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가본 베이징
Some Changes of Beijing

 

김  혜  준 KIM Hyejoon
 

그 동안 중국의 남방 도시나 다른 중국권 지역을 다니느라고 베이징에는 제법 오랜만에 가게 됐다. 언론 보도나 주변 사람들의 전언에 따라 그 사이 크게 달라졌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나의 예상이 조금은 지나쳤던 모양이다. 짐작만큼 그렇게 경천동지할 만한 변화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변화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Beijing_02.jpg가장 먼저 본 것은 역시 베이징 공항의 신축 건물이었다. 그 다음 눈에 띈 것은 거리의 색깔이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도시 전체가 채도 낮은 회색, 붉은색, 황금색 정도의 단조로운 색깔이었는데, 이제는 전에 없던 다양한 색들로 바뀌고 있는 중이었다. 버스 색깔도, 건물 색깔도, 사람들의 옷 색깔도. 마치 우리가 서울올림픽을 전후해서 비로소 무채색의 나라에서 천연색의 세계로 바뀌었던 것처럼 말이다.    (사진은 지하철역 안의 광고판. 전에 비해 수도 많고 색깔도 화려하다.)  

 

Beijing_01.jpg교통 체제와 상황에도 변화가 있었다. 원래 중국에서는 우리도 그랬던 것처럼 적황녹의 삼색 신호등뿐이었고, 게다가 좌회전 신호가 별도로 없어서 교통이 엉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군데군데 방향표시가 들어간 신호등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교통 규칙이 잘 준수되지 않아서 여전히 무질서하기는 했지만 조금씩 나아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택시 운전사들은 아마도 벌금 또는 벌점 때문인지 교통 규칙 준수에 꽤 신경 쓰는 눈치였다.    (사진은 지하철 매표창구의 줄. 전에는 거의 줄이 없었다.)

 

반면에 늘어나는 차량과 저질의 휘발유 때문에 교통 체증과 매연은 더욱 심해진 것으로 보였다. 도심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만들어진 도로 중 네 번째 원에 해당하는 쓰후안루四環路가 완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베이징대학에서 시 중심가까지는 거의 두 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다. 또 수시로 아무 곳에서나 정체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매연은 바람이 없는 날에는 대낮부터 마치 츠옹칭重慶의 침침한 안개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시야만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거리를 다녀도 눈이 따갑고 목이 칼칼할 정도로 금방 그 피해를 느낄 수 있었다.

 

Beijing_03.jpg베이징의 중심가는 왕푸징王府井이란 곳인데, 예전에는 그 입구에 세계 최대 규모라는 맥도널드 건물이 서있는 좁고 붐비는 거리였다. 그런데 그 사이 맥도널드 건물은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대신 엄청나게 큰 규모의 중국은행이 들어서 있었다. 혹자는 미국의 상징 대신 중국의 자부심이 들어선 것이라고 풀이하기도 했는데, 어쩌면 중국 정부의 의도가 개입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 거리 역시 마치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온 것처럼 말쑥한 고층건물에 여유 있는 인도를 가진 잘 정비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중 츠언시백화점晨曦百貨의 내부는 설계와 시설 면에서 최고급이었고, 진열된 상품 역시 우리와 차이가 없는 고급품들이었다.    (사진은 王府井거리의 입구. 거리가 광장 같은 느낌을 줄 정도다.)

 

Beijing_04.jpg사람들은 좀더 늘어난 자본주의적 요소와 수입을 누리고 있었다. 지하철 요금도 불과 수년 사이에 다섯 배 이상 올라서 지금은 3위앤(약 450원)을 받고 있었고, 몇 군데 가본 음식점은 깔끔하고 우아하고 그리고 값비싸게 달라져 있었다. 어떤 분야는 차라리 우리보다도 더 대단했다. 예컨대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문인의 글 한 꼭지가 우리 돈으로 50만원쯤 할 정도였으니, 양국의 물가를 감안한다면 우리보다 훨씬 나은 수입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다만 그래도 사람들의 마음만큼은 여전히 이전의 그 따스하고 소박함을 잃지 않은 듯했다.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그저 날로 상승하는 물가를 걱정하면서도 멀리서 찾아온 친구를 위해 제법 비용이 드는 식사 초대도 마다 않았으니까!    (사진은 晨曦百貨의 내부. 고급하고 여유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컴퓨터와 관련해서 한 가지 말해 두는 것도 괜찮겠다. 각종 CD ROM, VCD, DVD가 엄청 성행하고 있었는데, 각종 자료들은 물론이고 웬만한 영화는 다 그걸로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특히 해적판이 워낙 값싸게 범람하고 있어서, 중국이 사회 발전의 속도만큼이나 혼란 역시도 적잖음을 충분히 보여 주었다. 그 편을 오히려 환영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겠지만. 참, 이번에 갔더니 우리나라 유학생 대부분이 인터넷을 이용해서 한국과 거의 무료로 자유롭게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인터넷 사용을 위해 중국측 시내요금 정도는 물어야 하지만 거의 고려에 넣지 않아도 될 만한 액수였고, 통화음질도 무척 좋아서 특히 가족끼리는 아주 편리하다고들 했다. 혹시 앞으로 유학 등 장기간 체류할 사람들은 참고하는 것도 좋겠다.

중국! 베이징! 늘 마음 한 쪽을 차지하고 있고, 그곳에서 한 동안 살아보기도 했으며, 잊어버리지 않을 만큼 가끔 찾아가는 곳이지만 그래도 내게는 바다 같은 곳이다. 단순한 듯하면서도 복잡하고, 단조로운 듯하면서도 풍성한 곳. 논리적 체계적 이해와 설명도 필요하지만 정서적 단편적 감수와 한담도 소용이 있지 않을까? 어쨌든 당장은 베이징발 피로와 몸살이라는 후유증을 핑계삼아 이 정도로 그칠 수밖에.

 

2001년 1월 27일

 

KHJ_China3_Beijing.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