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 엔젤레스의 차이나타운

Los Angeles Chinatown

 

2008년 11월 18일  김  혜  준  KIM Hyejoon 

 

내가 가본 북미의 차이나타운은 대부분 그 도시의 다운타운에 위치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 것 같다. 백 수십 년 전 차이나타운이 자리 잡기 시작했을 때는, 아마도 그 당시 기준으로 봐서 땅값이 싸고 기반 시설이 미비한 도심지의 주변부에 해당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도시가 확장되면서 다운타운도 확장되었고, 이에 따라 차이나타운도 저절로 다운타운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차이나타운이 전체적으로 좀 낡아 보이는 것도 비슷한 차원일 것이다. 생긴 지도 워낙 오래되었지만 주류 사회가 아니다보니 재개발이 잘 안이루어진 탓이 아닐까?

LA의 차이나타운 역시 대략 이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곳에 처음 중국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이었다고 하는데, 인근의 리틀 도쿄가 상대적으로 깔끔하면서 쇼핑하기가 좋은 데 비해 이곳은 거리 전체에 대한 인상 면에서 좀 퇴락하고 어수선해 보였다. 그렇지만 차이나타운이 지니고 있는 특색만큼은 예외가 아니었다. 용 따위의 중국 문양을 사용한 China Town Gate, 중국풍 색깔과 스타일의 건물들, 음식점、채소가게、잡화점、세탁소 따위가 어지러이 뒤섞인 길거리, 장식성이 강한 한자와 영어가 묘하게 조화를 이룬 간판들 … 등. 거리를 한 바퀴 빙 둘러보는 동안 들려오는 잡다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소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동차 소리、횡단보도 신호등 소리、물건 부리는 소리、어디선가 들리는 중국 음악 소리가 혼잡한 가운데, 영어라든가 중국 각지의 방언은 물론이고 히스패닉의 스페인어와 아시안의 베트남어、필리핀어에 이르기까지 온갖 말소리가 어우러져서, 그야 말로 사람 살아가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특이하게도 고대 중국의 한 거리를 따온 것 같은 LA Chinatown (Los Angeles Chinatown's Central Plaza) 이라는 곳이 있었다. 초기의 차이나타운이 급격히 확장됨에 따라 이곳에 부지를 조성하여 일정한 계획 하에 1938년에 완공했다고 한다. 그때로는 뉴 차이나타운을 만든 것인데, 지금은 이보다도 훨씬 큰 규모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어있기 때문에 이곳도 이미 올드 차이나타운이 되어 버린 셈이다.

"孟欧之风"(맹자와 구양수의 어머니가 자식 교육을 위해 헌신한 것을 의미한다)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는 이곳의 입구를 들어서니, 중국의 국부라고 불리는 손문(손중산)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고, 그 뒤로 조그만 공터를 둘러싸고 중국풍의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마침 내가 간 날에는 바로 이 조그만 공터에서 하남성 소림사에서 온 승려들의 무술 시범과 사천성 및 내몽골에서 왔다는 기예인의 기예 공연이 있었다. 조명 따위의 특별한 장치 없이 노천에서 진행되는 행사라서 티비에서 보는 것과 같은 화려함은 없었지만, 소박하긴 해도 그런대로 볼 만한 구경거리였다. 승려들은 맨몸이나 창칼을 쓰며 뛰고 구르고 했고, 기예인들은 지우산 위에 공을 굴리거나 칼끝 위에 다른 칼을 들어올리거나 했다. 다만 약간 쌀쌀한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서 곡예가 제대로 안되는 경우가 없잖아 좀 안타깝기는 했다. 특히 열댓 살밖에 안돼보이는 어린 소녀가 몸을 이리저리 뒤트는 아크로바트를 할 때는 그 재주가 놀랍다기보다는 오히려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공연 그 자체가 아니었다. 건물 꼭대기에 휘날리는 중화민국의 국기인 청천백일기, 자신의 재주를 보여주기에만 집중하고 있는 중국 대륙의 승려들과 기예인들, 그들을 에워싸고 구경에 열중하고 있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 이었다. 만일 우리라면 어떨까? 이곳 LA든 어디든 간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곳에서 북한의 기예인들이 공연한다든가, 아니면 반대로 인공기가 펄럭이는 곳에서 남한의 기예인들이 공연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치상으로는 분명 가능해야 할 텐데 왠지 꼭 그럴 것 같다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혹시 나의 사고가 경직된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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