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1.05.07
수정일
2011.05.07
작성자
김혜준
조회수
752

(고운선 해설) 원향인

《원향인》(중리허) 작품해설
            

고  운  선

\"《원향인》(중리허)\"《원향인》 중리허[鍾理和] 지음, 고운선 옮김,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02.07.   중리허는 타이완 문단에서 대표적인 ‘향토문학 작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향토문학은 자신의 경험과 생활을 제재로 한 것이 많아서, 불합리한 사회현상에 대한 분노라든지 역사적인 기록에 중점을 둔 그런 성향을 띠지는 않는다. 그래서 개인의 사생활을 소재로 활용한 평범한 작가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순탄치 못한 결혼과정․병마로 인한 건강 악화․경제적 궁핍을 겪은 사람치고, 고난을 외면하거나 포장하지 않고, 삶에 대한 믿음과 용기를 담담한 어조로 표현할 줄 아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원향인〉은 1959년 작가의 만년에 창작되었고, 사후 1976년 臺北遠行出版社에서 《원향인》이라는 단편소설집으로 출판되었다. 타이완 사회에서 ‘族群(Ethnicity)’을 중심으로 하는 정체성 문제가 쟁점이 되었을 때 이목을 끌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타이완은 현재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일찍부터 이민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1662년 明朝의 鄭成功이 네덜란드인을 쫓아내고 들어와 1683년 淸朝에 패할 때까지 다스린 것, 이것이 漢人이 타이완에 설립한 최초의 정권이었다. 1684년 청에 편입된 이후 1895년까지 200여 년간 청조의 지배 하에 있다가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여 맺게 된 시모노세키(下關)조약으로 인해, 1895년부터 50여 년간은 일본에 의해 통치되었다.   〈원향인〉에는 (객가) 민남인․일본인․(중국대륙의) 원향인이 등장하여 상호 교차하면서, 주인공의 족군 신분이 어디에 귀속되는가 하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 일제 치하에서 타이완 사람들은 일본인으로 인식하도록 강요받았고, 해방 후 국민당 통치 하에서는 대륙 중국과 하나인 중국인으로 인식하도록 강요받았다. 하지만 일본과 타이완의 관계는 식민과 피식민의 관계였고, 국민당 정부와 타이완 사람들의 관계는 사회구조와 가치관에서 차이를 가지고 있는 관계였다. 국민당이 1949년 패전으로 인해 타이완으로 후퇴하기 이전부터 타이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토착 원주민․정성공 시절에 온 이민자․청조 때 온 이민자․일제 치하에서 교육받아 일본어로 사고하는 자 등 민족적․문화적으로 복잡한 사회 구성체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타이완 문단에서 말하는 ‘향토문학’은, 국민당 정부의 관방 이데올로기에 저항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즉 ‘향토문학’에는 ‘타이완문학’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고 하겠다. 국민당이 내세우는 반공의식이나 중국 민족주의보다는 대륙 중국과 다른 타이완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중점적으로 반영하고자 한 흐름이라 할 수 있겠다.   〈원향인〉에는, 주인공이 어릴 때부터 “원향”이라는 말을 접하면서, 바다를 사이에 두고 보이는 대륙 중국이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고향이라고 믿어왔으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그 자신은 원향과 뗄 수 없는 혈연관계가 있다고 생각한 대목이 나온다. 그래서 어떤 비평가들은, 중리허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고향’에 대한 맹목적인 감정을 두고, 중국 민족주의식 애국 색채가 강한 작품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중리허가 죽기 1년 전에 완성된 것으로, 과거의 기억을 재건하는 방식으로 창작되었다. 그리고 그는 타이완에서 대륙으로, 만주에서 베이징으로, 대륙에서 다시 타이완으로 이주한 경험을 가진 작가이기도 하다. 작품에는 현재의 나/타이완인과 원향 사람/중국인의 차이가 중점적으로 서술되고 있고, 중국인(원향 사람)의 이면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래서 마지막에 나오는 “원향인의 혈통으로서, 반드시 원향으로 돌아가야지만 들끓는 마음을 멈출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구절을, 민족과 혈연으로 귀착되는 지점으로 보지 말고, 祖國의식(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고향)과 이별하는 지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비평가들도 있다. 전반부에서 묘사하고 있는 원향 사람의 이면, 부친의 중국에서의 사업 실패, 일본인 교사의 중국에 대한 이미지, 이 모든 것이 조국을 향한 막연한 동경이 실패할 것임을 예고하는 복선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타이완인의 정체성은 원향과의 혈연관계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원향 사람은 아니란다”, “우리는 더 이상 원향에 살지 않게 되었잖니” 하는 식으로 지역 문화를 중심으로 형성될 수도 있다는 여운을 남긴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체성은 본래적인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인 이유나 기타 목적으로 사후에 조작되는 것인가 하는 민감한 사안을 안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농촌사회와 농민을 제재로 삼은 향토작가, 사적 체험을 반영한 자전적 작품을 쓴 작가로만 평가되었던 중리허가, ‘정체성’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다각도로 조명될 수 있다는 점만큼은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협죽도〉는 1944년에 창작된 중편소설로, 1945년 베이징 馬德增書店에서 다른 단편들과 함께 《협죽도》라는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이 단행본은 중리허 생전에 출판된 유일한 작품집이기도 하다. 베이징을 대표하는 주거형태이자 중국의 건축 양식을 대표하는 사합원을 배경으로, 당시 하층 소시민들의 물질적인 빈곤과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이성과 도덕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중리허가 타이완에서 장기간 가지고 있었던 원향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는, 그가 대륙에서 살 때 일반 평민들을 관찰하는 시선을 무의식중에 좌우하였고, 그 자신의 불안정한 생활과 대륙 중국인과의 교류에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언어․사상 상의 장애는, 중리허로 하여금 특히 사회의 어두운 면과 인성의 나약함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했다.   〈협죽도〉에는 체면 따지지 않는 인물, 게으른 인물, 나약한 인물, 저항할 줄 모르는 인물 등 중국인의 형상이 상당히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어서, 대륙의 학자와 비평가들은 이것이 중리허 작품의 한계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즉 당시 중국에는 역사적으로 많은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었는데, 중리허는 작가로서 이러한 점은 무시한 채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호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丁帆, 《中國大陸與臺灣鄕土小說比較史論》) 반면 타이완에서는 똑같은 점을 두고서, 타이완인의 원향에 대한 상실감을 작품화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하고(陳映眞, 〈原鄕的失落: 試評〈夾竹桃〉〉), 루쉰(魯迅)의 〈아Q정전〉처럼 광범위한 의미에서 국민성 비판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張燕萍, 〈人間的條件: 鍾理和文學的魯迅〉) 대륙의 입장에서는 작품의 시대적․공간적 배경이 중국임을 감안하여 중리허를 타이완 작가로만 바라보았을 가능성이 높고, 타이완 입장에서는 〈원향 사람〉과 같이 정체성 문제로 보거나 중리허가 독학으로 중국어를 익힌 것과 5․4신문학운동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이력에 무게를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시각이 되었든 〈협죽도〉에는, 베이징 특유의 생활공간이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이러한 중국 특유의 공간을 중심으로, 빈곤과 삶의 무게에 눌려 ‘인성(인간다움)’을 돌아볼 여력이 없는 인물군상이 생생하게 형상화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겠다.   〈도망〉은 1958년에 창작되어, 역시 사후 단편집을 묶어서 낼 때 함께 출판되었다. 同姓이라는 이유로 사랑의 도피를 감행해야 했던 중리허의 개인적 경험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자전적인 작품이다.   중리허가 타이완을 떠나게 된 이유에는 원향에 대한 호기심, 중국어 창작에 대한 열망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현실적인 이유를 꼽으라면 중핑메이와의 사랑의 결실을 맺기 위함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다. 〈도망〉에는 집안의 반대에 부딪치게 되는 자세한 내막은 생략된 채, 두 사람이 악조건 속에서도 서로 버팀목이 되어주며 꿋꿋하게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중점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때 두 사람의 도망은, 객가 사회에 남아있던 동성불혼이라는 봉건적 유습에 대한 저항이자 기존의 생활방식과 결별하고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밖에 중핑메이가 소박한 시골 소녀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하는 부분, 기차와 증기선으로 상징되는 현대 문물, 타이완-일본-조선-만주로 연결되는 노정 등이 작가의 사적 경험과 잘 어우러져 당시의 사회 풍경을 디테일하게 전달해 준다 하겠다.   위의 세 작품은 중리허의 생평을 감안해 볼 때, 〈원향인〉, 〈도망〉, 〈협죽도〉의 순서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향인〉의 중층적인 의미로 볼 때  〈도망〉, 〈협죽도〉, 〈원향인〉과 같이 수록된 순서와 정반대로 읽어도 무방하리라 생각된다.   번역 대본으로는 2009년 베이징의 華夏出版社에서 출판한 《鍾理和代表作․原鄕人》을 사용했다. 중리허 작품은 《목어소리(현대타이완소설선2)》(한걸음더, 2009)에서 〈가난한 부부(貧賤夫妻)〉외에 현재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없다. 이러한 실정을 감안하여 이번에 소개하는 〈원향인〉, 〈협죽도〉, 〈도망〉 3편 모두 완역하였으며, 이런 작업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부산대학교 현대중국문화연구실(http://cccs.pusan.ac.kr)의 여러 선생님들과 동학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고운선, 〈해설〉, 중리허[鍾理和] 지음, 고운선 옮김, 《원향인》,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02.07), pp.7-16.

필자의 전재 허락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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