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의 중국인과 차이나타운
Chinese and Chinatown in Vancouver

 

김  혜  준 KIM Hyejoon

 

밴쿠버 다운타운의 동쪽 구역에 가면 차이나타운이 있다. 횡으로 나 있는 Hastings St.와 종으로 나 있는 Carrall St.가 만나는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대략 서너 블럭쯤에 걸쳐 있는데, 샌프란시스코, 뉴욕에 이어 북미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라고 한다.

 

Chinatown Map

(1) Sam Kee Building (2) Shanghai Alley (3) Chinese Freemasons Building (4) Chinese Times Building (5) Yue Shan Society Headquarters (6) Wing Sang Building (7) Mon Keang School (8) Lee Building (9) Carnegie Centre (10) Ford Building (11) Former Bank of Montreal (12) Commercial Buildings (13) Hotel East (14) Kuomintang Building (15) Hong Kong Bank Building (16) Canadian Imperial Bank of Commerce  (17) Former Bank of Montreal (18) Chin Wing Chun Society (19) Chinese Benevolent Association Building (20) Ho Ho Restaurant and Sun Ah Hotel (21) Chinese Cultural Centre (22) Chinatown Plaza

 

중화문中華門 영어와 중국어를 병용한 간판들, 중국 특유의 식품을 파는 가게들, 가지각색의 중국 음식점들, 그리고 무시로 번잡스러운 중국인과 중국어와 중국 노래로 제법 중국 맛이 나는 그런 곳이다. 이 지역 하단부의 Pender St.에는 중국의 국부라 불리는 쑨원孫文을 기념한 쑨얏센파크中山公園와 중국문화원도 있으며, 그 앞에는 중화문中華門이라 이름 붙인 중국 전통 양식의 문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여름철 주말 밤에는 이곳에 야시장이 서기도 하는데, 그 규모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지만 홍콩의 몽콕旺角이나 항저우杭州의 신치아오호텔新橋飯店 인근 야시장의 아류쯤은 될 만했다. 파는 상품들은 대부분 대륙에서 건너온 싸구려 물품들이어서 별로 살 건 없었으나 그래도 제법 시끌벅적한 것이 한번쯤은 가볼 만한 광경이었다.

 

차이나타운의 한 가게애초 밴쿠버의 차이나타운은 19세기 후반 지금 있는 곳에서 서남쪽인 1st St. 지역에 형성된 Shanghai Alley로부터 출발하여 20세기 중반에 현재의 장소로 이동했는데, 그 이면에는 이민자로서 중국인이 겪어야 했던 피눈물나는 삶이 배어있다.

밴쿠버가 위치하고 있는 British Colombia 주에 중국인이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858년부터였다(이 지역 한국인 이민의 역사가 약 50년에 불과한 것과 비교한다면 참으로 긴 세월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당시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에서 살고 있던 중국인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백인들의 박해와 생활 여건의 악화로 인해 새로운 정착지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 지역에 금광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특히 1881년에서 1885년 사이에 Canadian Pacific Railway가 건설되면서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일시에 수많은 중국인들이 대거 이동해오게 되었다. 그러나 철도 건설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만 해도 수백 명에 달할 정도로 중국인이 절대적인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철도 공사가 마감된 후 여기에 투입됐던 중국인들의 생계와 신분은 전혀 보장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에서처럼 캐나다 정부와 백인들의 박해가 더욱 심화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것은 1923년 제정되어 약 25년 간 존속했던 중국인 입국금지법이었다. 무엇보다도 어이가 없는 것은 가족의 초청까지 금지되었으므로 이 기간 동안 중국인이 사는 곳에는 여자는 거의 없이 남자들만 우글거렸다는 것이다. 지난 여름 사이언스월드라는 곳에서 전시물들을 관람하다가, 방 한 칸에 20대로부터 50대쯤 보이는 중국인 남자들 7,8명이 같이 찍은 당시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정말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생각해 보라. 수 십 년 간 남편과 아내가, 아버지와 자식이 서로 천 리 만 리 헤어져 얼굴 한번 볼 수가 없다니. 더군다나 소년이나 총각으로 온 사람들은 아예 가족을 꾸리지도 못했다니. 사실을 알고 보면 선진국이니 인권국이니 하는 것도 다 허울뿐이라고 해야 할는지.

아마도 이런 외부적인 악조건을 조금이라도 이겨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중국인들이 한데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은.

 

차이나타운의 한 거리 1947년 중국인 입국금지법이 폐지되었고 그 이후 이민이 재개됨으로써 새로운 중국 이민자들이 유입되는 한편 초기 이민자들의 손자 세대에 해당하는 중국인들이 점차 캐나다의 주류사회에 조금씩 발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과 중국인의 형편이 변화함에 따라 새로운 지역이 요구되었고, 이에 따라 오늘날의 차이나타운이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차이나타운의 운명도 그리 평탄했던 것 같지는 않다. 도시재개발의 일환으로 차이나타운 철거가 제기되었다가 간신히 이를 저지하고 났더니 이번에는 인근에 있는 Hastings St.에서 Gastown 전까지의 지역이 마약중독자들의 집합지가 되면서 슬럼화되었고 이 때문에 차이나타운까지도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처음 나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차이나타운의 거리를 걷다가 무심결에 그 지역에 들어서게 되었다.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늦어버려서 내친 김에 하는 수 없이 계속 갈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그때까지 보았던 밴쿠버의 깔끔한 이미지와는 전혀 딴 모습이었다. 때에 전 남루한 옷차림의 중독자들이 몸을 비척거리며 삼삼오오 모여 있었고, 보도에는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드문드문 보이는 잡화점에는 철망으로 보호대를 만들어 놓았으며 건물의 외벽은 칠이 벗겨진 데다가 스프레이로 어지러이 낙서 투성이었다. 중독자들이 가까이 다가와서 야료를 부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들 중에는 서로 주사를 놓아주는 사람도 있었고, 그들이 피우는 담배마저 내게는 최소한 마리화나쯤으로 보일 정도였으니까.

 

리치몬드의 No.3 Rd. 꼭 그 때문만은 아니지만, 1970-80년대에 홍콩과 타이완에서 새롭게 이주해온 중국 이민자들은 기존의 차이나타운 대신 다른 곳에 흩어져서 정착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7년 홍콩반환을 앞두고 대거 이주해온 홍콩 출신 이민자들은 밴쿠버국제공항이 가까운 리치몬드에 그들의 집단거주지를 형성했다. 그것은 기존의 차이나타운이 협소한 데다가 초기 이민자들과는 상이한 이민 배경을 가진 그들로서는 그들만의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어느 정도 영어도 가능하고 또 이민 당시 상당한 재력을 갖추고 있던 홍콩 출신 이민자들은 그들의 출신지인 홍콩과 유사한 사회적 환경을 갖춘 지역이 필요했고, 그곳이 곧 리치몬드였던 것이다. 이곳 현지 신문 보도에 따르면 리치몬드 인구의 40%는 중국인이라고 하니 과연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리치몬드에 가서 생필품을 구입하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에 비교적 이곳 출입이 잦은 편이다. 갈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것은 이곳은 캐나다라기보다는 홍콩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매무새와 표정, 그들이 즐겨 찾는 상점, 그들이 사고 파는 물품, 심지어는 간판을 포함해서 건물의 외양까지도 거의 홍콩과 흡사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영어 없이 중국어(특히 구앙뚱말)만 가지고도 사는 데 별로 지장이 없을 정도다. 예를 들면, 원래 일본계였으나 지금은 중국계에 인수된 다국적 백화점 체인 Yaohan(八百伴)에 가보면, 서양인이라고는 백명 중 너댓에 지나지 않고 모조리 중국인이다.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주문할 양이면 다짜고짜로 구앙뚱말부터 한다. 그러니 생각해 보라. 그곳이 캐나다인지 중국(홍콩)인지를.

 

UBC차이나타운이나 리치몬드 만이 아니라 밴쿠버에서는 어디를 가더라도 중국인들을 만날 수 있다(밴쿠버라고 하면 밴쿠버, 노스밴쿠버, 웨스트밴쿠버, 리치몬드, 버나비, 코퀴틀람 등등을 포함하는 광역밴쿠버를 가리킬 때가 많다). 현재 밴쿠버 인구의 10%가 중국계라고 하니 얼마나 많겠는가? 리틀인디아라고 해서 인도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도 서너집 중 한 집은 한자 간판이 달려 있고, 한국인들이 비교적 많이 산다는 코퀴틀람에도 한국인보다는 중국인이 많은 형편이다.

그런 곳 중에 한 곳이 또 UBC(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지역이다. 대학 지역이니 만치 학생, 교직원과 그 가족이 주요 주민인 셈인데, 감각적으로 느끼기에는 백인과 인디언 후예를 포함한 현지인과 중국인의 숫자가 반반 또는 중국인 더 많은 것 같은 인상을 줄 정도다. 스탭이나 학생 모두 거의 중국인인 Asian Library는 그렇다 치더라도 중앙도서관인 Main Library나 가장 큰 Koerner Library에 가보면 까만 머리가 노란 머리보다 오히려 더 많다는 느낌이고, 점심 시간에 학생식당에 가보면 그곳은 전에 내가 공부했던 홍콩의 한 대학 구내식당의 광경과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구앙뚱말과 구앙뚱 억양의 영어로 시끌시끌하다는 점까지 완전히 그대로다.

 

밴쿠버의 이런 상황을 보고서 내가 느낀 것은 단순히 '중국인이 정말 많구나'가 아니다. 그것은 '중국인이 무섭다'라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 그들 사이에 전혀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로 구앙뚱 출신인 초기 이민자들의 후손, 1990년대에 대거 몰려온 홍콩계 이민자들, 소수의 타이완계 이민자들, 그리고 최근에 급격히 늘기 시작한 대륙계 이민자들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은 어쨌든 전체로 볼 때는 일종의 유기적인 관련성을 가지면서 백인이 주도하는 이곳에서 이미 무시할 수 없는 거대한 역량으로 존재하고 있다. 특히 그들 상호간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의 이민자들 및 본국과의 사이에 이루어져 있는 네트워크는 앞으로 더욱더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그것은 경제적인 분야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분야까지도 그러할 것이다. 연전에 프랑스 국적의 까오싱지엔高行健이란 중국 출신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단지 그의 작품이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2001년 12월 5일

 

KHJ_China4_Vancouver.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