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3.05.16
수정일
201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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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1.01.-01.27. 〈진실에 대한 신념〉(까오싱지엔)

진실에 대한 신념


GaoXingjian         

까오싱지엔高行健(1940-    )

 

진실을 미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하나의 심미관이다. 그러나 진실이 미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아니다. 진실이 곧 미라고 하는 것은, 시비 판단이나 윤리적 선악 판단을 심미적 기준으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실 불필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수많은 예술가들은 예술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을 거듭 긍정해 왔을 뿐만 아니라 미적 판단에 있어서 부동의 기준 가운데 하나로 간주해 왔으며, 예술이 진실에서 벗어나면 천박하고 허위적인 것이라고 여겨 왔다.

그러나 대체 무엇 때문에 진실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 것인가? 예술 속의 진실이란 현실세계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 세계에 대한 인식을 말하는 것인가? 어떻게 인식해야만 진실할 수 있는가? 또 무슨 기준으로 예술 속의 진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가? 이는 미학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는 난제다.

진실이 만일 현실이라고 한다면, 현실 속의 실제 인물과 사건이 바로 예술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기성의 예술 작품과 예술가들의 직접적 행위는 말할 나위도 없이 가장 진실한 것이요, 사람들 마다 모두 예술가이고 사물들마다 모두 예술작품인 셈이다. 물론 이 역시 하나의 예술관이며, 이로 보건대 예술의 진실이란 역시 예술에 대한 인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현대 예술 이론에서는 예술에서 현실을 재현하는 것은 진실하지 않다고 끊임없이 지적되어 왔다. 현실주의 화가에게서는 현실의 표면만 재현되었을 뿐 본질은 오히려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보편화된 예술론 중 하나로, 형식주의와 추상예술의 근거이다.

회화에서 투시·명암·음영을 모두 제거하여 예술상으로 만들어낸 환각을 소멸시켜버려야만 예술이 더욱 진실할 수 있다는 것이 20세기 초 현대회화의 이론적 근거였다. 1960년대에 이르르자 예술에서 다시 한번 혁명이 일어나서 화폭에서 이루어낸 그림보다도 그림의 지탱물과 그림을 그리는 안료나 재료가 더욱 진실한 것이 되었다. 그 후에는 평면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조차 낡은 것이 되어버리면서 실제 사물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도대체 예술의 진실 혹은 진실한 예술이란 무얼 말하는가? 사실상 예술가의 입장에서는 이런 형이상학적인 사변은 아무런 보탬이 안된다. 예술가가 철학자와 다른 점은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이 진리라기 보다는 진리에 대한 신념이며, 예술에 대한 그의 신념이 구체적인 감수에 바탕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있다.

예술가에게 있어서 진실은 예술에 대한 그의 진정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예술가가 바라는 것은 심미와 윤리의 통일이다. 그는 차라리 실재적인 감각을 통해 진실에 대한 신념에 도달하고자 한다. 이것이야 말로 정상적인 한 예술가가 이 미친 세계에 대해 맞서는 최소한의 진실의 출발점인 것이다. 예술가가 개인의 심미적 감수로 되돌아가는 것도 예술과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다. 진실에 대한 사변은 역시 철학의 몫으로 돌려주는 것이 좋다.

아마도 예술의 진실에 관한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는 이러한 논쟁과는 상관없이 예술에서의 진실을 추구한다. 예술가의 진실은 그들 각자의 시야에 들어온 시각적 감수일 뿐이다. 아름다움이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일반적인 기준 자체에 존재하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진실은 자신의 예술적 표현에 대한 예술가의 신념이자 그와 현실을 이어주는 필수적인 연결고리이다. 예술가의 눈에는 진실은 심미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예술가의 일종의 윤리다.

예술가에게 있어 심미는 윤리적 판단을 지니고 있지 않다. 하지만 진실은 예술에 대한 예술가의 움직일 수 없는 신념이다. 종교와 하느님보다도 더욱 중요한 존재다. 이러한 진실감이 없다면 예술가는 더 이상 예술을 할 수가 없다. 그들은 온 몸과 마음으로 그들의 예술이 이 세계, 내심세계를 포함한 이 세계를 파악했다고 느낄 것을 필요로 한다.

예술가의 방법은 현실세계에 대한 그의 이해일 뿐만 아니라 그의 예술적 표현이기도 하다. 어떤 표현 방법이 더욱 진실한가라는 그런 논쟁은 예술가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우열이나 고저, 진보와 보수의 구분도 없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의 재능이다.

예술 방법상의 재현·표현·구현의 구분은 심미적 판단의 기준이 될 수가 없다. 모종의 예술 방법으로 다른 예술 방법을 부정한다거나 모종의 예술관으로 또 다른 예술관을 비판하는 것은, 예술의 계보를 분류하는데는 의미가 있겠지만 예술 자체의 가치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쿠르베와 마티스는 서로 다른 시각으로 서로 다른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제자는 역시 제자에 불과했다.

예술가가 필요로 하는 것은 현실세계에 대한 자신의 감수와 표현이며, 이런 감수와 표현을 진실에 대한 신념에 바탕하여 이룩하는 것이다. 진실이란 예술가의 입장에서는 진정인 것이며, 예술가 특유의 도덕이라야 하는 것이다.

 

高行健, 〈對眞實的信念〉, http://xingjian.at.china.com/ciye/zhenshi.htm . (2000년 12월 1일  김혜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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