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3.06.20
수정일
2019.05.28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1068

김혜준, 〈바진, 새로운 세상을 찾아서〉, 금요고전강좌 “고전 속의 사랑과 욕망”, 부산대학교 인문대학 / 인문학연구소, 2007년 10월 12일.

 

바진, 새로운 세상을 찾아서

- 금요 고전강좌 “고전 속의 사랑과 욕망” -

 

 

 

김  혜  준  KHJ.jpg

 

 

BaJin_Book_01

BaJin_Book_02

BaJin_Book_03

BaJin_Book_04

BaJin_Book_05

BaJin_Book_06

BaJin_Book_07

BaJin_Book_08

BaJin_Book_09

BaJin_Book_10

BaJin_Book_11

BaJin_Book_12

BaJin_Book_13

BaJin_Book_14

BaJin_Book_15

 

 

 

 

부산대학교 인문대학 / 인문학연구소

2007년 10월 12일 (금) 15:00

부산대학교 인문관 5층 시습관

 

 


파워포인트: 바진, 새로운 세상을 찾아서

 

바진, 새로운 세상을 찾아서

- 금요 고전강좌 “고전 속의 사랑과 욕망” -

 

 

김  혜  준  KHJ.jpg

 

 

 

 

 

1. 바진이 〈가〉를 쓰기까지

 

BaJin_01  2005년 10월 17일 바진[巴金]이 이 세상을 떠났다. 또 다른 세상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일 있다면 아마도 그는 바로 그 또 다른 세상을 찾아갔을 것이다. 바진은 늘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난 사람이었으니까.

BaJin_02바진이 애초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1904년 11월 25일이었다. 그 전 세상에서 새로운 세상을 찾아 이곳에 왔는지는 확실치 않다. 분명한 것은 그가 중국 쓰츠우안성 츠엉뚜의 관료이자 대지주의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약 20명의 윗세대, 30-40명의 동세대, 그리고 50명가량의 하인이 같이 사는 대가정이었다.1)

  어렸을 때 바진에게 어머니는 세계의 중심이었다. 어머니는 빈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노비들도 다 같은 인간이라고 가르쳤다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심지어는 바로 그 어머니조차도 여동생의 유모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곤장을 쳐서 내쫓아버렸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와 대조적으로 그의 집 가마꾼은 세상의 온갖 모욕과 학대를 받으면서도 원망은 커녕 남들을 속이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바진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신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에 대해 회의하게 된 것은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BaJin_03  소년 시절 양친이 연이어 돌아가시고, 조부와 여러 숙부 아래에서 성장하면서, 바진은 봉건적 대가정 내의 각종 불합리한 모습과 알력을 경험하는 한편 자신의 비애와 고독을 독서와 사색에서 해소하고자 했다. 이 무렵 ‘민주와 과학’이란 구호로 대표되는 5ㆍ4운동의 새로운 사조가 바진이 살던 곳까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에게 신문화운동의 선봉지인 《신청년》을 비롯해서 베이징과 상하이 등지의 간행물들은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창구가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크로포트킨이나 엠마 골드만 등 일부 아나키스트의 글들도 함께 접하게 되었고, 얼마 후 아나키즘 단체에서 활동하며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불렀다. 1923년, 스무 살의 바진은 셋째 형과 함께 츠엉뚜를 벗어나 상하이로 떠난다. 창으로만 들여다보던 그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나선 셈이었다. 비록 폐병 탓에 그가 원하던 베이징까지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상하이와 난징을 오가며 공부와 치료를 병행하는 한편 아나키즘과 관련된 읽기와 쓰기를 해나갔고 마침내 엠마 골드만과는 편지까지 주고받는다.BaJin_04

  1927년 스물네 살의 바진은 다시 한 번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나선다. 북벌전쟁이 한창이던 중국의 불안정한 시국 그리고 사상적 동료들과의 지지부진한 활동에 실망한 끝에 프랑스 유학을 떠난 것이다. 이 프랑스 유학 시절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그가 문학 창작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바진은 어린 시절부터 문학을 좋아했고, 상하이 시절에 이미 몇몇 간행물에 여러 편의 습작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2년 가까운 이 프랑스 시기에 비로소 정식으로 그의 첫 번째 소설인 〈멸망〉을 내놓았다. 그것은더욱 심도 있고 광범위한 독서, 아나키스트들을 위주로 한 많은 사람들과의 교유, 고국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건들에 따른 자극, 자신의 과거 경험과 기억 등이 한데 결합하여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이때 처음으로 바쿠닌의 첫 번째 음과 크로포트킨의 마지막 음을 따서 바진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귀국 후 바진이 당장 문학 창작을 전업으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그 보다는 현실 생활에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신념을 실천, 증명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상황과 여건이 그렇게 여의치는 못했다. 이에 따라 각종 저작과 번역에 힘쓰는 가운데, 차츰 문학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분야가 되었다. 이 무렵 츠엉뚜의 큰 형이 상하이의 그를 방문했는데, 이는 바진이 프랑스 시기부터 키워오던 구상을 구체화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즉 바진은 자신의 가족을 소재로 하여 ‘붕괴해 가는 봉건대가정의 애환의 역사’를 보여주는 소설의 창작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앞부분, 그 중에서도 큰 형과 관련된 부분을 막 쓰고 난 그 때, 그의 강력한 후원자인 큰 형이 자살했다는 전보가 날아들었다. 큰 형의 자살은 화폐가치의 하락으로 금융상 큰 손실을 보게 된 때문이었는데, 이 소식을 받은 바진은 충격 속에서 “밤새 눈을 붙이지 못하고” “하룻밤 내내 생각한 끝에 최종적으로 전체 구성을 결정했다.”2)이미 눈치 챘겠지만, 이 소설이 바로 〈격류〉 3부작의 제1부인 〈가〉였다. 〈가〉는 애초 〈격류〉라는 제목으로 1931년 4월 18일부터 1932년 5월 22일 사이에 상하이의 《시보》에 연재되었고, 그 이듬해인 1933년 5월 〈가〉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2. 〈가〉의 줄거리

 

BaJin_Jia_03  참석자의 대부분은 아직 이 소설을 접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우선 간단히 이 소설의 줄거리부터 살펴보도록 하자.3)

  소설은 5ㆍ4시기 츠엉뚜를 배경으로 하면서, 봉건 대가정인 까오씨 집안이 차츰 붕괴해가는 모습과 이 집안의 반항적인 젊은이들이 새로운 인생을 찾아나서는 과정을 보여준다. 까오씨 집안에는 할아버지 까오 어르신[高老太爺] 아래로 다섯 아들과 십 수 명의 손자 손녀들이 있는데, 쥐에신[覺新]、쥐에민[覺民]、쥐에후이[覺慧]는 그중 장자 집안의 삼 형제다.

BaJin_Jia_04  장손인 쥐에신은, 집안 일꾼들을 포함해서 수 십 명이 함께 사는 이 전통적인 대가정에서,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중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난다. 그는 이종사촌 여동생인 메이[梅]를 사랑하지만, 아버지가 정해준 아내 르우이쥐에[瑞珏]와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르우이쥐에와는 서로 아끼며 자식도 낳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가한 지 얼마 안되어 청상과부가 되어 돌아온 메이를 잊지 못한다. 더구나 장자인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자 이 대가정의 모든 짐이 젊은 그에게 지워진다. 그러면서 그는 점점 더 분명히 깨닫게 된다. 이 점잖고 유력한 집안이 겉으로는 화목하고 평화롭기 그지없지만 실제로는 서로 갈등하고, 암투하고, 허허롭기 짝이 없는 것을. 그는 나름대로 노력해보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다. 오히려 피로만 느끼게 된다. 한편으로는 5ㆍ4의 새로운 사조를 열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구식 생활에 순응해간다. 동생들이 비판하는 그대로 ‘무저항주의’의 태도로 처세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두 동생 쥐에민、쥐에후이는 열정적으로 신문화운동에 참여한다. 그들은 친구들과 함께 잡지를 내며 새로운 사조를 알리고 낡은 생활을 비판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까오씨 집안은 감옥과 마찬가지다. 온통 암흑이요 적막강산이다. 그 속에서 반항의 격정은 나날이 높아간다. 쥐에민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고종사촌 여동생 친[琴]과 더불어 자신들의 결혼과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분투한다. 할아버지가 친구 훵러산[馮樂山]의 질녀와 그를 정혼시키려고 하자, 그는 동생 쥐에후이의 도움과 연인 친에 대한 사랑에 고무되어 마침내 가출로써 반항한다.

BaJin_Jia_05  가장 젊은 쥐에후이는 이 집안의 가지가지 참혹한 일을 겪으면서 전통적 삶을 철저하게거부하는 인물이 된다. 그가 이성에 대한 열망과 약자에 대한 동정심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이가 된 하녀 밍훵[鳴鳳]은, 할아버지가 억지로 훵러산에게 소실로 들어앉히려 하는 바람에, 어찌 할 바를 모르다가 종국에는 호수에 투신하여 자살해버린다. 이종누이 메이는 정신적 우울과 신체적 병고에 시달리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녀를 잊지 못하던 큰 형 쥐에신은 삶과 죽음의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할아버지 까오 어르신은, 손자들의 반항 특히 둘째 형 쥐에민의 가출과, 아들들의 형편없는 행동 특히 몰래 빚을 내어 창녀와 따로 살림을 차린 다섯째 아들 커띵[克定]이 벌인 일로 인한 충격으로 세상을 떠난다. 임신 상태였던 큰 형수 르우이쥐에는, 할아버지 까오 어르신의 장례에 불길하다는 미신 탓에 할아버지의 첩인 츠언이타이[陳姨太]의 주도 하에 내쫓기다시피 하여 교외의 허름한 곳으로 보내지고, 결국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난산 끝에 목숨을 잃고 만다. 이 모든 일들을 목도한 쥐에후이는, 주변 동료들의 격려와 큰 형 쥐에신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 마침내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찬 이 봉건 대가정을 벗어나 신문화운동이 펼쳐지고 있던 상하이로 가는 배에 오르게 된다.  새로운 세상을 찾아서 떠나는 것이다. 마치 작가 바진이 그랬던 것처럼.BaJin_05

 

 

3. 〈가〉는 ‘현대의 고전’일까?

 

  위의 줄거리 요약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가〉는 첫째 쥐에신과 메이 그리고 르우이쥐에, 둘째 쥐에민과 친, 셋째 쥐에후이와 밍훵 등 각각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까오씨 집안 젊은이들과 이를 불허하고 억압하는 웃어른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참극을 중심 줄거리로 한다. 그러면서 당시 중국사회에 존재하고 있던 봉건적인 관념、행위、관습、제도 등을 강력히 비판하고, 그러한 낡은 것들이 결국에는 모두 스러지고 말 것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달리 말하자면 작가 바진의 메시지는 이런 셈이다. 봉건 대가정으로 대표되는바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행위가 만연한 낡은 세계의 붕괴는 필연적이며, 이를 대신하여 새 세대 젊은이들에 의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리라는 것이다. 소설 자체에서도 이 점은 명확히 드러나며,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작가 자신도 이를 되풀이해서 설명했다. “내가 당초 〈가〉를 쓸 마음을 먹었을 때 소설의 구성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 내가 증오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제도였다.”4)“나는 젊은이들을 위한 외침으로서 〈가〉를 쓰고자 했다. … 나는 악마의 손아귀에서 청춘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을 구하고자 했다.”5)와 같은 말이 다 그렇다.

  물론 이 소설이 출간 이후 큰 호응을 받게 된 것은 단순히 그의 메시지 때문만은 아니다. 대개의 독자는 〈가〉를 읽으면서 우선 작가의 치열한 박투의 정신과 끓어오르는 내면의 열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바진은 이 작품을 단행본으로 출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몇 년 전 눈물을 쏟으며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을 읽고 난 뒤, 표지 안쪽에 ‘삶은 그 자체가 비극이다’라고 메모한 적이 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삶은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일장의 ‘박투’이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인가? 아니 우리에게 이 생명은 왜 필요한 것인가? 로망 롤랑의 답은 이렇다. “그것을 정복하기 위해서다.” 나는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6)

 

BaJin_06  〈가〉에는 당시 스물여덟 살의 청년 바진의 이런 신념과 격정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것은 낡은 세계를 부정하고 새로운 세상을 긍정하는 쥐에후이의 행동에서, 그리고 그것을 찬양하는 화자의 태도에서도 나타나며,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강렬한 어휘 구사나 급박한 스토리 전개에서도 나타난다. 그 뿐 아니다. 독자들은 작자인 바진이 화자의 서 을 통해 어떤 인물이든 간에 소설 속 등장인물에 모두에 대해 그 자신의 애증을 비교적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소설의 후반부에 가면 작중 인물인 쥐에후이의 언행과 그것을 서술하는 화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창작해낸 작가 바진이 거의 삼위일체가 되어 같은 사고를 주장하고 같은 감정을 토로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데서 보다시피 각종 사건들은 소설을 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는 실마리 역할을 맡기는 했지만, 사실은 오히려 인물들의 정신세계나 심리 활동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서 더 큰 기능을 했다. 곧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소한 애환에서부터 간단없는 번뇌 그리고 사랑과 분노에 이르기까지 인물들의 내면세계를 있는 그대로 내보여주는 것이었다. 바로 이 점이 바진 소설의 특징 중 하나이자 〈가〉의 특색 중 하나이다. 이와 동시에 소설 속 인물들이 마치 살아 숨 쉬는 현실의 인물처럼 느끼도록 만드는 한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가〉를 읽으면 대개의 독자는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마치 우리 주변에서 마주칠 수도 있는 그런 인물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심지어는 독자 자신이 작중 인물 중 하나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가〉의 인물들은 대체로 개성이 뚜렷하고 그 사상 감정과 행동 방식이 분명하며, 이에 따라 독자들은 강렬한 인상을 갖게 되면서 그들을 현실적이고 생동적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작중에서 이런 면이 가장 두드러지는 이로는, 대략 6,70명에 이르는 등장인물들 중에서도, 특히 봉건 대가정의 대표자인 할아버지 까오 어르신, 봉건 대가정의 반항아인 셋째 쥐에후이, 그리고 그러한 양 세력 사이에서 갈등하는 장손 쥐에신을 꼽을 수 있다.

BaJin_Jia_06  할아버지 까오 어르신은 독단적이고 고루한 유교적 예법의 신봉자로서,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압적 수단도 마다 않음으로써, 이 집안 젊은이들을 질식케 하고 심지어는 죽음으로 몰아넣는 그런 인물이다. 그의 이와 같은 이미지가 가장 선명하게 나타나는 장면은 다섯째 아들 커띵의 막된 행동에 분노하여 아들이 스스로 자기 뺨을 때리도록 했다가 말았다가 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는 또 이 대가정의 봉건적 질서 유지라는 자신의 목표와 규율에 입각해서 자기 나름으로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기도 한데, 따지고 보자면 그 역시 비극적인 인물인 셈이다. 곧 표면적으로는 모든 비극이 그로부터 비롯되는 것 같지만, 실인즉 그조차도 그 모든 것이 허위적인 것임이 밝혀지면서 허망함 속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최종적으로는 그도 봉건사회의 제물에 불과하며, 이 점에서 봉건사회의 참혹함이 더욱 심층적으로 드러난다고 하겠다.

BaJin_Jia_07  그와 비교해 보자면 쥐에후이는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여 윗사람들의 부적절한 행위에 반발하는 봉건 대가정의 이단아이다. 할아버지 까오 어르신이든 큰 형 쥐에신이든 또는 집안의 그 누구든 간에, 그의 관점에서 보아 비합리적이고 비인도적이라면 비판과 반항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가 보여주는 이러한 강력한 태도와 언행이야 말로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동력의 하나이기도 한데, 알고 보면 그의 이런 힘은 소설 속 신분과 나이에 걸맞는, 또는 작자의 이 인물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 단순함 심지어는 유치함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하녀 밍훵에 대한 그의 마음은 사랑인지 동정인지 애매할 뿐만 아니라, 밍훵의 고민과 절망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녀가 자살에 이르도록 하고, 그녀의 죽음에 대한 자기반성의 결론 역시 사회의 잘못으로 귀착시키고 만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다 같이 봉건 대가정에 반항적이면서도 둘째인 쥐에민은 또 다른 인물이다. 비록 자신의 존엄과 사랑을 보호하기 위해 분투하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의 반항과 투쟁은 그 개인을 보호하는 정도에 그칠 뿐 대가정 자체를 상대하는 데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한다. 그 때문에 동생 쥐에후이의 격려와 연인 친의 애정이 뒷받침됨으로써 비로소 가출이라는 행동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 작품에서 주목받아 마땅할 인물 중 하나는 쥐에신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처지와 여건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타당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성의 관념과 생활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에 순응하고 마는 그런 인물이다. 달리 말해 보자면, 인습과 환경이라는 굴레 속에서 대가정 장손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애쓰는 선량하고 정직한 인물이지만, 내심으로는 새로운 사상과 새 세상을 열망하면서도 유약하고 운명론적이어서 방황하고 고민만 할 뿐이다. 이에 따라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차례로 이어지는 비극 속에서 나날이 피폐해져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이 모든 것이 마치 그의 성격 때문인 것처럼 비춰지기는 하지만, 사실은 그가 특정 상황과 관념의 희생자인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약간의 상상력만 발휘해본다면 그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중년 남성 그 중에서도 삼대가 같이 사는 집안의 맏아들인 중년 남성과 별반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BaJin_Jia_08  이들 외에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그 나름의 개성을 가진 현실감 있는 사람들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룹별로 일정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이 소설에 등장하는 다수의 젊은 여성들이 그렇다. 그녀들은 각기 성격도 다르고 처지도 다른 인물들이지만, 당시 여성이 봉건사회 내에서도 가장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는 집단 중 하나임을 보여준다. 쥐에신과 사랑하던 사이인 메이는 모친들 간의 불화로 인해 강제로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가 1년 만에 과부가 된 후 결국 육체적 병고와 정신적 상처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쥐에신과 결혼한 르우이쥐에 역시 원만하고 다정한 여성으로 성심성의껏 남편과 온 가족을 모시지만, 결국에는 황당한 미신과 가족들의 외면에 의해 집밖으로 내쳐져서 난산 끝에 사망하고 만다. 하녀 밍훵은 마치 내다 팔리는 물건처럼 취급되다가 쥐에후이와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버리게 된다. 다만 쥐에민의 연인인 친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선량하기는해도 구습에 젖어있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 때문에 과감히 행동에 나서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쥐에민과 함께 새 생활을 꾸릴 가능성을 갖게 되었으니까. 그러나 쥐에민 등의 도움에 의해 간신히 파국을 면하는 수동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는 여전히 같은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작중의 젊은 여성들은, 대부분 가부장적인 봉건 대가정 속에서 도대체 인격체로서 대접받지 못한 것은 물론이요, 스스로 그런 각성조차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 처해 있었으며,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BaJin_Jia_09더구나 그녀들은봉건사회의 이중적 피해자요, 피해자 중의 피해자였다. 예컨대 그녀들의 죽음에 대해 쥐에신은 쥐에신대로 자신이 유약한 탓이라고 하면서도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식으로 책임을 미루어버리고, 쥐에후이는 쥐에후이대로 자신의 잘못이 없는 바는 아니나 결국은 사회에 모든 죄가 있다고 치부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윗세대 인물들 역시 각기 특징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일종의 공통된 모습을 보여준다. 까오 어르신의 아들들인 커밍[克明]、커안[克安]、커띵[克定] 등은 사고하는 방식과 사안을 처리하는 태도 면에서 각각 차이를 보이지만,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 보면 대체로 위선적이고 유약한 인물들이다. 그것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그들의 아버지인 까오 어르신의 사망 직후 빈소 관리 등은 아랑곳하지 않고 재산 분배를 놓고 서로 다투는 장면이다. 할아버지의 첩인 츠언이타이는 할아버지에게는 감칠 나게 대하지만 아래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구는데다가 무엇보다도 무지하고 미신적인 인물이다. 또 할아버지의 친구인 훵러산은 여러 면에서 할아버지와 유사하면서도 한결 뻔뻔하고 허위적인 인물이다. 이처럼 윗세대에 속하는 인물들은 크게 보아 권위、체면、재산、풍류、미신 따위에만 관심이 있고 삶 그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고도 없이 타성적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BaJin_Jia_10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나누어 본다면, 각자 그 사람 나름의 개성이 뚜렷하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까오 어르신으로 대표되는 봉건적 웃어른들은 대체로 악한 인물들로, 쥐에후이로 대표되는 신문화적 젊은이들은 대체로 정의로운 인물들로, 그 외 작중에서 크게 부각되지는 않지만 후앙마[黃?]로 대표되는 집안의 일꾼들은 충직한 중간적 인물들로 묘사된다. 물론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 인물들에 대한 바진의 이런 단순한 분류는 사실 썩 훌륭한 생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봉건대가정 또는 봉건사회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복합성,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복잡성은 뒷전에 두고, 그저 그 속에서 무슨 사건들이 일어나며 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는 것에만 관심을 집중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더라도 이와 같은 방식은 바진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강화하고, 이야기의 진행을 분명하게 하면서, 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데 강력한 힘을 부여해주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BaJin_Jia_11  이미 언급했듯이 〈가〉에는 인물들의 행동, 사고, 감정에 관한 직접적이고도 정서적인 묘사와 서술이 대단히 많다. 그리고 이 점이 비교적 규모가 크면서도 간명한 구성,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건들의 적절한 배치, 박진감 넘치는 전개, 강렬한 극적 장면, 인물들의 합당한 역할, 감정이 풍부한 문구, 특정 사안에 대한 세심한 묘사, 다량의 대화와 독백 등 여러 가지 문학적 장치나 방식과 맞물려서, 인물들을 생생하게 느끼게 만들고 심지어는 마치 독자 자신이 인물 중의 한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바진의 문학적 소양과 수양이 대단히 뛰어나기는 해도 그의 첫 번째 장편소설인 〈가〉에는 아직 사고 및 경험 부족의 흔적이나, 주제를 향해 집중하는 그의 태도로 인한 소홀한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감정적인 어구 특히 비애의 어구가 무시로 출현하고, 간혹 전체 구성이나 진행 면에서 불필요하거나 과다한 서술도 나타난다. 또 시간적 순서를 따라 크고 작은 사건이 끊임없이 이어지다보니 인물 내심의 복잡한 변화가 생략되어버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인물들의 언사와 행동 중에는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하는 의문이 드는 곳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저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힘은 약화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화자(때로 쥐에후이)와 꼭 마찬가지로, 삶에 대한 바진의 진실하고도 확신하는 태도와 풍부하고도 열정이 넘치는 정서가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거의 80년 전 중국에서 출간된 이 소설이 과연 오늘날 한국의 독자에게 ‘현대의 고전’이 될 수 있을까? 내 생각에 그것은 이 소설을 고전으로 추천한 분의 희망이나 나의 소개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요, 작가 바진의 메시지나 소설 그 자체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독자에게 달려 있을 것이며, 한국 사회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이 소설 발표 당시 중국의 사회 문화 상황과 현재 한국의 사회 문화 상황이 얼마나 유사한가, 이 소설을 읽던 당시 중국인의 관념체계와 지금 한국인의 관념체계가 얼마나 근접한가 하는 데 달려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것과의 관계가 어찌됐든 간에 현재 한글판은 다음 서너 종류가 나와 있다. 그 중 하나인 박난영 번역본은 시차를 두고 개정판이 나올 정도이기도 했으니, 그만큼 한국에서도 제법 많은 독자들이 〈가〉를 읽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BaJin_Book_08《가》, 강계철 옮김, (서울: 세계, 1985)

《가》, 최보섭 옮김, (서울: 청람문화사, 1985)

《가》, 연변인민출판사 편집부 옮김, (서울: 해누리, 1989)

《가》, 박난영 옮김, (전주: 이삭문화사, 1985)

《가》1-2, 박난영 옮김, (서울: 황소자리, 2006)

 

BaJin_Jia_12  중국의 경우에는, 〈가〉가 지난 수십 년 동안 고전으로 기능했던 것이 거의 틀림없는 듯하다. 출판 당시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전범적인 소설이라고 평가되었다. 또 아직까지도 많은 중국 사람들에게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비록 봉건사회의 존재와 붕괴의 사회적 토대와 조건을 고려하지 못했다든가, 인물의 심층적 분석이 결여되어있다든가 하는 등의 여러 가지 비판도 있었고, 그런 비판 때문에 바진이 몇 차례 소소한 수정이나 개작을 행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전체적으로 본다면 비평가의 찬탄과 독자들의 호응을 받아가며 판을 거듭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1933년부터 1949년까지 무려 30여 차례나 판을 거듭했으며, 그 후 1978년까지 베이징에서만 15차례 재출간되었을 정도였다.7)문화대혁명 등 특정 시기를 제외하고는 각급 교과서에 반드시 언급되었고, 대입 시험 등 각종 시험에서도 자주 다루어졌다. 세 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졌고, 티비 연속극으로도 방영되었으며, 또 극작의 대가라 불리는 차오위[曹?]의 편극을 거쳐 연극으로 공연되기도 했고, 심지어는 발레로 각색되기도 했다.8)아마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구구절절 토를 달지 않더라도 직접 이 소설을 읽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 바진이 〈가〉를 쓰고 나서

 

BaJin_Book_19  1931년에서 1936년의 6년 동안 바진은 중편소설 10편, 단편소설 53편, 산문집 6권을 썼다. 이 기간 아나키스트로서 국민당 당국의 체포 위험을 피해 잠시 일본에 가서 요코하마와 도쿄에 머무르기도 했다. 그리고 1938년과 1940년에 〈격류〉삼부작의 제2부와 3부인 〈봄〉과 〈가을〉을 출판했고, 문예지 편집자로서의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한편, 계속해서 장편 〈불〉 3부작, 중편 〈제4병실〉과 〈추운 밤〉 등 많은 소설들과 수필, 번역물을 내놓았다. 그 중에서도 그의 마지막 중편소설인 〈추운 밤〉(1947)은, 그의 또 다른 걸작으로 평가된다.

BaJin_Book_22  바진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작가로서의 명망을 바탕으로 상당한 지위를 누리면서 문화계 전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지만, 이전의 아나키스트 활동으로 인해 곤란한 처지가 되기도 했다. 특히 문화대혁명 때는 가산을 몰수당하고 강제노동에 처해졌으며 공개비판을 당하는 가운데 부인까지 병사하는 등 고난의 연속이었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그 자신이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였다는 것을 정직하게 고백한 일련의 수필들을 발표하여 다시 한 번 대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 수필들은 나중 〈수상록〉이란 제명으로 출판되었는데, 그 당시 모든 책임을 4인방 등에게 전가해버림으로써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상황에서, 바진의 이러한 진실한 외침이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바진은 여든 살 전후에도 중국작가협회 주석을 맡았고, 중국현대문학관의 건립에 공헌하기도 했다. 만년의 그는, 그 문학적 성취와 문단의 성망 및 올곧은 인품 등으로 해서 중국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될 것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영예는 2000년에 그보다 한 세대 젊은 작가인 까오싱지엔[高行健]에게 돌아갔다.

  바진은 한국에 대해서 비교적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1930년대부터 한국인과 교류하여 작품에서 이런 경험을 활용하기도 했고, 또 간단한 한국어도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가 한국전쟁에 종군하면서 썼던 글들은 논의의 여지가 없지 않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대표적인 작가로서 그 당시 그의 행적과 글들은, 비록 자신의 조국에게는 의미 있는 것들이었는지 모르지만, 한국인 또는 세계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재평가를 받아야 될 부분이 없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는 그가 일생 동안 추구하고 실천했던 그 모든 성취를 인정한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가 또 다시 새로운 세상을 찾아 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를 배웅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한국인도 함께 자리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2007년 10월 11일 )

 

 

부록: 김혜준 추천 20세기 중국소설 10선

 

1) 《루쉰 소설 전집》, 루쉰[魯迅] 지음, 김시준 옮김,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1)

2) 《새벽이 오는 깊은 밤》, 마오뚠[茅盾] 지음, 김하림 옮김, (서울: 중앙일보사, 1989)

3) 《가》(1,2), 바진[巴金] 지음, 박난영 옮김, (서울: 황소자리, 2006.10)

4) 《낙타상자》, 라오서[老舍] 지음, 유성준 옮김, (서울: 중앙일보사, 1989)

5) 《중국현대여성작가작품선》, 샤오홍[蕭紅] 외 지음, 김은희 최은정 옮김, (서울: 어문학사, 2006.12)

6) 《중국 현대 신사실주의 대표작가 소설선》, 팡팡[方方] 외 지음, 김영철 옮김, (서울: 책이있는마을, 2001.7)

7) 《살아간다는 것》, 위화[余華] 지음, 백원담 옮김, (서울: 푸른숲, 1997.6)

8) 《영혼의 산》(1,2), 가오싱젠[高行健] 지음, 이상해 옮김, (서울: 현대문학북스, 2001.7)

9) 《반하류사회/대북사람들》, 짜오즈판[趙滋蕃] 바이시엔용[白先勇] 지음, 허세욱 옮김, (서울: 중앙일보사, 1989)

10) 《사람을 찾습니다》, 웡찡[黃靜] 외 지음, 김혜준 외 옮김, (서울: 이젠미디어, 2006.11)

 

 

 

바진 가의 인물표

 


봉건 대가정의 붕괴와 젊은이들

- 부대신문 「고전, 책장 밖으로 나오다」기고문 -

 

 

김  혜  준  KHJ.jpg

 

  바진(1904-2005)은 웃어른들, 동년배들, 하인들 모두 합쳐서 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던 츠엉뚜의 대가정에서 나고 자랐다. 스무 살에 상하이로, 스물네 살에 프랑스로 갔고, 약 2년 뒤 귀국하여 서른 살 전후부터 문학에 전념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상당한 지위를 누리기는 했지만, 이전의 아나키스트 활동으로 인해 곤란한 처지가 되기도 했다. 특히 문화대혁명 때는 가산을 몰수당하고 강제노동에 처해졌으며 공개비판을 당하는 가운데 부인까지 병사하는 등 고난의 연속이었다. 복권이 된 후 만년에는 중국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될 것으로 주목받기도 했지만, 2000년에 그 영예는 그보다 한 세대 젊은 작가인 까오싱지엔에게 돌아갔다.

  〈가〉는 바진이 스물여덟 살에 쓴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쥐에신과 메이 그리고 루이쥐에, 쥐에민과 친, 쥐에후이와 밍펑 등 각각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까오씨 집안 젊은이들과 이를 불허하고 억압하는 웃어른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참극을 중심 줄거리로 하면서, 당시 중국사회에 존재하고 있던 봉건적인 관념ㆍ행위ㆍ관습ㆍ제도 등을 강력히 비판하고 그러한 낡은 것들이 결국에는 모두 스러지고 말 것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작가의 의도나 작품에 담긴 것은 그러한데, 오늘날의 한국 독자, 그중에서도 젊은 독자는 어떻게 반응할까?

  일단 무엇보다도 재미를 느낄 것이다. 이 소설에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비극, 기성 세대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항이라는 이야기가 주도하면서, 군데군데 흥미진진한 많은 에피소드들이 적절히 삽입되어 있다. 그러니 마치 연속극처럼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할 것이다. 또 박진감 넘치는 표현이나 감정이 풍부한 문구도 있고, 세심한 묘사나 생생한 장면도 있다. 생동감 있는 인물과 기복 있는 스토리 전개도 빠지지 않으며, 다채로운 대화와 내심의 독백도 풍부하다.

  물론 교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에는 인간 집단에 존재하는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방황과 확신, 절망과 희망, 갈등과 타협, 투쟁과 굴복, 권력과 암투, 미신과 과학, 보수와 진보 등 실로 다양한 모습과 상황들이 펼쳐지며, 당연히 독자들은 그런 것들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행동 준칙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원한다면 각종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 소설에는 가정 의례, 유교 의식, 민간 신앙, 전통 관습, 명절 풍속, 민속 오락, 집안 설비 등 중국 전통 사회에 관한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수많은 사항들이 상세하고도 여실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거의 80년 전 중국에서 출간된 이 소설이 과연 오늘날 한국의 독자에게 ‘현대의 고전’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이 소설을 고전으로 추천한 분의 희망이나 나의 소개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요, 작가 바진의 메시지나 소설 그 자체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독자에게 달려 있을 것이며, 한국 사회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이 소설 발표 당시 중국의 사회 문화 상황과 현재 한국의 사회 문화 상황이 얼마나 유사한가, 이 소설을 읽던 당시 중국인의 관념체계와 지금 한국인의 관념체계가 얼마나 근접한가 하는 데 달려 있을 것이다.


 

 

김혜준, 〈봉건 대가정의 붕괴와 젊은이들〉, 《부대신문》 2007년 10월 8일 12면.

 

BaJin_Jia_01

 


1) 바진의 생애에 관해서는 주로 박난영, 《바진, 혁명과 문학의 경계에 선 아나키스트》, (파주: 한울, 2006)와 奧爾格 朗, 高杰 譯, 〈《家》英譯本序〉, 張立慧 李今 編, 《巴金硏究在國外》, (長沙: 湖南文藝, 1986), pp.76-94 [Olga Lang, “Introduction”, Pa Chin, Family, Garden City, N.Y.: Anchor Books, 1972]을 활용했다.

2) 巴金, 〈關於<家>〉, 《家》, (北京: 人民文學出版社, 1985), pp.425-440.

3) 줄거리 요약은 주로 王嘉良 等 主編, 《20世紀中國文學名作典藏》, (杭州: 浙江文藝出版社, 2003), pp.56-58을 활용했다.

4) 巴金, 〈和讀者談<家>〉, 《家》, (北京: 人民文學出版社, 1985), pp.441-448.

5) 巴金, 〈關於<家>〉, 《家》, (北京: 人民文學出版社, 1985), pp.425-440.

6) 巴金, 〈《激流》總序〉, 《家》, (北京: 人民文學出版社, 1985), pp.1-2.

7) 내가 이번에 20여년 만에 다시 읽은 것은 베이징의 1981년 제3판의 1985년 제5쇄인데, 불과 4년 만에 모두 658,000권이나 인쇄된 것으로 나와 있다.

8) 두 차례 연극을 관람한 바 있다. 비록 과장적인 부분이 없지 않았으나 전체 줄거리를 비교적 충실하게 요약 재현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상 깊었던 것은, 봉건대가정 속에서 인간적 품성을 지키며 최선을 다해 적응하고자 노력하지만 결국은 참혹하게 희생되고 마는 인물인, 르우이쥐에를 좀 더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첨부파일
첨부파일이(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