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말

김  혜  준  KHJ

 

《사람을 찾습니다》《사람을 찾습니다》
웡찡[黃靜] 외 지음,
김혜준 외 옮김,
서울: 이젠미디어, 2006.11.30.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해인 1997년 이후에 나온 홍콩의 대표적 단편소설을 모아 우리나라에 소개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이에 대해 이젠미디어에서는 우선 젊은 여성작가의 작품을 먼저 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수정 제의를 해왔다. 원래의 계획과 약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 또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젊은 여성작가의 범위 자체도 좀 모호한데다가, 비록 홍콩문학에 대해 여러 해 동안 관심을 기울여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면에서 정보가 부족했다. 이에 따라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홍콩문학』의 편집장 타오란(陶然) 선생과 소설가이자 시인인 홍콩링난대학 룡빙콴(梁秉鈞) 교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들에게 우리의 취지를 설명하고, 연령상으로 2, 30대에 속하는 여성작가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평소 내 자신이 염두에 두어온 작품 중에서 이에 해당하는 것들을 골라냈다. 그런 후 다시 작품의 성취도, 우리나라 독자들의 독서 습관, 작품집 전체의 분량 등을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모두 8편의 작품이 선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미 번역까지 끝난 많은 작품이 부득불 제외되기도 했는데, 이는 작가나 옮긴이 모두에게 참으로 아쉬운 점이었다.

 

홍콩은 세계 어느 지역과도 구별되는 특별한 환경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1842년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래 150여 년 동안 동방문화와 서방문화의 적극적인 교류 접촉,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전후부터 약 50년간의 좌익사상과 우익사상의 간접적인 대립 경쟁, 궁극적으로는 식민지라는 한계가 주어졌던 정치적 환경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상당히 자유로웠던 언론 상황, 대도시 특유의 상업적이고 도시적인 환경과 그 이면에서 여전히 작용했던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생활습관, 1997년 이후 이른바 일국이체제로 불리는 사회주의 국가 내에서의 자본주의 사회의 유지…등이 그러하다.

이로 인해서 홍콩문학 역시 그 자신만의 독특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특정 이데올로기나 문학 관념이 지배하지 않는 다양성, 상업적 논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상업성, 작가의 이동이 대규모적이고 빈번한 유동성, 중국문학과 세계문학이 상호 소통하는 교통성, 중국대륙문학과 타이완문학 및 세계 각지의 중국인 문학을 연결하는 중계성, 현대적 대도시에 바탕한 소재와 사고와 감각을 표현하는 도시성, 칼럼산문이나 무협소설과 같은 분야가 성행하는 대중성 등은 모두 홍콩문학의 독자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홍콩문학의 이와 같은 독자성은 세계문학, 그 중에서도 직접적으로는 중국문학 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도록 만들었다. 이 때문에 국제적으로 홍콩문학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게 되었는데, 이는 특히 홍콩반환 문제가 정식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1980년대 초부터 본격화되었다. 종래 자신이 누구이며 홍콩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별반 주의하지 않던 홍콩인들도, 이 무렵부터 정체성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한편 스스로 그 정체성을 만들어나가고자 노력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고민과 노력을 그들의 문학 즉 홍콩문학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홍콩인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추구는 여러 장르 중에서도 소설 부문에서 비교적 분명히 나타났다. 우선 홍콩의 장래나 홍콩의 정체성 또는 홍콩과 중국대륙의 차이 등에 관심을 가진 작품이 증가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작품은 질적으로도 더욱 다양화, 구체화, 심층화되었다. 상대적으로 보아 1980년대에는 홍콩의 미래를 염두에 두고 현재와 과거를 살펴보는, 그 중에서도 특히 홍콩의 과거를 회고하는 일종의 역사 정리성 작품이 상당히 많았다. 또 중국대륙의 변동이나 중국대륙에서 새로 이주해온 사람들과 관련한 작품 역시 점차 늘어났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체성의 추구가 선명한 '도시의 상실' 내지 '도시로부터의 소외'를 보여주는 작품이 더욱 현저해졌다.

또 이와 관련하여 외국 이민과 관계있는 이야기가 더욱 다양하고 세밀하게 제시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 회고형 작품은 그 심도가 더욱 깊어졌고, 동성애를 다루는 등 오히려 현대적 대도시로서 홍콩 사회 자체에 존재하고 있는 현상을 강조하는 작품들도 일정한 숫자를 형성했다.

이러한 상황은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고 나자 그 변화가 두드러졌다. 먼저 반환 후에는 같은 도시의 상실이라고 하더라도 외국 이민과 같이 홍콩 반환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도시의 상실보다는, 현대적 대도시 자체가 가져오는 소외 현상으로서의 도시의 상실을 표현하는 작품이 더 많아졌다. 그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 남녀 간의 각양각색의 애정 이야기가 대폭 늘어나게 된다.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홍콩의 정체성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기보다는, 홍콩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다룸으로써 정체성의 탐구와 추구를 내면화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면에서 그 동안 정체성 문제에 대한 집중에서 상대적으로 주변화되었던 계급, 여성, 후식민지적 문제와 사회적 관심이 재부각되고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소설집에 실린 21편의 작품들 역시 이와 같은 상황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사실 특정한 소재나 주제를 염두에 두고 이들 작품을 선정한 것은 아니었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단순히 1997년 이후 2, 30대 여성작가의 대표적인 작품을 분량 등 약간의 기술적 요소만 고려했을 뿐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니 1997년 이후 홍콩소설 내지는 홍콩문학의 흐름을 일정 정도 반영하고 있었다. 여기서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기로 하겠다. 그것은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만 독자들이 이들 작품을 통해서, 문학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재미를 향수함과 동시에, 홍콩문학이 가지고 있는 특유한 점과 더불어 우리문학과의 공통점을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작품의 번역 과정에서, 중국어를 음역해야 할 경우에는 대체로 두 가지 방식을 사용했다. 홍콩과 관련된 고유명사는 홍콩 방언의 발음을 사용했으며, 그 외의 고유명사는 중국 표준어 발음을 사용했다. 그리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홍콩 방언을 우리말로 옮길 때는, 부산 말투를 약간 가미했다. 홍콩과 부산은 지리적으로도 각기 역내의 동남부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유사한 면이 없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 것인데 이것이 지나친 일은 아니리라고 믿는다.

작품의 번역에는 나 외에도 고혜림, 김순진, 서남주, 이은주, 전남윤, 최형록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모두 홍콩문학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각자 자기 분야에서 주역이 될 청년 학자들이다. 다만 총괄책임을 맡은 나로서는 번역 원고의 수정 과정에서 옮긴이의 의도를 충분히 존중하면서 적절하게 처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이 때문에 때로는 대폭적으로 손질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미 한참 전에 받은 원고를 이런저런 이유로 차일피일하면서 상당히 오랜 기간 묵혀두었다. 따라서 이들 젊은 학인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감사한다는 말과 더불어 양해를 구한다.

이제 이 작품집의 출간과 관련하여 마땅히 여러분에게 감사해야 할 차례이다. 타오란 선생은 대부분의 작품을 추천해주고 저작권 처리를 대행해주었다. 룡빙콴 교수는 일부 작품을 추천해주었다. 홍콩링난대학 아만다(Amanda Hsu)는 홍콩 방언을 번역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들 홍콩의 지인들에게 감사한다. 이젠미디어의 대표이신 임요병 님은 결정적으로 이 책을 독자들과 만나게 해주었다. 맹은희 님은 수년 전 1990년대 중국 수필선인 『한향』 시리즈를 낼 때 같이 작업한 적이 있는데, 이번 소설집 출간에도 애써주었다. 이분들에게 감사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원작자들에게 특히 감사한다. 타오란 선생이 원작자들과 연락을 취하느라 크게 애를 써주었는데, 앞으로 이 인연이 직접적이고 활발한 교류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2006년

 


Return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