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 현대중국문화연구실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출판사 펴냄

 

"현대 중문문학 대표작품 시리즈" (2차분)

- 낯익은 사람들의 낯선 이야기

 

부산대학교 현대중국문화연구실이 기획한 ‘현대 중문문학 대표작품 시리즈’의 2차분이 발간되었다. 이번에 발간된 2차분 6권은 모두 홍콩과 타이완의 작품으로, 2011년 발간된 1차분 7권에 이어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품들이다. 부산대학교 현대중국문화연구실은 현재 청년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중국 대륙을 넘어서 타이완과 홍콩, 그리고 세계 각지에 산재해 있는 화인 집단과 이들의 문학/문학에 대한 소개 및 연구를 목적으로 활동 중이다.

 

"현대 중문문학 대표작품 시리즈" (2차분)     "현대 중문문학 대표작품 시리즈" (2차분)

 

  • 《뱀 선생 蛇先生》, 라이허 賴和 지음, 김혜준/이고은 옮김,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9)
  • 《회오리바람 旋風》, 장구이 姜貴 지음, 문희정 옮김,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9)
  • 《혼수로 받은 수레 嫁粧一牛車》, 왕전허 王禎和 지음, 고운선 옮김,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9)
  • 《고도 古都》, 주톈신 朱天心 지음, 전남윤 옮김,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9)
  • 《홍콩 시선 1997~2010 香港詩選》, 룡핑콴 梁秉鈞 외 지음, 찬찌딱 陳智德 엮음, 고찬경 옮김,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9)
  • 《포스트식민 음식과 사랑 後殖民食物與愛情》, 예쓰 也斯 지음, 김혜준/송주란 옮김,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9)

 

19세기 이래 홍콩과 타이완은 식민 통치 및 정치적 격변을 경험하는 한편 지난 수 십 년 동안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이런 점에서 이 두 지역의 사회 문화적 상황은 한국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 지역에 대해서 표면적인 통계나 시황, 사건 사고 위주의 뉴스, 또는 짧은 기간의 관광을 통해서 피상적으로만 익숙할 뿐이다. 과연 한국과 이들 지역이 어떤 공통점과 차이가 있는지, 이들 지역의 구체적인 삶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대학교 현대중국문화연구실(현문실)의 이번 ‘현대 중문문학 대표작품 시리즈 2차분’은 홍콩과 타이완의 역사와 사회를 이해하면서 그 소용돌이를 헤쳐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총 6권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1920년대 타이완 신문학의 선구자 라이허의 작품선인 《뱀 선생》에서부터,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현재까지 홍콩 대표 시인들의 작품을 모은 《홍콩시선 1997~2010》까지, 약 1세기에 걸친 이 6권의 작품집은 이들 낯익은 사람들의 낯선 이야기를 통해서 이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해보고자 기획되었다.

라이허(賴和, 1894-1943)의 《뱀 선생》은 라이허의 단편소설 중에서 그의 문학적 특징과 시대적인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 8편을 엄선한 소설선이다. 라이허는 타이완 신문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질 만큼 그 당시 문학의 형식과 내용, 사상 면에서 모두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였던 작가다. 그의 소설에는 일제식민치하의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 인물들을 통해 식민체제를 비판하고, 억압과 착취를 당했던 민중들의 고통과 저항의지를 드러내면서, 이들의 우매함과 어리석음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특히 민중이 겪어야했던 비참한 현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피해자였던 여성 하위주체가 겪었던 비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와 동시에 그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도 변화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하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작가의 고민을 표출한다.

장구이(姜貴, 1908-1980)의《회오리바람》은 1950년대에 창작된 장편소설로, 1930년대 중국 산둥 지역의 공산당 형성과 몰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창작 당시에 타이완은 국민당 정권이 계엄을 선포하고 반공산당과 대륙 수복을 강조하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이 작품에도 이런 시대적 상황이 제법 많이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작가가 단순히 반공이나 정치적 이념에 초점을 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중국 사회와 중국인이 겪은 혼란과 방황, 더 나아가 20세기에 권력이 충돌하고 이동하는 사회에서 어떤 폭력이 자행되었는지를 예리하고 냉정하게 파헤친다. 그러므로 이는 중국 대륙 출신의 작가가 대륙의 바깥에서 중국의 역사적 순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점에서 그 당시 중국의 상황을 더욱 폭넓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왕전허(王禎和, 1940-1990)의 《혼수로 받은 수레》는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그의 초기작들을 엄선한 단편소설선이다. 이 시기는 타이완을 재인식하고 타이완 사람들의 삶을 재조명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 때이다. 왕전허는 작품 속에서 한층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문학 기교 및 평범하지만 복잡하고 미묘한 인물 형상을 통해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타이완의 모습을 그려낸다. 작가는 도농 간의 경제적 격차, 미국 숭배 풍조의 성행, 가족관의 급격한 변화 등으로 당시 혼란을 겪고 있던 타이완 사회를 냉정하게 고발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질박하고 생생하게 하층민의 삶을 묘사하면서 동등한 인간으로서 이들의 희로애락을 생동적으로 담아낸다. 특히 독자들로 하여금 등장인물의 내면과 마주하게 만드는 작가 특유의 방식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사회의 부조리함을 깨닫게 하는 효과적인 장치로 작용하면서 타이완의 현실을 더욱 입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주톈신(朱天心, 1948- )의 《고도》에는 대표작인 〈고도〉를 비롯해서 무거운 역사적 공간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재해석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복원하여 폭력적인 현실에 대항하는 작가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필체가 살아있는 대표작들이 실려 있다. 20세기 말이 되면 타이완의 많은 작가들은 조작되고 강요된 역사의 기억을 재구성하면서 새롭게 현실을 인식하고자 시도한다. 그 중에서도 〈고도〉는 공식적인 타이완의 역사를 만드는 과정에서 비공식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던 개인의 기억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 수작이다. 주톈신의 작품 속에서 식민지 시대의 추악함을 드러내는 타이베이의 건축물들과 상징물들은 누군가의 추억 속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거리 곳곳에 묻혀 있는 역사적 사건들은 일상의 잔재처럼 아련한 기억이 된다.

《포스트식민 음식과 사랑》 및 《홍콩시선 1997~2010》은 홍콩 반환 이후 변화하는 또는 상대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홍콩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예쓰(也斯, 1948- )의《포스트식민 음식과 사랑》은 지속적으로 홍콩성과 홍콩인의 정체성을 탐구해온 작가의 단편소설 및 자신의 작품에 관한 글을 옮긴 것이다. 그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평론가이자 학자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딱딱한 이론 대신 그가 만난 소탈한 사람들과 평범한 일상, 풍부한 음식과 다양한 거리가 가득하다. 각각의 단편소설은 독립적인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여러 편에 중복적으로 동일한 인물과 배경이 등장하여 전체적으로는 마치 퍼즐 맞추기와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이러한 구성은 예쓰 자신의 창작 스타일인 동시에 홍콩의 독특한 성격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서 각색되지 않은 그대로의 홍콩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룡핑콴(梁秉鈞, 1948- ) 등의 《홍콩시선 1997~2010》은 홍콩의 유명한 시인이자 시 전공자인 찬찌딱 교수가 특별히 한국 독자들을 위해 가려 뽑은 시들을 수록한 것이다. 시에 나타나는 다양한 이미지나 상징성을 고려한다면, 시는 홍콩을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홍콩시선 1997~2010》에는 홍콩 반환의 역사적인 순간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한 다양한 그림들이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많은 작품에서 홍콩 반환은 배경일 뿐이며, 시인들의 가장 큰 관심은 그러한 역사적 순간 뒤에도 계속 이어나가야 할 홍콩 사람들의 삶에 있다. 이들의 시에서는 기쁨의 환호성과 기대감은 물론이고 영국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여전히 홍콩 자체로 존재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좌절감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으며, 또한 여전히 반복되는 일상의 단조로움과 허무함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관점과 풍경을 통해 독자들은 특수하고 독립적인 홍콩은 물론 그 안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홍콩인들의 일상과 고민, 그리고 더 나아가서 홍콩과 중국 대륙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문학 작품 속으로 들어가 그 누군가의 소소하고 하찮은 일상을 만난다는 것은 시대와 공간을 넘어 그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이번에 현문실이 소개하는 홍콩과 타이완의 작품들 속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한다. 이들은 식민지배로 고통 받고, 권력과 이념에 희생되고, 정치적 갈등과 사회변화 속에 휩쓸린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지식인과 정치인, 기생과 창녀, 도시의 노동자와 농촌의 빈농 등 다양하고 다채로운 인물들은 각기 급변하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예들이자 인간으로서 스스로의 존재를 입증하는 목소리들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인생을 살지만, 그 이야기는 계층과 지역을 넘어서는 훨씬 큰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이번 시리즈의 출간에는 현문실과 지식을만드는지식의 노력 외에도 타이완문학관 의 리루이텅 관장, 타이완 둥화대학의 쉬원웨이 교수, 홍콩교육대학의 찬찌딱 교수, 하버드 대학의 데이비드 왕 교수, 부산대학의 김혜준 교수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많은 이들의 협력과 지지가 있었다. 그리고 물론 이번 시리즈의 출간에서 가장 핵심적인 분들은 해당 작품들을 창작하고 한국에서의 출판을 허락해 준 작가들 ― 라이허, 장구이, 왕전허, 주톈신, 예쓰, 홍콩 시인들 및 일부 별세한 작가들의 유족이다. 아무쪼록 이번 시리즈 참여자 전원은 한국의 독자들이 홍콩과 타이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이들 지역에서 살았거나 또는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공감하게 되기를 기원해마지 않는다.

 

Return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