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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담론모임 (하)
My Experiences in The Discourse School of The Humanities - 2


김  혜  준

 

 

(앞에서 계속)

 

언젠가 비가 촐촐히 오는 날, 발표와 식사가 끝나 모두들 흩어지고 난 다음이었다. 김기섭 선생님이 갑자기 '우리가 남이요?'라고 한마디했고, 나는 꽤 심한 감기였는 데도 불구하고 그만 구서동 어디까지 가게 되었다. 그처럼 김 선생님에게는 사람을 끄는 그런 친근감이 있다. 그의 〈고려인의 사랑과 결혼〉이라는 발표도 마찬가지였다. 제목부터가 근사하지 않은가! 그 날 발표는 다른 때와는 달리 사뭇 '화기애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 선생님과는 담론모임에서도 자주 만났지만 그의 연구실에서 만난 횟수가 좀더 많은 듯하다. 보통 다른 사람의 연구실에는 잘 찾아가지 않는데 특별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을 알고 보면 이유는 엉뚱한 데 있다. 김 선생님의 방이 화장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데다가 김 선생님은 비교적 문을 열어놓고 작업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일할 때만 문을 열어두는 탓인가? 내가 가보면 그는 늘 뭔가를 쓰고 있다. 간혹 교수회 등의 활동과 관련된 글을 쓰기도 하는 모양인데, 내가 들를 때는 꼭 이 책 저 책을 펼쳐 놓은 채 논문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최근 몇 년간 김 선생님의 학내외 활동은 눈부신 바 있다. 그러나 내가 목격한 김 선생님은 이처럼 그 조각 조각의 시간을 꿰맞춰서 늘 공부를 하고 있었다. 원래 '담론모임과 나'의 다음 집필자는 김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김 선생님이 제때 원고를 내지 않는 바람에 그 짐이 내게로 넘어오게 되었다. 그러니 내 이 다음에 만나면 단단히 보상을 받으리라. 하긴 그러면 김 선생님은 그러겠지. '아따 마∼ 뭐 그런 것 갖고 그라요. 그마 차나 한 잔 합시다!'

친화력이라는 면에서는 곽차섭 선생님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담론모임의 태동으로부터 유지, 발전에 이르기까지 곽 선생님이 보여준 그러한 능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도 동감인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에 받은 한 이메일에는, UCLA에 1년 간 머무르던 "곽차섭 선생님이 돌아오시어" "지난 달 담론모임 때는, 부산에 있는 여러 대학에 계신 사학 전공 선생님들이 곽 선생님도 볼겸 참석하시어 성황을 이루었습니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가끔씩 톡톡 쏘아대는 어투와는 달리 사람들을 은근슬쩍 끌어당기는 그 흡인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나로서는 알 수도 없고 따라 할 수도 없는 바다. 그러나 곽 선생님에게서 더욱 돋보이는 점은 그의 지적 탐구심, 참신한 발상, 날카로운 시각, 정연한 논리 등을 포함하는 글자 그대로의 '지성'이다. 몇 차례 지켜본 바 강모, 허모 선생님과 더불어 셋이서 무슨 쟁점을 두고 갑론을박하는 장면은, 최고 수준의 판사, 검사, 변호사가 수시로 역할을 바꾸어가며 변론하는 영화 장면으로 비유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 곽 선생님이건만 의외로 발표는 여태껏 딱 한번 했을 뿐이다. 〈포스트 모던 시대의 새로운 역사학 - 까를로 진즈부르그와 미시사의 도전〉이 그것이다(곽 선생님은 『미시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엮어 내기도 했다). 남들을 먼저 배려한 탓일까? 글쎄…… 어쨌든 곽 선생님의 설명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된 이 새로운 시도 -- 삶의 세절들을 마치 그물 짜듯이 재구성함으로써 그간 거대 담론 속에서 간과되어 왔던 구체적인 인간, 살아 숨쉬는 인간의 역사적 면모를 더욱 풍성하고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는 --가 내게는 별로 낯설지가 않았다. 평소에도 가끔 곽 선생님으로부터 그런 유의 이야기를 듣거나 관련된 서적을 추천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기실 곽 선생님의 특기 중 한 가지는 자신이 펴낸 책이든 남의 책이든 좋은 책만 있으면 종종 주변 사람에게 선물하거나 추천한다는 것이다. 내 경우 곽 선생님으로부터 증정 받거나 권장 받은 서적이 적어도 열 몇 권은 되는 듯한데, 그 중 내가 읽어 본 것만 해도 『역사학과 사회이론』, 『오리엔탈리즘』, 『서양의 지적 운동』 등 대여섯 권이 넘는다. 나와 서로 출국해 있는 기간이 어긋나서 한 2년쯤은 못뵐 듯하다. 그 사이 어떤 변화를 보여 주실지 궁금하다.

 

김, 곽 두 선생님을 비롯하여 담론모임 발표자 중에는 역사가 전공이신 분들이 유난히 많다. 원래 그분들의 숫자가 많은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적극적인 탓이기도 하리라. 채상식 선생님의 〈최치원의 불교 인식〉은 어릴 적부터 익히 들어온 최고운에 대해서 처음으로 조금이나마 제대로 알게 된 자리였으며, 특히 불교계의 상황과 계보에 관한 채 선생님의 놀라운 기억력과 흥미진진한 설명은 참으로 인상이 깊었다.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소장까지 하신 분이 특유의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두 달마다 돌아가는 담론모임 총무를 하시겠다고 했던 일도 잊지 못할 일이다. 나중에 사정이 생겨서 못하기는 했지만. 인상 깊기로 말하자면 김동철 선생님의 〈조선 후기 부산 왜관과 동래 상인〉 역시 그에 못지 않았다. 김 선생님은 '말로만'으로 하지 않았다. 슬라이드까지 동원하신 것이다. 왜관도를 보면서 왜 대청동이며 고관 입구인지, 동래와 부산포의 차이는 무엇인지 등등을 들으니 무척 실감이 났다. 아마도 김 선생님의 발표를 듣고서 부산의 지명과 역사에 대해 한결 이해가 넓어진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나 보다. 올해 6월 단체로 대마도에 갔을 때 그곳의 한 기념관에 전시된 왜관도를 보게 되었는데, 선생님 한 분이 열심히 설명해 주시기는 했지만, 사랑은 첫사랑이라고 했던가 역시 김 선생님의 이름이 인구에 회자했다. 최원규 선생님의 〈우리나라 근대 부동산권의 흐름과 전망〉은 좀 다른 의미에서 아주 깊은 인상을 남긴 발표였다. 우리의 전통적인 토지제가 일본의 강점으로 어떻게 왜곡되었으며 그 때문에 오늘날까지 얼마나 큰 후유증을 겪고 있는가를 지적하신 점도 그러했지만, 발표를 하기로 한 다음 눈병을 해서 거의 글자를 읽을 수 없을 지경인 데도 끝까지 마치신 점은 과연 학자적 책임감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 주는 일이었다.

선석열 선생님의 〈『三國史記』 신라본기 초기 기록의 신빙성 문제 - 과연 믿을 수 있는가〉는 신라의 국가 형성과 관련된 각종 문헌과 주장들을 꼼꼼히 비교 검토한 발표였다. 나야 이 분야의 구체적인 지식이 부족한 관계로 그러한 것들의 미묘한 차이를 잘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정설화되어 있는 기존의 학설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는 도전성과 치밀한 사료 분석을 통해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해내는 용의주도함 만큼은 확연했다. 그것이 신라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주 김가인 내게는 제법 흥미를 자아내기도 했고. 하세봉 선생님의 〈한국에서의 동아시아 만들기 - 발명인가 발견인가〉는 상당히 관심있는 주제였다. 하 선생님과는 언젠가 한 학기 동안 공동강의도 한 만큼 특별한 인연도 있는 데다가, 그것과는 별도로 나 또한 그전에 학생기자의 부탁을 받고 《부대신문》에 〈『동아시아, 문제와 시각』 서평〉을 쓴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발표는 일본학계의 아시아논의를 염두에 두면서 한국학계의 동아시아 담론의 특징을 따져 본 것이었는데, 일본에서 오랜 시간 공부하고 중국에도 자주 오간 하 선생님의 학문적 배경을 충분히 발휘한 것이었다. 유재건 선생님의 〈맑스와 월러스틴〉은 안그러려고 하면서도 무의식중에 학문의 경계짓기를 하고 있던 나를 새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서 사학과 철학, 사상사와 철학사 그런 구분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인간의 삶 -- 사고와 실천 -- 이 어떤 궤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런 것들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해 나가야 하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찾아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재삼 확인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맑스와 관련이 깊은 현대 중국을 다루고 있는 내게는 그 내용면에서도 썩 유익한 발표였다. 다만 유 선생님이 처음 몇 년간 대단히 열성적으로 참여하신 것에 비해서 근자에 와서는 좀 뜸하신 것이 아쉽다.

 

담론모임의 출입 자체가 자유롭다보니 많은 분들을 새롭게 만나게 된다. 반면에 상당수의 분들은 금새 또는 차츰 못만나게 되기도 한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하등 우려할 바가 아니다. 다만 오랜 기간 함께 담소 담론하시던 분들이 그런 변화를 보일 때는 좀 아쉬운 느낌도 들고 이에 대해 한번쯤 숙고해 볼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느 모임이든 간에 신진대사가 이루어지게 마련이지만, 기왕의 참여자들이 다소나마 소극적이 된다는 것은 일정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 동안 전혀 변화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가능하면 발표자 및 그 전공을 다양화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동참자들을 위해 발표시 사회도 보는 등 다소간 모양새를 갖추기도 했고, 또 얼마 전에는 그간의 과정을 정리하여 홈페이지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것이 다일까? 내 생각에는 약간의 노력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예를 들면, 특정 주제하에 몇몇 분이 공동 작업한 결과물을 낸다든가, 대학원이나 학부 과목 중 적합한 것을 선택하여 공동 강의를 시도한다든가, 예전에 모두가 그러했던 것처럼 뭔가 갈증을 느끼는 선생님들을 좀더 적극적으로 모신다든가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특히 새로 부임하신 선생님들의 동참은 무척 중요하리라고 본다. 정출헌 선생님과 문성원 선생님이 그 좋은 예다.

학번은 높은데 부임은 늦은 '중고 신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과묵하신 성격이라 그런지 정 선생님은 소위 '좌충우돌' 형은 아니시다. 하지만 적의적소에 필요한 질문이나 토론도 하시고, 일단 말씀을 시작하면 구수하기가 남다를 뿐만 아니라, 그런 걸 다 제쳐두고 그저 쓰윽 웃으면서 고개만 끄덕이고 있어도 열 마디 찬성의 말보다 무게가 나간다. 정 선생님의 〈고전 서사문학에 나타난 '아버지'의 형상과 그 변주〉 역시 그런 발표였다. 날로 왜소해지는 '아버지'의 역할과 위상을 다시 생각해본 그것은, 학문이 상아탑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그것은 또 한문으로 되어 있든 한글로 되어 있든 심지어는 글자가 아닌 말로만으로 전해져 내려왔든 간에, 우리의 옛 문학이 오늘날의 우리 생활과 별개의 것이 아님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했다. 담론모임이 가진 생명력은, 이처럼 학문이 각각의 고립된 전문 지식의 집합들이 아니라 각기 독자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상호 공통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지식의 체계라는 점을 확신하고 확인하는 데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이런 면에서 정 선생님이 부임 초기부터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하시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문성원 선생님 역시 비교적 과언하시는 분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몇 차례 만난 다음에도 여전히 말씀을 건네기는 쉽지 않았다. 어느 날 햇볕이 하도 좋아 점심 후 인문관 교수동 앞 벤치에서 몇 사람이 '길거리아 커피'를 즐기고 있었는데, 마침 문 선생님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인사도 나눌 겸 잠시 멈추어 섰다. 그때 내가 담론모임 발표를 권했고, 뜻밖에도 문 선생님은 아주 선선히 그러마고 하셨다. 그리고는 〈술 마시면서 하는 철학〉을 발표하셨다. 그러나 정작 권유자였던 나는 참석하지 못했고, 그 바람에 늘 빚진 심정이었다. 그러다 얼마 후 문 선생님이 준비한 한 발표회에 어떤 분의 토론자로 요청을 받았다. 나로서는 빚 갚을 기회가 온 셈이었다. 그래서 문 선생님의 저서인 『배제의 배제와 환대』도 일부 읽어가며 제법 준비를 했는데, …… (생략! 생략!) 결국 나는 더 큰 빚쟁이가 되어 버렸다. 빚이 눈덩이처럼 붓는다고 하는 말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는 다시 〈'책임'의 철학적 의미〉를 발표하신 모양인데, 그 역시 참석치 못했으니 이 빚을 어찌할고?

 

담론모임의 변화 가운데 나로서는 불만스러운 것도 없지는 않다. 근래에 와서 완성된 논문 위주로 발표가 이루어지는 것이 그 중 하나다. 논리 정연하고 잘 정제된 글을 발표하는 것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 계속되다 보면, 아이디어 상태라서 거칠기는 해도 그만큼 생동감 넘치는 발표라든가, 엄격한 논문 쓰기의 사이사이를 비집고 떠오르는 가지가지 영감과 인상을 쏟아내는 그런 열정적 발표라든가, 또는 그 외 한가롭되 학술적 의미를 잃지 않는 방담들은 점차 소외되고 말 것이다.

예전의 몇몇 발표를 더듬어보자. 류민화 선생님의 〈일본 고대의 문자와 문체의 성립〉은 몇 쪽의 자료가 첨부된 학술 노트를 발표하는 형식이었고, 이순희 선생님의 〈프랑스의 엘리트 교육〉은 현지에서 직접 경험한 바 일종의 자녀 교육 체험담 같은 것이었으며, 양민종 선생님의 〈러시아 지성과의 대화〉는 그가 만난 러시아 학자에 대한 인터뷰나 인상기 형태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각각은 엄격한 논문 발표 못지 않은 지적 담론들이었다. 일본 문자에 관한 새로운 앎과 더불어 일본과 우리나라의 불가분한 관계에 대해 새삼 실감하게 만들었으며, 단순히 프랑스 학제에 대한 무미건조한 지식이 아니라 참석자 자신의 것처럼 체화되면서 다양하고 풍성한 세계를 재삼 각성하게 해주었고, 구체적인 한 개인과의 조우를 통해 러시아의 문화적 상황과 지식인들의 동향에 대해서 한결 분명히 인식하도록 했다.

발표장의 분위기가 전에 비해 '엄숙'해진 것도 나로서는 좀 회의적이다. 자칫 '면박'으로 오해받을지도 모를 만큼 도발적인 질문이나 발표자에게 거의 기회를 주지 않는 지나친 산만함을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근엄한 표정과 어조로 공식적인 질문과 답변만 한다면,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이 모여 학문간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것 외에는, 일반적인 학술회장과 무어 그리 다르겠는가? 담론모임은 역시 왕성한 지적 호기심에서 나오는 가차없는 논쟁과 재치있는 언어가 중요한 매력이 아닐까? 그 어떤 언설도 상호간의 인격과 학문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다는 것은, 이미 오랜 기간 묵계되어 왔고 또 증명되어 온 바가 아니던가? 그런 뜻에서 나는 발표시 사회를 보시는 분은 과도하지만 않다면 가능한 한 발언의 유도나 발언의 자제를 요청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동시에 참석자들도 이제 와서 구태여 다시금 겸손하실 필요는 없지 않겠나 싶다.

물론 비교적 연세가 드신 분이나 외부에서 특별히 오신 분이 발표하실 때는 다소간 유의를 해야 할 것인데, 이 역시 그 동안 경험한 바로는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전자의 경우, 각기 시인과 수필가이기도 하신 임종찬 선생님의 〈시조가 시조답기 위한 몇 가지 원칙〉과 정진농 선생님의 〈머무름의 motif와 떠나감의 motif - 한미 문학의 비교 대조의 한 angle〉은, 예리한 질문을 놓지 않으면서도 시종 따뜻한 문학적 분위기를 잃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후자의 경우, 부산외대 박상진 선생님의 〈희망의 공간을 향하여 - 해석의 윤리적 실천과 경험적 주제〉라든가 두 번의 해직을 당한 재야철학자 김상봉 선생님의 〈임신한 정신의 우울과 동정녀의 나르시시즘에 대하여〉는, 사전에 '만찬'을 겸한 발표자리를 마련하거나 아니면 따로 발표비를 준비했을 만큼, 발표 시에도 토론은 구애없이 하되 크게 예의에 어긋나는 일은 없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담론모임에 자주 참석하다 보면 발표나 식사 때 직접적으로 얻게 되는 것도 많지만 그 외 간접적으로 받게 되는 도움도 적지 않다. 그 중 한 가지는 앞에서도 두어 번 언급했듯이 좋은 서적을 추천받는 일이다.

명색이 문학을 한다면서 우리나라 시를 읽어본 게 까마득한 옛날이었다. 그런데 고현철 선생님의 〈낭만적 사랑과 키치적인 양식 - 베스트셀러 시집의 비판적 해석〉을 들으면서 비단 우리나라의 시단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소홀했던 우리 시를 읽고 싶다는 충동이 절로 일어났다. 그리고 얼마 후 고 선생님으로부터 허만하의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등 10권의 시집을 추천 받았고, (말하기가 좀 뭣하지만) 화장실에 갈 때마다 조금씩 읽는 재미가 참 쏠쏠했다. 〈정보(화)사회의 빛과 그림자〉를 발표하신 박준건 선생님은 맑스가 전공이라고 하신다. 사실 나는 맑스에 관해서 체계적으로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진작부터 있었다. 중국현대문학이 맑스주의와 관계가 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때그때 되는 대로 조금씩 접했을 뿐 그러한 계기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박 선생님으로부터 『맑스주의 변증법의 역사』 등 10여 종의 책을 소개받았다. 끈기 부족으로 다 읽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수확이 없지 않았다.

간접적인 효과 중 또 한 가지는 뭔가 질문하거나 부탁이 있을 때 그래도 좀 덜 서먹하다는 것이다. 『중국현대산문론』이라는 책을 번역할 때였다. 그 속에 등장하는 중국어로 된 서양인들의 이름 및 그들의 이론에 관련된 용어 때문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 그때 여러 선생님들께 도움을 받았다. 영문과의 정병언 선생님은 수고를 마다 않고 서양인명사전을 들추어가며 같이 찾아주셨는데, 그때 외에도 영어와 관련하여 여러 차례 애써주셨다. 아마도 담론모임에서 몇 차례 같이 자리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부탁을 하기가 상당히 망설여졌을 것이다. 철학과의 이영철 선생님께도 폐를 끼쳤다. 반면에, 제대로 답은 못해드렸지만, 이 선생님께서 장자를 읽으시다가 궁금한 게 있다면서 내게 몇 마디 물어보신 적도 있었다. (그 얼마 후 이 선생님은 〈도와 언어〉를 발표하신 것 같은데, 하필 나는 다른 사정이 있어서 그 발표를 듣지 못했다. 분명히 좋은 발표였을 것이다.)

특히 앞으로 기대해 볼 수 있는 그런 것으로는 공동연구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유제분 선생님은 〈간극의 정체성 - 도리스 레싱의 <풀잎은 노래한다>의 페미니즘과 탈식민주의〉라는 발표에 이어 〈시민권과 이민법 그리고 문학 : 맥신 홍 킹스톤의 소설을 중심으로〉라는 발표를 했는데, 후자를 듣고 나는 이민자 문학에 대해 많은 시사를 받았으며, 만일 기회가 있다면 유 선생님과 공동으로 북미 중국인 문학에 대한 연구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문수필이 전공이신 김성진 선생님과는 산문(수필)에 관한 공동연구를 하면 어떨까하는 말씀을 나눈 바 있다. 다만 언제부턴가 열심히 일본어 공부를 하시더니 일본에 1년 간 체재하기도 하고 〈일본시화에 실린 한국 관련 기사〉를 발표하기도 한 것처럼, 김 선생님의 최근 관심이 비교적 일본 쪽에 기울어지신 것 같아서 그냥 오가는 말 정도로 그치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마 이런 경험은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혹시 내가 알지 못할 뿐 벌써 선생님들끼리 담론모임이 매개가 되어 공동연구를 시도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몇 년 전에는 예닐곱 선생님이 공동으로 모 학술재단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용과 전망〉이란 제목으로 연구지원을 신청하기도 했으니까.

 

담론모임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예상할 수가 없다. 언젠가는 '금정산의 눈싸움'이 그리운 옛날이 되고,  '파파게노 시절'이 행복한 추억이 되고, 심지어는 '정치적 관점' 마저도 즐거운 기억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아직 많은 날들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지난달에 '뉴페이스'이신 이왕주 선생님이 〈새로운 인문학을 위하여〉를 발표하신 것이나, 이번 달에 이미 〈현대 철학의 전개와 한국철학의 정립 : 과학철학적인 관점에서〉를 발표하신 적이 있는 김유신 선생님이 다시 〈양자역학의 철학 :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논쟁〉을 발표하신 것으로 보아, 또 "여러 선생님들을 만나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어 저도 무척이나 안타깝습니다"라고 하신 이제환 선생님의 말씀처럼 앞으로도 여러 선생님들이 계속 참여하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이 글도 언젠가 다시 속편을 써야 하지 않을까? 그럼 천상 이렇게 마무리해야 하겠다.

"다음에 계속!"

 

 

2001년 11월 12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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