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작업 : 기타

 

 

 

냉수 사발


김  혜  준

 

학문의 길에 대해 써달라고 한다. 이거 참 난처한 일이다. 글쎄 그에 대해 내가 뭐 아는 바가 있어야 쓸 것 아닌가. 어쩌겠나 그냥 내 이야기나 몇 마디 하는 수밖에.

어렸을 적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중등학교 때는 중등학교 선생님이, 대학교 때는 대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중간에 약간의 파란과 곡절은 있었지만 어쨌든 운이 따르고 해서 교수가 되었다.

그럼 꿈이 이루어진 것인가? 송구하기 짝이 없다. 참다운 스승이 된다는 것은, 나의 능력이나 주변 여건으로 볼 때, 그야말로 꿈일 뿐이었다. 그저 지금은 직업인으로서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말하자면 학생들에게 자기 나름의 관점과 지식을 갖도록 돕는 일, 일정한 숫자와 내용의 연구 결과물을 내는 일, 학교 생활에 필요한 잡사를 처리하는 일 따위에 매달리고 있는 중이다. 그것 또한 역불급일 때가 많지만.

내가 왜 중문과를 택했는지는 나 자신도 분명하지 않다. 굳이 따져보자면 무슨 잠재적 원인이 있었던 같기는 하다. 중학교 시절 무협소설에 열광해서 학업에 소홀했던 경험도 있고, 고교 시절 한문 수업이 좋아서 꼬박꼬박 숙제를 한 덕에 한시를 여러 편 외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그런 것은 사후에 생각해보아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는 적성이나 진로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제멋대로 정한 결과였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재미가 여간하지 않았다. 특히 "쏼라쏼라"하면서 중국어를 배우는 일이 그 중 으뜸이었다. 당시 제법 어렸던 아우를 앞에 앉혀 놓고,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이 어느 나라 말인지 맞혀 보아라 하면 백발백중 중국어라고 하는데 그 얼마나 신이 나던지. 이쯤 되면 누구나 짐작할 것이다. 내게는 학문이 무엇인지, 학문이 어디에 소용되는지, 학문을 하려면 어찌 해야 하는지 등등은 그다지 관심 사항이 아니었다.

그 후로도 사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중국어와 중국문학이 좋았을 따름이다. 적어도 잠시 학교를 떠나 있을 때까지는. 처음엔 단순히 사람들이 그립고 교정이 그리웠다. 그러더니 차츰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시달리고 난 밤이면 더욱 그랬다. 그리고 마침내 내게는 그것이 자유에 이르는 길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착각은 자유가 아니던가. 하여튼 학교로 돌아왔을 때, 나는 대단한 결심과 각오로 차 있었다.

아둔한 청년이었다. 학문이라는 낱말의 뜻조차 설명하지 못하면서 감히 학문을 필생의 사업으로 삼겠다는 망상을 했으니. 아니나 다를까. 일정한 이론에 따라 체계화된 지식, 그러한 것을 배워 익히는 것, 또 그것을 통해 가지게 된 식견을 학문이라고 한다는데, 도대체 그 사전적인 풀이의 학문조차 온전히 내 것이 되지 않는다. 혹시 훌륭한 학자들을 모범 삼는 건 어떠할까? 아하, 그게 그런 거구나. 세계적 석학은 모조리 서양사람이고, 우리나라 대학자는 거개가 옛 어른이시다. 그러니 중국을 다루는 요새 한국 사람인 내가 그분들의 길을 좇는다는 것은 언감생심 아니런가. 결국 내가 찾아낸 유일한 변명은 이것이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그것은 알고 모르고의 개념이 아니라, 하고 안하고의 행위이므로, 그리고 아니 할 수 없는 행위이므로. 그래서 박재삼 시인은 '시방 나는 갈증 때문에 이 냉수 사발을 마실 밖에는 다른 작정은 없어라'라고 노래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학문 역시 그러하다. 이것들이 냉수 사발 안에 떠서 어른어른 비쳐오는 그 모습을 그냥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진리의 바닷가에서 조개껍데기를 줍기는커녕 모래장난이나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할지라도.

김혜준, 〈학문과 나 : 냉수 사발〉, 《부대신문》 2002년 11월 26일 8면.


Return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