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1.06.09
수정일
2021.06.09
작성자
안소은
조회수
142

[비평문 2] '위로'를 주는 '예술 작품이자 글'인 소설

《餘生》이라는 제목이 눈에 처음 들어왔을 때, 평소 사람들이 ‘여생’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드는 느낌, “어느 정도의 삶을 살고 남은 ‘여생’에 대한 내용”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표현으로 하자면, “우서 사건 이후의 余(남은) 사람들의 生(삶)들”, 책의 내용을 빌리지면 “우서에서 두 차례 살육이 지나간 뒤 살아남은 생존자들, 사건의 당사자, 희생자들뿐 아니라 그 후손들이 감당해야 했던 ‘사건 이후의 시간’을 의미”한다.

‘우서 사건霧社事件’은 타이야인들이 과거부터 행해져온 台? 원주민에 대한 차별과 무시, 그리고 일본 식민지 지배에 억눌려 있었던 감정들을 자신들의 전통 의식인 ‘음가야’라는 ‘머리 사냥 의식’을 일본인들에게 행하며 표출해 그 보복으로 타이야인들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학살을 당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원래도 도회지로 잘 나오지 않던 타이야인들이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안에서 그들은 점점 쇠퇴하고 ‘타이야인’이라는 하나의 문명이 잊혀져 가지만 그들은 우서 사건霧社事件의 생존자들로써 희생자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이 있고 잊지 않고 살아가기에 여전히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餘生》은 굉장히 복잡한 서술 문체이며 독서 초반에는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 작가의 입장을 파악하는 데에 있어 어려움을 준다. 책의 삼분의 일 정도 왔을 때 그 때서야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완벽한, 100퍼센트 몰입도에 이르게 된다. 어쩌면 작가가 이렇게 구성하여 독자인 내가 이렇게 느끼게끔 만든 것에 대해 칭찬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대다수가 내리긴 하지만, 나는 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소설의 초반부터 끝까지 독자의 집중력을 놓지 않고 몰입도 높게 읽히는 책이었으면 더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루는 주제나 내용 면에서는 충분히 독자들의 집중력을 끌 수 있지만, 작가, 즉 주인공인 ‘舞?’가 하고자 하는 말을 소설 초반에 명확히 전달되지 않았고 복잡한 문체가 문제가 되는 듯 보인다.

또한, 이 모든 것이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인지, 아니면 100% 허구인 소설인지 혼란스럽다. 당연히 독자 입장에서 이렇게 생각하게끔 작가가 치열하게 구성하고 의도한 바일 것이다. 하지만, 본디, 소설을 포함하여 ‘글’이라는 것은 읽었을 때 독자가 적어도 헷갈리지 않게 끔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윗 문단에서 언급한 내용과 소설이 사실 기반인지 허구인지 등 많은 요소들이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읽는 내내 혼란스럽게끔 만든다. 현대에 들어서 ‘작문’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등 예술과 생활 전반에도 ‘복잡성’이 굉장히 많이 대두되고 있다. 이 점을 고려하면 대만의 현재 작가 중 가장 뛰어난 작가라고 평가받는 ‘舞?’를 논할 때 ‘너무 복잡하다’라고 평을 내리기에는 너무 박하고 보수적인 기준으로 대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글’이라는 본질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한 가독성, 간결함이 예술성보다는 앞선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굉장히 높게 사는 이유가 존재한다. 바로, 이 책을 펴냄으로써 台? 근현대사의 많은 사건들을 통해 치이고 상처받은 台? 원주민의 삶을 재조명, 위로, 추모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과거의 일은 ‘추억’으로 규정하며 한 번씩 기억하거나 망각하며 살아간다. ‘추모’라는 것도 그 사건 종결 직후 이외에는 잘 일어나지 않는 ‘행동’이다. 《현대 중문소설 작가 22인》에서 王德威는 “여생의 기억이란 사건이 흘러가 버리고 사정이 달라진 것에 대한 기억이다. 죽은 자는 이미 가버렸다지만 산 자는 또 어찌 견디랴, 추억이란 헛수고이기는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추모의 형식인 것이다. 여생의 글쓰기란 고통이 가라앉은 후에 그 고통을 되새기는 글쓰기다. 천 마디 만 마디를 말하더라도 더 이상 치유할 수 없는 그 상처를 되풀이해서 새기고 헤아리는 것일 따름이다. “라고 말한다. 분명 이 사건을 다시 언급하고 생존자, 피해자들에게 이 기억을 다시 상기시키는 것은 고통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된 도리로 많은 잠재적 독자들인 ‘사람들’에게 망각되어 가는 우서 사건霧社事件을 상기시키고 ‘힘 앞에서 무너져 갔던 사람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에 대해서는 위에 언급한 비판을 모두 상쇄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고 문헌>
王德威(왕더웨이)지음, 김혜준 옮김, 《현대 중문소설 작가 22인》, (서울 : 학고방, 2014.11)
舞?(우허) 지음, 문희정 옮김, 《여생餘生》,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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