽을 수 있었다.

잡문의 정치색채는 갈수록 진해졌는데 이것이 이 시기의 또 하나의 특색이다. 1982년 중국과 영국은 홍콩의 97년 반환문제로 접촉하기 시작한다. 이로부터 홍콩의 전도유망한 시가, 소설, 희극이 적지 않게 출현했다. 더욱이 대량의 ???文은 홍콩의 “97년 문학”을 형성했다. 이런 류의 잡문은 각 계층의 홍콩 사람들의 97년 반환에 관한 각종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그 중 서양의 것을 맹목적으로 숭상하는 것을 질책하고, 사회 불공평을 지적하고, 사회 암흑적으로 생활에 간섭하는 것을 폭로하는 것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정치적인 잡문의 유행은 홍콩시민의 사회정치의식이 전보다 강해졌다는 것을 반영한다. 이런 류의 정치적 잡문 중에는 梁厚甫의 수필처럼 독점적으로 시국을 투시할 뿐만 아니라 깊게 분석해 독자의 환영을 많이 받은 것도 있다. 1987년 5월 何?玲이 편집을 주관한 《香港作家?文?》은 58명 작가의 244편의 잡문을 모았고, 대다수가 비교적 강한 사회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적지 않은 작품들이 깊고 심오한 뜻을 지니며, 날카로운 글과 기지가 넘치며 독특한 문필로 독자들의 큰 환영을 받았다.

학자산문의 출현 역시 또 하나의 큰 특색이다. 70년대부터 작가 학자들이 홍콩 중문대학에 모여 밝고 명쾌하게 홍콩에 관해 토로하고 빈번히 글을 발표하여, 중문대학 교정을 문인의 풍치로 번성 시켰다. 그 중 80년대 余光中의 《春?半?》,《???愁》,思果의 《香港之秋》,《??家肖像》,《?思集》,《霜?乍??》,《啄木?》,《私念》,《雪夜有佳趣》,《??里??》,《剪?集》,小思의 《日影行》,《承?小?》,《不?》,梁??의 《?袖??情》,《明月?君同》,《八仙之?》,《我?山狂》, ??樑의 《突然,一??花》,《大?小品》,《我的副?品》,潘??의 《??篇》,《?喧???》,《三?集》,《?哥???》등이 출판되었다. 1993년 ??樑박사는 홍콩중문대학 개교 30주년 행사를 위해 그들의 아름다운 글을 정선 《吐露香港春秋》을 출판하였다.

젊은 세대의 성장과 공동창작은 간과할 수 없는 또 다른 특색이다. 1982년 “香港?年作者??”가 성립되었는데, 처음 10여명의 열정적인 젊은 청년 친구들이 조직한 것으로, 정체된 청년 작가들에게 창작을 격려하고 홍콩문학의 발전 방향에 대해 탐색하였다. 10년간 협회는 다양한 문학활동을 거행하는데 연이어 100명이 넘는 청년작가가 가입, 정기간행물 및 《香港?年作者??文集》, 《看那?原》등의 총서를 출판하였다. “香港?年作者??”의 회장은 몇 년간 일임하는데, 1984~1985년의 회장은 ?德?이었다.

80년대 이래로 홍콩산문창작에 있어서 앞 세대의 작가들은 여전히 좋은 질의 작품을 계속 출판하였다. ??의《向水屋??》,???의《能不?江南》,夏易의《希望之歌》,《港???》등과 曹聚仁가 죽고 나서 그의 아내가 출판한《我?我的世界》,《??室??》, 三?가 죽은 후 그의 아내와 친구들이 출판한《?女?的信》이 있다.

그러나 중년청년작가가 활약은 더욱 뛰어나 그들의 산문집 출판량은 홍콩문학사에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그 중 주요 작품으로 曾敏之의《望云海》,《文史品味?》,《?南??》,《文苑初秋》,《?海?》,?君默의《命?小品》,《自然小品》,《琉璃草》,《半山居》,《君默小品》,《截取永恒》,《科海拾?》,《荷???》,《新疆小品》,《印北之旅》,《?下?想》,《斗室天地?》,《??人?》,《大地??穹》,《新???》,《掌上小品》,《山居》,《新?人》,《??》?端의《湖光新影》,《象?·?城·椰?》,《看那?火??》,《旅情》,《晨??》,《??小院》,《日本十日游》,《印尼之旅》,《印尼万里游》,《共剪西??》,《??手?》,《都市男女万花筒》?羊壁의《一秒·一年·一生》,《水滴篇》,《?人到?》,《煮字??》,《文?散?》,《茶座文?》,《水?新?》,《梁山?梁山英雄》,《聊?志?今?》,?耀南의《????》,《???心?》,《文??心?》,《不?文科》,《以古??》,《刮目相看?》, ?雨凝의《雨凝集》,《紫水晶》,《春寒集》,《少?手?》,《失眠夜》,《???》,《小城的同?》(모음집), 阿?의 《点心集》,《?情集》,《一刀集》,《?果集》,《得心集》,《?春道上》,《三人行》(合集), 彦火의 《大地??》,《??和野草的歌》,《醉人的旅程》,《?荷?心影》,《海外作家掠影》,《焦点文人》,也斯의 《山水人物》,《??城市》,《山光水影》,《城市??》, 陶然의 《香港?外》(小?散文集),《夜曲》,《回音壁》,《此情可待》,《月?今宵》,《?影》, 林燕?의 《小屋集》,《小屋新集》,《?洋洋的下午》,《粉?色的枕?》(?集),《紫上行》,《南腔北?》, ?芸의 《低眉集》,《一百二十?女人》,《一百二是?男人》, ?南翔의 《游子情??》,《生命的回?》,《夜?》,《香江?月》,《香港?物趣?》, 《中?大?作家?介》, 《港台作家小?》(合集) , ??의《黑白方?》, 《八面?》, 《四百?》,《港?吾?》,《瓦全集》, 李默의 《衣白?侵?》,《??》,《?人行》,《女人心》,《人面》등. 창작을 가장 많이 한 작가는 ?君默으로 10년 동안 19종을 출판했으며, 가장 적게 창작한 작가 역시 3~4종을 출판하였다.

그 외에도 비교적 큰 영향을 준 산문에는 다음과 같은 작품들이 있다. ?孚의 《香港,香港......》, 石人의 《偶然集》,《偶然二集》, 董?의 《?城??》,《在?克思胡??中和胡??外》,《?外一?心情》, ??의 《水牛集》,《犁?集》, 何?玲의 《?心絮?》, 林?의 《林???》,《文??想?》, ?文?의 《倒影》,《小?子?大?子》, ?霑의 《?霑??》,《不文集》, 王?政의 《?》, 柴娃娃의 《娃娃集》,《第一眼》, ?湘湘의 《在水之湄》,《香港影?怪杰》,《港台作家小?》(合集), 林湄의《文?点??》, ?波浪의《脚印》, 《自?集》등.

소설과 시, 희극, 아동문학, 평론 등의 영역에서 정성과 노력을 다하는 작가들 역시 산문창작의 대열에 합류, 적지 않은 좋은 작품을 창작했다. ?浩泉의《?果集》,社?의《?海夜航》,王方의《香港生活的酸?苦辣》,巴桐의《港?散?》,王一桃의《五十?文?家之死》,李英豪의《山外有山》,何?의《?高采烈的人生》,何紫의《可以?心》,白洛의《?起水晶?》,?玲의《赤足在草地上》(산문평론집),《美?的??》(소설산문선집),亦舒의《豆芽集》,西西의《交成河》,???의《走?......》,胡燕?의《心??敞》,?方의《我?香港》,李洛霞의《?有月亮》,?文宗의《百?不如一?》,?德?의《登山集》,秀?의《?月?斜》,?小?의《??小?》,?之藩의《一星如月》,古?의《有情人?》,?蒙田의《?苑郊游?》,???의《香港眼》,西?凰의《?之游》,??의《海的微波》등. 이외에도 《七好新集》,《三人行》등의 모음집이 있다.

또한, 80년대 들어 游?文?이 대량으로 나타난 것은 산문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다. 그 중 중국여행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중국은 땅이 넓고 광활하여 생산물이 많고, 江南에서 塞北의 명승고지는 많아서 다 볼 수가 없고 이런 다른 명산대천, 풍토와 인심은 홍콩 작가들의 눈을 끌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여가 시간에 고층 빌딩 숲의 압박에서 벗어나 조국 대지의 아름다운 산천을 유람하고, 명승지를 찾아갔다. 그들이 홍콩으로 돌아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묘사해, 홍콩여행문학은 활기 있게 발전하게 되었다. 香港明天出版社는 《中?旅情》을 출판, 35명의 작가의 여행기작품을 모았는데 홍콩작가의 여행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중 ??의《泰安游??》舒非의《春游武夷山》,何紫의《上海的情?》,?河浪의《?江?脚下流?》,巴桐의《古?河?想曲》,陶然의《?了西安,?向?川》,?浩泉의《西安度元宵》,夏?의《?忘?林》,也斯의《在三?祠取景》등이 있다. 이런 여행기의 예술수법은 아주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사물을 형언하여 내용이 매우 많고, 어떤 사람은 훌륭한 비유를 준비하여 생동적이고 해학적인 정취를 추구하고, 어떤 사람은 자연에 따라 마음 가는 데로 멈추며, 어떤 사람은 반복해서 유람한 것을 종합하고 묘사해 소리와 풍경이 아름답고 필법이 자유롭고, 어떤 사람은 담백한 필체로 조용히 관찰한 감상을 말했다.

대륙의 점차적인 개방에 따라 홍콩에서 역시 “실크로드 여행붐”이 일어났다. 李洛霞, 金?方,水禾田,??,?君默,李犁 등 많은 작가들이 신비로운 옛 실크로드를 마음껏 여행하고 홍콩으로 돌아온 후, 대량의 여행기와 감상문을 집필했다. 그 중 ??의 《慢慢新疆路》,《?路万里行》등 일련의 여행집과 朱?德의 《河山影踪》,?莎의 《母女浪游中?》,曾展强의 《神州刑》, ??彬의《三??蜀道?峨眉》,?兆의《?者眼?中?》,何紫의《山河款?》,水禾田의《?河行》,《??之路》,李洛霞의《?路?客》,李犁의《???路》,?君默의《新疆小品》,西?凰의《西?凰游?》등이 있다.

이 외에 국외 여행을 다룬 좋은 작품들도 많았는데, 小思의《日影行》,彦火의《?荷?心影》,?康民의《美?七?游》,《朝?半?南北游》,《兄弟游?》,金?方의《西行?趣》,?志?의《巴黎寄?》,文??의《尼泊??景》,?文?의《???》,《非洲之旅》,尹?文의《?洲散?》,《尹?文旅游?趣?》등이 있다. 비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1982년부터 1985년의 4년 간 홍콩에서 출판된 여러 종류의 여행기가 30여 편에 이른다.

1984년 9월 26일, 중국 정부는 헌법에 근거한 규정에 따라 “일국양제”의 기본 국가 체제를 가지고 영국과의 “중영 홍콩문제에 관한 연합 성명”에 가조인 하였다. 이로써 중국 정부가 1997년 7월 1일 홍콩에 대한 주권을 회복함을 확인함과 동시에 영국 정부는 홍콩을 중국에 돌려주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홍콩은 과도기에 접어들었다.

과도기에도 홍콩 경제는 지속적으로 고속 성장하였고, 홍콩 사회 역시 번영과 안정이 지속되었지만 “九七”반환일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안정할 수가 없었다. 각계 각층의 여러 인물들이 서로 다른 반응을 나타냈다. 그 중 나라를 사랑하고 홍콩을 사랑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조국으로 돌아오기를 희망했다. 물론 일부분의 사람들이 동요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문학에 있어서도 80년대 이후 개혁 개방 정책으로 대륙에서는 잇따라“武?붐”“席慕容붐”,“璟?붐”,“三毛붐”,“席慕?붐”“亦舒붐”,“岑?붐”이 일어났고, 계속되는 홍콩과 대만 문학의 “열기”는 홍콩 문예계로 하여금 선동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대만의 자유, 민주의 조류는 나날이 높아져 홍콩 문단에 영향을 주었다.

80년대 중기 이후, 대륙의 정책 개방에 따라 대륙의 교수, 전문가, 학자, 유명 작가, 유명 연기자, 즉 ?牧,柯?,?乾,奏牧,徐?,?心武,?友梅,?黛云,?梵子,?冕,?家炎, 李元洛,?君武,?振? 등이 잇따라 홍콩으로 돌아보고 교류하고 돌아갔다. 게다가 대만의 余光中,?映?,?弦,?森,高?,???과, 마카오의 陶里,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白先勇,?若曦,?系?,?牧,李?梵 등과 말레이시아, 싱가폴, 태국, 한국, 스위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국가의 작가, 평론가가 끊임없이 홍콩을 방문, 홍콩 문학의 발전을 촉진 하는데 일조했다.

이러한 호기의 형성은 홍콩 문학 발전에 영향을 주었고 곧, 각종 민간 문예 사회 단체가 세워졌다. 즉, 문학계에 있어 사람들의 주목을 끈 “홍콩 작가 연합회”, “홍콩 작가 협회”, “홍콩 문학 예술 협회”, “홍콩 문학 추진 협회”, “홍콩 청년 작가 협회”, “홍콩 아동 문예 협회” 등의 성립이다. 이러한 문학 사회 단체는 각종 문학 활동을 통해 많은 홍콩 작가들을 단결시켰고 홍콩 문학의 발전을 위해 공헌, 지금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 시기 홍콩의 간행물 역시 이전 시기에 비해 문학 창작을 중시하였다. 신문 쪽을 살펴보면, 1988년 봄 ?香문학사(현“홍콩문학추진협회”)가 펴낸 홍콩 최초의 순수 문학 신문《香港文??》과, 이와 홍콩작가연합회의 회지 《香港作家》가 함께 펴낸 《香港作家?》(현 월간 《香港作家)) 모두 엄선한 문학 작품과 그 평론을 개재했다. 이 외에도 많은 신문사들이 문예성을 띄는 주간지를 증보했는데,《文??》의《文?》,《新??》의《星海》(주 2회 발행),《星???》의《大?堂》,《星?日?》의《星座》,《大公?》의《文?》,《??日?》의《文廊》,《?合?》의《星期文?》 등이 있으며, 모두 작가에게 보다 넓은 활동 무대를 제공하였다.

문학 잡지 쪽에서는 1985년 1월 ?以?이 월간《香港文?》이 창간했다. 이 순수문학 월간지의 창간 의도는 “홍콩 문학 수준을 드높이는 동시에 각지의 중국 문학 작가가 더 많은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었고, 홍콩 문학의 발전과 중화 문학을 촉진하고 국내외의 중화 문학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이 외에도 이 시기에는《文?家》,《文?世界》,《素?文?》등 문학 잡지가 있었다. 이러한 순수 문학 잡지는 사실을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방과 포용의 시대 정신도 보여준다.

출판계는 항상 서방 경제의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협소한 시장과 제작 단가의 계속적인 상승으로 적잖은 출판사와 서점이 연이어 문을 닫았다. 그러나 1986년 홍콩 경제가 활기를 띠며 1987, 1988년 2년의 비약적으로 발전하자 홍콩 출판업계 역시 회복되었고, 어려운 경영난 속에서도 문예 서적의 출판은 계속 되었다. 香港三??店에서 출판한 《香港文?》,연이어 출판된 ??의 《?巷》에서부터 ?健?,舒巷城,梁秉?,海辛,?以?,西西,?? 등 작가의 전집, 홍콩문학 연구출판사에서 출판한 60여 종의 《中??代文???》에 이른다.

90년대, 홍콩 사회가 과도기를 넘어섰을 무렵 “九七”반환일이 다가왔다. 홍콩 정치 전체의 “대변환”을 앞두고, 홍콩 사람들의 앞으로도 50년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며 각종 정서적 반응이 잇달아 나타났다. 많은 작가들은 이것을 제재로, 중요한 역사 시대 도래를 맞은 홍콩 사회의 면모를 그려냈다. 그들은 홍콩사회 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九七”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시각과 태도, 반응을 통해 이 한 단락의 역사에 관한 진실된 한 페이지를 남겼고, 대량의 “九七”문제와 중국 대륙과의 관계에 대한 산문이 출간되었다. 그들은 각양각색의 사상과 정서, 여러 가지가 교차되는 장면을 기술하고 그려내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진실되게 써나갔다.

1990년 4월 전국인민대회에서 기본법이 심의 통과되면서 홍콩의 대세가 정해지자, 홍콩 사람들의 신념은 더욱 강해지고 끊임없이 인재들이 돌아옴에 따라 홍콩의 경제는 새로이 창조의 붐이 불었다.

90년대에 들어서서 홍콩 문예계의 문학 문제에 대한 연구와 탐구가 활발해 졌다. 예를 들어 홍콩 작가 연합회와 홍콩 시 정국 합작으로 정기 “문학월회”를 개최했으며 문학 창작, 문학 연구, 문학 평론 등 전문적인 리포트를 발표했다. 이 강단에서 산문에 대한 전문적인 리포트에는 ??然,??彬,?令?,?以?,???의 《散文的?作?欣?》,?琅의《散文中的小品???》등이 있으며 청중의 반응 역시 매우 좋았다. 1994년 12월 말, 홍콩 작가 연합회와 상해 ?旦대학이 공동으로 제 1회 “香港作家?作???”를 개최했고, 산문작가와 그 작품을 연구했던 대표자에는 曾敏之,??樑,彦火,梁秉?,梁??,?文?,???,陶然,小思 등이 있다. 이 연구회는 홍콩문학의 발전과 홍콩문학의 창작을 촉진시키면서 미래를 위한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이 외에도 홍콩 작가 연합회는 《香港文?》잡지사 연합과 함께 《我?香港》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모집하였으며, 사람들이 산문이라는 문학 형식으로 홍콩에 대한 자신의 감상과 자신의 진정한 감정을 표현하게 하였고 여기에서 개인 혹은 시대의 기록을 남기고자 하였다.

“九七”반환에 바치는 이러한 글들은 많은 홍콩 작가들이 스스로 역사 사명을 담당함을 말한다. “九七”반환일을 맞이하면서 홍콩 작가 연합회와 福建성 문학연구소가 손을 잡고 《香港文?史》를 편집, 출간했다. 뿐만 아니라 북경에서도 “香港文?展?”가 개최되었으며, 상해 텔레비전 방송국은 “海外?文文?精品?播”을 편성하여 “香港?景?”을 전문적으로 방송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이 홍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홍콩 작가 연합회는 “近百年??港澳散文?”을 출판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근 백년 동안의 중국 인민의 반제국주의 투쟁, 특히 남방 광동지역의 유신 운동(?新??)과 ?中山의 신해혁명(辛亥革命) 등 역대 혁명 운동을 묘사하려 하였고, 애국주의 정신을 널리 일려 영남 지역 백 여 년의 변화를 그려냈다. 홍콩작가연합은 曾敏之,?以?, 小思를 고문으로 ?羊壁를 편집장으로 하는 편집 위원회를 조직했는데, 이후 광동성 작가협회 산문 학회의 ?羽?등과 함께 홍콩, 마카오, 광동성 세 곳의 백년간의 산문 작품을 모아서 2권의 산문 대전집을 편집했는데 약 60만자에 이른다.

90년대 홍콩 시정국은 과거 중문 창작에 관심을 두지 않던 태도를 바꾸어 1991년 제 1회 香港中文文??年?을 개최했는데, 그 중 산문 부문에 출품한 참가작은 1989년 1990년 홍콩에서 출품된 산문집으로 모두 51권에 이르렀다. 여러 번의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玲의 《解?的人》이 수상했다. 그 외 순위권에 들었던 胡燕?의《彩店》,???의 《?火?珊?》, 梁??의《我?山狂》3권 모두 뛰어났다.

?玲의《解?的人》에 관해 평론 위원이었던 壁?는 《良友》라는 잡지에서 감상을 개재했는데, “?玲의 이 산문은 내용상에 있어 홍콩의 현실 생활에 입각하고 있다. 예술적 수법에 있어서는 비록 朱自?,徐志摩 등의 전통 미학에 들지 못하지만, 또한 기존 홍콩 대부분의 칼럼을 장식하는 문장과도 다르고, 그다지 사상 내용을 문제 삼지 않으면서 기교에 치중하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 산문은 소설과 시가의 장점을 두루 갖추고서 비교적 완전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등 함축적인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는 즉, ?玲이 대담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독특한 예술 특징을 창조해내었기 때문이기에《解?的人》의 수상은 명실상부한 것이다. 그러므로 ?玲의 수상은 90년대 홍콩 산문 발전의 경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 이후, 산문 창작은 활발히 지속되었다. 이 시기에 출판된 산문집으로는 曾敏之의 《??集》,《春?集》,《?故知新》,?孚의《??卷》,《南斗文星高――香港作家剪影》,?秀牧의 《看?的季?》(소설산문집),《?秀牧散文/小??集》,??《??短?》,《香港文化脚印》,高旅의 《?年的心路》,彦火의《那一程山水》,《焦点文化》,《?明》,《不?的?江》,《?古的印?》,《人生情》,《生命,不?的?流》,潘??의 《加?心?集》,《?哥??碎》,《人生?上的?白》,《非花??文》,《小?集》,?耀南의《碧海?城》,《有物无物》,《情是何物》,小思의《?云?》,《今夜星光??》,《香港文?散步》,《人??月》,?端의《永恒的美眸》,《都市的眼睛》,《陪?一程》,《?盛人生》,《一串??的日子》,《文林漫步》,《?作手?》,《?就是作家》,《?喜?的作文》,王一桃의《和?共勉的?》,《香港作家=影》,《香港作家印象》,《文化名人悲??》,《香港,文?之?》,《香港,??之?》,《王一桃散文?》,董?의《?一代的事》,《??法的?昏》,《?中?的???》,《董?散文》,阿?의《小雨集》,《快?人》,《点点情》,《阿???作》,思果의《沙田?想》,《思果散文?》,梁??의《???》,《??少年》,?小?의《?情市?》,《履痕》,《秒哉人生》,《香港行踪》,《?邦??》,《一枝珍重??花》,?文?의《牛棚??》,犁?의《犁??文?》,?玲의《解?的人》,王方의《酸?苦辣》,?蒙田의《回?篇》,王?政의《?云集》,《????》,?娟의《香江月》,《?娟文集》,也斯의《昆明的?嘴?》,巴桐의《情?醉?》,夏智定의《?花?在?放》,?德?의《??的人》,秀?의《星夜》,??基의《四季?》,勾勺人의《万水千山》,??梨의《喝彩》,《三余??》,朱少璋의《??》,?雨凝의《暮春三月》,??의《???情?》,王?隆의《香港?座?》,石金의《?月?》,?芳菲의《牛夜芳菲》,林翠芬의《香港文化名人采??》,《解不?的中?情意?――著名作家?者??集》,春?의《春花秋月照香江》,君比의《反斗?娘》,李若梅의《梅散入?香》,?茅의《四季相依》,?文?,梁??,舒非의《二水集》,《文?五十年》등 이 있다. 이 외에도 이미 세상을 뜬 曹聚仁 선생을 그리기 위해 그의 친구들이 출간한 《曹聚仁?文集》,《文?五十年》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 외에 앞으로 舒巷城의《夜???》,??의《????》,?君默의《坐看千帆?》,?羊壁의《?羊壁?底香港》,陶然의《?昏??》,?家?의《?家???小品》등이 출간될 것이다.

공동 집필에 있어서는 ??樑이 주축이 되어 집필한 《吐露港春秋――中大?者散文?》,?帝森,春?가 주필하여《香港文??》와 장강 문예 출판사(?江文?出版社)가 함께 출판한 “香港?代文?精品”중의 《散文卷》, 夏?가 주필한 ?香 산문선 《萍影春情》,?娟,夏?,曾? 등이 공동 집필한 《香港多??》,?文?가 주필한 《香港名家小品精?》이 있다. 이 외에 여러 종류의 다이제스트 판이 있는 데, 그 중 홍콩 작가 출판사(香港作家出版社)가 출판한 《曾敏之文?》,《??樑散文?》등의 대형 시리즈 물이 있다. 중국 문인 연합 출판 공사(中?文?出版公司)가 출판한 것으로는 자형(박태기나무) 화압 계열이 10종이 있으며, 그 중 산문집으로는 曾敏之의 《遇?》,彦火의 《苔?》,???의 《母?》,??樑의 《至?》,潘??의 《?向》등이 있다.

이 중 《吐露港春秋――中大?者散文?》에 실린 총 모두 49편의 산문은 7,80년대 작품으로 작가는 모두 홍콩 중문대학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거나, 연구를 하고 있는 학자로 思果,余光中,金耀基,?之藩,???,梁??,??彬,??樑,小思 등 20명이다. 비록 각각의 전문 학술 분야가 다르고, 집필한 글과 그 속에 묘사된 봄가을의 풍경, 스승과 벗의 문화, 제재와 감성, 사상이 다르지만, 이들 학자 모두 중서 고금을 두루 섭렵하였기에 그들의 작품은 지식과 지혜의 돋보이고, 필치가 고상하면서도 힘이 있으며, 깊은 생각과 아름다운 표현이 넘쳐흐른다.

현대 홍콩 산문은 60여년의 역사를 거쳐 현재 이미 새로운 물결이 형성되고 있다. “九七” 반환 전후의 홍콩 문단은 시대 정신을 투영하는 산문이 점차 많아졌다. 많은 작가의 작품들이 홍콩의 운명과 중국의 운명을 밀접하게 다루었고 정치 의식을 강조했다. 또한 점점 많은 수의 작가들이 산문 창작에 있어 자신의 독특한 개성을 확립하고 자신만의 특유함을 만들어갔다.

앞으로는 현대 홍콩 산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서사산문, 서정산문, 수필, 잡문, 소품, 기사, 특필, 전기문학, 여행기 등 큰 부분으로 나누어 논술하려 한다.

그러나, 홍콩산문 작가의 작품을 일일이 분류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산문 영역에 있어서 홍콩 작가 모두는, 아마도 여러 개의 붓을 다룰 수 있어 각종 유형의 산문을 능수능란하게 쓸 수 있는 만능인 일 것이다. 그 작품들은 가히 서로 다른 모습으로 각각의 뛰어남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칼로 자른 듯 분류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뛰어난 작가인 曾敏之의 《文苑春秋》중 5집의 문장을 보면 각각 다른데, 그 중 “文苑春秋”은 수필이고, “????”은 소품, “改革絮列”는 잡문, “香台?海”는 감상문, “旅游行踪”은 여행기이다. 단지 이 한 가지의 예만으로도 홍콩 산문 작가의 겸용성과 다면성을 설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홍콩 작가의 산문 작품을 분류한다는 것은 절대 가볍게 해치울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여기에 대해 홍콩 중문대학의 ??樑교수의 공감어린 설명이 있다. 그는《??樑散文??自序》에서 “사실 상, 내가 쓰는 산문은 동일한 한 편의 내용 안에 서사, 묘사, 서정, 설리 등 의 성분이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事)와 물(物)이 합쳐서 사물(事物)이 되지 않는가? 정(情)과 리(理)가 합쳐서 정리(情理)가 되지 않는가? 이 외에도 사정(事情), 물리(物理), 사리(事理) 모두 다 합성어이다. 매 편의 산문을 억지로 서사문, 설명문, 서정문, 혹은 논설문으로 나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필요 없는 일인 것이다. 예부터 낭송되는 ??坡의《前赤壁?》는 서사, 설명, 서정, 논설 모두를 겸하고 있는데 어떻게 한 종류로 분류할 수 있겠는가. '뒤섞임'은 많은 산문의 기능상의 현상이다. ”

몹시 '뒤섞인'홍콩 산문을 쉽게 알기 위해서, 한 걸음 나아가 현대 홍콩 산문 작가의 작품을 이해해 보자. 이 책은 여전히 “불가능한” 모험이지만 산문을 큰 부분으로 나누어 매 작가를 그 중의 한 분류에 대응시켜 논리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물론 많은 산문 작가들이 만능인이기 때문에 단지 “한 부분”으로 국한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책의 분류가 아주 비과학적이겠지만 이것이 명확하고, 실행할 만한 일이란 것을 믿어주기 바란다.

 

 

김민정


부산대 중문과
199901202 김민정 옮김
周文彬 , 〈當代香港散文槪況〉, 《當代香港寫實小說散文槪論 散文卷》, (廣州: 廣東敎育出版社, 1998), p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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