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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의 중국문학은 ……*


1996년 9월 19일  김 혜 준

 

  1. 중국 현대문학의 출발

  2. 신시기 중국 문학의 변모 양상

    2-1  1976-1985 : 상흔문학, 되돌아보기문학, 개혁문학, 기실문학, 몽롱시

    2-2  1985-1989 : 모더니즘적문학, 뿌리찾기문학, 신향토소설, 신사실소설, 통속문학

    2-3  1989-     : 王朔의 범죄소설, 賈平凹의 〈폐도〉

  3. 중국문학의 앞날

 

 

     1. 중국 현대문학의 출발

 

   아편전쟁 후 중국은 본격적으로 서방과 접촉하게 되었다. 새로운 사회 상황이 전개됨에 따라 문학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서방문학의 대량 번역 및 그를 통한 서방문학의 영향 확산과 梁啓超, 黃遵憲 등이 '文界革命', '詩界革命', '小說界革命'을 제창한 것에서 보듯 주로 사상계몽적이고 개량적인 색채를 띤 문학 경향의 출현이었다.1)

   그러나 중국문학에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사회적으로 洋務運動, 維新運動, 辛亥革命 등을 다 경험한 뒤인 1917년 이후였다. 1917년 1월, 胡適은 《신청년新靑年》에 구문학의 병폐를 극복하기 위한 8가지 방안을 제시한 〈문학개량에 관한 나의 견해文學改良芻議〉를 발표했다.2) 이어서 2월에는 陳獨秀가 이를 지지해서 《신청년》에 이른바 3대주의를 제창한 〈문학혁명론文學革命論〉을 발표했다.3) 그후 계속해서 錢玄同, 劉半農, 李大釗, 周作人 등이 이론적인 면에서 이에 힘을 보탰고, 마침내 창작면에서도 魯迅의 〈광인일기狂人日記〉, 胡適의 《상시집嘗試集》, 郭沫若의 《여신女神》 등이 출판됨으로써, 신문학 즉 중국현대문학이 성공적으로 출발하게 되었다.4)

 

 

     2. 신시기 중국 문학의 변모 양상

 

   1976년 이래 중국에서는, 周恩來의 사망과 4·5 天安門 사건, 毛澤東의 사망과 4인방5)의 몰락, 華國峰 체재의 등장과 '두 가지 무릇' 구호 제기, 鄧小平의 재복권과 '실천이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다' 주장의 제기, 중공 제11기 3중전회에 의한 사상, 정치, 경제, 조직 등 모든 면에서의 방향 전환 및 이를 통한 鄧小平 체재의 성립, 본격적인 개혁과 개방 정책의 실시, …… 등 일련의 정치적 변동이 잇따라 일어났다. 이러한 정치상의 변화는 단순히 권력 담당자의 교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이후 중국 사회 전반의 변화를 선도하는 것이자 바로 그러한 변화를 대표하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중국 사회는 이른바 '신시기'에 접어들면서, 그 동안의 단일하고 폐쇄적이고 정체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서 다양하고 개방적이고 발전적인 새로운 면모를 보이면서 변화에 변화를 거듭했다. 그리고 문학 분야 역시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상응해서 이전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2-1 1976-1985

 

   1976년 문혁이 종결되었지만 정치적, 사상적 혼란이 단시일내에 해소되기란 쉽지 않았고, 이에 따라 문예계 역시 그후 2년 여 동안 조심스런 발걸음이 계속되었다. 1978년 12월 중공 제11기 3중전회를 전후한 시기부터 개혁과 개방이 핵심 정책으로 결정되고 중국 사회가 점차 자유화, 다양화의 방향으로 변화하면서 문학 창작 분야에도 봄이 찾아왔다. 지난 시기 문예계의 각종 사안들에 대한 재심 및 복권이 이루어졌고, 丁玲, 巴金, 艾靑, 沈從文, 蕭軍, 蕭乾, 吳祖光, 秦兆陽, 王蒙, 劉賓雁, 柳溪, 劉紹棠, 從維熙, 陸文夫, 高曉聲, 李國文, 張賢亮, 流沙河, 張弦 등과 같이 강제로 절필당한 많은 기성 작가들이 문단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諶容, 張潔, 劉心武, 蔣子龍, 蘇叔陽, 馮驥才, 古華, 賈平凹, 張抗抗, 葉文玲, 溫小鈺, 陳祖芬 등 새로운 인물들이 속속 등장하였다.

   1985년 초까지에 이르는 이 기간 동안 문학의 독자성에 대한 새삼스런 각성이 있게 되어 문학의 의미와 법칙성이 새롭게 탐구되기 시작했다. 문학의 주제, 제재가 다양화되었고, 풍격과 유파가 다채로워졌으며, 표현 형식과 체제가 다원화되었다. 이 시기 문학은 사회문학이 주도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중국 현대문학의 한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작가들은 전통적으로 국가와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고 우국우민의 의식이 강했다. 이는 비록 문학의 정치 종속화에 큰 역할을 했지만 실은 작가적 양심 또는 책임감의 자연스런 발로였다고 할 수도 있다. 이 시기의 이러한 사회문학은 상흔문학, 되돌아보기문학, 개혁문학, 기실문학 등으로 현상했는데, 대체로 보아 소설과 보고문학의 성과가 가장 컸고 시가 그 다음이었으며 영화문학 및 극문학의 성과 역시 상당했다.

 

2-1-1 상흔문학傷痕文學

   1976년 10월 이후 비록 4인방이 타도되고 문혁의 종결이 선언되었지만 극좌적 사조는 여전했다. 이에 따라 대다수 작가가 창작에 나서지 못하거나 설사 작품을 창작했다하더라도 발표하지는 못했다. 당시 볼 수 있었던 작품은 기본적으로 문혁 기간에 생성된 것이었다. 이런 상황하에서 1977년 劉心武의 단편소설 〈담임선생班主任〉이 발표되었다.6) 劉心武의 〈담임선생〉은 문혁 하에서 성장한 두 학생 -- 인류의 모든 지식을 부정하는 불량학생 宋寶琦와 반대로 자신이 주입받은 것에만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모범학생 謝惠敏 -- 을 대조적으로 묘사하면서, 사실상 그 둘 모두 더 나아가서 모든 중국 사람들이 문혁의 폐해에 시달리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다. 이어서 1978년 8월에는 盧新華의 단편소설 〈상흔傷痕〉이 발표되었다. 이 소설은 문혁 때 반혁명분자라고 비판받는 어머니와의 결별을 선언하며 농촌으로 下放했던 주인공 王曉華가 문혁 종결 후 복권된 어머니를 찾았을 때 어머니는 이미 숨을 거둔 직후라는 이야기를 통해서, 순수한 어린 영혼을 오도하고 혈육 간의 사이마저 갈라놓은 문혁의 비극과 상처를 묘사했다. 문혁이란 재앙과 그 상흔을 고발한 이들 작품은 강렬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이후 이처럼 문혁으로 인한 정치적인 박해와 누명, 사회와 가정과 인생의 비극을 묘사한 작품들을 일컬어 상흔문학이라 하게 되었다. 상흔문학의 특징은 고발의식과 비극적인 색채라 할 수 있는데, 상기 작품 외 대표적 소설 작품으로는 從維熙의 〈담장아래의 붉은 목련大牆下的紅玉蘭〉, 馮驥才의 중편소설 〈아!阿!〉, 王亞平의 〈신성한 사명神聖的使命〉, 陳國凱의 〈나는 어떻게 해야만 하나?我應該즘마辦〉, 陳世旭의 〈소도시의 장군小鎭上的將軍〉, 中英傑의 〈나부산의 혈루제羅浮山血淚祭〉, 宗璞의 〈현위의 꿈弦上的夢〉, 葉蔚林의 〈푸르른 목란 시내藍藍的木蘭溪〉, 陸文夫의 〈헌신獻身〉, 吳强의 〈영혼의 박투靈魂的搏鬪〉 등이 있다. 또 산문 작품으로는 巴金의 〈시아오산을 그리며懷念蕭珊〉, 陶斯亮의 〈마침내 부친 편지一封終於發出的信〉, 丁玲의 〈'마굿간' 단상'牛棚'小品〉, 楊絳의 《간부학교에서幹校六記》 등이 있다.

 

2-1-2 되돌아보기문학反思文學

   상흔문학이 진행되는 가운데 작가들은 점차 문혁이라는 역사적 비극의 근원에 대해 파고 들게 되었고, 이와 동시에 중국 현대사 및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재인식과 재평가를 행하게 되었다. 이것이 되돌아보기문학이다. 茹志鵑의 소설 〈잘못 편집된 이야기剪輯錯了的故事〉는 비교적 일찍 나온 되돌아보기문학 작품이다. 이 소설은 물리적 시간의 흐름에 따르지 않고 주인공의 연상(의식의 흐름)에 따라 대약진 시기 당시의 현실과 제2차 국공내전 시기에 대한 기억을 뒤섞어서 제시하면서, 식량 증산과 과수 벌목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간부와 일반 농민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묘사함으로써,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갈수록 심화되는 극좌 노선과 그에 따른 농촌의 파산을 보여준다. 高曉聲의 〈리순따의 집짓기李順大造屋〉는 한 가난한 농민이 온갖 고생을 감내하며 한푼 두푼 저축하여 집을 지으려고 하지만, 그때마다 정치운동의 와중에서 좌절되고 만다는 것을 묘사했다. 작가는 이 작품과 관련하여 "중국 역사에서 왜 이러한 재해들이 일어났는지를 되돌아보았을 때, 리순따 같은 사람도 이러한 역사에 대해 일단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도대체 9억 농민의 힘은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리순따의 집짓기 서문〉)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張一弓의 소설 〈범인 리통종의 이야기犯人李銅鐘的故事〉, 劉眞의 〈흑기黑旗〉, 魯彦周의 〈천운산 전기天雲山傳奇〉, 周克芹의 〈쉬마오와 그의 딸들許茂和他的女兒們〉, 李國文의 〈월식月蝕〉, 葉文玲의 〈마음의 향기心香〉, 韓少功의 〈서쪽 목초지西望茅草地〉, 張弦의 〈사랑에 잊혀진 곳被愛情遺忘的角路〉, 王蒙의 〈나비蝴蝶〉 등도 모두 이런 유의 작품이다.

 

2-1-3 개혁문학改革文學

   신시기 중국 사회가 개혁과 개방 정책 하에 급격하게 변화함에 따라 일련의 작가들은 이제 고통의 토로와 비극의 고발 또는 역사적 회고와 반성에서 점차 개방 개혁과 관련한 새로운 생활, 새로운 인물, 새로운 문제 등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중 대표적인 작가는 蔣子龍으로, 그 첫번째 작품은 〈치아오공장장 부임기喬廠長上任記〉였다. 이 소설은 침체 상태에 빠진 한 전기공장을 정상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자원 부임한 치아오공장장이 갖가지 장애에도 굴하지 않고 공장의 개혁을 이루어나가는 모습을 통해, 4개현대화의 추진 과정에서 존재하는 저해 요소를 해부하면서 개혁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개혁자들을 찬양했다. 이처럼 공업, 농업, 과학기술 분야 등의 개혁을 묘사하면서 중국 사회의 약동적인 면모와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을 개혁문학이라고 한다. 이러한 개혁문학에 속하는 소설 작품으로는, 蔣子龍이 잇달아 발표한 〈한 공장장 비서의 일기一個廠長秘書的日記〉, 〈개척자開拓者〉, 〈빨주노초파남보赤橙黃綠靑藍紫〉, 〈부엌교향곡鍋碗瓢盆交響曲〉, 〈연조비가燕趙悲歌〉 등과 張潔의 〈무거운 날개침重的翅膀〉, 李國文의 〈화원가 5호花園街五號〉, 張賢亮의 〈남자의 풍격男人的風格〉, 蘇叔陽의 〈고향흙故土〉, 張一弓의 〈불의 신火神〉, 周克芹의 〈귤향기, 귤향기橘香, 橘香〉, 喬健의 〈노인 창고老人倉〉, 水運憲의 〈재난은 안에서부터禍起蕭牆〉, 王潤滋의 〈루반의 자손魯班的子孫〉, 賈平凹의 〈소월전본小月前本〉 등이 있다. 또 산문 작품으로는 〈대학 풍속도大學 : 風俗圖〉(陳村), 〈비상하라, 강철의 새여疾飛파! 鋼鐵的百鳥〉(陳俊年) 등 사회상의 변화와 활력을 보여준 것, 〈처녀의 손姑娘的手〉(成宗田), 〈안녕, 8월의 고향八月的故鄕--니好〉(郭保林) 등 농촌과 농민의 변모를 보여준 것, 〈상하이병사의 인사上海兵的問候〉(吳芝麟), 〈파카산 전선 시찰기法잡山前線散記〉(柯原) 등 국방에 전념하는 군 본연의 모습과 사기를 보여준 것, 〈물막이공사望截流〉(劉眞), 〈광산에서崩雲瀉玉煤海情〉(王보花) 등 대규모 건설 사업이나 광공업 분야의 활기를 보여준 것, 〈안녕, 젊은 상하이니早, 年輕的上海〉(趙麗宏), 〈심천의 파도소리深수濤聲〉(戴勝德) 등 上海나 深수 같은 특정 지역을 시작으로 차츰 확대되고 있는 일련의 경제적 개혁을 보여준 것, 〈광화여 광화여光華呵, 光華!〉(石英), 〈비바람의 태평양風雨太平洋〉(王文杰) 등 해외 진출 및 개척을 보여준 것 등이 있다.

 

2-1-4 기실문학紀實文學

   시대의 병폐를 지적하고 생활에 관여하는 기실문학의 성취는 보고문학에서 잘 드러난다. 보고문학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작가로는 劉賓雁을 들 수 있다. 그의 〈인간과 요괴 사이人妖之間〉는 黑龍江省의 한 독직 사건을 통해 중국 사회에 일반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부패상을 고발하고 있으며, 〈또 다른 충성第二種忠誠〉은 국가와 공산당에 대해 충성을 다하면서도 그 오류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두 인물을 내세워 雷鋒 식의 무조건적 충성 또는 복종이 사실상 중국 사회를 망쳤다는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외 중요한 보고문학 작품으로는 徐遲의 〈골드바흐의 가설歌德巴赫猜想〉, 〈지질의 빛地質之光〉, 柯岩의 〈선장船長〉, 〈특약대표特約代表〉, 〈암=사망癌症=死亡〉, 黃宗英의 〈큰 기러기 마음大雁情〉, 〈아름다운 눈동자 美麗的眼睛〉, 理由의 〈중년찬가中年頌〉, 〈검을 빼들고서揚眉劍出초〉, 陳祖芬의 〈조국은 그 무엇보다 앞선다祖國高於一切〉, 李玲修의 〈매바구니 이야기籠鷹誌〉, 〈축구코치의 결혼足球敎鍊的婚姻〉, 喬邁의 〈이씨 이야기 세 편三門李질聞〉, 곽達의 〈만 가정의 희노애락萬家憂樂〉, 〈국상國觴〉 등이 있다.

   기실문학 분야에서 또 한 가지 거론할 만한 것은, 시기적으로는 1985년 무렵에 나온 넌픽션소설이다. 넌픽션소설은 중국과 홍콩의 축구 시합에서 일어난 관객 난동 사건에 휘말린 한 청년을 묘사한 劉心武의 〈5·19망원렌즈五一九長境頭〉 이래 상당한 성행을 보였는데, 그 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것은 어록체를 사용한 張辛欣, 桑曄의 〈베이징사람北京人〉이었다. 이들 작품은 각양각색의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그대로 살린 부분과 작가가 재구성한 부분이 뒤섞여 있는데, 이는 해당 인물들의 모습을 생동적으로 재현함으로써 그 최종적 목표인 중국 사회상을 여실하게 부각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2-1-5 몽롱시朦朧詩

   시단에서는, '떠오르는 시인들掘起的詩群'이라고 불렸던 北島, 舒정, 顧城, 江河, 楊煉, 芒克 등을 위시한 몽롱파가 등장했다. 그들의 시는 기존의 시가 사회적 대주제를 내세우면서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직접적인 것에 반발하여, 주관 서정을 강조하고 모호한 시적인 분위기의 창조에 노력했다. 즉 감각, 변형, 은유, 자기고백적인 분방함, 모호한 이미지의 구사 등을 통해 현대 중국인의 고통과 낙담을 표출하고 있는데, 알듯말듯한 내용과 표현이 이루어내는 몽롱미 속에서 기존의 정치선전시와는 전혀 다른 일종의 농후한 사회 정치적 색채를 보여주었다. 사실 그들의 시 세계는 인도주의 사상을 중심으로 문혁을 비판하고, 문혁 발생에 일단의 책임을 가진 자로서의  자신을 반성하고, 여전히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여겨진 봉건적 문화를 극복하고자 하는 데서 출발했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오늘今天》이라는 비정규 잡지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그들의 활동은 1983년 말 정신오염척결운동의 전개와 더불어 중지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이 몽롱시의 창작을 통해, 몰개성적이고 공식적인 기존의 문학을 거부하고 개인의 자아 표현을 강조하면서 그 예술적 수단으로서 서방 모더니즘적 요소를 적극 활용했던 것은, 문학 그 자체의 성격이 강조되는 신시기 중국문학의 새로운 진로 모색 및 신시기 중국문학에서의 모더니즘 부활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그들의 대표적인 시집으로는 舒정의 《쌍돛배雙외船》, 北島의 《태양성 메모太陽城札記》, 顧城의 《무명의 꽃無名的小花》 등이 있다.

 

   2-2 1985-1989

 

   1985년 초에서 1989년 초까지 중국사회의 심층적 변화를 따라 문학 창작은 다방면으로 발전해나갔다. 비록 일단의 사람들이 여전히 사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고집하여 문학의 주류는 여전히 사회문학이었지만, 이때부터 서방의 각종 예술풍격과 유파가 다시금 적극적으로 소개되었다. 작가들은 외국의 인문주의, 실존주의, 남미 환상적 현실주의, 포스트모더니즘 …… 등에서 영감을 받아들여 자신의 창작 속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루소, 디드로, 니체, 프로이트, 융, 사르뜨르, 에반스, 로렌스, 모옴, 카프카, 헤밍웨이, 조이스, 포크너, 헷세, 보들레르, 랭보, 마르께스 등과 피카소, 고호, 고갱 등의 작품들은 예술사상, 창작방법과 표현형식 면에서 중국 작가들이 새로운 창작을 시도하려고 천착하고 노력하는 정신에 강렬한 영향을 주었다. 특히 비교적 자유스러운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일부 젊은 작가들의 관심이 문학과 사회, 정치의 관계에 대한 것에서 문학의 문화적 의의에 대한 것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이 시기의 문학은 특정 경향이 문단을 휩쓰는 형태에서 벗어나 점차 여러 가지가 공존하는 형태로 진전되어 모더니즘적문학, 뿌리찾기문학, 신사실소설 등 다양한 경향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었다.

 

2-2-1 모더니즘적문학現代派文學 :
           선봉소설先鋒小說, 신조산문新潮散文, 후몽롱시파後朦朧詩派

   일단의 젊은 작가들은 창작 관념의 갱신, 심미적 시각의 변화로 서방작가의 창작 기교와 풍격을 학습, 모방하기 시작하였다. 창작상에서 독특한 개성과 수법상의 신기함, 참신함을 추구하여 다원적인 연구, 토론, 선택, 실험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중국작가의 작품 속에 부조리, 환상, 블랙유머, 상징, 의식의 흐름 등의 창작방법이 단시간내에 대량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유의 소설을 일컬어 선봉소설이라고 했는데, 사실 이런 경향은 198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이미 그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王蒙은 그동안 중국 문단에서 거의 사라졌던 의식의 흐름 수법을 사용한 〈볼셰비키의 경례布禮〉, 〈나비蝴蝶〉 등을 발표했고, 이에 충격을 받은 宗璞이 제일 먼저 부조리적인 소설 〈나는 누구인가我是誰〉와 〈둥지窩居〉를 발표했으며, 이후 계속해서 祖慰의 〈초능력 아이心有靈犀的男孩〉, 諶容의 〈열살을 줄이면減去十歲〉, 王兆軍의 〈늙지않는 사내不老老〉, 張賢亮의 〈창가의 길臨窓的街〉, 吳若增의 〈실종된 모델走失了的模特兒〉 등이 이어졌는데, 모두가 과장적이고 허구적인 부조리 작품으로 깊은 우의성과 사회풍유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유의 작품들은 대개 예술수법과 표현기교 면에서의 시도 정도에 그치는 것으로, 세계의 부조리와 존재의 소외 표현이라는 핵심은 결여된 사실상 비전통적 리얼리즘 소설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일정 규모 이상의 흐름을 이룰 정도는 아니었다.

   1985년 무렵에 이르자 劉索拉의 〈선택의 여지가 없다니別無選擇〉와 徐星의 〈무주제 변주곡無主題變奏〉을 필두로 하여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모더니즘적 소설이 등장했고, 이러한 경향은 이제 분명한 하나의 조류를 형성했다. 이들 작품은 더 이상 대상을 선과 악, 미와 추, 진보성과 낙후성을 대표하는 구체적인 사회 집단으로 나누지 않았다. 대신 대상을 인간과 환경, 주체와 객체로 나누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해명하고 표현하려 하면서 '나는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인가' '자연과 환경은 무엇인가' 등에 대한 대답을 그 주제로 삼았다. 徐星의 〈무주제 변주곡無主題變奏〉, 〈쌀米〉은 인생과 청춘, 존재…… 현대인의 고뇌를 그리고 있고, 葉兆言은 자아와 비아, 자연인과 사회인을 쓰고 있으며, 馬原은 동방의 신비와 원생적인 자연세계를 쓰고 있고, 洪峯의 〈극지의 옆極地之側〉은 추상적인 생명의식 -- 초경험적인 생명세계의 심오한 생과 사를 쓰고 있다. 특히 이 중에서도 馬原이나 洪峯의 경우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다.7)

   산문 분야에서는 이런 상황이 소설 분야보다 조금 늦게 신조산문으로 나타났다. 신조산문은 기존의 산문 틀을 완전히 배제하면서, '회고의 종결'과 '서정의 해체'를 선언하고 '이성의 샘물'과 '혼돈의 자아'를 추구하고 '독백, 조롱, 희화화, 블랙유머' 등을 내세웠다. 이러한 신조산문의 특징은 대략 내용, 형태, 언어의 다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내용면에서는 현대인의 의식을 바탕으로 한 내향화를 추구하는데, 〈나와 띠탄공원我與地壇〉(史鐵生), 〈한밤중의 일靜夜功課〉(張承志), 〈자리바꿈換位〉(馬輝) 등의 작품에서 처럼 현대인의 시각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 삶의 의미에 대한 탐색, 인간의 존재 상황에 대한 감수를 표현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생명의 유랑生命的漂泊〉(鹿子), 〈고독孤獨〉(匡文留) 등과 같이 귀숙처를 상실한 현대인의 방황, 고독 등의 문제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둘째, 형태면에서는 객관세계는 내심세계의 대응물일 뿐이라는 전제하에 주체의식과 주관적 표현 및 예술 형태의 새로운 창조를 강조하면서 기존의 사실적 산문을 거부한다. 이에 따라 기존의 산문과는 달리 사유의 줄거리가 분명하지도 않고 또 구성도 그리 치밀하지 않으며, 그 대신에 상징, 암시, 변형, 이미지, 몽환, 의식의 흐름, 부조리 등의 수법을 응용하면서 단편적인 언어의 연결과 사고의 비약을 통해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예컨대 〈결코 환상이 아닌병非夢幻〉(斯好), 〈이런 느낌, 당신은 몰라요這種感覺니不會동〉(胡曉夢) 등은 블랙유머적 수법을, 〈한밤의 안장午夜的鞍子〉(張承志) 등은 상징주의적 수법을, 〈흑색 광상黑色狂想〉(葉天蔚) 등은 시공의 초월을, 〈원경과 근경遠景與近景〉(李彬勇) 등은 환상현실주의적 수법을, 〈자신만의 밤自己的夜晩〉(劉燁園) 등은 의식의 흐름 수법을, 〈땅위의 일大地上的事情〉(葦岸), 〈몽유夢游〉(曹曉冬) 등은 포스트모더니즘적 수법을 각각 운용하고 있는 것이 그러하다. 또 시, 소설, 영화, 음악, 미술, 건축 등의 이웃 예술의 다양한 요소를 흡수하는 것이 상당히 일반화되어 있다. 셋째, 언어면에서는 낯설게하기라는 특징을 보이는데, 그중 비교적 분명한 현상으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황당6중주惶惑六重奏〉(樓肇明)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감각언어와 추상언어 및 치열한 정서가 결합된 산문언어의 지성화요, 다른 하나는 〈아홉번째 사과第九只빈果〉(張佩星)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산문언어의 기의와 기표간의 불확정성이다.

   시 분야에서는 이미 모더니즘적 경향을 보여주었던 몽롱시가 점차 잦아들면서 이제는 韓東, 藍馬, 萬夏, 王小龍, 翟永明, 車前子, 梁曉明, 伊뢰를 대표로 하는 후몽롱시파(신세대新生代, 제3세대)가 나타났다. '北島 초월'을 구호로 내세운 그들은 서방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는데, 개체의 생명 가치를 강조하여 생명의 체험과 영혼의 독백을 토로하면서 시의 언어, 형식, 의미를 중시했다. 전체적으로 보아 반문화, 감오성, 부조리, 자연성, 서사성, 잡다함, 구어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지만, 대체로 이론적 주장에 비해 창작의 성과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하고, 인위적이고 모방적인 현상이 짙은 감이 있다.

 

2-2-2 뿌리찾기문학尋根文學

   1985년 중국문학계에 뿌리찾기운동이 일어났다. 시장경제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기존의 사회주의적 문화 의식 더 나아가서 전통적인 문화 의식은 커다란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특히 서방문화의 대량 수용은 이에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일부 사람들은 중국 전통문화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고, 다른 일단의 사람들은 그에 반발하여 민족문화의 유산 속에서 정신적 의지처를 발견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현대적 사상의 층차에서 민족문화를 돌이켜 보고, 단절된 민족문화의 근원을 찾아내어 민족정신과 문화전통을 계승하고 재건하면서, 그 과정에서 역사적인 각성과 미적인 향수를 얻어내고자 하는 뿌리찾기문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문학에서 이런 뿌리찾기 경향이 탄생하게 된 데는 우선 중국사상계의 전통문화에 대한 반성과 재인식이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와 동시에 이에는 남미문학의 성공 역시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 예컨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브리엘 마르께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은 중국인에게 신선한 창작수법을 느끼게 하였으며, 서방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남미의 문학이 독자적인 성공을 거두었는데 어찌 중국은 불가능하겠느냐는 자신감을 부여해 주었던 것이다.

   뿌리찾기문학은 자연적으로 문화적 의미와 지역주의의 결합 형태를 보여 주었다. 韓小功은 楚문화의 뿌리를 찾았다. 그의 〈아아빠파파파〉는 오직 '아아아빠'와 '어어엄마'라는 말밖에 못하는 丙仔라 불리는 백치소년과 鷄頭寨 사람들의 우화적인 삶의 행위를 제재로 하여, 신화, 풍속, 방언 등의 적절한 구사가 이룩한 '종족'의 집체적 운명과 문화적 분위기를 보여 주고 있다. 王安億은 淮北평원을 그리고 있다. 그의 〈포씨촌小鮑莊〉은 한 폐쇄된 작은 마을의 撈渣라고 불리는 아이와 그의 주변을 둘러싼 여러 인물과 가정의 생활 및 정신적 상태를 묘사하면서, 세세대대 이어져 내려온 농민의 문화적 심리 상태에 대한 통찰을 보여 주고 있다. 이들 작품은 말하자면 한 민족 문화 속의 두 가지 극단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즉 한 가지는 강렬한 윤리도덕의식 -- 인의, 인내, 자제 -- 이고, 다른 한 가지는 강렬한 종족적 특징 -- 우매, 마비, 잔혹 -- 이다. 그 외에도 張承志는 서북지역을, 鄭萬隆은 북방을, 馮驥才는 天津을, 鄧剛은 바다를, 張위는 山東의 蘆靑河와 바다를, 鄭義는 黃河를, 賈平凹는 商州를, 陳村은 大渡河를, 李杭育은 葛州川를 그려냈다. 莫言은 〈투명한 홍당무 透明的紅蘿卜〉로 유명해졌으며 이듬해 〈붉은 수수밭紅高粱〉으로 뿌리찾기문학의 대열에 참가했다. 그는 山東 高密 지역을 그리면서, 농민의 파종, 수확, 잔혹한 죽음, 쓰디쓴 웃음, 두려움, 욕설, 사통, 사랑, 자녀 양육 등을 묘사했다. 이런 현상은 산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여서, 賈平凹, 和谷, 劉成章, 楊聞宇 등의 '黃土散文'(西北), 郭保林, 山曼의 '齊魯散文'(魯西北), 淡墨의 '高原散文'(雲南)과 같은 말을 낳기도 했다.

 

2-2-3 신향토소설新鄕土小說

   뿌리찾기문학이 성행하는 가운데 그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신향토소설이 등장하기도 했다. 처음 賈平凹, 張위 등이 향토의식이 농후한 작품을 썼는데, 그들은 예외없이 모두 농촌을 썼다. 물론 신향토소설의 주제는 과거 중국 현대문학사에 출현했던 향토작가의 향토문화에 대한 반역 및 그리움과 연결된다. 그러나 신향토소설 작가는 자신의 낙후한 고향을 대역사의 배경과 현대 경제의 커다란 흐름속에 놓고서 농민의 생존상태 및 미래의 행복한 생활에 대한 지향을 그려내어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향토의식을 제시한다. 신향토소설 작품으로는 閻連科의 〈귀가回家〉, 〈야오꼬우 사람들의 꿈瑤構人的夢〉, 〈토지를 찾아서尋조土地〉, 李貫通의 〈밤의 그림자夜的影〉, 〈절약絶藥〉, 〈무약無藥〉, 〈낙원樂園〉, 李佩甫의 〈끝없는 새벽無邊無際的早辰〉, 〈잉허강 이야기潁河故事〉, 劉玉堂의 〈최후의 생산대最後一個生産隊〉, 孫蕙芬의 〈사계四季〉, 〈작은 창아래의 밀담小窓絮語〉 등이 있다. 그들의 작품은 현시기 급변하는 중국이라는 향토에서 역사적인 회고와 엿보기로, 전통과 현대, 향토문화와 도시문화의 충돌, 그리고 친절하고 소박한 농민을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신향토소설은 중국의 농촌사회가 현대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한 것으로서 문학의 과거 회귀가 아니다.

 

2-2-4 신사실소설新寫實小說

   1987년 方方의 〈풍경風景〉, 〈일창삼탄一唱三嘆〉, 〈백구白駒〉, 〈행운유수行雲流水〉, 池莉의 〈번뇌하는 인생煩惱人生〉, 〈애정을 말하지 말라不談愛情〉 등을 위시하여 일단의 신진 작가들이 전통적인 리얼리즘 수법과는 다른 수법으로 현실 생활을 표현하는 이른바 신사실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들 작품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속에서 부딪치는 갖가지 갈등을 표현함으로써 문단에 새로운 추세를 불러일으키면서 신사실소설의 서막을 열었다.8) 1988년 南京의 《鍾山》잡지는 『신사실소설대전』이라는 전문난을 개설하여 신사실소설은 더욱더 사회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신사실소설도 물론 사실寫實이 기본적인 출발점이다. 그렇지만 현실생활을 있는 그대로 묘사할 뿐 어떤 인물이나 사건에 대하여 평가를 내리지는 않는다. 즉 작가의 도덕 심판적 역할을 철회하고 대사건이나 대인물 대신 일상의 소사건과 소인물을 택하여 먹고 싸고 잠자는 등의 사소한 부분까지 치밀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들 소설은 대개 작가의 판단이 배제된 생활의 본래 면모를 중시하고, 평범한 인물과 사건을 주요 대상으로 하며, 언어의 통속성에 유의하고, 이야기성과 가독성에 주목하는 특징을 보인다.

   신사실소설의 주요 작품으로는 상기 작품 외에도 池莉의 〈태양이 세상에 나오다太陽出世〉, 劉震雲의 〈탑포塔鋪〉, 〈신병 중대新兵連〉, 〈단위單位〉, 〈관인官人〉, 葉兆言의 〈매달린 풋사과懸掛的綠빈菓〉, 〈죽은 물死水〉, 〈오월의 황혼五月的黃昏〉, 〈대추나무 이야기棗樹的故事〉, 〈염가艶歌〉, 〈半邊營〉, 劉恒의 〈흰물보라白渦〉, 〈검은 눈黑的雪〉, 〈복희, 복희伏羲伏羲〉, 蘇童의 〈홍등妻妾成群〉, 〈이혼 지침離婚指南〉, 江灝의 〈종이침대紙床〉 등이 있다.

 

2-2-5 통속문학通俗文學

   신시기문학을 말할 때 반드시 제기해야하는 것이 바로 1985년 이후에 번창하기 시작한 통속문학이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통속문학은 중국사회에 발생한 변혁의 결과이다. 즉 경제적, 문화적 수준의 향상에 따른 대중의 문화적 욕구 상승, 업무 강도 및 경쟁의 강화에 따른 정신적 휴식의 요구, 생활 리듬이 급박해짐에 따른 편의성 추구, 상업적 사회 분위기에 따른 배금주의, 감각주의적 경향 등이 통속문학 성행의 토양이 된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성행하게 된 통속소설의 경우, 한 가지는 중국 자체에서 생겨난 국산품이고 다른 한 가지는 주로 홍콩과 臺灣의 애정, 탐정, 무협, 공상과학류 소설 및 외국의 유사 작품류가 번역, 소개된 수입품이다. 국산품이든지 수입품이든지 간에 대부분 오락적이고 시간 때우기식의 것으로, 중국 자체의 통속소설은 대체로 역사, 여가, 탐정, 애정류에 치우쳐 있으며, 해피엔드團圓主義, 협객과 청백리 숭배, 미신, 인과응보, 역사적 숙명 등의 사상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통속소설의 출판은 엄청난 분량이어서 어떤 무협소설의 경우는 1억책도 더 찍어냈다고 하며, 각급 출판사들이 이익 도모를 위해 이의 출판에 앞서고 있다고 한다. 이에 반해 학술서적은 출판 자체도 어려워졌거니와 초판본의 수가 이전의 10,000부 정도에서 1,000부 정도로 떨어졌으며, 대표적인 문학 간행물인 《人民文學》의 출판 부수는 140만 부에서 1986년 당시 40만 부로 하락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더욱 줄어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보다도 중국 문학가들이 더욱 우려하는 것은 각양각색의 기묘한 도색적 내용이라든가 기괴하고 흉악한 살인의 묘사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설과는 다소 다른 형태이기는 하지만 산문 분야에서도 통속산문이 대두되었다. 즉 1990년대에 들어와 일상 생활적이고 여가 오락적인 통속산문이 성행하고 있는 것이다. 통상 신문 잡지의 『尋常百姓家』, 『生活大觀園』, 『都市風景』, 『빈紛校園』, 『文化茶座』, 『過去的歲月』 등의 소제목 난에 발표되는 이들 산문들은, 대부분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적 삶과 경험을 소재로 하여 그들의 평균적 감정과 생각을 표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산문은 유사한 체험과 사고를 가진 보통사람들의 흥미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상당히 열렬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이런 산문들은 가식적이지 않은 진솔한 내용과 거리감이 없는 친근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산문의 범주를 확장시키고 또 그 영향력을 확산시켰다는 점에서는 일정한 의의를 갖는 것이었다. 그런 반면에 전반적으로 보아 양에 비해서 질이 미처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서 지나치게 중언부언한다든가 시정의 저속한 화제를 가지고서 일시적 흥미만 불러일으키려 한다든가 하는 식이어서, 예술적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한 손색이 있는 일종의 '인스턴트 산문'이란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2-3 1989-

 

   1989년 6·4 天安門사건 후의 3년동안 중국 문단은 비교적 침체하였다. 뛰어난 작품들이 끊임없이 나오던 1980년대의 성황은 소멸하였고 좋은 작품도 드물었다. 그러나 젊은 독자들 사이에서는 '汪國眞 붐', '席慕蓉 붐', '王朔 붐' 등이 일었다. 이런 문화현상은 젊은이들의 막연한 갈망과 어찌할 바 모르는 토로를 보여 주는 것이자 통속문화의 강렬한 흡인력을 나타내 주는 것이기도 했다. 1992년 1월 鄧小平은 남방을 순시하면서 深수에서 담화를 발표하여 개혁과 개방이 중국의 유일한 진로임을 재천명했다. 이는 다시금 중국 전체에 일종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상황에 힘입어 1993년에는 賈平凹의 〈폐도廢都〉와 陳忠實의 〈백록원白鹿原〉, 〈천망天罔〉, 〈푸른 눈동자, 검은 눈동자藍眼睛, 黑眼睛〉, 〈비가 오지 않는 성無雨之城〉, 〈떠도는 성浮城〉, 〈드러난 눈裸雪〉, 〈저녁 북, 새벽 종暮鼓辰鍾〉 등의 장편소설이 발표되면서 장편소설 붐이 형성되었다.

 

2-3-1 王朔의 범죄소설

   이 시기에 출현한 재능있는 작가 王朔의 작품은 전통과 세속을 조롱하고, 자아의 생존방식을 부정하는 北京 신세대의 문화심리상태를 강력히 표현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사회주의 중국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서 '주변인간'으로서 범법을 생활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도시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삶을 거침없이 그려내고 있다. 이 때문에 범죄소설(중국어로는 점잖은 말로 法制小說)로 일컬어진다. 王朔의 성공은, 작품 외적인 측면에서는 1989년 6·4 天安門사건 후의 사회적 가치의 혼돈 및 실망감에 힘입고 있으며, 작품 자체의 측면에서는 그의 빼어난 北京 방언의 구사, 가볍게 내뱉는 시니컬한 유모어, 기존 관념에 대한 도전, 천박한 젊은이들의 유희적 언어 등에 의한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적 범죄는 즐겁다一半是火焰,一半是海水〉, 〈물위의 연가浮出海面〉, 〈노는 것 만큼 신나는 것도 없다玩的就是心跳〉 등 많은 소설을 내놓았는데 그 중 상당수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마치 자본주의 사회의 베스트셀러 작가처럼 작품 착수에 들어가기도 전에 거액의 계약금을 먼저 챙길 정도로 엄청난 고료를 받고 있다.

 

2-3-2 賈平凹의 〈폐도廢都〉

   賈平凹는 1953년생으로 소설과 산문 두 분야에서 모두 뛰어난 성취를 이룬 작가다. 여러 차례의 수상 경력이 있는데, 그중에는 1988년 장편소설 〈조바심浮躁〉으로 미국 스탠다드 석유회사 문화재단에서 수여하는 황금비마상 수상도 있다. 그의 〈폐도廢都〉는 1993년 6월에 출판된 이래 해적판까지 합쳐 1천만 부 이상 팔려나갔다고 한다. 그러나 출판된 지 2개월 만에 포르노소설이라고 해서 중국 당국에 의해 판금 조치되었다. 이 소설의 중심 줄거리는 西安의 4대 유력인사 중 한 명인 莊之蝶이란 인물이 1980년대의 급변하는 중국 사회를 배경으로 4명의 여성을 편력하는 것이고, 이와 관련하여 여러 부분에서 중국의 현상황에서 볼 때 상당히 색정적인 장면과 묘사가 등장한다. 그렇지만 실상 이 소설이 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급변하는 중국 사회의 변화와 이에 따른 중국인의 의식 변화다. 거기다가 구성상의 특이함, 리얼리즘적 기법에서 부터 치밀한 심리묘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법의 사용, 서정시를 연상시키는 유려한 문체, 자유자재의 민간 언어 구사, 섬세한 세부묘사, 중국의 전통 예술과 민속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식견 …… 등이 어우러져 일종의 문화적 분위기를 창조해내고 있다. 아마도 바로 이러한 엇갈림이 이 작품에 대한 논란을 유발하게 되었을 것인 바, 지금까지도 이러한 논란은 종식되지 않고 있다.

 

 

     3. 중국문학의 앞날

 

   신시기 중국문학은 (1) 1976-1985 (2) 1985-1989 (3) 1989- 의 세 단계를 거치면서 개성화, 다양화, 개방화 등의 특징적 변모를 보여 주고 있다. 신시기 중국 문학의 이러한 변모는, 개혁과 개방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신시기 중국 사회의 전반적 변화와 더불어 새롭게 형성된 오늘날 중국인의 사상 감정을, 그에 걸맞는 언어와 문학적 장치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중국 문학의 '현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시기 중국문학의 현대화에는 아직도 많은 여정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문학의 현대화 자체가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동태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지금 현재로서도 중국 문학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1) 개혁과 개방이라는 말, 특히 사회주의시장경제라는 중국식 사회주의의 실험이라는 말이 대표하듯이 중국 사회는 현재에도 급격한 변화가 진전되고 있고, 따라서 그전에는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수많은 현상들이 출현하고 있는데, 문학이 과연 이를 어떻게 표현해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서, 중국인의 생활이 갈수록 넓어지고 깊어지고 복잡해지고 있고, 개인주의화, 감각주의화 경향의 대두 등에서도 나타나듯이 중국인의 사상과 감정이 대단히 유동적인 상황에 있고, 중국인의 전반적인 문화 수준이 상승되고 그 문화적 욕구 역시 다양해지고 있고, 외국인과의 접촉이나 외국 여행, 위성방송 등을 통한 외국문화의 영향이 날로 다대해지고 있고, …… 등에 대해서 중국 문학가들은 어떻게 이를 형상화할 것이며, 그들의 그러한 노력은 세계문학에서 어떠한 역할과 작용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 주목되는 것이다. (2) 문학 작품의 창작과 그것의 수용을 이어주는 전달자 또는 전달매체의 역할 증대에 대해서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환언하자면 오늘날 중국 사회에서 나날이 강화되는 출판, 유통의 상업주의화라든가 하는 등등의 변화에 과연 어떻게 적응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전과 달리 이것이 이제는 중국 문학의 성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한 요소가 되었고, 더 나아가서 중국 문학의 발전에 중대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산문 분야의 경우 1980년대 중반 이후 약간의 저조 상황을 보였던 것이라든가 1990년대에 들어와서 성황을 보이고 있는 이면에는, 독자의 호응도를 고려한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의 고려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작품의 게재를 결정하는 편집자들의 산문 관념이 일정 정도 개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 갈수록 증대되는 세계문학과의 쌍방향적 상호 작용에 대해 중국 문학가들이 작품의 창작은 물론 그 외의 측면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예컨대 번역 작업을 통한 외국 문학 작품의 소개를 통해 중국 문학에 세계적 요소를 흡수하고 또 그것을 민족화하는 한편 중국 고유의 요소들을 세계화하는 노력이 더욱 강화되어야 함은 당연하거니와, 이와는 반대로 중국 문학의 적극적인 해외 소개를 통해서 세계문학계로부터 그 성과를 검증 받고 또 세계문학의 진전에 영향을 주는 등의 역할과 더불어 이러한 작업의 과정에서 중국 문학 자체가 세계화될 수 있도록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또 이러한 노력은 비단 작품의 창작과 번역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문학 이론계 역시 그 동안의 중국적 범위 내에서만 중국 문학을 검토하던 것에서 벗어나서, 중국 문학과 외국 문학을 비교 검토하고, 비판적, 선택적인 종적 계승과 횡적 수용의 원칙과 방법 및 그 대상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탐구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국 문학의 미래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 보자. 중국 문학은 중국 문화의 저력을 배경으로 하는 그 유구한 전통과 그에 대한 중국인의 각별한 애정 및 중국 사회 전반의 문화적 향상을 고려해 볼 때, 비록 문학의 상품화와 저속화가 성가신 존재로 작용하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상당 기간 동안은 지속적으로 발전해나갈 것이며 세계문학에서도 그 마땅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주

* 이 글은 독립적인 논문이 아니라 제13회 인문학담론모임 발표를 위해 여러 자료를 종합, 정리한 것이다.

1) '詩界革命' '文界革命' '小說界革命' : 梁啓超는 1899년 12월 25, 28일자 《夏威夷遊記》에서 '詩界革命' '文界革命'을 거론했으며, 1902년 11월 《新小說》 창간호의 〈論小說與群治之關係〉에서 '小說界革命'을 제기했다. 그에 따르면 '詩界革命'은 "第一要新意境, 第二要新語句, 而又須以故人之風格入之"을 주장하는 것이었고, '文界革命'은 "善以歐西文思"入文을 기점으로 하는 것이었으며, '小說界革命'은 구미 및 일본의 정치소설을 그 직접적 모델로 하는 것으로 소설로써 "改良群治"하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외국문학을 수용하여 이로부터 중국문학을 개조하자는 주장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小說界革命'이라는 구호하에 제창된 '新小說'은 이미 형식 내용 양면에서 모두 서양소설의 영향을 수용하여 많은 새로운 점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컨대 新小說家들은 우선 구소설이 충효절의를 주로 하던 것에서 벗어나 신소설에서 계몽이라는 관점에 의거해 민주? 자유? 독립? 권리 등등의 사상 및 애국심을 강조했다.

2) 胡適의 8가지 방안 : 첫째, 말에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둘째, 옛사람을 모방해서는 안된다. 셋째, 문법을 추구해야 한다. 넷째, 병도 없이 신음해서는 안된다. 다섯째, 진부하고 상투적인 말을 없애야 한다. 여섯째, 전고를 써서는 안된다. 일곱째, 대구를 따져서는 안된다. 여덟째, 속자·속어를 피해서는 안된다. ① 須言之有物 ② 不摹倣古人 ③ 須講求文法 ④ 不作無病之呻吟 ⑤ 務去爛調套話 ⑥ 不用典 ⑦ 不講對仗 ⑧ 不避俗語俗話.

3) 陳獨秀의 3대주의 : 첫째, 수사적이고 아첨하는 귀족문학을 타도하고, 평이하고 서정적인 국민문학을 건설하자. 둘째, 진부하고 허식적인 고전문학을 타도하고, 참신하고 진실한 사실문학을 건설하자. 셋째, 모호하고 난해한 산림문학을 타도하고, 명료하고 통속적인 사회문학을 건설하자. ① 推到彫琢的阿諛的貴族文學, 建設平易的抒情的國民文學. ② 推到陳腐的鋪張的古典文學, 建設新鮮的立誠的寫實文學. ③ 推到迂晦的艱澁的山林文學, 建設明瞭的通俗的社會文學.

4) 중국에서는 통상 1917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을 古代文學 이후를 現代文學(또는 現當代文學)이라고 부른다. 現代文學은 다시 1949년까지의 (협의의) 現代文學과 그후의 當代文學으로 나뉘며, 當代文學 중에서도 1976년 이후의 문학을 특별히 新時期文學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 近代文學이란 1840년 아편 전쟁 이후부터 1917년까지를 지칭한다. 이와 관련하여 첨언하자면, 古典文學이란 주로 古代文學 중의 文人文學을 가리키며 이와 상대적인 개념으로는 民間文學(俗文學)이 있는데, 예컨대 李白, 杜甫의 작품은 전자에 《西遊記》, 《三國志演義》는 후자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5) 江靑, 王洪文, 張春橋, 姚文元.

6) 이보다 앞서서 문혁을 다룬 陳若曦의 단편소설집 《尹縣長》(1976)이 臺灣에서 출판되기는 했지만 중국 대륙에서는 1981년까지 금서로 묶여 있어서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7) 馬原의 경우 (1) 소설 속의 인물은 통일성과 필연성을 갖춘 하나의 인물이 아니라 몇 개의 순수한 현상적 인물이 교체되면서 잠재적으로 하나의 동일한 형상으로 합성된다거나, (2) 소설 속에서 대개 '馬原'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등장하는 서술자는 작가 馬原의 서술 대상이면서 소설 속의 다른 서술 대상을 서술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 서술대상자의 입을 빌어 다시 '馬原'을 서술하는 등 언제나 서술대상보다도 서술자 자체가 중시되는, 자기 꼬리를 자기가 무는 용 또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연속성을 갖는 식이다. (3) 또는 그의 소설에서는 시간적인 순서가 동일한 평면 위에서 전개되어 스토리의 시간적 순서와 발생 공간이 마구 혼재되어 있다. 즉 삶의 단편들이 복잡하게 조합되어 있는 식이다. (4) 이상의 이러한 상황은 그의 현상주의, 범신론, 불가지론적 세계관의 구체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는 서술을 어떤 내용의 전달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서술 그 자체를 목표로 삼고 있다.

8) 이 때문에 池莉의 소설은 '생활소설'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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