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이모저모
The Aspects of Current China

 

김  혜  준  KIM Hyejoon 

 

 

변화하는 중국을 만나는 일은 이제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만큼 변화가 빠르고 크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중국의 이곳저곳을 다녔다. 모두 다 다루기에는 시간이 너무 소요되므로, 그 중 점차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는 2004년 1월 방문 때 겪었던 바에 관해서만 간략히 적어보겠다.

 

1

 

廣州의  지하철 이중문중국의 교통, 아마도 여행자에게는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변화를 가장 먼저 느끼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廣州에 갔을 때다. 수년간 발걸음을 안했더니 그 사이 지하철이 2호선까지 개통되어 있었다. 중국 전체의 평균적인 경제 수준으로 보아서는 아직 고급 교통수단이라 그런지 시설이나 관리, 모든 면에서 최상급이었다. 특히 싱가폴과 마찬가지로 타고 내릴 때 플랫폼의 문과 지하철 차량의 문이 동시에 여닫히는 이중 형태의 문이 유난했다. 분야에 따라서는 후발 주자일수록 최신식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지하철역에서 수시로 사람들이 사망하는 것을 떠올리자니 대비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애초 우리나라처럼 이중문이 없이 시작했던 홍콩의 지하철 역사 역시 단계적으로 이중문이 설치되고 있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北京의  이층버스廣州의  간이택시중국의 교통수단이 급속히 바뀌는 모습은 여러 군데서 볼 수 있다. 北京에서는 올림픽을 대비해서 매연 발생을 줄이기 위해 천연가스 버스를 도입했고, 교통 흐름을 개선하기 위해 2개의 차량이 연결된 버스 대신 홍콩처럼 2층 버스도 운행하고 있다. 廣州에서는 워낙 차량 정체가 심한 탓인지 일종의 간이택시라고 할 영업용 오토바이들이성행이었다. 北京-廣州-홍콩 사이에는 (초고속은 아니지만) 고속열차가 달리고 있고, 廣州와 홍콩 간에는 기차 외에도 시내 곳곳의 호텔을 출발점으로 하는 고속버스의 운행이 참으로 빈번했다. 汕頭-潮州 사이를 왕복한 관광버스도 큰 불편은 없었고, 가끔 탔던 각 도시의 택시들도 훨씬 깨끗해지고 친절해졌다.

首都機場  탑승대기실白雲機場 탑승대기실교통수단뿐만 아니라 공항이나 기차역 따위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오래 전에 국제공항으로 전혀 손색없이 바뀐 北京의 首都機場은 물론이요 우리의 중소도시 시외버스 주차장 비슷하던 廣州의 白雲機場도 2004년 봄에 새 공항이 문을 열었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汕頭機場에서도 중국 각지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가 있는가 하면, 기차역인 廣州東站은 얼마나 규모가 큰지 기차에서 내린 후 출구까지 제대로 나온 것이 다행스러울 정도였다.

다만 이러한 교통수단을 다루는 사람들의 사고나 행위는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많았다. 홍콩-廣州 간의 기차를 탔을 때다. 열차가 출발한 직후 화장실에 갔더니 문이 잠겨 있었다. 차장이 잠긴 문을 열쇠로 열어주어야 그때부터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깜빡 잊었던 것이다. 자리로 돌아온 후 한참을 참았다가 다시 가보았다. 그런데 '사람 있음 有人'이란 표시가 된 채 여전히 잠겨 있었고, 그 앞에는 어떤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장을 부를까 하다가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걸보니 다녀간 모양이구나 했다. 그런데 결과는? 점점 다급해질 무렵 마침 지나가던 차장이 문을 발로 툭툭 차보더니 그제야 열쇠를 가지고 와서 문을 따주는 것이었다. 나와 그 사람은 아무 소리도 못하고 마주보며 쓴 웃음만 지었을 뿐이다. 아마 기차 출발 후 거의 1시간은 되었을 것이다.

베이징의  길 한가운데 사람들거리에서는 어떨까?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교통 신호를 무시하고 운전하거나 보행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부지기수였다. 중국 사람들을 느긋하다 또는 느릿하다는 의미에서 '만만디 慢慢地'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이는 사실 아무 경우에나 다 쓸 수 있는 말은 아니다. 횡단보도 같은 데서 보면 빨간 불이든 뭐든 간에 그냥 밀치고 나오기 예사고, 정 차량이 많아서 안될 경우에는 중앙선에서라도 기다렸다가 냅다 건너오기 일쑤다. 그만큼 사회의 시계가 빨라졌다는 의미가 강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교통의식이 신통찮다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2

 

여행자에게는 숙소가 항상 문제다. 예전 학생 때는 숙소 상황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더랬다. 그러나 여행 경험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편안하고 깨끗한 숙소를 찾게 되었다.

2004년 초의 중국행에서는 여행의 성격상 학교 내의 숙소에 묵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직도 이전의 시설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없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대학 내 숙소의 수준이 참으로 달라져 있었다. 과거 유학생 기숙사를 개조한 中山大學의 紫荊園과 전부터 있던 北京大學의 勺園은 중급호텔 수준 정도는 될 것이다. 더욱 놀라운 곳은 汕頭大學의 방갈로식 숙소였다. 내가 묵었던 곳의 경우, 아래층에는 각기 독립적인 1인실과 2인실로 되어 있었고, 위층은 접객실을 포함한 스위트룸 식으로 되어 있었다. 바깥에서 보는 모습도 멋있었지만 내부 역시 대단히 깔끔했다. 또 직원들 전원이 같은 복장에 워키토키를 차고 있었으며,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건물을 이동하기 위해 골프 카트를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대학 숙소에 외빈이 묵는다면 주인으로서 마음 놓을 수 있는 곳이 과연 얼마나 될까?

 

中山大學의 紫荊園  숙소      北京大學의 勺園 숙소      汕頭大學의 방갈로식  숙소      汕頭大學의 숙소 1인실 내부  

 

中山大學 교문당연하게도 중국 대학의 변화는 숙소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유명한 화교 부호인 李嘉誠이 2억 달러를 기부했다는 汕頭大學은 얼마나 잘 다듬어 놓았는지 차라리 빼어난 휴양지라 해도 될 정도였으며, 여기저기 잿빛의 낡은 건물 투성이던 中山大學은 곳곳이 새 건물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평범한 연못이던 곳을 산책로를 동반한 공원으로 바꾸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건물의 신축 개축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눈에 안보이는 대학의 시스템 역시 급변하고 있는 중이다. 인문사회계열이 위주인 北京大學에서 마주쳤던 한 국제정치학과 교수는 부인과 함께 손수 자기 차를 운전하고 있었는데, 이는 단순히 그들의 급여 수준이 높아진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학교 내에서도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함과 동시에 경쟁 체제가 들어서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北京大學 未名湖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겨울마다 스케이트장으로 바뀌는 北京大學 구내의 未名湖에서 마주친 한 장면도 적어도 내게는 퍽 인상적이었다. 예전 내 기억으로는 그저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만 북적거렸던 것 같은데, 이때 보니 제법 여러 사람이 아이스하키를 즐기고 있었다. 중국이 아직까지는 외견상 비교적 단조로운 획일적 분위기가 많이 남아있지만 실제로는 이미 상당히 다양화 복합화했음을 보여 주는 한 예라고 하면 너무 견강부회일까?

 

3

 

여행자가 늘 접촉하게 되는 것 중에는 또 음식점이 있을 것이다. 중국의 음식점 중에는 몇 층짜리 단독 건물에 층마다 거의 예식장 크기인 곳이 많다. 2004년 초의 중국 여행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내가 갔던 곳들 중 상당수가 그런 정도의 규모에 손님들로 시끌벅적대는 곳이었다. 당시 가장 확연했던 것은 廣州든 潮州든 北京이든 간에 방문하는 지역 마다 해산물 전문 요리점이 대단히 성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산물 전문 요리점 내부계단우선 음식점의 입구에 들어서면, 생선은 물론이고 조개나 성게, 게불 따위의 각종 해산물이 가득한 크고 작은 수족관 또는 상자들이 빽빽하다. 아마 우리의 수산물 시장을 떠올리면 될 듯싶은데, 다만 중급 이상의 식당에 부설되어 있는 만큼 그보다는 훨씬 규모가 작은 대신 깔끔하고 정돈이 잘 되어있다. 일단 안내를 받아 2층이나 3층 또는 같은 층의 식탁으로 가서 자리를 잡으면, 그 다음에는 경험이 많은 경우에는 메뉴만 보고 아니라면 해산물이 있는 곳이나 그 해산물로 시범 요리를 만들어놓은 곳에 가서 자신들이 먹고 싶은 요리를 고르는 식이다. 중국에서 근래에 들어와 이처럼 해산물 식당이 유행하게 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해산물을 소비할 수 있을 만큼 중국인의 소득 수준이 향상된 것, 이런 해산물을 대량으로 포획 또는 양식해내는 산업 및 기술이 발전된 것, 해산물의 신선도를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 운송할 수 있는 교통 운수 체제가 발달한 것 등이 그 주요 원인인 듯하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중국 사회의 발전에 따라 그에 걸맞은 다양한 욕구가 생성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그러한 욕구를 만족시켜줄 만한 시스템이 부족하여 특정 음식 형태가 그토록 유행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아직까지 중국 사회는 그 많은 인구에 비해 비교적 단일한 소비 패턴, 더 나아가서 비교적 단조로운 문화 행태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北京大學 근처의 식당成都요리집 입구어쨌든 이제 중국의 음식점이 전체적으로 경쟁 체제에 들어섰다는 느낌을 받았다. 규모도 규모거니와 우선 깨끗해진 것이 현저하다. 유명 음식점은 물론이고 대학 근처의 식당이나 심지어 대학 구내의 식당도 대단히 깔끔해진 것이다. 또 손님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단순히 음식만 파는 수준이 아니라 실내 장식에 공을 들이거나 여러 가지 이벤트를 마련한 곳이 적지 않았다. 예를 들면, 北京의 어떤 成都요리집은 아주 특색 있는 장식을 해두었을 뿐만 아니라 손님들이 기다리는 동안 다른 곳으로 가버리지 않도록 입구에서 중국 전통악기인 琴을 연주하고 있었다. 이런 경쟁은 아마도 비단 음식점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그 동안의 평균주의에서 벗어나서 사회 전체가 이미 경쟁주의에 적응한 지 오래인 중국에서는, 모든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각지의 관광 명소 개발도 예외가 아닐 텐데, 당시 나의 방문 목적상 관광지에 들를 기회가 많지 않아서 구체적으로 소개하기는 좀 어렵다. 다만 학회 종료 후 잠깐 가본 汕頭大學 인근의 절인 開元寺와 韓愈 유적지인 韓文公祀는 어느 정도 그 예가 될 듯도 싶다.

 

開元寺 내부 開元寺 승려  韓文公祀 입구   韓文公祀 내부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거의 폐허가 됐을 절을 복원해 놓은 것은, 단순히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선조의 문화유산을 계승한다는 차원만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현지의 승려나 신도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방객의 절대 다수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우리와 같은 외지의 단체 손님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韓文公祀에서 더욱 현저했다. 설명에 따르면 당나라 때 韓愈가 이곳에서 봉직한 것은 불과 몇 개월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그런 사실 만으로도 완전히 새로운 대규모의 구조물과 건축물을 만들어놓고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비록 고풍스런 양식이기는 했지만 지은 지 얼마 안됐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을 정도로 곳곳이 그냥 시멘트 내지는 콘크리트였다.

 

 

중국의 급속한 변화는 나와 같이 중국을 다루는 사람들이 방심할 수 없도록 만든다. 언제 어떤 새로운 현상이 그에 적확한 설명을 요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달리 보자면, 사실 이러한 변화가 중국을 파악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다. 표면적인 변화의 이면에 있는 상대적으로 잘 변하지 않는 그런 것들이 더욱 중요하다. 그 때문에 초보 시절에는 쉽사리 이런저런 글을 써낼 수 있는 반면에 알면 알수록 언급하기가 겁이 난다는 농반진반의 말도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언젠가 시간을 내어 나머지 이야기도 마저 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이번엔 이쯤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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