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1.04.22
수정일
2011.04.22
작성자
김혜준
조회수
927

(김혜준 해설) 나의 도시

《나의 도시》(시시) 작품해설
            

김  혜  준  \"KHJ\"

            

\"《나의《나의 도시》 시시[西西] 지음, 김혜준 옮김,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02.07.   홍콩은 세계 어느 지역과도 구별되면서 또 상통하는 특별한 환경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1842년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래 150여 년 동안 동방 문화와 서방 문화의 적극적인 교류·접촉,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전후로부터 약 50년간의 좌익 사상과 우익 사상의 간접적인 대립·경쟁, 궁극적으로는 식민지라는 한계가 주어진 정치적 환경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상당히 자유로웠던 언론 상황, 대도시 특유의 상업적이고 도시적인 환경과 그 이면에서 여전히 작용했던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생활 습관, 1997년 이후 이른바 ‘일국이체제’로 불리는 사회주의 국가 내에서의 자본주의 사회의 유지 등이 그러하다.   이로 인해서 홍콩 문학 역시 그 자신만의 독특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 특정 이데올로기나 문학 관념이 지배하지 않는 다양성, 상업적 논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상업성, 작가의 이동이 대규모적이고 빈번한 유동성, 중국 문학과 세계문학이 상호 소통하는 교통성, 중국 대륙 문학과 타이완 문학 및 세계 각지의 화인 화문 문학을 연결하는 중계성, 현대적 대도시를 바탕으로 한 소재와 사고와 감각을 표현하는 도시성, 칼럼 산문(신문에 고정적으로 기고하는 수필)이나 무협 소설과 같은 분야가 성행하는 대중성, 영국에 의한 식민 지배 경험과 중국 문화·전통의 영향 및 그것과의 재통합에 따라 표출되는 포스트식민성 등은 모두 홍콩 문학의 독자적인 면모를 잘 보여 주는 것이다.   홍콩 문학의 이와 같은 독자성은 세계문학, 그중에서도 직접적으로는 중국 문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홍콩 문학은 한국에서는 아직 그다지 주목받고 있지 못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상당히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홍콩 문학의 독자성이 언제부터 형성되기 시작해서 언제부터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이와 관련해 나는 20세기 상반기에 이미 그와 같은 면모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비교적 분명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특히 비약적으로 경제 발전을 이룬 1970년대에 이르러 확고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애초 인구 수천의 조그만 어촌에서 출발한 홍콩은 갈수록 더욱 큰 규모의 무역항이자 금융 도시로 발전했다(현재는 인구 약 700만 명에 이른다). 과거 이런 발전 과정에서 필요한 인적 자원은 자체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보다는 주로 외부에서 유입된 인구에 의존했다. 따라서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홍콩과 중국 대륙 사이의 내왕은 비록 지속적으로 일정한 제한이 가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자유로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2차 대전 종전 이후 세계가 냉전 체제로 들어서자 상황이 달라졌다. 홍콩이 자본주의의 교두보가 되면서 이 때문에 양자 간의 관계가 대단히 제한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홍콩 거주민들의 범주가 어느 정도 안정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홍콩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사람들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경향은 특히 홍콩 사람들이 1966년에 일어난 중국 대륙의 문화대혁명과 1967년에 일어난 홍콩의 반영폭동을 겪으면서, 홍콩이 중국 대륙과도 다르고 영국과도 다르다는 특수한 상황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됨으로써 더욱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그 후 홍콩의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1970년대에 들어서자, 현대적 대도시로 발전하는 홍콩과 더불어 홍콩에서 성장한 세대가 그들의 출신지나 출생지에 관계없이 자신들을 홍콩인으로 자각하면서, 적극적으로 홍콩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홍콩인으로서의 발언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홍콩에서 성장하고 홍콩을 자신의 땅으로 여기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으로 인해 홍콩 문학 역시 완연하게 새로운 상황을 보였다. 즉 과거에는 중국 대륙과의 일체감이 작용한데다가 또 외부로부터의 이주자 출신 작가들이 많았기 때문에 홍콩 자체를 묘사하는 경우가 썩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설령 홍콩 자체를 다루더라도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홍콩이라는 이 도시에 대해 일체감을 느끼고 이 도시 자체를 자신의 도시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뚜렷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처음으로 확실하게 보여 준 성공적인 작품이 시시의 ≪나의 도시≫였다.      시시의 ≪나의 도시≫는 이 도시와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동화적 상상과 과장이라는 방식을 사용해 아주 긍정적으로 세심하게 보여 주고 있다.   소설 속의 도시는 물론 1차적으로 홍콩으로 간주할 수 있다. 찜싸쪼이(尖沙嘴)를 페이싸쪼이(肥沙嘴)로, 웡꼭(旺角)을 나우꼭(牛角)으로, 인근의 마카오를 마까오(馬加澳)로 쓰는 등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는 각종 지명, 1층부터 있는 중국식 층수와 지상층(Ground Floor)부터 있는 영국식 층수의 차이로 12층이 곧 11층인 건물, 배 모양이나 우주선 모양으로 디자인한 초현대식 고층 빌딩들과 누가 들어오면 문 앞의 탁자를 치워야 할 만큼 비좁고 열악한 아파트, 그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도시의 허파인 작은 쉼터 공원들, 슈퍼마켓을 포함한 수많은 상점과 진열장, 해협을 오가는 페리와 좌측으로 주행하는 버스와 전차, 오른쪽, 왼쪽, 다시 오른쪽을 살펴야 하는 보행자들, 경마·마작·얌차·쇼핑·수영과 축구 구경, 영화 관람이 일상화된 생활, 청원 집회, 노상강도, 쓰레기, 인스턴트식 소설 같은 각종 사회적 사안들, 문 만들기 이야기로 비유되듯이 산업사회로의 전환과 금융 산업의 대두, 석유 파동에 따른 에너지 위기와 도시 발전에 따른 낙관적인 대처, 신문과 텔레비전 등 언론 매체의 발달 등등. 소설 속에 출현하는 이 모든 것들은 홍콩 사람들 자신은 물론이고 홍콩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이 도시를 연상시킨다.   더구나 이 모든 것들은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묘사된다. 예를 들면, 아궈(阿果)의 경우 현실에서는 아마도 치열한 경쟁을 거쳐 졸업, 취업, 근무를 하게 되었을 테지만 소설에서는 그러한 과정이 마치 아이들의 유희처럼 서술되고 있다. 이는 도시적인 삶을 비판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이미 그것에 적응하기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또 심지어 막파이록(麥快樂)이 심야의 거리에서 강도를 만난 장면마저도 마치 일상의 사소한 일처럼 보일 정도로, 도시의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모습에 대한 비판조차도 직설적이거나 신랄하지 않고 온화한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다. 결국 이런 것들은 이제 홍콩이 더 이상 빌린 도시가 아니며, 홍콩인의 삶 역시 더 이상 뿌리 없이 부유하는 삶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의 도시는 이와 동시에 홍콩에 국한되지 않는 지구상의 그 어느 대도시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이러한 도시적 상황과 도시적 삶이 이미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거나 이미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 도시가 현실과 상상, 이성과 감정이 효과적으로 혼합된 형태로 표현됨으로써 홍콩이라는 특정 도시로 국한되지 않는 개방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오늘날 전 국민의 대부분이 도시 생활을 하는 한국 독자가 본다면, 특히 그중에서도 압축 성장의 시대였던 1970년대를 겪어 본 한국 독자가 본다면, 이 소설 속의 도시를 자신이 사는 도시 또는 지역이라고 상상해도 큰 무리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도시야말로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소설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여러 사건들이 일어난다. 그렇지만 인물들의 성격이나 그들이 겪는 사건 자체보다도 그런 것들을 통해 보여 주는 도시의 각종 면모가 소설의 중심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사건들 간의 시간적 연관 관계가 그다지 선명하지 않은데 이런 것들은 곧 이 소설의 배경이면서 동시에 핵심이 되는 도시라는 공간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쨌든 형식적으로 볼 때, 이 소설에는 아궈라는 인물이 ‘나’라는 말을 사용하는 화자로서 등장한다. 그러나 ‘나’라는 화자가 등장하지 않는, 여타 인물들이 중심이 되는 부분들에서 여전히 아궈를 화자로 볼 수 있는 곳도 있지만, 소설 내용상 아궈가 목격하거나 알 수 없는 내용이 이야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전지적인 화자가 가정되어 있다. 즉 화자로서의 작가가 숨겨져 있는 셈인데, 이는 애초 이 소설의 연재 당시에 작가의 이름을 시시가 아니라 아궈로 표기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지적인 화자 역시 아궈의 시각과 어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궈라는 화자 또는 전지적인 화자에 의해 ‘그(그녀)’로 불리는 다른 인물들의 어투, 행동, 사고도 마찬가지로 아궈를 원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첫째, 소설 속의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면서 동시에 여럿이면서도 하나인 셈이다(이는 각 목소리의 자기주장과 그 차이를 강조하는 미하일 바흐친의 헤테로글로시아(Heteroglossia) 개념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다). 둘째,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사실상 각자 자기 이야기의 화자가 된다는 점에서 이 소설 전체로 보면 화자는 ‘나’가 아니라 ‘우리’가 되는 셈이다. 바로 이런 측면이 이 소설로 하여금 일견 단순하면서도 중층성을 띠도록 만들고, 이 소설의 독자, 특히 당시 홍콩의 독자로 하여금 자신을 화자 내지 등장인물과 쉽사리 동일시하게 만드는 효과를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작품의 제목이 ‘우리의 도시’가 아니라 ‘나의 도시’가 되는 것일까? 그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등장인물이든 아니면 독자든 간에 현대적 대도시 또는 현대적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면에서는 모두 일종의 집체성, 공통성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각기 상당한 또는 미묘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소설 속 아궈의 근면하고 노력하는 언행에서 보듯이, 이러한 개인들이 모여서 집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이 도시 또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는 각 개인들의 상향 의지와 실천적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이 소설은 이처럼 각성한 개인이라는 현대인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사회로서의 현대적 대도시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며, 그 때문에 ‘우리의 도시’가 아니라 ‘나의 도시’라고 하게 된 것이다.      소설은 이와 같은 ‘나의 도시’를 보여 주기 위해 여러 가지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고정식 시점이 아니라 이동식 시점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양화에서는 고정식 시점을 사용한다. 더러 시공간적으로 얽혀 있는 내용을 표현한 그림조차도, 낱장의 그림을 나란히 배열하거나 아니면 화면 자체를 대형화하거나 혹은 반대로 화면은 그냥 두고 각각의 대상을 축소하거나 해서 어쨌든 한눈에 그림이 들어오도록 만든다. 더구나 나중에 원근법을 사용하게 되면서 이런 고정식 시점의 사용은 더욱 확고하게 고착되었다. 그렇지만 동양화에서는 종종 다중적 시점이라든가 이동식 시점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김홍도의 <씨름>을 보면 원근법 없이 다중적 시점을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으며, 안견의 <몽유도원도>라든가 송나라 장택단(張擇端)의 <청명절 강변의 풍경(淸明上河圖)>과 같이 오른손으로 펼쳐 가면서 왼손으로는 말아 가는 가로로 된 두루마리 그림을 보면 이동식 시점을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리적으로는 도저히 한눈으로 파악할 수 없는 다중적 화면이 중첩되어 있거나 또는 마치 배를 타고 유람하듯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장면이지만, 보는 사람은 그런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시시가 이 소설에서 사용한 방법이 바로 이와 유사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소설은 연관성이 그리 강하지 않은 자질구레한 사건들을 잡다하게 제시하면서, 표면적인 화자 아궈의 시선을 그대로 사용하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전지적인 화자나 각 등장인물의 시선을 사용하면서 도시의 이런저런 면면들을 계속 보여 준다. 작가 시시는 동양화의 경우처럼 일종의 이동식 시점을 사용한 것인데, 등장인물과 사건 그 자체보다도 도시라는 공간을 중시한 의도와 잘 부합할 뿐만 아니라 애초 연재소설이라는 특수성과도 잘 결합하는 방식이었다. 즉, 첫째로 이 방법은 특정한 고정적 시각을 해체하고 다양한 시각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도시라는 공간을 구석구석 살펴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만족시켜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둘째로, 이런 특징은 독자가 매일 신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현재 장면을 상상함과 동시에 지나간 장면과 대조하도록 만들어 주고 또 다음 장면을 미리 떠올려 보도록 해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두 번째 점은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이 소설은 처음 연재 당시 매일 1000자 정도에 몇 마디 글자를 부기한 그림 하나씩과 함께 약 150일간 연재됐다고 한다. 그런데 웡까이치(黃繼持)의 회상에 따르면, 스토리성이 강한 일반 연재소설과는 달리 이 소설은 각각의 연재 내용이 끊어지는 듯 이어지는 듯하면서 종국적으로는 언제까지나 계속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고 한다. 즉 이런 방식은 유한한 공간을 무한한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중국의 정원 예술의 수법과 유사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소설 속에서 묘사된 것처럼 작은 문으로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정원이 나타나는 담으로 둘러쳐져 있는 공원에서 보듯이, 정원을 한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하나의 공간으로 꾸미지 않고 여러 개의 작은 공간으로 분할함으로써 마치 그런 공간이 무수히 이어질 것 같은 상상을 부여하는 수법인 것이다. 혹시 베이징 이화원(頤和園)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점을 비교적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화원의 인공 호수를 만들 때 하나의 호수로 만들지 않고 제방과 다리로 분할해 놓음으로써, 마치 호수가 계속 중첩되면서 무한히 이어질 것 같은 시각적 효과를 주고 있는 것이다. 혹시 시시 본인은 그런 것까지 미처 의식하지 못했을지라도, 결국 소설 속 ‘나의 도시’는 크지 않은 유한한 공간이면서도 무한히 확장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시간적으로도 무한하게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도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적어도 당시 홍콩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들의 도시, 홍콩에 대한 연속성과 신뢰감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 번 웡까이치의 느낌을 거론해 보자. 그에 따르면, 나중에 이 소설을 다시 책으로 만나게 되었을 때, 아마도 연재 당시와 출판 시점 사이의 시차에 따라 연령이 많아진 탓도 있겠으나, 실인즉 책이 가지는 특성상 읽어 갈수록 차츰 줄어드는 분량 때문에 소설 자체의 유한함을 느꼈다고 한다. 이 점은 오늘날 홍콩이 이미 중국에 반환된 것과 맞물려 미묘한 느낌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다.      소설에서 인상 깊은 서사 방식은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몇 가지만 더 거론해 보도록 하자.   첫째, 등장인물의 말투든 화자의 말투든 간에 전체적으로 아이들의 어투를 기조로 하고 있다. 그러나 앞뒤가 안 맞는다든지 불명료하다든지 하는 경우는 없고 아주 정련되어 있다. 그러면서 아직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은 아이들이 종종 만들어 내는 기발한 표현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소설의 첫 부분에서 “나는 그녀들에게 나의 머리를 끄덕였다. … 그녀들은 말했다. 그럼 너희가 살도록 하마”라고 하고 있는데, ‘나의 머리’니 ‘너희’니 하는 말을 넣은 것은 단순히 어색한 말실수가 아니다. 이는 화자의 시각에서 그녀들과 나, 그녀들과 너희(즉 나와 내 가족)를 구별하는 데서 나온 아이다운 말인 것이다.   둘째, 이 소설은 이처럼 아이들의 시각이나 어투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종종 아이들의 노래까지도 직접 섞어 놓기도 한다. “토스트, 토스트, 참 맛있어”, “빙빙빙, 국화 밭, 볶음밥, 찹쌀떡” 등이 그렇다. 이런 노래들은 당시 홍콩에서 일상적으로 들을 수 있었던 동요들로 한편으로는 이 소설에 홍콩적 특성을 부각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음악적 효과를 자아낸다. 이 소설에 음악적 분위기를 부여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빠르릉 빠르릉”과 같은 다수의 의성어 사용, “해야 흰색 해야” 이하에서 보이듯이 적절한 장단구의 구사, “방문 창문, 탁자 의자, 그릇 대야, 손 뼘 발걸음, 산수 논밭, 강아지 송아지”와 같은 유사 구절의 반복 등이 모두 그렇다.   셋째, 이 소설에는 다양한 색깔을 보여 주는 어휘, 특정 풍경이나 장면에 대한 시각적 묘사, 더 나아가서 의도적으로 문장을 끊어 사용함으로써 활자 배열 자체가 주는 그림 효과, 작자 자신이 손수 그려서 군데군데 삽입한 동화적 그림 등에 따른 일종의 회화미도 나타난다. 그리고 아마도 작가가 영화 작업을 하면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바, 몽타주 방식처럼 장면들을 퍼즐처럼 섞어 놓은 것이라든가 장면 전환 효과를 보이는 부분 역시 종종 등장한다.   넷째, 벽에 못을 박는 이야기 등에서 보듯이 사물을 의인화한다든가 슈퍼슈퍼마켓과 대발이 이야기에서 보듯이 아이들의 과장적이고 동화적인 상상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현실에서 존재하는 것들을 마치 사진 찍듯이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낯설게 하기’ 효과를 내면서 흥미롭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또 전체적으로 순수하고 따뜻한 느낌을 유지해 주는 역할도 한다. 예를 들면 못이 잘 안 들어가는 삼합토 벽과 폭력배 조직인 삼합회를 연결시킨 것처럼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 줄 때조차도 온화한 비판 효과를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중국 전통 소설인 장회소설이나 오늘날 텔레비전 연속극에서 즐겨 쓰는 것과 다소 유사한 구성을 사용하고 있다. 즉, 소설 전체가 에피소드의 집합으로 되어 있고, 에피소드마다 중심인물이 있지만, 특정 에피소드가 빠진다고 해도 대체로 전체 사건의 진행에는 크게 지장이 없는 그런 방식이다. 그러면서도 확연히 다른 점도 있는데, 장회소설이나 연속극이 일반적으로 스토리 위주의 시간을 중시하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면, 이 소설은 사건보다는 장면과 묘사 또는 인상 위주의 공간을 중시하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과 더불어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점들로 인해, 1975년 연재 당시 16만 자였던 것을 이후 1979년과 1989년에 각각 6만 자와 12만 자를 발췌해 출간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작이 가진 원천적 생명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또 각기 그 나름의 새로운 작품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번역본은 1979년 홍콩에서 출판된 6만 자 판을 완역한 것이다. 시시의 ≪나의 도시≫는 1974년에 창작되어 1975년 1월 30일부터 6월 30일 사이에 홍콩의 ≪쾌보(快報)≫에 연재되었으며 연재 당시 분량은 대략 16만 자였다. 그 후 1979년 홍콩에서 시시가 편집을 맡은 쏘우입출판사(素葉出版社)가 출범하면서 그중 약 6만 자를 작가 자신이 발췌해 창사 기획물로 출판했다. 그 뒤 1989년에 일부 내용을 삭제 또는 수정해서 약 12만 자 분량으로 타이완의 윈천문화(允晨文化)에서 발간했고, 1996년에는 이 저본을 바탕으로 쏘우입출판사가 다시 약 12만 자 분량으로 증보판을 냈으며, 1999년에는 타이완의 훙판서점(洪範書店)에서 연재 당시의 분량에 비교적 근접하는 약 13만 자 분량으로 출간했다. 신문 연재 당시에는 저자명을 아궈라고 했으나 후일 책으로 내면서 시시로 바꾸었고, 연재물이든 책으로 된 것이든 간에 수량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모두 저자가 손수 그린 간단한 그림들이 함께 실려 있다.   번역을 하면서 가장 주의를 기울인 것은 가능한 한 이 소설의 특징을 살리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간혹 한국어 표현상으로는 부자연스러운 곳도 없지 않았다. 예컨대, “지상 케이블카 역을 지나고, 회차장에 도착해서, 빙빙빙, 국화 밭, 볶음밥, 찹쌀떡”이라고 한 부분이라든가, 아팟(阿髮)이 옥상 청소를 하면서 “그것들이 안 보이게 씻어 내릴 수 있었습니다(才把它們沖不見掉)”라고 한 부분이 그렇다. 굳이 설명을 덧붙이자면 후자의 경우 원래 한국어로든 중국어로든 “그것들을 씻어 내릴 수 있었습니다(才把它們沖掉)”라고 해야 하겠지만, 작가가 의도적으로 아이들의 말투를 흉내 내 썼고 그 때문에 번역 역시 그대로 따라 한 것이다. 마찬가지 차원에서 홍콩과 관련된 고유명사는 홍콩 방언, 즉 광둥어(廣東話)의 발음을 사용했으며, 그 외의 고유명사는 교육부의 ‘외래어 표기법’에 맞추어 중국 표준어 발음을 사용해 표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옮긴이로서 그런 노력이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는지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자신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어떤 문학작품을 다른 문화권의 다른 언어로 그대로 옮긴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옮기는 동안 불가피하게 어떤 것들은 사라지고, 어떤 것들은 변형되고, 심지어 새로운 것들이 추가되기 마련인지도 모르며, 바로 그런 것이 잘못된 일이라기보다는 그 나름의 의미를 갖는,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옮긴이의 주관적 바람이 있다고 한다면, 작가 시시가 만들어 낸 그 무엇을 조금이라도 근사하게 옮겨 내고, 독자들이 나의 그러한 작업을 읽으면서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작가에게 다가가면서 조금이라도 더 새로운 그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몇 마디 보충의 말과 감사의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번역본에서 숫자를 넣어 나누어 놓은 것은 1979년 판에는 없는 것이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옮긴이가 1989년 판을 참고로 해 추가한 것이다. 번역본에서 아예 문장부호가 없거나 물음표를 써야 될 부분에 마침표를 찍거나 한 것은 작가 시시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이 작품 해설을 쓰면서 나는 내가 예전에 썼던 글과 나의 홍콩 시절 은사로 이미 별세하신 웡까이치(黃繼持) 선생의 ≪시시의 연재소설: 추억하며 다시 읽기(西西連載小說:憶讀再讀)≫(追跡香港文學, 香港: 牛津大學出版社, 1998, pp.163∼179), 그리고 허푸런(何福仁)의 ≪<나의 도시>의 한 가지 독법(≪我城≫的一種讀法)≫(<我城>, 臺北: 允晨文化出版社, 1995, pp.219∼239) 등을 참고했다. 만나 본 적도 없지만 이 작품을 창작하고 한글판 출간을 허락해 준 작가 시시에게 감사드리며, 비록 저자 시시로부터 직접 저작권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러기 위해 노력해 준 또 다른 나의 홍콩 시절 은사 로우와이륀(盧瑋鑾) 선생께 감사드린다. 나와 함께 타이완 문학 및 홍콩 문학의 작품과 화인 화문 문학 작품의 번역에 동참해 준 현대중국문화연구실의 여러 젊은 연구자들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끝으로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기획하고 추진해 준 지만지의 정경아 편집장에게 감사드리며, 특히 이 책을 선택하고 읽어 줄 미래의 독자 여러분에게 미리 감사드린다.   

2010년 10월 30일

김혜준, 〈해설〉, 시시[西西] 지음, 김혜준 옮김, 《나의 도시》,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02.07), pp.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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