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San Francisco Chinatown

 

2008년 12월 18일  김  혜  준  KIM Hyejoon 

  

샌프란시스코는 두 번 방문했는데, 아쉽게도 두 번 모두 차이나타운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 첫 번째는 7년 전으로 일정 때문에 아예 들르지도 못했고, 두 번째는 지난 여름으로 단단히 결심하고 갔지만 뜻밖의 일이 생기는 바람에 결국 대충대충 훑어보는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북미에서 제일 큰 차이나타운이자 가장 오래된 곳임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차이나타운으로 접어들자마자, 길거리에는 까만 머리의 사람들이 넘치고, 상점 간판에서부터 거리팻말에 이르기까지 한자와 영문자가 함께 병기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채소가게、과일가게、식료품점、잡화점、소규모 중국 식당 따위가 뒤섞여 있는 중국식 시장이 나타났다. 내게는 약간 무질서한듯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이곳이 잘 정돈된 미국식 대형 슈퍼마켓이나 쇼핑 타운보다 훨씬 사람 사는 기분이 들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중국인이 정착하게 된 것은, 1848년 중국인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이곳에 온 이후부터라고 한다.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초까지 이곳에 정착한 중국인은 대부분 센트럴 퍼시픽 철도 회사의 대륙횡단철도 건설 노동자 또는 골드러시에 따른 광산 노동자와 그 가족이었다. 이민 초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백인 주류사회의 일자리 상실에 대한 공포와 인종 편견 때문에 중국인 이민금지법 등 허다한 억압이 있었지만, 중국계 사회의 발전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에서 보인 중국인의 기여 및 국제 정세와 중미 관계의 급변으로 인해 중국계 이민자 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오늘날에는 이곳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중국계 미국인이 약 18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에는 이곳 다운타운의 차이나타운 말고도 인근의 Oakland에도 차이나타운이 있고, 근래에 들어 Richmond와 Sunset 지역에 대규모의 중국계 사회가 형성되었으며, 최근 Bay Area에도 중국계를 포함해서 아시안 사회가 급격히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花園角廣場(Portsmouth Square)의 지하에 주차를 해놓고 지상으로 올라오니 사방이 높은 빌딩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가운데로 하늘이 사각형으로 올려다보였다. 이곳은 사실 광장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공원이나 다름없었는데, 규모는 작았지만 예전 뉴욕의 차이나타운에서 보았던 풍경 그대로였다. 나이 지긋한 중국 어르신네들이 여기저기 모여서 한담을 하거나 장기를 두고 있었고, 군데군데 중국풍의 구조물들은 서양풍의 주변 환경과 묘하게 어우러졌다.

원래 이 광장은 19세기 중엽 멕시코인 사회에서 만든 것으로, 샌프란시스코 또는 미국의 많은 역사적인 일들이 이곳에서 벌어졌다고 한다. 예를 들면, Sam Brannan이라는 사람이 이곳에서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자기가 캔 금을 공개함으로써 골드러시의 시작을 알리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차이나타운의 심장(Heart of Chinatown)"으로 불릴 정도로 이 지역 중국인 사회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데, 광장의 한쪽에는 1989년 6ㆍ4 천안문민주화운동 당시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을 모방하여 만든 민주의 여신상이 복제되어 세워져 있었다. 다만 청결 상태나 오가는 사람들의 행색 등에서 느껴지는 전체적인 인상은 그리 깔끔한 편은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홈리스들이 적잖이 모여드는 좀 후미진 그런 곳이라고 한다.

(사진 출처 http://www.sanfranciscochinatown.com/)(사진 출처 http://www.sanfranciscochinatown.com/)광장 주변에는 중국음식점、잡화점、기념품가게 따위가 여기저기 흩어져있었고, 조금 더 걸어 나가니 중국풍의 건물들이 잇따라 나타났다. 그 중 미국은행(Bank of America) 건물은 차이나타운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웨인 왕(Wayne Wang)에 의해 영화로 제작된 에이미 탄(Amy Tan)의 조이 럭 클럽(Joy Luck Club)이라는 소설에 등장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자신이 이곳에서 성장하면서 보고 겪었던 것들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던 것이다. 서로 이웃한 건물들의 꼭대기에는 중화민국의 국기인 청천백일기가 걸려있기도 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오성홍기가 걸려 있기도 했다. 차이나타운의 긴 역사와 시기별로 서로 다른 이민자들의 출신 지역 및 배경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건물들 사이로 난 좁은 도로로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뒤섞여서 제법 혼잡했고, 두어 블록 저쪽에는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중 하나인 전차가 땡땡땡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차이나타운이라기보다는 마치 홍콩의 한 거리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차이나타운에서 시 중심지이자 전차 반환점이 있는 Union Square까지는 걸어가도 될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전차는 주로 관광용으로 운행되는 모양이었다. 간혹 현지 주민들이 타고 내리기도 했지만, 손님은 나와 같은 관광객이 대부분이었다. 종점인 Fisherman's Wharf에서 花園角廣場으로 돌아오는 길은 제법 멀어서 택시를 탔다. 공교롭게도 택시에서 내린 곳이 원래 내가 자동차로 진입하던 방향과는 반대편에 있는 시장이었다. 샌프란시스코는 바다에 면해 있기는 하지만 모두 평지는 아니고 일부 지역이 구릉지에 형성되어 있다. 미국 영화에 보면 이런 울퉁불퉁한 언덕들을 배경으로 하는 자동차 추격전 장면이라든가 전차에 뛰어 타고 내리는 장면 따위가 아주 상투적인 것이 되어있을 정도다. 이곳의 차이나타운 역시 이처럼 제법 경사가 가파른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이 반대편 시장에서 광장까지는 제법 걸어 올라와야 했다. 걸어 다니기에 아주 숨 가쁠 만큼은 아니지만 워낙 면적이 넓다보니 산책길로는 별로 적합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광장에 도착하니 어느새 늦은 시간, 요기를 하기 위해 근처 Grant Place라는 중국음식점에 들어갔다. 초기 이민자들이 대부분 광동 출신인 때문일까? 아니면 1960년대 이후 홍콩 출신들이 대거 이민 온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우연히 그랬던 것일까? 식당은 홍콩의 여느 대중음식점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메뉴와 분위기였고, 주인과 종업원들은 자기들끼리 광동말을 썼다. 아까 광장에서 들었던 중국어도 모두 광동말이었는데 말이다. 중국 음식 주문에는 꽤 익숙한 편이지만 피곤하고 귀찮기도 해서 간단히 흰밥과 딤섬 콤보(만두 따위를 위주로 한 비교적 간단한 광동식 음식 세트)를 시켰다. 문득 옆자리를 보니 서양인들이 아주 진수성찬으로 먹고 있었다. 갑자기 후회가 들었다. 기왕에 왔는데 겨우 밥 한 그릇에 딤섬 콤보 따위나 시키다니…  

하지만 진짜 후회는 좀더 나중의 일이었다. 레이크 타호를 둘러보고 샌디에고로 돌아가는 길에 차이나타운을 다시 방문하겠다고 계획을 세웠지만, 아뿔싸 매사가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몇 달이 지나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그저 아쉬울 뿐이다. 언젠가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슬며시 의구심이 든다. 아무리 좋은 곳도 두 번은 가지 않는 법인데, 두 번 가면 반드시 실망하는 법인데, 아니 그것보다는 과연 다시 갈 수나 있을까 … 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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