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1.06.09
수정일
2021.06.09
작성자
박지현
조회수
187

[비평문 2] 여성, 독립적 주체, 그리고 성장

<침묵의 섬(?默之?)>은 천몐(晨勉)과 ‘또 다른 천몐’의 이야기를 번갈아서 보여주며 소설을 전개한다. ‘또 다른 천몐’이라 함은 주인공 천몐이 그녀의 불우한 유년시절과 아픈 현실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수감 생활을 하던 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때문에 그녀와 동생 천안은 어릴 적부터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독립적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똑똑하고 자립심 있는 그녀였으나 마음 속에는 항상 상처가 있었다. 따라서 그녀가 만들어낸 ‘또 다른 천몐’은 그녀와 반대의 배경인 화목한 가정에서 구김없이 자란 인물로 그려진다. 소설 초반에는 천몐과 그녀의 분신은 가정 환경이 반대이고, 직업 또한 다르며 ‘또 다른 천몐’은 기혼이었기에 둘은 정반대의 인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을 계속해서 읽어 나가다 보면 그녀들은 모두 사랑에 대한 아픔을 겪으며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하는 주체적 여성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녀의 분신은 단순히 천몐 그녀와 반대인 인물로 복제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다른 어떤 공간에서 살아가는, 천몐 자신과 같이 성(性), 사랑, 가족의 사이에서 성장하는, 같지만 또 다른 주체인 것이다.

천몐과 ‘또 다른 천몐’의 삶에서 성(性)이란 것은 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성장의 과정 중 하나로 그려진다. 천몐의 주변인물들과 ‘또 다른 천몐’의 주변 인물들은 이름과 외모가 같으나 성별이나 배경 등이 다르게 나온다. 둘은 이러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특히 성적인 관계에서 매우 자유롭고 진취적이다. 소설 속 둘은 끊임없이 주변 인물들과 잠자리를 가진다. 그녀들의 이러한 생활은 다른 시선에선 자칫 문란해 보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가 빠르게 발전했으며 지금은 사람들은 그 소용돌이 속에서 각자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그 가치관이 존중 받을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들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그들의 생활이 사회적 관념에서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는 데 시간을 들이는 것은 이 소설을 잘못된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원초적 욕구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그것을 자신의 자아를 성장시키는 매개체로 사용한다는 그 점에 주목해야한다. 천몐은 관계를 통해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억눌러진 감정을 들여다 보았고, ‘또 다른 천몐’은 살아있음을 느꼈으며,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었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도 둘은 누구에게도 귀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주체로서 남게 된다. 천몐과 ‘또 다른 천몐’은 모두 임신을 했으나, ‘또 다른 천몐’은 아이를 지웠다. 천몐은 출산을 선택했으나 자신이 잉태할 생명체에게 평생을 약속한 것이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정착해 평생을 함께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누군가를 만나고 성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 임신이라는 것도 그들에게는 구속이 아니며 성장의 한 단계인 것이다.

공간의 이동에 따라서도 그녀들은 성장한다. 천몐은 자신이 단순하게 살아갈 수 없는, 영원히 어느 한곳에만 머무를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인 대니를 처음 홍콩(香港)에서 만났지만 그들은 여러 섬을 옮겨 가며 매번 다른 곳에서 서로를 마주했다. 독일에서 대니를 보았을 때는 고독의 감정을, 발리에서 그를 만났을 땐 고정적 관계와 규칙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또 그녀는 싱가포르에선 동성애자인 신과의 관계 속에서 우정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사랑을 알아갔고 자신을 알아갔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그녀는 섬이라는 공간을 특히 중시했다는 것이다. 천몐은 섬에서만 대니를 만났다. 그녀는 섬이라는 공간 속에서만 어떠한 일들을 직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큰 국가와 땅덩이에선 또렷한 사고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또 다른 천몐’ 또한 공간의 이동을 반복하며 자신을 성장시켰다. 남편 펑이의 사업을 돕기 위해 중국 대륙에 갔을 때 가장 원시적인 것이 가장 가치 있는 것임을 깨달았으며, 홍콩의 부속 섬에서 생애 처음 꾼 꿈으로 현실의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공간의 이동은 그녀들에게 새로운 인물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그녀들은 장소를 옮길 때마다 연인인 대니나 새로운 인물들을 만났고, 그 과정에서 아픔을 느끼기도, 사랑을 느끼기도 했다. 특히 ‘또 다른 천몐’은 미국과 타이베이의 병원에서 만난 대니의 어머니에 대해 같은 여성으로서, 또 자신과 닮은 그녀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늙어가고 더 이상 매력적인 여성이 되지 못하는 것을 대니의 어머니는 아들들을 괴롭히는 데에서 위안을 얻었다. 죽음을 빌미로 아들들을 부르고, 아들의 연인을 만나지 못하게 했다. 대니의 어머니는 자유와 포용력을 가진 ‘또 다른 천몐’과는 반대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픔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천몐은 젊고 아름다웠으며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대니의 어머니가 모든 것을 잃은 그 시점에서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자신의 아들들뿐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상실을 통해 그들은 성장했다. 천몐과 ‘또 다른 천몐’이 사랑하는 이는 대니였다. 그들은 마지막에 모두 대니를 떠났다. 천몐과 ‘또 다른 천몐’은 대니와 교제를 하는 도중에도 수많은 이성들을 만났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는 항상 대니가 있었다. 그들은 대니를 만나면서 특히 자신을 알게 되고 성장했으며, 자아의 성장을 이룬 순간 그녀들은 독립적인 개인으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 대니를 떠났다. 그것은 결코 가슴 아픈 결말이 아니다. 둘의 관계에 있어 천몐과 대니 둘 다 성장했기 때문이다. 천몐과 ‘또 다른 천몐’은 자신의 동생인 천안을 잃었다. 천몐의 동생 천안은 앨버트와의 이혼 후 재결합의 순간에서, ‘또 다른 천몐’의 천안은 자신의 성적 성향을 찾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들의 동생들은 사랑에 아파하다 자신을 상실시키는 것으로 그 아픔을 멈춰냈다. 소설은 천안의 이야기에 대해 깊게 다루고 있지 않지만 그들은 천몐과는 다르게 성장통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 같다. 동생의 죽음은 ‘또 다른 천몐’을 특히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천몐은 부모님을 잃어 상실에 대한 아픔을 알고 있었지만 ‘또 다른 천몐’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천안을 잃음으로써 처음으로 상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이겨냈기 때문에 또 한번 성숙해졌다.

개인적인 견해로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 성장 소설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단순한 성장 소설로만 볼 것이 아닌 여성의 성장 소설임을 특히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 중문소설 작가 22인>에 의하면 소설 속 섬이라는 공간은 ‘협소하고 폐쇄적인 공간으로써 사회관계의 단절과 균열을 상징’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외롭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고독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 섬 속에서 정욕을 매개체로 사람들은 소통하며 그 소통의 중심에 여성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두 여성은 섬이라는 것을 자신의 기저에 두고 성(性), 공간의 이동, 상실을 통해 성장한다. 더욱이 소설 속 두 인물은 자신의 감정에 파고듦에 있어서 솔직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는 변화하고 있었다. 공간이 변화했고, 그들의 직업 또한 변화했으며, 주변의 인물들이 변화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모두 현대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선 자신을 전부 보여준다는 것은 피해야할 일이라는 것을 안다. 모두가 사회에서 각자의 페르소나를 만들어 자신의 진짜를 감추고 있다. 하지만 천몐과 ‘또 다른 천몐’, 그들은 달랐다. 상처를 마주하고 그것을 치유하는 주체를 자신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그들은 상처를 이겨내고 성숙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 중문소설 작가 22인>이 말해주는 것처럼, 또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도덕주의자들은 두 인물을 색적광으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시각에서 두 인물을 보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이라 생각한다. 두 인물이 여성으로서, 한 독립적 주체로서 자신이 가진 아픔을 얼마나 솔직하게 드러내고 이겨내 성장이라는 결실을 이루어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진정으로 이 소설을 감상하는 자세일 것이다.

[참고문헌]?
왕더웨이(王德威) 지음, 김혜준 옮김, 《현대 중문소설 작가 22인》, (서울: 학고방, 2014)
쑤웨이전(???) 지음, 전남윤 옮김, 《침묵의 섬(?默之?)》, (지식을만드는지식(지만지),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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