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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문제와 시각》 서평
이런 상황하에서 최근에는 '동아시아'가 새삼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갖가지 의문이 잇따르고 있는 중이다. '동아시아'의 범주는 어떠한가? 과연 '동아시아'를 하나의 문화지역으로 볼 수 있는가? '동아시아'를 내세우는 의도는 무엇인가? 이는 과거 또는 현재까지도 일정한 작용을 하는 중국의 중화주의나 일본의 패권주의적 아시아주의론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 등. 물론 '동아시아'가 필요하고 필수적이며 가능하다고 믿으면서, 그 정당성에 관한 여러 가지 주장과 해석을 제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남재단의 동양학술총서 편집위원들 역시 그에 속하는데, 그들의 첫 번째 작업이 곧 《동아시아, 문제와 시각》, 최원식 외 엮음, (서울 : 문학과지성사, 1995)이다. 이 책은 편집위원회의 입장을 밝히는 서문 및 기존 논의의 다양한 경향을 대표하는 13편의 글로 이루어져있다. 수록된 글들은 각기 '동아시아'와 관련된 것이기는 하지만 한 가지 논점에 일관되어 있지는 않다. 특히 관점 면에서 볼 때, 대체로 편집위원회의 입장에 가까운 것이 위주가 되어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없지 않다. 따라서 독자에게는 편자들이 주장하는 바를 꿰어내야 하는 즐거운 수고로움이 부과된다. 최원식의 〈탈냉전 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에 따르면, '동아시아'는 한·중·일이 중심이 되고 그 외 베트남,몽골도 포함되는 듯하다. '동아시아'가 하나의 문화지역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고병익의 〈동아시아 나라들의 상호 소원과 통합〉에서 '동아시아'는 문화적으로 하나의 통합성을 이루어 '중국문화권, 한자문화권, 또는 유교문화권'이라고 일컬어져왔다고 한 설명이 아마도 그 대답일 터이다. '동아시아'가 중요한 것은, 미국학자 아리프 딜릭이 〈아시아-태평양권이라는 개념〉에서 말한 것처럼 미래는 종전의 어느 때보다도 아시아 태평양의 미래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재서가 〈서사와 이데올로기〉에서 표명한대로, 자기동일성과 중심주의가 인접문화에 대해 지배적 성격을 띠는 수위에까지 이르러서는 안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다만 이러한 설명이나 언급이 모든 의문을 해결해 주거나 우려를 불식해주지는 못한 것같다. 예컨대 "동아시아는 특수한 지역사가 아니라 세계사의 향방에 관건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풍부하게 내포한 세계사적 지역이다. 그 관건의 중심에 중·일과 미·러가 착종한 한반도가 자리하고 있다. …… 냉전 체제 이후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종요로운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구적 근대의 진정한 대안을 모색하는 작업과 긴절히 맞물린 사업이기도 하다."(최원식)라는 언급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는 부분이 아닐까? 끝으로, 이 책이 가진 몇 가지 미덕을 소개해야 할 모양이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동양-고대-전통-정신/서양-현대-혁신-물질'을 떠올리고, 단편적인 여행 에피소드가 한 지역의 문화론으로 포장되는 우리의 지적 풍토에서 이 책은 충분한 의의를 갖는다. 정면교사로서든 아니면 반면교사로서든 간에, 이 책은 '각 국가 민족의 민족정신에 접촉하도록 함으로써' 국수주의 또는 협소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서 세계주의 또는 광대한 민족주의적 시각을 갖도록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 책은, 나날이 파편화되어가는 경향이 있는 우리 사회의 지식인ㆍ대학생에게 공동체로서의 인간사회-세계에 대한 새로운 사색을 시작케 하는 한 자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997년 4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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