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1.06.09
수정일
2021.06.09
작성자
김예윤
조회수
171

[비평문 2] 기억 속에서 찾은 정체성

억압과 통제, 역사를 새로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던 혼란한 台? 내에서 국민은 갈팡질팡할 뿐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 외성인 아버지와 본성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외성인 2세 朱天心은 《고도(古都)》를 통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나아가 그녀의 성찰은 台? 사람들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까지 이어져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기억과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을 품게 한다. 총 다섯 가지의 독립된 작품들이 수록된 《고도(古都)》를 ‘정체성’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베니스의 죽음(威尼斯之死)>에서 작가인 ‘나’는 소설 속 등장인물의 인생사를 함부로 정하고 싶지 않았고, 따라서 카페의 분위기가 소설의 흐름을 결정하도록 놔두었다. ‘나’의 이러한 창작 수법은 무의식 속에서 공간이라는 개념이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얼마나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보여준다. 이러한 공간과 자아의 상관관계는 < 고도(古都)>에 나오는 과거와 현재, 교토와 台北를 오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해 혼란해 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공간과 인간의 정체성은 어떤 관계성을 띄고 있을까. 인간은 고의적이든 아니든 살면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를 ‘역사’라고 부르며, 선대의 흔적을 발견한 후대는 그 사료들을 통해 과거를 해석하고 자신에게 정체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렇게 공간과 그 공간에 남겨진 자취를 보고 현재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꽤 위험한 일이다. 《현대 중문 소설 작가 22인》에 따르면 '주류의 역사는 과거에 대한 선택적인 기억의 역사이다. 또는 터놓고 말해서 (대부분의) 과거를 망각하는 역사이다'. <고도(古都)> 속의 ‘너’의 추억과 같은 비주류의 역사는 사회나 정치에 의해 짓밟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시에는 자신의 역사가 짓밟혔다는 것을 모른 채, 주류의 역사를 무작정 따라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여론이 바뀌고 생각을 더 깊이 할 수 있는 나이가 된다면 과거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마치 ?桃包를 받아먹은 적이 없는 친구들을 부러워 한 ‘너’처럼 말이다.

《현대 중문 소설 작가 22인》에서는 ‘오래된 영혼의 승리란 패배를 의미한다’고 한다.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나는 패배의 앞에 한 단어를 추가하고 싶다. 오래된 영혼의 승리는 ‘현재의’ 패배를 의미한다. 삶이라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매일 다른 모습을 하며 살아간다. 인간의 정체성 또한 고정된 과거의 것이 아닌 스스로 다듬어나가고 발전시킬 수 있는 현재진행형의 것이다. 그러니 역사를 통한 자아 성찰도 좋지만, 자신의 현재에 대한 고민과 발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헝가리의 물(匈牙利之水)>에서는 앞선 작품들과 달리 후각을 통한 기억의 여정을 다룬다. 후각은 시각에 비하면 보조적인 감각으로 인식되지만, 당시의 기억과 그때의 감정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나’와 A는 후각에 몸을 맡겨 옛 추억들을 찾고 그 속에서 과거의 나를 발견하며 또 다른 정체성을 확립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다양한 감각 중 후각에 집착하는 것일까? 당시 台?은 격변하는 시대를 보내고 있었고, 그런 시대 속에서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려면 시각과 같이 존재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흔적이 사라지더라도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수 있는 후각과 같은 감각이 중요했다. 마치 향수를 뿌린 후 시간이 지나면 첫 향과알코올이 날아가지만, 잔향이 은은하게 베여있는 것처럼 말이다. 주류에게 선택받지 못했기 때문에 매일같이 떠올릴 수는 없지만, 길을 지나갈 때 어쩌다가 한 번 마주칠 수 있는 그런 향이 필요한 것이다.

<라만차의 기사(拉曼?志士)>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죽음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풀어나가는 점이 흥미로웠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라만차의 기사(拉曼?志士)>에서는 타인에 의한 정체성의 확립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즉, 작품의 주인공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외부적으로 보이는 죽음을 준비한다. 자신이 죽으면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한 모습만을 보고 살아생전의 자신을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타인에 의해 규정되는 나의 모습이 정말로 중요한 것인가?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는다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어떤 옷을 입고 발견될 것인가를 걱정하는 주인공을 보며 내면의 해답을 찾기보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주변으로부터 확인받으려 하는 어리석음을 느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에 가지 못하고 좋아하는 옷을 입지 못하는 등 자신의 정체성을 버려가면서까지 인위적으로 또 다른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역설적이라고 생각했다. 朱天心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는 현대인의 삶에 대한 반성과 풍자로까지 이어졌다.

이렇듯 작가는 자신의 존재, 즉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고도(古都)》에 담아내었다. 생사와 감각을 넘어서 자신을 세상에 끊임없이 증명해내려는 인간의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모두 한 번쯤은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기억은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물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괴로운 과거도 있지만, 삶은 기억들의 연속이다.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우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것은 인간만의 특권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고통을 포함한 인류의 기억을 개인의 것으로 국한하지 않고 민족, 언어 등을 넘어 함께 공유함으로써 집단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다. 《고도(古都)》는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의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미래의 바람직한 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1) 왕더웨이(王德威)지음, 김혜준 옮김, 《현대 중문소설 작가 22인(世???: ?代小?20家)》, (서울 : 학고방, 2014.11)
2) 주톈신(朱天心)지음, 전남윤 옮김, 《고도(古都)》,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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