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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홍콩문학, 중문문학
- 2005년 제4회 동아시아학자 현대중문문학 국제학술대회 참관기 -

 

2005년 12월 6일  고 혜 림  고혜림

 

 1. 기간: 2005년 11월 24일부터 11월 26일까지 총 3일간

 2. 장소: Paul. S. Lam Conference Centre, Lingnan University, Hong Kong

 3. 참석인원: 한국, 일본, 대만, 중국, 싱가폴, 호주, 홍콩 등의 학자 40여명

 4. 주제: 동아시아 문화와 중문문학

         (2005년 제4회 동아시아학자 현대중문문학 국제학술대회)

 

 

침사추이 영화의 거리방송매체를 통해 어릴 적부터 접해 온 홍콩은 야경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온갖 다양한 요리가 있는 곳이고, 동양의 낯선 곳에 대한 정의내리기 힘든 향수를 가진 이들이 세계 여러 곳에서 찾는 곳이라 듣기도 했다. 20세기 후반부 홍콩은 영화를 주축으로 하는 문화사업에서 성공적으로 아시아 문화의 한 특성으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陳秋霞의 노래나 《英雄本色》의 주제곡을 모르는 젊은이들이 없을 정도였다.

홍콩 거리모습1997년 홍콩은 영국령에서 중국령으로 바뀌었다. 2001년 張曼玉과 梁朝偉의 홍콩은 어두컴컴한 골목 뒤로 서로에 대한 마음을 숨겨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을 많이 숨긴 곳이었다. 나의 기억 속의 홍콩은 이렇듯 막연한 어떤 곳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5년 홍콩은 나에게 새로운 추억을 심어주었다. 지금은 중국이지만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중국(대륙)과는 다른 1세기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며,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곳이고 그리고 여전히 야경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중국과 떨어져 지낸 지난 1세기는 홍콩에 동서양의 문화가 공시적으로 존재하도록 만든 과정의 역사였다. 2005년 11월 홍콩에서 열린 학회가 이러한 나의 홍콩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가 일정부분 충족될 수 있도록 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고 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한국에서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인 11월 말, 처음 내디딘 홍콩 첵랍콕 공항의 공기는 따뜻했다. 두터운 외투가 부끄러울 정도의 더운 기운이 아직 여름임을 알려주는 듯했다. 40분간 달려서 屯門에 위치한 香港嶺南大學에 잠시 들렀다가 우선 짐을 풀기 위해 Harbor Resort Hotel로 움직였다. 그리고 사흘의 학회일정과 이틀의 자유 시간을 어떻게 아쉬움 없이 보낼 것인지 고민할 틈도 없이 김혜준 선생님께서 三聯書店에 가시는 길을 무작정 따라나섰다.

三聯書店홍콩섬의 三聯書店은 지하철 Central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대개의 서점이 그렇듯 잡지와 신간, 베스트셀러들이 1층에 있고 법률과 경제, 의학 관련 서적이 2층에, 인문학, 사회과학 관련 잡지와 서적은 3층에 있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분야별로 잘 정리되어 있고 중국과 대만, 홍콩에서 출판해낸 책들이 자리를 다투어 서가에 꽂혀 있는 모습은 중국에서도 대만에서는 보기 힘든 배열이었다. 중국이든 대만이든 자신들의 출판물이 위주로 진열되어있고 기타 중어권 국가들의 책은 따로 다른 서가에 배치해 두는 것과는 달랐다. 三聯書店에서 나는 白先勇의광동요리 《臺北人》 중영대조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중국대륙 쪽 작가 중에서 여전히 魯迅과 巴金이 스테디하게 팔리는 작가이며 생존작가 중에서는 王安億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책을 정신없이 살펴보는 동안 김혜준 선생님의 홍콩 유학시절 책을 통해 친분을 쌓은 지인들이 저녁식사를 초청했다. 유명한 광동요리집에서 이름도 다 기억할 수 없는 다양한 요리를 맛보면서 홍콩 사람의 가식없는 성격을 볼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사람들과 헤어져서 홀로 홍콩의 밤거리를 걷자니, 4시간여의 비행 탓인지 그 전에 쌓였던 피로 탓인지 알 수 없지만, 尖沙咀(침사추이)에서 旺角(몽콕)까지 걸어가는 동안은 제대로 홍콩을 살필 수 없었다.

 

침사추이의 밤거리
침사추이의 밤거리

 

개회사11월 24일은 ‘동아시아 문화와 중문문학’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틀간의 학회의 시작을 알리는 개회사로 시작되었다. 香港嶺南大學의 부총장 饒美蛟 교수와 홍콩작가협회의 창립회장 曾敏之 선생, 《明報月刊》의 총편집인이자 사장인 潘耀明 선생의 개회사는 공통적으로 원만한 학술대회의 진행과 학술적 성과를 거두는 데 대한 희망과 기대로 가득했다.

연이어 1부는 아시아 문화의 경계넘기와 관련하여 한국와 일본, 홍콩의 학자들이 각국의 문학과 경계를 넘어선 자국의 문학에 대해 발표를 진행했다. 일본의 藤井省三 교수의 중국과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慢船)’의 관계를 다룬 <開往中國的村上慢船: 村上慢船在中國以及中國在村上文學>이라는 발표와 홍콩의 梁秉鈞 교수의 <亞洲文化中的香港文化 - 以50年代爲例> 발표는 1부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면서 또 동시에 흥미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하루키의 소설은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하루키 열풍을 일으켰다. ‘상실의 시대’를 필두로 하여 그의 이름으로 발표된 것이면 소설, 시, 수필 할 것 없이 앞다투어 번역이 되기도 했던 것이 불현듯 떠올랐다. 발표가 끝난 후 사석에서 藤井省三 교수에게 한국에서도 ‘하루키 열풍’이 있었던 것을 아느냐고 일본소설에 관심이 없는 나도 ‘상실의 시대’만은 읽었노라 얘기했더니 그 역시 이후에 연구해서 밝힐 계획이라고 했다.제1부 발표

2부에는 식민지 문학과 후식민주의를 주제로 하여 중국어와 영어로 발표를 두 팀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중국어 패널 중 식민지와 후식민지의식을 주제로 한 발표자 중 한국 학자는 없었고 대만, 싱가폴, 일본, 홍콩 쪽 네 명의 학자들이 발표를 맡았다. 각기 <鄭和登陸馬六甲之後: 中華文化的傳承與創新>, <文化身分與後殖民思考 - 以新加坡詩人戴尙志與希尼爾爲例>, <“日本”記憶與臺灣新歷史想像>, <日佔時期香港文學的兩面: 和平文藝作者與戴望舒>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영어 패널은 홍콩 학자 세 명과 한국의 임춘성 교수의 발표가 중심이 되어 역시 같은 주제로 진행되었다. 이 중 임춘성 교수의 <香港電影裡的香港人身分認同和東南亞人的他者性>, 그리고 劉自筌 박사의 <後殖民時代的殖民小說: 劉以鬯與2046>이 주목할 만했다.

 

첫날 만찬후 일부 참석자와 함께
발표 첫날 저녁 일부 참석자와 함께

 

제3부 발표25일은 전날보다 더욱 빠듯한 진행 가운데 총 16명의 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잠시 잠시의 휴식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경청해야 했으므로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일정이기도 했다. 오전의 3부 주제는 아시아문학의 제고였다. 王富仁 교수의 <新國學論綱>, 林少陽 박사의 <何謂“文學”? - 夏目漱石於世紀之交的思考>, 羅貴詳 박사의 <頭文字J: 香港文學與電影的日本想象>, 陳方兢 교수의 <關於中國大陸與韓國魯迅硏究不同狀況的一點思考>, 張釗貽 박사의 <魯迅與香港新聞檢査初探>, 垂水千惠 교수의 <爲了臺灣普羅大衆文學的確立> 등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각 발표자들은 좀 더 아시아 각국의 문학과 문화를 중국문학과의 비교 혹은 연계성 찾기의 방향으로 연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6부 발표

오후 4, 5부는 각기 아시아 문화와 영화, 중문문학의 현대성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4부는 山口守 교수의 <巴金的小說和電影>을 시작으로 池上貞子 교수의 <三個Suzie和香港 - 張愛玲, Mason, 施叔靑>, 張美君 박사의 <文字與光影交錯中的城市制高點>가 발표되었고, 5부에는 陳萬益 교수가 <依達於傳統和現代之間 - 細讀賴和小說<蛇先生>>를, 陳國球 교수가 <香港現代主義運動的國族想像 - 從5,60年代現代主義宣言到李英豪的文學批評>을 발표했다. 5부의 張松建 선생은 <1940年代中國的都市詩: 歷史, 美學, 文化政治>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의 박사학위 청구논문의 일부라 했다. 소논문이 아니라 구체적 예시를 제시하지 못한 것이 지적되기도 했으나 주제나 내용면은 성실했다. 종합토론학회가 끝난 후 張松建 선생은 성공적으로 논문이 통과되었음을 이메일로 알려왔다.

마지막 6부는 홍콩문학과 문화라는 주제였다. 학회 장소가 홍콩인데다 홍콩의 학자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다른 주제의 발표보다 좀 더 깊이 있는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吳耀宗 박사의 <重讀香港1937-1949: 一個被遺忘的文學場域?>, 김혜준 교수의 <關於香港的“文學的民族形式論爭”>, 유영하 교수의 <董橋的散文與中國人diaspora>, 陳惠英의 <舒巷城詩作的東方情調>이 각각 홍콩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시간적 제약이 있었고 폐회사와 총평이 겹치는 바람에 시간을 여유롭게 활용하지는 못했다. 후에 듣기론, 원래 학회의 일정이 3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2일로 단축시키는 과정에서 다소 압축적이고 긴박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고 들었다.

 

마지막조 발표자들과 함께
마지막조 발표자들과 함께

 

26일은 문화활동이라고 하여 新界지역을 관광하고 시낭송회와 작가협회와의 만찬이 계획되어 있었다. 新界지역 관광과 시낭송회는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 시간에 홍콩섬과 구룡반도의 서점 몇 군데를 돌아볼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되었다. 일정상으로는 5일이지만 사실상 3일의 시간만이 홍콩에서 허락된 상황이었던 터라 이 날 오전과 낮을 활용하지 않았으면 아마 개인적인 시간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靑文書屋을 찾는 길에 이층 전차를 타고 잠시나마 관광지로서의 홍콩을 맛볼 수 있었다. 넓어봐야 양방향 4차선 도로가 전부이며 좁은 골목골목에 사람들이 바삐 왔다갔다하고 이층버스를 간신히 지나가도록 하는 건물 바깥으로 튀어나와 있는 간판들. 그 순간에 나는 내가 지금 홍콩에 와 있구나하고 느낄 수 있었다. 靑文書屋

잠시 후 도착한 靑文書屋은 간판도 없이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날 만한 통로로 3층까지 올라가서야 닿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사실 서점 안에 쌓여있던 책들은 정리를 잘 하지 못하는 서점주인의 성격과는 별개로 서점의 규모를 넘어서는 양이어서 원하는 사람이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이미 시스템이 굳어진 것 같았다. 장장 2시간여를 책 속을 찾아 헤매는 동안 나는 문득 책 사이사이마다 잠자고 있던 먼지들을 혼자서 깨우고 있는 듯했다. 몇 권 관심 있는 주제의 책들을 샀을 땐 이미 시간이 늦었고 아쉬움을 뒤로하며 바삐 저녁 만찬장소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저녁만찬에서 내일이면 이제 또 1년간 만나지 못할 것임을 아쉬워하며 각자 마지막 인사를 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식사를 마쳤다.

 

明報月刊 香港作家聯會 주최 만찬장에서
明報月刊 香港作家聯會 주최 만찬장에서

 

참석자 기념촬영작년 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열렸던 같은 주제의 동아시아 문화와 중국문학 학회는 사회자가 있고 각 발표자와 토론자가 앞에 나와 한 편씩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번 홍콩의 학회는 1부부터 5부까지 각 주제별로 발표자가 모두 순서대로 발표하고 총평을 하며 논문의 내용을 종합 정리해주는 강평자가 따로 있어 차이를 보였다. 강평자가 있어서 각 섹션이 깔끔하게 마무리되고 다음 섹션으로 넘어갔다.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홍콩의 학회가 좀더 활기찬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참여 학자들의 국적이 더욱 다양해졌는데, 이는 주최측에서 얼마나 이 학술대회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진행을 했는지를 대변해주는 듯했다. 무엇보다도 회의장 시설이 훌륭했음을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이번 학술대회는 무엇보다도 동아시아 문학의 개념 속에서 중국문학을 살펴본다는 데 첫 번째 의의가 있다. 이로써 중국문학의 세계화와 동아시아 다른 지역의 문학들과의 연관관계로 이어지는 더욱 활발한 연구의 활로를 여는 것이다. 두 번째 의의는 중문문학으로서의 홍콩과 대만과 싱가폴 문학에 대한 주목과 관심의 촉발이다. 해외 화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영감을 주는 논문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의의는 다양한 시선과 다양한 관점과 형식을 통해 중문문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길을 열었다는 것이다. 문학과 비평의 새로운 도구와 해석의 방법은 연구자에게는 끊임없는 도전과 과제로 남게 된다.

Paul. S. Lam Conference Centre 표지판짧은 홍콩에서의 5일은 이렇게 끝났다. 홍콩은 쇼핑천국과 얼마 전 생긴 디즈니랜드로 더욱 이름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데, 이번 경우엔 그쪽 방면으로서의 홍콩은 많이 알지 못하고 돌아왔다. 떠나는 길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기게 마련이지만 이번만큼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많은 차후의 과제와 고민들을 안고 귀국하는 길에서 나는 생각했다. 바로 무협소설과 느와르 영화들의 이면에 감추어져 있던 좀 더 근원적인 홍콩인들의 고민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되었다는 느낌을 얻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로부터 나와 홍콩의 사이에 새로운 관계맺음이 이루어졌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야경이 아름답던 도시는 이젠 좀 더 구체화되고 개인화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첵랍콕 공항 로비
첵랍콕 공항 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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