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국인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
Fragmentary thoughts on China & Chinese

 

김  혜  준 KIM Hyejoon

 

HSK중국의 역량이 커질수록, 우리나라와의 관계가 긴밀해질수록, 중국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최근의 중국어 학습 열풍은 이를 잘 보여준다. HSK(漢語水平考試) 응시자의 급격한 증가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어떤 사람은 중국에 유학을 하기 위해, 어떤 사람은 단순히 자신의 중국어 수준을 가늠해 보기 위해, 또 어떤 사람은 대학 입학시 특전을 부여받기 위해 이 시험을 본다. 부산 지역의 경우 2년 전 300명 남짓하던 응시자 수가 작년엔 600여 명으로 불더니 올해엔 거의 1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놀라운 증가세다. 그런데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거나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에 견주어볼 때 우리가 중국을 이해하는 정도는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길래 중국을 소개하는 책자가 그리도 많이 쏟아져 나오게 되는 것이고, 또 그러길래 그와 같은 소개 책자의 대부분이 극히 초보적이거나 피상적인 것이 아닐까? 다른 한편으로 나는 중국어 학습자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고급 중국어는 단순히 중국어 발음이 정확하고 문장을 많이 암기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깊은 이해에서 출발한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단순히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안다고 해서 양국 수뇌부의 통역을 감당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서, 중국과 중국인에 관한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서 양국 관계, 국제 정세, 경제 상황 등등에 대한 일정한 수준의 이해 없이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2003.4.2.) 

 

JiaHuaZuojia지난 연초에 밴쿠버의 여러 중국인 작가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陳浩泉, 盧因을 비롯하여 加拿大華裔作家協會의 회원들이 그들이다. 1987년에 창립된 加拿大華裔作家協會는, 대여섯 개 쯤 되는 캐나다의 중국문학 단체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고 활동도 가장 많은 조직이다. 수 년 전부터 분량은 많지 않지만 일년에 네 차례 《加華作家》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있고, 매년 《加華作家作品選》이라는 작품집을 출판하고 있으며, 밴쿠버판 《星島日報》에 한 달에 한번 문학판을 내고 있다. 이 협회는 창작 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여름철에 중국 대륙이나 대만, 홍콩의 유명 작가 연구자들을 초청해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기도 하다. 회원의 대부분은 홍콩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며 그밖에 현지 출신, 타이완 출신, 대륙 출신 등이 있는데, 특히 최근에는 대륙 출신이 증가하고 있다 한다. 이주자가 많은 관계로 일찍부터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이 꽤 많은데, 예를 들면 홍콩의 대표적인 아동문학가였던 阿濃, 타이완의 저명 원로 시인이었던 洛夫, 痖弦 등을 들 수 있다. 이들과 접촉하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지난 번 북미 동부 지역의 차이나타운을 돌면서 느꼈던 것처럼, 중국인의 활동 범위가 이제 중국이라는 지리적 한계를 벗어나서 전세계적이며, 이런 역량을 바탕하여 이후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다시금 반성해보지 않을 수 없다. (2003.3.1.)

 

Fuwutai새해다. 이맘때면 많은 사람들이 굳은 결심으로 1년 계획을 세운다. 그 중에는 중국어 학습에 마음을 내는 사람도 제법 있을 것이다. 중국어 학습에 왕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 판단은 이렇다. 우선 실천이 필요하다. 해야지 해야지 하는 생각만으로는 안된다. 실제로 시작해야 한다. 수업을 들어도 좋고 학원에 나가도 좋다. 조건이 여의치 않으면 책이나 시청각 자료로 독학을 시도해도 좋다. 일단은 저지르고 봐야 한다. 다음은 자신감이다. 어차피 외국어다. 나이 들어 새삼스레 배우는데 시작하자마자 정확하고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니 '좀 틀리면 어때, 뜻만 통하면 되지'라는 기분으로, 한 마디 배우면 한 마디 하고, 두 마디 배우면 두 마디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니하오"(안녕하세요), "시에시에"(감사합니다) 따위의 간단한 말이라도 자주 쓰면 중국어가 재미있다. 평생 전공할 사람만 발음에 좀더 공을 들이면 된다. 마지막으로 중국어 학습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절대적인 시간을 많이 쏟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누구누구는 언어에 천재적이다'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외국어를 참 잘한다면, 그 사람은 그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좋은 교재와 좋은 선생님 또는 (예컨대 중국 현지 연수와 같은) 좋은 언어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도 더욱 긴요한 것은 역시 본인의 노력이다. 심지어 유학을 가지 않고도 영어로 소설을 써서 상을 받는 분까지 있지 않은가? 중국어, 1년만 열심히 하면 중국인과 웃고 떠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03.1.1)

 

얼마 전 베이징에서 주재원 몇 분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중국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중문과 교수들이 이런 중국을 제대로 가르칠지 의문스럽다. 특히 수시로 새로 생겨나는 어휘는 아예 모르지 않는가?" 그렇다. 중국의 변화는 놀라운 것이고, 교수들이 그것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은 전혀 오해다. 공부의 대상이 중국의 표면적인 또는 지엽적인 변화 그 자체도 아니요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유행어만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 변화 가운데 상대적으로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에서부터 그러하지 않는 것들(즉 잘 변하지 않는 것들)까지의 다양한 현상들을 살펴보고, 그러한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알아보고, 또 그와 같은 변화에 어떤 규칙성이 있는지를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대상인 것이다. 이 점은 중국어 학습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새로운 어휘를 많이 습득한다고 해서 중국어를 훌륭하게 구사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보다는 중국에 대한 풍부하고 심층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중국인의 사상 감정의 표현 방식 그 자체를 어느 정도 내것으로 만들었을 때, 비로소 수준 높은 중국어를 구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다 같이 중국어에 능숙하더라도 대사관 통역과 상사 주재원이 각기 자신의 분야에서 최적의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점 간단히 비유해보자. 중국에서는 거지도 중국어를 한다. 그런데 과연 그가 중국어를 못해서 거지가 되었을까? 그리고 그의 중국어는 고급 중국어일까? (2002.12.23)

 

최근에 각종 한글판 중국 현대문학 작품국내 중국현대문학 석박사학위논문을 조사했다. 이 때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번에 조사된 중국 현대문학 작품은 모두 650권 가량이었는데, 그 중 소설이 약 450권, 수필이 170권, 시집이 30권, 극본이 5권 등으로 소설이 압도적이었다. 작가별로 보면 魯迅 약 70권, 瓊瑤 약 80권, 林語堂 약 110권이어서 이 세 사람이 전체의 40%를 차지했다. 시기별로는 이른바 신시기인 1976년 이후의 작품이 50%에 가까웠고, 지역별로는 대륙의 경우에는 엄숙문학 위주인 반면에 臺灣 香港의 경우에는 대중문학이 많았다. 학위논문은 현재까지 석사 320편, 박사 77편이 발표된 것으로 집계되었는데, 시기별로 보아 1949년 이전의 시기를 대상으로 한 것이 석사의 경우 88%, 박사의 경우91%에 이르렀다. 작품 번역과 학위논문 양자를 비교해 보니 의외의 현상이 발견되었다. 작품 번역이 650권이라지만 몇몇 작가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작품 번역보다 오히려 연구가 더 많은 당혹스러운 결과가 나온 것이다. 사실 중국 현대문학의 역사가 거의 100년에 가깝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작품 번역은 아주 미흡한 상황이다. 이런 면에서 앞으로 중국 현대문학 작품 번역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할 것으로 보는데, 한 가지 고무적인 사실은 한중 수교 후 고조를 보였다가 IMF로 인해 침체 상태에 빠졌던 작품 번역이 근년에 오면서 다시 그 숫자가 대폭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좋은 번역, 좋은 번역자를 기대하는 바다. (2002.11.30)

 

일전에 중일러 외교관과 우리나라 외교 공무원, 교수 등 대략 열댓 사람이 같이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화제는 남북한 철로 회복에 따른 동북아시아 물류 시스템 변화에 관한 것이었다. 비교적 상식 수준의 이야기였지만 당사국들의 미묘한 입장 차이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런 대로 유익한 자리였다. 다만 정작 나의 주의를 끈 것은 좀 다른 것이었다. 이런 자리에서는 늘 그렇듯이 여러 개의 언어가 동시에 사용되었다. 그 중 공통 언어는 영어였고, 종종 우리말이 보조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데 우리 중에는 두 개 이상의 외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제법 여럿 있었다. 특히 일본 외교관의 영어와 우리말은 둘 다 일정한 수준이었다. 어쩌면 이 분야 전문가들이므로 두세 개의 외국어를 구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연히 그 누구도 애초부터 그런 능력을 타고 났던 것은 아니다. 전문가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에서 남다른 열심과 노력이 있었고, 그 결과 중 한 가지가 바로 다중 언어 구사로 나타난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앞으로 중국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중국어는 물론이고 그 외에도 보조적으로 다른 외국어를 한두 개 더 구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준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2002.10.31)

 

 

얼마 전 한 신문 기자가, 타이베이 극장가에서는 "The Bourne Identity"가 "神鬼認證"로, "Unfaithful"이 "出軌"로, "Ice Age"가 "氷原歷險記"로 번역되어 있었으며, "우리처럼 영어 발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영화 제목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려웠다."면서, 중국인의 자존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고 쓴 것을 보았다. 내 기억으로 이런 견해는 이전에도 자주 있었다. 말하자면 중국인은 외국어를 음역(발음대로 적는 것)하지 않고 의역(내용을 옮겨놓는 것)하는데, 이는 그들의 문화적 자부심의 발로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보면 이는 일종의 오해다. 무엇보다도 중국에서는 근본적으로 표음문자가 아닌 한자를 사용하여 외국어를 발음대로 옮기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설사 음역을 해놓았다 하더라도, 뜻글자인 한자의 특성이라든가 중국인의 문자 해독 습관상, 발음보다는 의미 파악이 우선되므로 음역이 별로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 문자의 특성이나 중국인의 언어 습관 탓에 자연스럽게 일어난 현상을 두고 문화적 자부심의 결과로 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외국어를 중국어로 옮길 때, 예컨대 阿司匹林(아스피린), 蘇維埃(소비에트) 처럼, 발음대로 번역한 경우가 제법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다만 우리말 사용에서 외국어를 좋은 우리말로 고쳐 쓰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첩혈쌍웅"이니 "열화전차"니 하는 것보다는 "붉은 수수밭"이니 "햇빛 쏟아지던 날들"이라고 하는 것이 더욱 낫지 않은가. 심지어 "최가박당"이라니 도대체 이 무슨 말인가?        (最佳拍檔 : 최고의 파트너) (2002.9.26)

 

중국에 관해서 말하자면 음식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미국과 캐나다를 돌아다녀 보니 서양 음식은 다 그게 그거더라. 만일 중국이라면 지역마다 음식 맛이 전혀 다를 터이다.'라고. 후자에 관한 한 실제 그렇다. 중국 음식은 참으로 풍부하고 다양하다. 중국 음식은 보통 산뚱요리(魯菜), 지앙쑤 저지앙요리(淮菜), 쓰추안요리(川菜), 구앙뚱요리(粤菜) 네 가지로 나누는데, 근래에는 산뚱요리 대신 베이징요리(京菜)를 넣기도 한다. 이 중 쓰추안요리가 그 매운 맛 때문에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고 알려져 있고, 그래서 우리 나라의 중국집 간판에는 '사천요리'라고 써놓은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쓰추안요리는 매운 맛(辣)과 더불어 아릿한 맛(麻)이 강해서 소문과는 다르다. 그보다는 오히려 약간 달콤하면서도 담백하다는 점에서 구앙뚱요리가 우리 나라 사람에게 더 잘 맞는 것 같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 점에 동감이었다. 그런데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가끔 가는 인근의 구앙뚱음식점에서 식사 후 계산을 할 때였다. 오늘은 '八珍豆腐煲'(두부, 버섯, 오징어, 새우 따위의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볶아낸 음식을 돌솥에다 담아나옴)가 지난 번보다 맛이 좀 그렇더라고 했더니, 주인이 당장 너무 미안하다고 하면서 그만 음식값을 안받는 것이었다. 어떤가? 이쯤 되면 음식맛은 둘째 치고 중국인의 상술이 음미할 만하지 않을까? (2002.8.24)

 

근자에 들어 중국 열풍이 불고 있다. 중국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참 반가운 일이다. 다만 이 열풍이 과연 올바른 결과를 낳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우려가 없지도 않다. 사회 각 분야에 준비된 전문가가 그리 많지 않은 탓이다. 사실 인재를 육성한다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제 대학은 무늬만 전문가인 그런 '선무당'들을 양산해내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 언어, 문화, 전문지식 등이 모두 갖추어진 진짜배기 전문가들을 배출해내야 한다. 달리 말하자면, 기초적인 중국어와 일반적인 중국 지식을 배웠다고 해서 전공자라고 자위한다든가, 약간의 실무 경험과 업무 능력을 갖추었다고 해서 해당 분야 전문가라고 대접받는 그런 시절은 곧 과거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앞으로는 그저 막연히 중국 전문가가 아니라 법률, 의료, 군사, 농업, 언론, …… 등 '분야별 중국 전문가'가 요구될 것이며, 또 베이징 전문가, 상하이 전문가, 광조우 전문가와 같은 '지역별 중국 전문가'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자면, 머지 않은 장래에 그 누군가는, 홍콩 사람과 '얌차'를 같이 하면서 홍콩말(구앙뚱말)로, 홍콩특별행정구 하에서의 금융투자 문제를 논한다는 식이 될 것이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는 말이 있다. 여러 분이 바로 그 사람이고 싶지는 않으신지?

  * 얌차(飮茶) : 음식을 싣고 식당 안을 돌아다니는 작은수레에서, 원하는 음식만을 골라서 먹고 계산하는 구앙뚱 특유의 식사법. 일종의 이동식 부페 식사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음식은 딤섬(點心)이라고 불리우는 간단한 것들이 위주인데, 그 중에는 우리의 찐만두나 물만두와 유사한 것들도 많이 있다. 차를 마셔가며 식사를 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얌차'와 '딤섬'은 각각 구앙뚱말이다. (2002.8.07)

 

북미 동부지역 10여 개 도시의 차이나타운을 둘러 보았다. 차차 정리를 하도록 하고 일단 몇 가지 인상을 말해 보겠다. 우선 중국인이 현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확실히 정착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캐나다의 퀘백시를 제외하고는 크든 작든 간에 모두 일정한 구역에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지도에 그 위치가 명기될 만큼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방인적인 요소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차이나타운에서 만난 비중국계 사람들은 대부분 거주민이 아닌 관광객이었던 것이 한 가지 예다. 다시 말해서 차이나타운이 관광 명소가 된다는 것 자체가 해당 지역에서 여전히 특별한 존재로 기능하고 있다는 뜻일 터다. 차이나타운이 대체로 시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건물은 낡고 거리는 지저분했던 것도 하나의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아마 최초에는 도심 주변부에 형성되었겠지만 도시가 확대됨에 따라 자연히 중심지로 바뀐 것일 터인데, 이는 달리 보자면 그만큼 중국인 이주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후자의 현상은 정착 당시 생활 형편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 외에도 아마 타향인으로서의 심리가 게재되어 있는 것 같다. 즉 언제가 되든지 간에 고국 또는 타지로 떠나갈 수 있다는 심정적 요인 때문에, 항구적인 건물을 짓지도 않고 관리 역시 소홀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쓰레기 문제에 대해 비교적 무관심한 생활 습관도 한몫 했을 것으로 보인다. 차이나타운의 음식값이 쌌던 것 또한 일반적이었다. 이는 위치면에서 상대적으로 부동산 임대료가 싼 지역이라는 것, 음식 재료의 공급이 대량화 체계화되어 있다는 것,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일 것이다. 나의 간단한 결론은 이렇다. 이제 중국을 중국 대륙 및 그에 부속된 도서 지역으로 이루어진 나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명실상부하게 전세계 곳곳에서 그 뿌리를 내리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2.7.13)

 

 

비록 승승장구를 멈추기는 했지만 월드컵에서 우리 나라 축구가 보여 준 협동과 투혼은 참으로 대단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보여준 자각과 행동이다. 우리에게는 그처럼 몰두하고 집중하는 에너지,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질서와 예의를 잃지 않는 절제가 있다. 그런데 중국의 반응이 의외다. '한번도 중국을 해롭게 하지 않은 부자 이웃인 한국의 쾌거를 아시아의 자랑으로 삼자'(王彤, 雅虎中國)는 말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론은 그렇지 않다. 심판 판정을 문제 삼아 '아시아의 자랑이 아니라 치욕'(中國新聞社)이라고 하는가 하면, 심판 판정의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다면서 '한국 언론이 히스테리 상황을 보이고 있다'(靑年體育報)고 평하고 있다. 중국의 이런 태도는 중국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나마저도 섬뜩하게 만든다. 단순히 잘하고 있는 이웃을 질투하는 수준이 아니라, 중국의 역량이 커짐에 따라 생겨난 국가적 자신감이 잘못 표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다. 다시 말해서, 혹시나 중국이 잘못된 중화주의를 배경으로 대국주의, 패권주의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염려되는 것이다. 최근 베이징의 한국영사부를 무단 진입하여 외교관을 폭행해 가며 탈북자를 강제 연행해가고서는, 오히려 한국측이 중국의 정당한 업무 집행을 방해했다며 강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지금껏 우리의 중국에 대한 거의 무조건적인 호감은 과연 타당한 것이었을까? (2002.6.23)

 

얼마 전에 축구 한중전이 있었다. 우리 못지 않게 수많은 중국의 축구팬들이 이 경기에 관심을 기울였고, 그들 중 일부는 직접 우리나라까지 와서 응원을 했다. 언론에서는 이런 중국의 축구 응원단을 '치우미'라고 부르면서 그들의 동정을 제법 상세히 보도했다. '치우미球迷', 원래 그대로 새기자면 '구기종목의 열성 팬'이란 뜻이다. 다만 중국에서는 축구가 인기 종목이기 때문에 '축구광'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들 '치우미'가 가끔 문제다. 워낙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 열중하는지라 가끔 상대쪽 응원단과 갈등을 일으키고, 심지어는 난동에 이르기까지 한다. 한번은 베이징에서 우리나라 축구팀이 중국 팀을 이기게 되자 그들 중 일부가 경기를 관람하고 나온 한국인들을 좇아다니며 폭행을 가하기도 했다. 내 경우에는 학술 세미나에서 논문을 발표한 뒤 질문을 하랬더니, 참으로 엉뚱하게도 중국 축구의 '공한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우선 편향된 스포츠 국가주의, 미흡한 의식 수준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 외에도 갈수록 각박해지는 사회적 여건, 비교적 단순한 문화 활동, 점차 제고되고 있는 국가적 자신감, 반면에 아직은 그에 상응하지 못하는 현실 등이 그들로 하여금 무언가 분출구를 찾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어쩌면 이는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 사회주의'로의 전환 과정에서 나타난 조바심 내지 불안감의 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2002.5.5)

 

중국민항기 사고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가 진행중인 지금, 우리 언론은 조종사의 과실 쪽에 심증을 두고 추측성의 보도가 심하다. 그 중 한 가지가 조종사의 연령과 관련된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나 역시 7,8년 전 난츠앙南昌에서 비행기 탑승시 우연히 보게 된 조종석의 기장, 부기장이 마치 20대 같아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이번 경우 조종사의 나이, 즉 그의 경험이 돌발 사태에 대처할 만큼 충분하지 못한 것이 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혹시 우리의 이런 반응은, 사실은 우리가 중국의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닐까? 우리와 다르면 일단 잘못된 것, 이상한 것이라고 여기는 무의식적 습관이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무조건 중국의 시스템에 대해 의심하거나 회의할 것이 아니라 그 시스템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바로 그것을 바탕으로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불필요한 선입관 없이 냉정하게) 중국과 긴밀히 협력하여 최선을 다해 사고 원인 조사, 피해 보상 등 모든 후속 조처를 취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고인의 명복과 부상자의 신속한 회복을 빈다. (2002.4.21)

 

'중국에도 짜장면이 있나요?' 자주 받는 질문 중의 하나다. 우스운 일로 보일지 모르지만 묻는 사람은 진지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중국과 수 천년 간 접촉해왔으면서도 중국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것이다. 특히 적성국가라 하여 관계를 끊고 살았던 지난 수 십 년 간이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이 질문을 중문과 교수인 내게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 중국 전문가가 너무 없다는 것을 뜻한다. 대학에 중문과가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72년 이후이고, 그때 중문과에 입학한 사람들의 나이가 이제 50이니, 정부 기업 언론 등등 다른 분야의 중국전문가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이 2,3년 사이에 중국 바람이 불면서 갑자기 어디선가 수많은 전문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알고 본즉, 한두 번 약간의 장기 여행만 하고 와도 모두 전문가다. 그러니 몇 년간 주재 생활을 한 사람들은 그 중에서도 최고급 전문가인 셈이다. 또는 중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가끔씩 중국 관련 자료를 뒤적거려 보던 사람들이 홀연 전문가로 인정받는다. 그들의 중국 이해가 어느 정도인지, 기본적인 소양인 중국어문 구사 능력은 있는지 따위는 아무 상관도 없다. 그러나 과연 그걸로 그만일까? 수 십 년 간 중국을 공부한 많은 사람들은 이러는데. '글쎄, 중국은 하면 할수록 모르겠단 말이야.' (2002.04.06)

 

'호떡집에 불이 났나?'라는 비유가 있다. 중국 사람의 말과 행동이 부산스럽다라는 인상에서 유래한 것일 터다. 일반적으로 남들의 대화 내용을 잘 못알아 들을 때는, 특히 그것이 외국어일 때는, 그 말이 빠르고 시끄럽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중국 사람들의 말을 시끄럽다고 느끼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어에는 음의 높낮이로 의미를 구별하는 '聲調'(일종의 멜로디)라는 것이 있는데, 바로 그것 때문인 것 같다. 내 경험에 따르면, 4성으로 이루어진 普通話(중국표준어)를 구사하는 사람의 말보다는, 그보다 더 많은 성조로 이루어진 구앙뚱말 같은 방언을 구사하는 사람의 말이 더 시끄럽게 느껴졌다. 물론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웃고 떠드는 그들의 생활 습관 역시 무시 못할 요소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식당과 같은 공공 장소에서 소란스러운 동양인은 대부분 중국인이더라고 하는 분도 있다. 실은 우리 역시 그런 경우가 종종 있지만. (2002.3.24)

 

지난 2월 17일 밴쿠버 차이나타운에서는 이른바 'Chinese New Year Parade'가 있었는데, 한 마디로 말해서 중국인들의 능력에 깜짝 놀랐다. 음력설을 'Chinese New Year'라고 하는 것부터가 그렇지만, 다운타운의 주요 거리를 막아놓고 예의 锣鼓(꽹과리와 북)라든가 腰鼓(허리북) 따위를 두드리면서 사자춤을 추고 중국 폭죽을 터뜨리며 당당하게 행진하는 모습에서 그들이 가진 이곳의 지위를 짐작할 만했다. 퍼레이드는 화교사회의 체육회니 향우회니 하는 각종 단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중국인들 외에도 원주민 단체, 여타 소수민족 단체, 밴쿠버 소방악대 등 찬조 출연도 꽤 많았다. 행진에 참가한 단체의 수도 많았고 구경꾼 역시 대단해서, 행진이 다 지나가는데 약 1시간이 걸린 것 같고, 구경꾼은 보도에 따르면 수 만 명이라고 했다. 중국인, 역시 알면 알수록 무서운 사람들이다. (20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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