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자 까오싱지엔
GAO Xingjian, the Nobel Laureate  


2000.10.23. 김유경
부산대 대학원 중문과
 
 

중국의 극작가·소설가이자 화가인 까오싱지엔高行健(1940-    )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스웨덴 한림원이 10월 12일 발표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까오싱지엔이 '보편적 타당성과 날카로운 통찰력, 언어적 독창성으로 가득한 작품을 통해 중국 소설과 드라마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중국 출신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중국에서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작가인 그의 경력과 작품, 수상 배경 그리고 중국 내외의 평가를 살펴보자.

까오는 1940년 중국 지앙시성江西省 간저우감州에서 태어났다. 1962년 베이징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했고, 1970년 안후이성安徽省에서 중등교사가 되었다가 1975년에 《中國建設》잡지사의 불어팀장을 맡기도 했다. 문화대혁명(이하 문혁) 기간에는 다른 지식인과 마찬가지로 농촌으로 간다. 그 기간에도 창작을 했지만 모두 불에 태워버렸고, 1979년에 첫 작품인 중편소설 《추운 밤의 별寒夜的星晨》을 출판하였다. 이어서 모더니즘적 요소가 두드러진 극작 《절대 신호絶對信號》(1982)를 시작으로 《정거장車站》(1983), 《야인野人》(1985) 등의 희곡을 잇따라 발표하였다. 그러나 1986년 《피안彼岸》을 발표하자, 중국 당국은 작품의 공연을 금지시킨다. 우연인지 중국의 정치 현실에 염증을 느끼던 그는 같은 해 폐암 진단을 받고(후에 오진으로 밝혀짐), 10개월 간 중국 전역을 떠돌며 여행을 하였다. (이 경험은 《영산靈山》창작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여행이 끝난 1987년 그는 결국 프랑스로 망명했다. 그 후 1989년 天安門사태(6·4 민주화 운동)에 환멸을 느껴 중국 공산당에서 탈당하자 중국 정부는 그를 '기피 인물'로 지정하고 그의 작품을 모두 판금시키게 된다.

그의 작품은 무엇보다도 다양한 제재를 작품으로 형상화했으며 풍부하고 세련된 언어를 구사한 특징과 작품 속에서 중복되는 단어나 구절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벽한 문장을 서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그의 작품은 격동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한 개인의 처절한 투쟁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까오 자신이 모든 것을 회의하는 지식인이자 사물을 꿰뚫어보는 작가로서 단순히 세계를 해석하려고만 하지 않고, 글쓰기를 통해 자유를 발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유럽 연극계에는 모더니즘의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중국 관객들에게는 유럽의 부조리극을 소개하는 교량 역할을 하였다는 공로도 무시할 수 없다. 그는 또 파리 망명 이후 화가로도 활동, 유럽과 미국에서 극찬을 받기도 했다.

그의 소설 작품은 《영산》, 《피안》, 《절대신호》, 《한 개인의 성경一個人的聖經》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1990년 臺灣에서 출간된 후 1996년 파리에서 불어로도 출판된 528쪽 분량의 장편소설 《영산》은 걸작으로 꼽힌다. 작품은 중국 남부 및 서남부의 내륙 지방 등 중국 전역을 떠돌던 시절의 인상을 표현하고 있으며, 특히 각 지역에 남아있는 미신, 민요, 녹림당(의적) 설화는 물론 민간에 유전되고 있는 고대의 도가류의 인물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까오는 이 작품에서 문혁 기간동안 홍위병들이 정적을 강둑 위에 세워 놓고 기관총으로 사살하거나 강에 빠뜨려 죽였던, 그리고 도둑질, 강 간, 자살, 환경 파괴 등 그 시대의 폐해를 폭로하기도 했다. 작품에서 그는 여행의 동반자로서 한 여성을 등장시킨다. 그의 대화와 이 상상 속의 여성을 유혹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좋게 보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루한 것이고 나쁘게 보자면 여성혐오자적인 것이다. 여인을 '고집스럽게 싸우는 야생동물'이라고 했다가 '결국 사로잡혀서 그의 품안에서 얌전하게 길들여지는' 대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이 '내적인 평화와 자유를 갈구하는 한 남성의 탐색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되는 이유는 기술한 절망이 창작의 배경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GaoXingjian_2.jpg그는 자신을 '실패한 모더니스트'라 칭한다. 아마도 그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때로는 한 문장이 두 쪽까지 이어질 만큼 절절이 속마음을 쏟아내는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까오의 소설은 눈으로 읽는 소설이라기보다 가슴으로 읽는 한 편의 풍경화 같다. 까오 자신은 실패하였다고 하나 사실을 그렇지 않다. 딱히 형용할 말을 찾지는 못하나, 분명 자신만의 매력들로 가득 차 있다. 교훈적인 방황, 정서, 흔적남기기, 비망록, 이치에 맞지 않는 토론, 우화같지만 우화가 아니고, 몇 곡의 민요가사를 본뜬 것 같고, 어떤 것은 전설같기도 한 소설이다.

"까오싱지엔은 분노와 시학 사이에서 자신의 옛 조국인 중국에 대한 감정을 아름다운 문체로 해석했다." 이것은 지난 3월 르몽드지가 장문의 서평에서 그의 작품을 평한 것이다. 또 그의 오랜 친구이자 유명한 번역가인 팡즈쉰方梓勳은 그를 이렇게 평가한다. "까오싱지엔의 희곡은 분량이 비교적 짧다.  그 중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는 바로 《피안》을 꼽을 수 있다. …… 그의 극의 특징은 전통적인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거나 현대극을 별로 접해보지 않은 독자라면, 《피안》을 비교적 잘 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는 그 극을 읽기 전에는 먼저 마음의 준비를 해두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의 작품이 비록 스토리가 강렬하지는 않지만 문장을 곱씹 어가는 가운데 장면이 무대 위에 펼쳐지는 듯한 환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독자는 그것이 정말 멋진 희곡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는 또한 까오의 소설에 대해서는 이렇게 평가한다. "그의 소설은 정말 뛰어나서,  시공이 교차하며, 인칭이 전환되는 것이 특징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현대인의 감각에 가장 적합하게 부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GaoXingjian_3.jpg그러나 중국 내에서는 그의 작품은 판매 금지되어 있고, 문학사에서는 모더니즘 소설 중 의식의 흐름 소설 부분에 이름과 작품명만이 약간 언급이 되어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수상 소식을 접한 중국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어쨌든 잘 된 일이다'라는 반응과 '잘못된 선택으로 중국문학에 어떤 이익도 주지 못한다'는 반응으로 갈라졌다. 시인 지추안은 "대륙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중국 문학사에서 일정한 위치를 차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국에서 활동중인 문학평론가 볼프강 쿠빈은 "그의 작품은 중국에서 존재조차 없었다"며 "많은 중국작가들이 개탄하고 있다"고 말한 것에서도 중국 내의 대립적 반응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중국작가협회는 '중국에는 까오싱지엔보다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수백에 달한다. 왜 일개 망명작가를 선택했을까?' 라는 반응을 보인다. 이미 타개한 중국의 저명한 작가 라오서老舍의 아들이자, 중국현대문학관 관장인 서이舒乙는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노벨이 중국인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이번 수상은 정치적 입장으로 결정이 되었으며, 문학적 각도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며 불평을 토로했다. 그는 또 이는 외국인이 중국문학을 별로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라고 했다. 중국의 신화사 통신은 이번 결정에 정치적 목적이 게재되어 있다고 하기도 하였다. 항간에는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심사위원 가운데 한 사람이 특히 까오싱지엔의 작품을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 심사위원은 직접 까오의 작품 십 수 편을 번역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까오싱지엔 본인은 그의 국제적 영향력을 중국의 정치변혁에 이용할 의사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자신에게 아직도 (중국 정부, 정치 체제를) 비판할 수 있는 권리는 남아있다고 하였다. 또한 중국이 폐쇄적인 정치환경을 지지하는 한 중국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중국 정부의 반응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국은 나의 작품에 정치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모든 작품의 출판을 금지했다. 나는 나중에는 그곳에 머물러 있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도망,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만일 당신 눈앞의 거대한 권력, 당신의 관점을 찬성하지 않는 거대한 권력이 있고 당신은 무력한 개인이라면, 도망 이것만이 유일한 출구일 것이다."

그가 프랑스 국적으로 수상을 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렇게 그의 수상을 둘러싸고 벌이는 논쟁은 무의미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프랑스로 망명한 중국인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동양인인 중국인의 수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동양권 노벨문학상 수상자로는 인도의 타고르(1913),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 오오에 겐자부로(1994)가 있고,  까오싱젠은 그들을 이어 네번째이자 중국계로는 첫 수상자이다. 이 점은 앞으로 아시아 지역 작품을 전세계 특히 유럽 지역에 널리 알릴 필요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씹. 까오의 작품은 한국에서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앞으로 국내에서도 중국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이라는 제목으로 많은 작품들이 번역, 소개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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