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말

김  혜  준  KHJ

 

《중국의 여성주의 문학비평》《중국의 여성주의 문학비평》
츠언즈홍[陳志紅] 지음,
김혜준 옮김,
부산: 부산대학교출판부, 2005.10.25.

 

중국의 여성주의 문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 약간의 자료를 모으기도 하고 더러는 읽기도 했다. 그러나 늘 다른 일에 떠밀려 희망과는 달리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그러던 중 2004년 1월 중국 꾸앙저우에 있는 종산대학을 방문했을 때였다. 인근의 한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고, 다른 모든 일을 제쳐 둔 채 그 날로 다 읽어 버렸다. 비록 중국의 여성주의 문학에 대해 세세한 부분까지 다 알게 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책의 내용을 반추하면서 이 책을 번역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나와 같은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 때문이었다. 마침 지은이의 근무처 역시 같은 도시에 있었고, 귀국 직전 직접 만나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지은이의 박사 논문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한다면, 지난 20여 년간 중국의 여성주의 문학비평 내지 여성주의 문학의 전반적 상황을 알기에 아주 좋다는 점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여성주의 문학비평이 언제 중국 대륙에 들어오게 되었고, 어떻게 중국 대륙의 비평가들에게 수용、개조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비평계의 한 영역으로 정착하게 되었고, 그 동안 어떻게 변화 발전하였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등에 대해 요령 있게 설명、평가하고 있다. 이런 일은 일견 단순한 정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자신 만의 독자적인 시각을 가지고 수많은 자료와 관점을 체계화해야 하는,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도전적이면서 신고스러운 작업이다.

옮긴이가 알고 있는 바로는, 20세기 후반 이래 서구에서의 여성주의운동은, 그 이전의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여성의 권익을 회복하자는 데서 더 나아가서, 남성중심적인 인간의 사유와 삶 그 자체의 해체를 시도하고 있다. 여성주의 비평은 바로 이러한 시도의 선두에 서 있으며, 그 이론적 혁명성과 실천적 유효성 탓에 이미 비평계의 한 주된 흐름이 되었다. 그런데 중국의 여성주의 비평 또는 여성주의 문학비평은 아직까지 그런 성황에 도달한 것 같지는 않다. 이 책에 등장하는 중국의 비평가 내지 연구자의 수가 그다지 많지 않으며, 그 활동 역시 보기에 따라서는 일종의 동인 활동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그러나 전체 중국 사회에서의 여성주의의 영향은 상당히 큰 것으로 보인다. 근래에 들어와서 이른바 ‘육체적 글쓰기’니 ‘자전적 글쓰기’니 하여 여성주의 문학 창작이 크게 유행하고 있는 것이 그렇다. 물론 이는 노골적인 상업주의와의 결합 때문이기도 하고, 은밀한 남성 중심주의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 데는 아무래도 서구로부터 도입된 여성주의가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같은 차원에서 여성주의의 한 분야인 여성주의 문학비평 역시 일정한 작용을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주의와 관련한 이런 사회적 현상, 즉 여성담론의 성행에 대해 중국의 여성주의 비평이 제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는 어쩌면 처음 여성주의 이론이 중국에 도입될 때, 사회비평적 성격보다는 문학비평적 성격으로 출발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이와 같은 중국의 여성주의 문학비평의 공과에 대해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한다. 비록 그것이 이미 중국 비평계에서 나름의 지위를 확보했고, 건설식、겸용식、전복식이라는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돌파와 추락을 반복하고 있는 발전의 과정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은이의 이러한 설명과 진단은 대단히 중요하다. 만일 중국의 여성주의 문학비평이 현재 상태로 소수 그룹 내의 주고받기 식의 활동에 그치고 만다면 그 전망은 낙관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중국의 여성주의 문학비평가들은 사회적 실천과 긴밀하게 결합하는 한편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이론적 향상을 도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은이는 이 점을 명확히 의식하고 있으며, 바로 그런 이유로 중국 여성주의 문학비평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정리를 시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시도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이런저런 결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이론적으로도 정치하지 못하고 서술 면에서도 치밀하지 못하다. 또 부정확한 평가나 부적절한 언급도 종종 나타난다. 특히 타인의 저술을 대량으로 인용하거나 요약하면서 간접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이는 일간지 문화담당 기자로서 오래 재직했다는 지은이의 이력과 관계되는 듯하다. 동시에 이는 또 그 자체로서 중국의 여성주의 문학비평과 연구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일 터이다. 그렇지만 이 책이 가진 선도적인 성격, 학술적인 성취에 비추어 볼 때 그 의의와 가치를 훼손할 정도는 아니다.

이 책의 원서는 陳志紅, 《反抗與困境: 女性主義文學批評在中國》, 杭州: 中國美術學院出版社, 2002.3 이다. 지은이는 ‘중국 여성주의 문학비평’은 기본적으로 중국 자체의 확립된 여성주의 문학비평을 뜻하고, ‘중국에서의 여성주의 문학비평’은 전 세계적 차원의 여성주의 문학비평이 중국에서 어떤 상황인가를 뜻한다고 한다. 옮긴이는 지은이의 의도를 존중하여 이 책의 본문에서는 지은이의 표현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다만 이 책의 제목은 우리나라의 관념과 언어 습관을 고려해서 《중국의 여성주의 문학비평》으로 하였다.

이 책의 한국어판을 승낙하고 한국어판 지은이의 말을 써 준 지은이 츠언즈홍에게 감사하며, 이 책의 출판을 지원해 준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와 출판부에게 감사한다. 특히 이 책의 번역 초고를 꼼꼼히 읽고 조언해 주신 유제분 교수께 감사한다. 옮긴이의 부족함으로 인해 생긴 오류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의 이해와 질정을 구하는 바다.



2005년 7월 27일

 

 


Return Home