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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길량 선생님의 은퇴에 붙여


김  혜  준

 

선생님은 30년 전 나의 고3 담임이셨다. 당시 나는 소설 읽기에 빠져 있었고, 선생님은 통뼈 골격에 바지자락이 발목까지 올라와 있는 ‘촌놈’ 스타일의 체력 좋고 열정 넘치는 초년 교사이셨다.

5월 언제쯤이었다. 선생님은 방과 후 나를 댁으로 데려가셨다. 거기에는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이 모여 있었고, 선생님은 내게 그날부터 영어 과외를 들으라는 것이었다. 과외비는 낼 필요 없다면서. 그 날은 행복한 날이었다. 단체로 엑소시스트라는 영화를 보러갔고 저녁도 얻어먹었다. 주인공 꼬마가 선 채로 설사하는 장면이 볼만했고 우리의 식사는 노오란 카레라이스였다.

그러나 소설 읽기가 더 좋았던 내가 선생님 댁을 다시 찾아간 것은 그로부터도 수년이 흐른 대학 재학 때였다. 반창회였나보다. 맥주 몇 병 들고 우르르 몰려갔는데, 가야인지 개금인지 산비탈을 꽤 헤맸다. 선생님께서는 아주 흐뭇해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유난한 기억은 선생님과는 달리 사모님은 전혀 ‘촌놈’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십 수 년이 훌쩍 가 버렸다. 어쩌다 보니 부산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전입 신고를 겸해서 참 오랜 만에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이번에는 내가 저녁을 대접하게 되었는데, 그간의 이자 셈치고 식사 후 노래방으로 모셨다. 선생님의 체력은 세월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자정 가까이까지 내내 겅중겅중 뛰시는데, 비유하자면 단거리 속도로 마라톤을 완주하시는 수준이었다.

그 후로 매년 스승의 날에 즈음하여 선생님을 모시게 되었다. 가끔 뵙기 때문일까? 선생님은 늘 그대로인 것 같다. 목소리도, 웃음도, 얼굴의 주름도, 그리고 왕년의 그 스타일도. 다만 최근에는 선생님의 체력이 어떠하신지 알아볼 기회가 없었다. 그건 순전히 나의 탓이다. 나의 체력이 오히려 선생님에게 미치지 못할 듯하니 말이다.

사실 나는 선생님의 이력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선생님께서 선생님으로서, 또는 영어 교사나 교감 교장으로서 후일 얼마나 인정을 받으셨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수 십 년을 여일하신 분이라면 분명히 존경받아 마땅한 삶이셨을 것이다.

한 30년 후에는 어떠실까? 아마도 여전하실 것이다. 그때 나 같은 제자들은 틀림없이 한 말씀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역시 62세 정년은 너무 이르다고.

 

김혜준,〈권길량 선생님의 은퇴에 붙여〉, 《금사소식》 2004 가을호, 부산: 금사중학교, 2004년 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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