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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제국주의론' 문제 있다
덴츠인간연구소의 보고서를 직접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섣불리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기사가 전하고 있는 내용으로 볼 때는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가 아닌가싶다. 이에 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몇몇 사항에만 국한시켜서 말해보기로 하자. 인터넷에서 영어의 사용률이 극히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비영어권 인터넷 사용자 수가 증가하면 그 상황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초기 단계에서는 비영어권 사용자들도 대개 영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을 취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자신들의 언어로 구성된 자료와 프로그램을 사용하게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리고 당연히 서로 다른 언어 사이의 차이를 해소해 주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올해 3월 11일자 NEWS+에서 보도 한 바로는, 작년 하반기 통계로 온라인 사용자 수가 일본은 인구비례 11.1%인데 비해 중국은 0.1%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중국 상하이에서 발행되는 《청년보》라는 신문은, 지금 막 불기 시작한 인터넷 열풍과 더불어 윈도우98의 중국 판매량이 미국에서의 판매량에 육박한다는 소식을 톱뉴스로 소개했다. 그렇다면 세계 인구의 약 1/4을 차지하는 중국인들이 본격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하게 된 후에도 인터넷에서의 영어의 지위가 그대로일까? 다시 말해서 중국인들 스스로가 대량으로 정보의 생산·유통·소비에 가담하게 된 후에도 과연 그들은 영어로 된 정보에만 집착할까? 이런 생각은 그저 가설이 아니다. 이미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이다. 앞의 NEWS+ 기사에 따르면 현재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정보의 80-85%는 영어이지만 그 비율은 2-3년 전보다 7,8% 떨어졌다고 한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근 한 보고서에 따르면 영어로 된 웹사이트는 전체의 78%로 1,2년 전에 비해 점유율이 상당히 낮아졌다고 한다. 이는 곧 비영어권 사용자의 수가 늘어난 데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인터넷에서의 영어는 일정한 지위를 유지하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것이 독점적이고 배타적으로 기능할 것이라는 것은 지나친 예단이 아닌가 싶다. 사실 영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그리고 미래에 가지게 될 효용성은 인터넷에서의 그 역할이라는 한 가지 측면에서만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영어 그 자체는 권력의 원천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영어를 사용하여 제공되는 정보, 영어와 그 정보를 사용하는 실체로서의 미국과 같은 국가의 존재가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앞으로의 세계에서도 미국의 지위는 그대로일까? 미국의 힘이 단기간 내에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중심의 세계지배 체제가 영속적이라는 보장도 없으며, 미국이 계속해서 유일한 권력자로서 존재할 것이라는 것도 회의적이다.
물론 당분간 영어와 자리다툼할 언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나는 여기서 영어의 효용성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것보다는 그러한 효용성이 어디에서 오는 것이며,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이며 우리는 또 여하히 대처해야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1세기에는 그것이 지리적 세계에서든 사이버 세계에서든 간에 일정한 통합력을 가진 여러 개의 문화권역이 등장하게 될 것이고, 각 권역마다 일종의 지역국제어들이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세계 문화에서도, 인터넷에서도, 경제에서도 그리고 권력에서도 영어가 전부는 아니며 유일한 것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 얼마 전에 제법 떠들썩하게 진행됐던 소위 '영어 공용어화론'이 주는 반면 교훈을 한번쯤 되새겨봄직도 하다. 21세기의 이른바 '정보화·세계화' 사회에서 우리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할 수 있는 길은, '유사성'이 아니라 '차별성'을 바탕으로 한 '다양성'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앞의 기사에서 인용한 덴츠인간연구소의 결론 중 한 마디는, 그것을 이끌어내는 논리와는 상관없이 우리에게 일정한 시사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10년 동안 언어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언어는 성장하고, 그렇지 못한 언어는 위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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